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33

2020.04.03

풋볼 인사이트

축구계, 유럽부터 도산 위기

빅리그는 물론 동네 축구까지 모두 어려운 시기

  • 홍의택 축구칼럼니스트

    releasehong@naver.com

    입력2020-04-03 15: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멕시코 프로축구 선수들이 코로나19 사태로 무관중 경기를 하고 있다. [뉴시스]

    멕시코 프로축구 선수들이 코로나19 사태로 무관중 경기를 하고 있다. [뉴시스]

    ‘줄도산.’ 여기저기서 몰락 가능성을 논한다. 경제가 연쇄적으로 무너지면서 사회 시스템 전반의 붕괴를 간과할 수 없게 됐다. 코로나19의 전 세계 확산, 이 심각성을 피부로 느끼는 요즘이다. 

    축구계도 예외는 아니다. 처음에는 그저 일정 고민뿐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중국 우한을 시작으로 아시아를 좀먹자 국제축구연맹(FIFA)과 아시아축구연맹(AFC)은 3월 A매치 및 AFC 챔피언스리그 등 지리적으로 가까운 쪽 일정부터 손댔다. 홈, 원정을 바꿔 중국 현지에서 열릴 경기를 미루는 정도로 버텨보려 했다. 하지만 지독한 전염성에 결국 백기를 들었다. 잠정 중단으로 통일해버렸다. 

    유럽과 미주까지 감염되면서 사태는 손쓸 수 없이 퍼졌다. 유로 2020, 코파 아메리카를 각각 1년 연기했다. 월드컵 다음으로 큰 메이저 이벤트라 계획 수정에 따른 피해액이 막심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잠정 중단된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EPL) 등은 재개 시점이 불분명하고, 축구 등 여러 종목을 망라한 도쿄올림픽도 연기됐다.

    축구의 종주, 유럽리그도 흔들리다

    연계된 산업이 통째로 흔들리게 생겼다. 입장권 수입 타격은 바로 보인다. 무관중으로라도 강행하려 했으나, 아예 개최할 수 없게 됐다. 눈앞에서 수억, 수십억 원이 날아간 것이다. 규모가 커 다년으로 묶기도 하는 스폰서십, 중계권 계약도 손봐야 할 전망이다. 이대로라면 약속한 수준의 액수를 장담하기 어렵다. 대회 주최 측 또는 구단은 피해액 최소화를 위해 취소 대신 연기를 논하나, 장기화할수록 전자 쪽으로 무게가 쏠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선수라고 예외는 아닌데, 리오넬 메시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같은 빅클럽 슈퍼스타의 연봉 삭감이 이슈가 됐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거대 공룡의 이야기다. 한 해 농사가 흉작이라고 무너질 정도는 아닐 수 있다. 그보다 규모가 영세한 쪽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들에겐 ‘축구에 사느냐 죽느냐’도 다 낭만이고 사치다. 이제는 진짜 목숨이 달린 ‘사느냐 죽느냐’ 문제다. 터전이 휘청거리면서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들려온다는 것이다. 



    매트 로 영국 ‘텔레그래프’ 기자의 반문이 그랬다.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나도는 일종의 챌린지도 다 먹고살 만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외출이 제한된 상황, 축구 스타들은 ‘스테이 앳 홈 챌린지(Stay at home challenge)’의 일환으로 20초간 손을 씻고 축구공이나 두루마리 휴지를 발로 차 땅에 떨어뜨리지 않는 영상을 업로드 중이다. 또 다른 흥밋거리로 축구를 이어가는 것에 대해 딴죽 걸 일은 아니다. 다만 이 순간 생존을 위협받는 이들이 나오기 시작했음에 귀 기울일 필요는 있다. 

    유럽도 유럽 나름이다. 축구가 상업적으로 크게 발달한 최상위 리그가 아니라면 생존을 고민해야 한다. 독일에서 뛰는 모 한국 선수가 현지 분위기를 전해온 바 “꽤 심각하다. 2부 리그 팀들도 경기를 못 해 줄도산 이야기가 나온다. 그렇다 보니 조금만 잠잠해지면 일정을 밀어붙이려 하는 것도 같다”고 했으나, 연일 발표되는 추가 확진자 및 사망자 수를 보고 있노라면 이미 크나큰 재해가 시작된 것도 같다. 

    선수들에게 “돈을 많이 못 준다”고 공식 선언한 팀도 있다. 스위스 슈퍼리그 FC 시옹은 “줄어든 연봉을 납득하지 못하겠다”며 반기를 든 선수 9명을 내쳤다. 최근 국내 기업에서 만지작거린다는 ‘인력 감축’ 카드를 먼저 꺼내 보인 것이다. 근래 성적이 부진한 건 사실이나, 창단 100년이 넘은 명문 구단도 이렇게 흔들리고 있다. 얼마 못 가 이를 따라갈 팀이 줄지어 나오지 말란 법이 있나.

