주간동아 1024

2016.02.03

정치

‘선거의 여왕’이 뽑아 든 필승카드

경제활성화 입법 촉구로 김종인의 경제민주화 힘 빼기 전략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6-01-29 20: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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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종 선거에서 당락을 가르는 3요소로 크게 구도와 인물, 바람이 꼽힌다.
    첫 번째 요소인 선거 구도는 여당인 새누리당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흐르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더불어민주당(더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크게 양분되면서 일여이야(一與二野) 구도가 만들어졌기 때문.
    득표율 5% 미만의 근소한 표차로 당락이 갈리는 수도권에서 일여이야 구도는 새누리당 압승을 가져올 황금분할 구도다. 그러나 역대 선거 때마다 그랬던 것처럼 이번 총선에서도 후보등록 직전 야권연대, 또는 야권 후보단일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선거 막바지 여야 일대일 구도가 만들어지면 여야 지지성향이 확연한 영남과 호남을 제외하고, 수도권과 충청 등에서는 새누리당의 압승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선거 구도는 후보등록이 이뤄지고 난 뒤, 심지어 투표일 며칠 전까지도 후보 사퇴라는 변수가 남아 있기 때문에 아직 유동적이다.
    국민의당 창당 등 야권분열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김민석 전 의원의 민주당과 박준영 전 전남도지사가 창당을 준비해온 신민당의 소통합이 이뤄지고, 국민의당과 천정배 의원 주도의 국민회의, 박주선 의원이 주도한 통합신당의 중통합이 성사된 것은 야권세력 재편으로 총선 구도가 짜이는 과정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새 인물 수혈 효과 톡톡히 본 더민주당

    선거가 임박하면서 여야는 총선에 선보일 새 인물 영입에 공을 들이고 있다. 특히 야권의 영입경쟁이 치열하다. 어느 정당이 더 국민 입맛에 맞는 인물을 영입하느냐 하는 인물경쟁력은 곧 선거에서의 당락과 직결된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국민공천’을 이유로 새 인물 영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자, 최경환 의원 등 당내 친박근 혜(친박)계 인사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새 인물로 승부를 걸어야 국민의 기대를 충족해 승산을 높일 수 있는데 김 대표가 국민이 원하는 광범위한 새 인물 영입을 등한시하고 있다는 평가다. 한 친박계 인사는 “국민이 19대 국회를 최악의 국회로 평가한다는 것은 곧 19대 국회 구성원인 현역의원에 대한 교체 요구가 높다는 방증”이라며 “그런데도 새 인물 영입에 소극적이고현역의원에게 유리한 경선만 고집해서는 총선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반대로 더민주당은 김병관 웹젠 의장, 양향자 전 삼성전자 상무, 김정우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 등 각 분야 전문가 영입에 성공하면서 활력을 얻고 있다. 이미 당 안팎에서 “현역의원이 탈당한 빈자리를 채우고도 남는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올 정도. 그에 비해 안철수 의원이 주도하는 국민의당은 1월 28일 현재까지 눈에 띄는 새 인물이 없어 “대안정당으로 인정받을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이 일고 있다. 야권 한 관계자는 “탈당한 현역의원을 모아 재활용하는 것이 새 정치일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국민의당이 안철수 개인의 대권 준비 정당으로 비쳐서는 총선에서 의미 있는 성적을 거두기 어렵다”고 말했다.
    선거 구도가 유리하게 짜이고, 인물경쟁력이 아무리 높아도 선거 때 국민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시대정신 앞에서는 바람 앞에 등잔불이 되는 경우가 많다. 2007년 대통령선거 직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경선이 대표적인 예다. 당내 지지기반이 탄탄하고 인물경쟁력이 뛰어났던 박근혜 당시 후보가 이명박 후보에게 패한 요인은 ‘국민성공’이라는 당시 국민이 원하는 시대적 코드를 이 후보가 건드렸기 때문이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안철수 현상’이 거세게 일었던 것도 기성 정치권에 대한 극도의 거부감이 안철수라는 새 인물에 투영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더민주당이 김종인을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영입해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위원장까지 맡긴 것은 이번 총선을 ‘경제민주화’ 이슈로 치르려는 포석으로 볼 수 있다.
    더민주당의 경제민주화 움직임에 맞불을 놓은 이는 ‘선거의 여왕’ 박근혜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은 1월 18일 경기 성남 판교역 광장에서 열리는 ‘민생구하기 입법 촉구 천만 서명운동’(천만 서명운동) 행사장을 직접 찾아, 자필로 서명하고 주소란에는 ‘서울 종로구 청와대로’라고 적었다. 민간이 주도하는 입법 청원 서명운동에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동참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서명천국, 불참지옥?

    박 대통령은 서명에 앞서 1월 13일 대국민담화 및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 나라의 주인은 바로 국민”이라며 “가족과 자식과 미래 후손을 위해 국민 여러분이 앞장서서 나서주시길 부탁한다”고 호소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의 서명을 신호탄으로 대기업 등 재계는 조직적으로 천만 서명운동에 발 벗고 나섰다. 1월 20일 재계 서열 1위 삼성그룹 사장단이 가장 먼저 천만 서명운동에 참여했고, 21일에는 LG그룹과 CJ그룹 임직원이, 22일에는 롯데그룹, 25일에는 포스코 권오준 회장 등 임직원이 서명했다.
    대통령이 앞장서 서명하는 바람에 천만 서명운동은 민간에서 추진하는 서명운동 그 이상의 정치적 의미를 띠게 됐다. 서명에 동참하면 대통령과 뜻을 같이하는 재계 친박으로 여겨지고, 불참하면 대통령 뜻을 거스르는 재계 비박(비박근혜)으로 비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 재계 인사들 사이에 ‘서명천국 불참지옥’이란 우스갯소리가 회자되는 이유다.
    천만 서명운동은 재계뿐 아니라 대통령의 인사권이 미치는 공기업으로까지 자발적(?)으로 확산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는 1월 27일 김재홍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사장 등 임원들이 천만 서명운동에 참여했고, 부장급 이상 간부들의 자율적 참여를 유도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도 천만 서명운동 동참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박 대통령이 경제활성화 입법촉구 서명에 나서고, 더민주당이 김종인 비대위체제를 출범함으로써 이번 총선은 경제활성화냐 경제민주화냐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과연 국민은 어느 이슈에 손을 들어줄까. 이종훈 시사평론가는 “경제활성화와 경제민주화, 둘 다 국민이 원하는 이슈이긴 하지만 냉정하게 따져보면 박 대통령이 주도하는 경제활성화에 좀 더 점수를 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저성장 시대로 접어든 이후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큰 상황에서 중산층과 중도층의 표심을 자극하는 데 경제활성화가 경제민주화보다 소구력이 더 크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경제민주화를 전제로 ‘포용적 성장’과 ‘더 많은 민주주의’를 한데 묶어 총선의 양대 목표로 제시한 것도 그 때문이다. 경제민주화라는 진보 이슈에 발이 묶일 경우 중도층 공략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때문으로 볼 수 있다. 2012년 총선 때 새누리당 비대위원장과 비대위원으로 호흡을 맞췄던 두 사람이 4년 만에 대통령과 제1야당 비대위원장으로 ‘동지’에서 ‘적’으로 바뀌어 치르게 될 20대 총선의 최후 승자는 과연 누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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