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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세 시대, 죽을 때까지 진로 고민해야죠 [SynchroniCITY]

반드시 1등일 필요는 없잖아요

  • 안현모 동시통역사·김영대 음악평론가

120세 시대, 죽을 때까지 진로 고민해야죠 [SynchroniCITY]



예전에는 진로를 정할 때 명문대 진학, 대기업 취업을 최우선으로 여겼다. [GettyImages]

예전에는 진로를 정할 때 명문대 진학, 대기업 취업을 최우선으로 여겼다. [GettyImages]

현모 곧 아이들 봄방학이네요. 어릴 땐 2월에 잠깐 1~2주 학교 나갔다가 다시 방학할 걸 뭐 하러 애초에 개학을 하나 했었는데, 친구들이 엄마가 되니까 그 1~2주가 엄마들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알겠더라고요.ㅎㅎ

영대 드디어 저희 첫째가 초등학교를 졸업한답니다.

현모 오, 이제 중학생이 되네요.

영대 중학교도 벌써 배정받았죠. 그런데 저희는 결정했어요. 중학교 진학을 안 시키기로요.



현모 아, 집에서 홈스쿨링하시는 거죠?

영대 네. 하… 쉽지 않겠지만 그게 맞을 거 같아요.

현모 맞아요. 아이가 무척 똑똑하니까요!

영대 에휴. 말도 마세요. 최근엔 또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로 계속 어쩌고저쩌고… 감당하기 어려워요.

현모 알죠 알죠. 진짜 들을수록 특별하고 놀라운 아이예요. 오죽하면 제가 태교 어떻게 했냐고 진지하게 여쭤봤잖아요. ㅋㅋ

영대 뭐 그렇다고 대단한 아이로 키우겠다는 엄청난 목표가 있어서는 아니고요. 아이가 미국에서 자라기도 했고, 미국식 교과 과정으로 홈스쿨링하겠다는 의지가 뚜렷해 저희 부부가 힘들더라도 서포트하기로 했죠.

현모 물론 부모 입장에선 부담이 크겠지만, 전 적극 찬성이에요. 학교를 때려치우고 마냥 놀겠다는 것도 아니고,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충분히 자기가 알아서 공부하고 적극적으로 탐구할 테니까요.

영대 아내한테 미안하긴 하죠.

현모 영대 님도 같이 가르치시면 되잖아요.

영대 물론 같이 돕기야 하겠지만, 전 바쁘게 일해야죠. 이럴수록 제가 돈을 더 열심히 벌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ㅋㅋㅋㅋ

현모 근데 그럼 동생도 따라서 홈스쿨링하겠네요?

영대 아악, 그러니까요. 둘째는 사실 아직 어려서 시간이 지나면 한국에 잘 적응할 수도 있는데, 자기도 언니 따라 홈스쿨링하고 싶다고 하네요.

현모 ㅋㅋㅋ 당연히 그러겠죠. 두 명을 한꺼번에 하는 게 수월할 수도 있고요.

영대 어떻게 될지…. 아빠 입장에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라 불안하긴 하지만, 홈스쿨링으로 아이를 키운 지인분들에게 여쭤보니, 그 시절에 대해 전혀 후회가 없다며 굉장히 만족해하더라고요. 물론 홈스쿨이라는 게 교사, 즉 부모에 따라 내용이 천차만별이긴 하지만요.

현모 할리우드 스타 가운데 홈스쿨 출신 수두룩하잖아요. 저스틴 비버,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조나스 브라더스 등등 셀 수 없이 많죠. 아! 갑자기 영화 ‘캡틴 판타스틱’이 생각나요.

영대 전 아직 못 봤는데.

현모 아내분과 꼭 한 번 보세요. 사회 체제를 거부하고 6남매를 홈스쿨링, 아니 야산에서 와일드 스쿨링하는 아버지 이야기예요. 많은 부분에서 이해되고 공감도 되지만 어느 수준에선 현실과 타협해야 해 씁쓸해지기도 해요. 과연 어디까지가 적절할까, 생각이 많아지는 영화죠. 지금 방금 ‘흥미로운’ 영화라고 말하려다가, 영화에서 ‘흥미로운(interesting)’은 쓰지 말아야 할 금기어라고 했던 게 기억나서 안 했어요. ‘흥미롭다’라는 설명은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ㅋㅋㅋ

여섯 남매를 야산에서 와일드 스쿨링한 아버지 이야기를 담은 영화 ‘캡틴 판타스틱’의 한 장면. [네이버영화]

여섯 남매를 야산에서 와일드 스쿨링한 아버지 이야기를 담은 영화 ‘캡틴 판타스틱’의 한 장면. [네이버영화]

영대 챙겨 봐야겠네요. 저도 애를 자연인으로 키우겠다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소위 말하는 국내 SKY 명문대는 옵션에서 제외하겠다는 선택인 셈이에요. 그걸 제가 강요한 게 아니라 본인 적성과 요구가 충분히 반영된 합의인 만큼, 세속적 의미의 ‘성공’을 자신할 순 없지만 적어도 나중에 아이가 저를 원망하진 않겠죠.

