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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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0억 美 군함, ‘해적 상대용’ 조롱받고 조기퇴역 [웨펀]

미 연안전투함의 교훈, “검증된 무기 장착 놓치면 소멸”

  •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입력2020-07-08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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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해군 연안전투함(LCS) 개브리엘 기퍼즈.  [USS Gabrielle Giffords]

    미 해군 연안전투함(LCS) 개브리엘 기퍼즈. [USS Gabrielle Giffords]

    6월 29일 중국 하이난 해양안전청이 남중국해 일대에 대해 항행금지구역을 선포했다. 기간은 7월 1일 오전 1시부터 5일 밤 12시까지였고, 중국과 베트남이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는 파라셀 제도(중국명 시사군도)가 대상 해역이었다. 

    중국 당국이 밝힌 항행금지구역 선포 이유는 군사훈련 때문이었다. 중국 해군 전투함과 항공기들이 이 해역에서 실탄 사격이 포함된 고강도 군사훈련을 벌일 예정이니, 중국은 물론 타국 선박은 절대 이 구역에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였다. 

    실제로 7월 1일부터 이 해역에는 052D 방공구축함 1척과 054A 호위함 2척 등으로 구성된 훈련전대가 들어가 실탄 사격을 시작했는데, 재미있는 것은 이 해역에서 중국 해양조사선 해양4호가 군함들의 호위를 받으며 해양 조사 활동을 벌였다는 점이다. 중국은 베트남과의 분쟁 해역인 이곳에서 군사훈련을 한다며 외국 선박의 출입을 통제하고, 자신들은 그 안에서 석유 탐사 활동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미 군함 4척, 내년 3월 조기 퇴역

    베트남은 자신들의 영유권이라고 주장하는 이 해역에서 중국이 군사훈련을 하겠다고 선포하자 즉각 반발했지만, 외교부 성명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7월 1일 오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중국 해군 훈련전단의 대형 한가운데로 미국 해군 전투함이 밀고 들어온 것이었다. 이 배는 제7함대에 파견된 미 해군 연안전투함(LCS), 개브리엘 기퍼즈(USS Gabrielle Giffords)였다. 인디펜던스(Independence)급으로 분류되는 이 배는 3100t 덩치에 삼동선(Trimaran) 형상을 가진 전투함이다. 

    대단히 미래적 외형을 가진 이 배는 대공/대함 모든 용도로 사용 가능한 57mm 함포, 스스로 표적을 찾아 조준하고 사격하는 시램(SeaRAM) 근접방어미사일 시스템, 30mm 기관포와 NSM 함대함미사일 8발 등 무장을 갖추고 있었다. 



    이 배는 중국이 선포한 훈련 해역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 중국 해양조사선에 바짝 붙어 만 하루를 따라다녔고, 이틀간 중국 함대 사이를 종횡무진 휘젓다 유유히 파라셀 제도를 빠져나갔지만, 중국 함대는 멀리서 지켜보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처럼 최일선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는 개브리엘 기퍼즈 같은 인디펜던스급 연안전투함은 미 해군에 11척이 취역한 상태다. 같은 시기 취역한 프리덤(Freedom)급 연안전투함도 10척이 운용되고 있다. 인디펜던스급은 8척이 추가로 전력화될 계획이고 프리덤급은 6척이 더 취역할 예정인데, 7월 2일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지금 전력화가 진행 중인 인디펜던스급과 프리덤급이 내년 3월 4척이나 퇴역한다는 것이었다. 

    이 같은 소식은 7월 2일 미국 ‘디펜스뉴스’가 마이클 길데이 미 해군참모총장이 6월 20일 해군청으로 보낸 메시지를 보도하면서 알려졌다. 길데이 총장은 4척의 연안전투함을 내년 3월 31일자로 현역 함정 목록에서 해제하고, ‘모스볼(Mothball’)로 보낼 것이라고 해군청장에게 보고했다. ‘모스볼’이란 미 해군 퇴역 함정이 스크랩 처리, 보관되는 곳이다. 

    길데이 총장이 밝힌 퇴역 대상 함정은 인디펜던스와 그 동급의 코로나도(Coronado), 프리덤과 그 동급의 포트워스(Fort Worth)다. 인디펜던스는 2011년, 코로나도는 2014년 취역했고 프리덤과 포트워스는 각각 2008년과 2012년 취역했다. 보통 군함이 짧게는 30년, 길게는 50년가량 운용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의 퇴역은 ‘조기 퇴역’ 정도가 아니라 ‘초단기 퇴역’ 수준이다. 

