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37

2020.05.08

르포

문 열지 못하는 다중이용 시설, “코로나 위험 때문에 일손도 사라져”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20-04-28 15: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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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서대문구의 한 PC방 입구, 방역대책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기자 직접촬영

    서울 서대문구의 한 PC방 입구, 방역대책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기자 직접촬영

    “오늘은 전기세 정도만이라도 벌었으면 싶네요.” 

    경기 안양시의 한 코인노래방 점주의 한탄이다. 문을 열면 각 방에서 새어나오는 노래소리가 들리는 것이 보통이지만, 귀에 닿는 것은 전자 온도계의 측정음 뿐이었다. PC방도 상황은 마찬가지. 서울 서교동 인근의 PC방은 손님이 줄어 비자발적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을 실천하고 있었다.
     
    4월 20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돼 일부 노래방, PC방이 영업 재개에 나섰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외출하는 사람들이 늘더라도 다중이용시설 방문객은 눈에 띄게 늘지 않았다. 그나마 헬스장 등 운동 시설은 건강을 위해서라도 찾는 사람이 있지만, 오락 시설은 비교적 인적이 드물었다. 코로나 시대의 다중이용시설은 어떻게 활로를 찾고 있을까.

    입국 심사 방불케 한 PC방 방역 절차

    프랜차이즈 PC방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인적사항 수집 창 –기자 직접 촬영

    프랜차이즈 PC방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인적사항 수집 창 –기자 직접 촬영

    PC방은 생각보다 소란스러웠다. 조용히 앉아서 게임만 하면 될 PC방에서 육성이 오가며 활기를 찾는 듯 보였다. 대부분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게임을 하러 들렀다. 지인들과 합을 맞추려면 아무리 디지털 시대라지만 말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 혼자 게임하러 온 사람들도, 음성채팅으로 게임 속 동료와 이야기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모든 PC방이 예전의 활기를 되찾은 것은 아니었다. 4월 23일 찾은 서울 서대문구의 한 PC방에서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기 어려웠다. 그나마 들리는 목소리라고는 게임 캐릭터들의 외침이나 단말마의 비명 정도였다. PC방에 앉은 손님들은 독서실에 앉은 수험생들처럼 침묵을 지켰다. 모두 마스크를 한 채로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환으로 한 두 자리씩 비워두고 자리를 잡았다. 비장한 표정으로 복면을 한 채 게임에 몰두하고 있었다. 마치 프로게이머 선발 시험을 보러 온 사람 같았다. 이날 PC방을 찾은 김모(18)군은 “부모님도 그렇고 학교에서도 그렇고, 웬만하면 나가지 말라고 하는데 굳이 PC방을 찾는 것은 보통 열정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김군이 용기를 내 PC방을 찾은 이유는 집에 있는 컴퓨터가 문제가 생겼기 때문. 그는 “인터넷 강의야 태블릿이나 형 노트북을 빌려서 보면 되는데, 게임을 할 수가 없어서 나왔다. 학교를 가지 않으니 친구들을 만날 수가 없으니 보통 게임에서 만나서 놀게 된다”고 말했다. 

    다중이용시설에 대한 걱정 때문인지 PC방 출입절차는 입국절차를 방불케 했다. PC방에 들어서자마자 직원이 나와 체온을 확인하고 손에 소독제를 뿌려주었다. 얼떨결에 방역절차를 밟고 있다 보니 다른 직원이 옆에 서서 방역 지침을 설명했다. 표시된 좌석에만 앉을 수 있고, 이용 중에는 마스크를 항상 끼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는 서류를 한 장 내밀었다. 이름, 사는 곳, 주소, 휴대폰 번호 등 인적 사항을 기입하는 종이였다. 나중에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 동선 파악을 위한 조치였다. 인적 사항을 적고 있자, 옆에서 직원은 PC방의 키보드와 마우스는 물론, 스피커와 모니터, 의자 등 전역을 매일 소독한다고 알려줬다. 



    한 시간 가량 PC방에 앉아 있으며, 중간에 전화를 받을 일이 생겨 마스크를 벗고 밖에서 전화를 받고 돌아왔다. 깜빡 잊고 마스크를 쓰지 않았는데, 바로 알림이 왔다. 마스크를 당장 쓰라는 내용이었다. 어디선가 나를 보고 있나 싶어 고개를 두리번대자, 다시 한 번 마스크를 쓰라는 알림이 들어왔다. 