현모 물론이죠. 그리고 제가 장담해요. 그 세대에 SKY니 명문대니 하는 건 정말 아무 의미도 없을 거예요. 대학 자체가 없어진다는 소리까지 나오는 판인데요 뭐.

영대 동의해요. 지금도 점점 대학이 무의미해지고 있잖아요. 돌이켜보면 좀 억울하지 않으세요? 우리가 대학 입시를 위해 학창 시절을 얼마나 소모하고 낭비했는지!

현모 음… 전 뭐 지나간 걸 후회하는 스타일은 아니긴 한데, 돌이켜보면 제도에 곧잘 순응하면서 사회가 원하는, 두루두루 성적이 좋은 무난한 인재로만 큰 거 같긴 해요.

영대 저도요! 한때 진지하게 음악을 하고 싶어서 밴드 활동도 했지만, 특출하게 뛰어난 재능이 있는 거 같지도 않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대학을 다니고 있으니 굳이 리스크를 감수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그쪽 진로를 택하지 않았거든요. 우리 땐 예체능 분야에 대한 불안감이 있는 데다, 무조건 안정적인 엘리트 코스를 최고로 여겼잖아요. 진짜 내 꿈이나 열정 같은 건 최우선 고려 사항이 아니었던 거죠.

현모 어머, 저랑 너무나 비슷해요. 저도 학창 시절 화실에 살다시피 하면서 그림을 그렸는데, 어느 날 어머니가 “(서울대나 홍대 정도 되는) 미대를 가려면 재수를 기본으로 해야 하는데, 그건 뒷받침이 어렵다(?)”고 하셔서 그냥 반항도 하지 않고 “그런가 보다”하고 미술은 대학생이 된 후에 하기로 약속했거든요. 실제 그 약속대로 대학 때 1년 휴학하고 포트폴리오를 만들면서 미국 유학을 준비했어요. 재미있는 건 저도 영대 님과 똑같이 “나는 그다지 천재적인 아티스트는 아니구나”하고 결국 접었다는 거예요. 세월이 지나 어찌어찌 밥벌이하면서 사니까 지금까지 그게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여겼는데….

영대 웃기잖아요! 꼭 천재만 디자이너가 되라는 법이 있어요? 어떤 분야든 반드시 1등이 돼야 하는 것도 아닌데, 우리 스스로가 너무 높은 기준을 가지고 있었던 거예요.

현모 와, 저도 대화하면서 깨닫고 있어요. 내가 남들보다 소질이 없었던 게 설령 사실일지라도 어디까지나 내가 이미 서울대생이기 때문에 굳이 모험을 감행하지 않았던 거 같아요.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안전한 울타리 안에 들어와버렸으니까, 굳이 위험하게 도전하지 않고 시스템이 주는 보상에 안주한 거죠. 그게 월급이 됐든, 착한 딸이라는 가족의 칭찬이 됐든, 사회적 명함과 인정이 됐든 말이에요. 그러면서 “에이, 나는 천재가 아니니까…”라며 셀프 위안이나 하고.

영대 그만큼 시스템이라는 게 무시할 수 없이 단단했다는 거예요. 엄밀히 말하면 비단 우리 둘만 그랬던 건 아니에요. 전반적으로 개개인의 소질이나 욕망 따위는 묻지 않는 게 당연했어요. 심지어 “남자는 무조건 법대 아니면 상대”라는 식의 말도 교사들로부터 공공연하게 들었으니까요.

현모 새삼 안타깝네요. 전 아시다시피 아직도 시간만 나면 전시회 구경 다니고, 친구들도 예술계 종사자가 많아요. 항상 마음속에 못다 이룬 꿈에 대한 죽지 않는 열정이 있거든요.

영대 알죠. 남들이 보기엔 이미 무척 멋진 커리어를 이뤘는데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진로를 고민하는. ㅋㅋㅋ 전 그게 맹목적인 것보다 훨씬 나은 자아 성찰이라고 봐요.

현모 이제 한 사람이 평생 3~4개 직업을 갖게 되는 시대라고 하니, 진로는 죽을 때까지 고민해야죠. 어찌 보면 인생의 키를 내가 계속 쥐고 싶은 거기도 하고요. 그나저나 흠… 인생의 3분의 1을 넘어가는 이 중요한 시점에 따님 덕분에 아주 뜻깊은 얘기를 나눈 거 같네요.

영대 100세 시대니까요. 늦지 않았어요, 현모 님.

현모 전 지금 120세 기준으로 말한 건데요? ㅋㅋㅋㅋ

영대 ㅎㅎㅎ 계산해보니 그러네요.

현모 괜히 말했다! ㅋㅋㅋㅋ

(계속)


안현모는…방송인이자 동시통역사. 서울대,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SBS 기자와 앵커로 활약하며 취재 및 보도 역량을 쌓았다. 뉴스, 예능을 넘나들며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우주 만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본 연재를 시작했다.





김영대는…음악평론가. 연세대 졸업 후 미국 워싱턴대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 취득.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집필 및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BTS: THE REVIEW’ 등이 있으며 유튜브 ‘김영대 LIVE’를 진행 중이다.





주간동아 1326호 (p60~62)

안현모 동시통역사·김영대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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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46호

2022.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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