    대한민국 축구 꿈나무 양성도 정지

    리오넬 메시가 자신의 집에서 두루마리 휴지를 이용해 리프팅을 하는 모습. [메시 인스타그램 캡처]

    리오넬 메시가 자신의 집에서 두루마리 휴지를 이용해 리프팅을 하는 모습. [메시 인스타그램 캡처]

    국내도 마찬가지다. 대한축구협회나 한국프로축구연맹도 비상 경영이 불가피하다고 한다. 유럽 쪽과 산업구조적으로는 별반 다를 게 없는 탓이다. A매치 비중이 상대적으로 커 전과 비교해 타격이 더 클 수 있고, 프로축구 일정 축소 현실화에 평년 기준 20~30% 매출 하락은 각오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대기업과 지방자치단체(지자체)에서 나오는 돈을 비빌 언덕으로 삼은 상위 리그 팀들이 당장 존폐 위기에 놓인 건 아니다. 

    풀뿌리 쪽은 한 번쯤 짚고 가야 한다. 초등, 중등, 고등 등 아마추어 축구선수들의 교육 부문을 빼놓을 수 없다. 현재 한국 축구는 프로구단 산하로 운영되는 몇몇 팀 외엔 ‘수익자 부담’으로 돌아간다. 모기업, 지자체가 후원하는 구단으로부터 전액이나 대부분을 미리 투자받는 이는 한정적이다. 그 대신 각자 팀에서 책정받은 만큼의 돈을 지불한다. 프로행을 앞둔 성인 선수가 됐을 때 계약의 자유나 금전적 처우를 누릴 순 있어도, 당장 부담해야 할 교육비나 숙식 등에 필요한 생활비 규모가 적잖다.

    축구와 거리두기 운동 중

    코로나19 탓에 
생활축구 경기도 열리기 힘든 상황이다. [동아DB]

    코로나19 탓에 생활축구 경기도 열리기 힘든 상황이다. [동아DB]

    현 교육부 지침에 따르면 합숙·기숙 형태의 단체생활이 전면 금지된 상태. 선수들을 다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럼에도 지도자 인건비 등 고정 지출액이 발생하는 게 사실이다. 이들의 무급휴가를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인 데다, 메신저 등을 통해 선수들에게 이론 교육을 실시하고 과제를 내주며 컨디션도 체크하는 지도자가 적잖다. 이렇게라도 해야 머잖아 일정이 정상화됐을 때 그에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급여 수준을 놓고 절충점을 찾아야 하는데, 전례가 없어 기준 잡기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몇 %씩 감면하느냐가 요즘 아마축구의 최대 관심사’라는 말 뒤로 ‘우리 팀은 전액 면제’ ‘우리 팀은 교육비 포함 고정 비용만 부담’ ‘우리 팀은 단체생활을 하지도 않는데 전액 납부’ 등 다양한 제보가 쏟아진다. 

    사교육계가 잠깐 반사이익을 얻기도 했다. 팀 훈련을 하지 못하는 선수들이 몸 관리를 위해 개인 레슨 등에 몰린 것. 이 대목이 애매했던 건 학교처럼 공적 지침을 내리고 강제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권고는 권고 정도로 넘길 수 있었다. “강요하지 않으니 자제분 보내실 가정만 응해달라”는 말에 “그러다 집단감염이라도 나오면 다들 힘들어지는데 너무 이기적인 것 아니냐”며 첨예하게 대립했다. 

    물론 이마저도 운동장 폐쇄와 사회적 거리두기 분위기가 확산하면서 한계에 부닥쳤다. 한편, 자발적으로 문을 닫은 사교육 종사자도 많다. 모 지도자는 “택배 일처럼 단기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알아보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하물며 소속팀 교육이나 사교육을 감당하는 선수 부모 또한 사회 각계에서 분투하니 다들 죽을 맛이다. 

    생활스포츠 쪽도 타격이 크다. 운동장 대관 자체가 안 돼 매점을 포함해 부대사업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한 스포츠용품업체 대표는 “우리 업계는 봄이라는 계절 자체가 지워졌다”며 “동호인들이 운동을 못 하니 매출이 나올 수가 없다. 10년 넘게 일하면서 이런 장기화 조짐은 처음”이라고 털어놨다. 

    뾰족한 수도, 언제 나아질 거라는 기약도 없어 더 답답하다. 조금씩 양보하고 이해하면서 슬기롭게 이겨내길 바라는데, 축구판 ‘코로나 블루’가 이미 시작된 건 아닐까 싶을 정도다. 현재까지 나온 이야기들을 종합해보면 프로축구는 4월 말 이후, 아마축구는 5월부터 시작할 수 있을 전망이다. 이마저도 추가 확진자가 감소해 코로나19 사태가 잠잠해졌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