    미 해군은 이미 2월에도 이들 함정의 조기 퇴역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 해군청 예산차관보인 랜디 크루즈 준장은 2월 ‘디펜스뉴스’와 인터뷰에서 “LCS 초기 양산분 4척은 전투함으로서 가치는 물론, 시험선박으로서의 유용성도 거의 끝났고, 더는 이 배들에 쓸 돈이 없다”며 이 군함들의 조기 퇴역을 시사했다. 

    이렇게 혹독한 평가를 받으며 조기 퇴역이 결정된 이 전투함들은 인디펜던스급의 경우 3100t, 프리덤급의 경우 3500t의 비교적 작은 덩치지만, 동급 함정 가운데 세계 최정상급 가격으로 악명이 높다. 

    비슷한 덩치로 비슷한 시기에 전력화된 우리 해군 인천급은 척당 가격이 2800억 원가량이고, 이보다 약간 큰 중국 054A 호위함은 약 4000억 원 수준이다. 그런데 인디펜던스급은 초도함 기준 9500억 원, 프리덤급은 8000억 원에 달한다. 우리 해군의 1만t급 이지스 구축함인 세종대왕급에 맞먹는 가격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 가격으로 만들어낸 전투함의 구성이다. 9000억 원이라는 돈은 우리 해군의 차세대 전투함인 대구급 호위함 2척을 뽑고도 남는 금액이고, 스페인의 6000t급 이지스함인 F100급을 사고도 2000억 원이 남는다. 그러나 9000억 원짜리 인디펜던스함에는 위상배열레이더나 SM-2 미사일 같은 고급 장비가 단 하나도 탑재되지 않았다. 

    인디펜던스함에는 대공레이더와 사격통제레이더가 없다. 항법레이더와 대수상레이더만 있을 뿐이다. 무장으로는 57mm 함포와 근접방어용 단거리 함대공미사일인 시램 각 1기를 중심으로 수동식 30mm 기관포 2문과 M2 기관총 4정이 달려 있다. 제대로 된 함대함 전투는 고사하고 해적 정도나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다.

    치명적 패착이 된 연안전투함

    막대한 비용을 들여 건조했음에도 이 같은 결과물이 나온 이유는 ‘혁신’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탈냉전 이후 미 해군은 변화하는 안보환경에 대응해 연안지역 작전에 특화된 고성능 모듈식 전투함을 만들겠다는 구상을 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LCS(Littoral Combat Ship), 즉 연안전투함이었다. 

    LCS는 고도의 자동화 시스템을 통해 승조원 수를 50명 이내로 줄이고, 모듈화 설계를 적용해 필요할 때마다 임무 모듈을 교체해 높은 범용성을 가지도록 제작될 예정이었다. 가령 일반적인 전투함 임무를 수행할 때는 대함미사일과 대공미사일 모듈을 장착해 운용하고, 연안지역에서 특수전이나 상륙작전을 지원할 때는 병력 수송 모듈을 달아 수송 능력을 극대화한다는 개념이었다. 

    처음 시도해보는 개념인 만큼 미 해군은 입찰에 참여한 록히드마틴과 제너럴다이내믹스 두 회사의 설계안을 모두 채택해 각 설계안대로 몇 척씩 찍어낸 뒤 어느 쪽이 더 좋은지 직접 확인해보려 했는데, 결국 이러한 결정이 치명적인 패착이 되고 말았다. 

    검증되지 않은 신기술을 대거 적용한 인디펜던스급과 프리덤급은 완성되자마자 엄청난 오류를 쏟아냈다. 선체에 균열이 발생하는가 하면, 멀쩡한 엔진이 파괴되는 사고가 발생했고, 자동화 시스템은 수시로 고장을 일으켰다. 전혀 다른 두 종류의 설계안을 채택한 데다, 두 종류 모두 온갖 문제를 일으켜 문제 해결에 들어가는 돈도 2배가 들었다. 

    LCS는 이미 개발된 무기가 아닌, 앞으로 개발될 무기들을 하나씩 달아볼 계획이었으나, 이 무기들의 개발 및 장착이 연달아 취소되면서 깡통이 됐다. 연안지역에서 적의 고속정을 잡기 위해 개발하던 NLOS-LS 미사일은 가격과 신뢰성, 성능 문제 때문에 취소됐고, 그 대안으로 떠오른 그리핀(Griffin) 미사일은 사거리가 함포보다 짧은 5.5km에 불과해 여론의 질타를 맞다 장착이 취소됐다. 

    곧 개발될 대잠 모듈을 믿고 선체 고정식 소나(Sonar)를 장착하지 않았다 대잠 모듈 개발이 취소되면서 대잠 능력이 사라졌고, 헬기 탑재 항공소해장비 RAMICS(Rapid Airborne Mine Clearance System) 개발이 취소되면서 소해 능력도 사라졌다. 