    PC방 주인들은 과거의 매출을 회복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 양천구에서 PC방을 운영하는 정모(38)씨는 “거리두기 완화로 확실히 손님이 늘긴 했지만, 그래도 코로나 이전에 비하면 손님은 절반 수준이다. 매출은 더 절망적이다. PC방에서 판매하는 음식도 매출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이 주문량이 크게 줄었다. 간혹 주문이 올라와 확인하면, 캔 음료 정도가 대부분”이라 밝혔다.

    음악이 멈춘 노래방

    PC방만큼이나 10~20대들이 많이 찾는 시설이 코인 노래방이다. 하지만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곳처럼 보였다. 3월 경남의 한 코인노래방에서만 6명의 확진자가 나온 뒤부터 방문객 기피 현상이 심해졌다. 코인 노래방들은 PC방과 유사한 입실 절차를 마친 뒤에야 손님 입장을 허용하고 있다. 손님들이 마스크를 쓰고 노래를 불러야 할 정도로 가게 주인들이 방역에 신경을 썼다. 

    코로나 사태 발생 전에는 매일 코인 노래방을 찾았다는 김모(28)씨도 더 이상 노래방을 찾지 않는다. 김씨는 “퇴근길에 노래 한 곡을 부르고 나오는 것이 삶의 낙이었는데, 찜찜해서 더 이상 노래방에 갈 수가 없다”고 밝혔다. 

    노래방을 이용하던 사람보다 마음이 타들어가는 것은 업주였다.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로 다시 문을 열었지만, 코인노래방을 찾는 손님은 거의 없었다. 4월 24일 경기도 안양의 한 코인노래방을 찾았다. 인근 상인들의 말에 따르면 번화가에 자리 잡은 곳이라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연중무휴 손님이 가득 차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금요일 저녁임에도 손님은 없었다. 노래방이 너무 조용한 나머지, 인근 상가에서 틀어놓은 음악이 들렸다. 

    업주인 이모(41)씨는 “코로나 전만 해도 너무 손님이 많아, 기기 관리가 일이었다. 손님이 너무 많이 찾는 날에는 약간 귀찮기도 했다. 하지만 이처럼 손님이 없어보니, 그 때가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당장 오늘만 해도 문을 연지 4시간이 넘었지만 손님은 딱 한 팀뿐이었다. 간만에 노래방에서 노래가 들리니 손님이 돌아가는 게 아쉬웠다. 사람 목소리가 반가웠다. 내 지갑에 있는 동전이라도 대신 넣어 줄테니 한, 두 곡이라도 더 불러달라고 부탁하고 싶을 지경이었다”고 말했다.

    코로나 때문에 사라진 일손

    헬스장은 여건이 더 좋아 보였다. 서울 동작구의 한 헬스장은 4월 23일 다시 문을 열었다. 하지만 모든 회원들이 다 나오지는 않았다. 시간당 이용객을 제한하려고 온라인 예약 시스템을 열었다. 한 시간에 넓은 헬스장을 이용할 수 있는 인원은 10명 남짓. 역시 PC방처럼 엄격한 방역절차를 통과해야 운동을 할 수 있었다. 운동을 할 때도 마스크는 벗을 수 없었다. 두 달만에 헬스장에 다시 나왔다는 조모(30)씨는 “숨은 차오르는데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무척 불편하다”고 밝혔다. 

    스터디카페나 독서실은 문을 닫은 곳이 많았다. 당장 손님이 없기 때문. 서울시 동작구에서 독서실을 운영하는 백모(42)씨는 “학원이나 학교에도 학생이 없는데, 독서실까지 나오는 학생이 얼마나 있겠나”라며 한탄했다. 나올 학생이 있다 해도, 경영이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 아침 일찍부터 새벽까지 문을 열어야 하는데, 일 할 직원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 백씨는 “독서실 아르바이트는 일이 고되지 않고, 공부도 할 수 있어 최저임금만 주고도 비교적 쉽게 사람을 구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 하루 종일 좁은 곳에서 일하는 것이 두려운지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다. 이번 달부터 문을 열려고 사람을 구하고 있는데, 공고를 낸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일하겠다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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