    대대적인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해 승조원을 정상 규모의 절반인 50명으로 맞췄지만, 이 자동화 시스템이 수시로 고장과 작동 정지를 일으켜 승조원들이 극심한 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다. 미 해군이 공개한 인디펜던스급 운용 영상을 보면 조리실에서 음식을 만들던 한 여군이 헬기 이함 준비 방송이 나오자 앞치마를 벗어 던지고 헬기 격납고로 달려가는 모습이 나온다. 이 여군은 자신의 임무가 헬기 이착함 지원 겸 조리병 겸 중기관총 사수 겸 화재 진압 담당 겸 행정병이라고 소개하면서 업무량이 너무 많아 피로에 시달리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미 해군 ‘함장의 무덤’

    우리 해군은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한민국 방위 사업청]

    우리 해군은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한민국 방위 사업청]

    배의 기계적 신뢰성이 바닥을 찍고, 승조원들이 극심한 피로에 시달리다 보니 사고도 많았다. 수시로 발생하는 고장과 인사사고 때문에 LCS는 미 해군에서 ‘함장의 무덤’으로 불린다. 이번에 퇴역하는 포트워스함의 경우 1년 사이 함장 2명이 보직 해임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결국 미 해군은 LCS 승조원을 50명에서 70명으로, 다시 106명으로 늘렸다. 자동화 시스템은 있지만 자동화에 실패해, 결과적으로 자동화 시스템이 없는 배와 거의 같은 병력으로 운용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이 같은 문제는 후속함 건조로 조금씩 개선되고 있지만, 근본 자체가 엉망인 군함을 개량한다고 해서 쓸 만한 배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최근 남중국해를 종횡무진 휘젓고 있는 인디펜던스급 5번함 개브리엘 기퍼즈는 건조 가격이 하락했고, 상당한 신뢰성 개선과 무장 강화 조치가 이뤄졌지만, 납세자 입장에서 볼 때 7000억 원짜리 전투함이라고 하기엔 분노가 치밀어 오를 정도로 형편없는 무장과 센서를 갖고 있다. 

    결국 미 해군은 2월 LCS 프로그램의 조기 중단과 기존 배치 전투함들의 조기 퇴역을 결정했다. 그 시작이 내년 3월 프리덤, 포트워스, 인디펜던스, 코로나도의 조기 퇴역이다. 코로나도의 경우 2014년 4월 취역했는데, 취역 6년 만에 퇴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됐다. 

    미 해군은 5월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한 차세대 호위함 사업 규모를 확대하고 전력화 시기를 앞당겨 나머지 LCS도 가급적 빨리 퇴역시키겠다고 밝혔다. LCS를 대체하는 차세대 호위함은 LCS의 악몽 때문인지 철저히 ‘안정성’을 추구하고 있다. 설계안은 이탈리아 해군에서 이미 검증된 FREMM급 기반의 모델이 선정됐으며, 여기에 탑재되는 장비도 대부분 이미 개발이 끝나 검증된 것들이다. 

    LCS의 실패는 무기체계 도입 의사 결정 과정에서 ‘첨단’과 ‘다재다능’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얼마나 위험한지, 테스트 베드를 충분히 활용한 사전 검증 없이 양산품을 찍어내는 것이 얼마나 큰 손실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로, 우리 군도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우리 해군은 지금까지 시도해본 적 없는 궁극의 수상전투함 KDDX(한국형 차기 구축함)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구축함에는 듀얼 밴드 다기능 위상배열레이더는 물론, 새로운 전투체계와 무장이 대거 적용될 예정이다. 그 어디에서도 검증된 바 없는 새로운 장비들을 우리 군 전력의 일부로 성공적으로 편입하려면 사업 일정이 다소 지연되더라도 별도의 시험 함정을 만들어 그 신뢰성을 검증하고 보완해나갈 필요가 있다. 

    미국은 2선급으로 밀려난 대형상륙함 여러 척을 테스트 베드로 활용 중이며, 일본도 4200t급 아스카함을 테스트 베드로 운용하면서 레이더와 전투체계, 전자장비, 무장 등을 실험하는 데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다. 모든 전투함을 국내에서 개발해 조달하고, 전투함에 들어가는 장비와 무장체계도 차근차근 국산화해가고 있는 우리나라 역시 이러한 테스트 베드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문제는 의지와 예산이다. 무기체계의 빠른 전력화와 전력 공백 방지도 중요하지만, 시간과 예산이 좀 더 들어가더라도 충분히 검증된 무기를 일선 장병들의 손에 쥐어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국가 안보를 더 튼튼히 하고 국민의 소중한 혈세를 절약하는 애국이라는 점을 정책 결정자들이 한 번쯤 고민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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