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핫 트렌드

새 일자리와 노동, AI와의 공생에 답이 있다

노동 개념이 바뀌는 100세 시대, 슈퍼휴먼의 일과 삶에 대한 분석

  • 이정민 한국트렌드연구소 빅퓨처 연구위원 트렌드랩506 대표컨설턴트

    입력2020-03-2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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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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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의학과 과학의 발전 덕분에 100세까지 너끈히 살 수 있는 센티내리언(centenarian) 시대가 열리고 있다. 기대수명의 증가는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무한 노동’을 더 오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대한민국 노동자의 평균 퇴직연령은 49.1세라고 한다(2017년 한국고용정보원 추산). 은퇴 연령이 점점 빨라지는 데는 고령자의 노동생산성이 젊은 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논리가 깔려 있다. 

    100세까지 산다고 했을 때 무려 50년간 우리는 안정적인 수입 없이 생활해야 한다. 게다가 인간의 육체적·정신적 한계를 뛰어넘게 해주는 다양한 첨단기술을 장착한 ‘슈퍼휴먼’이 탄생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슈퍼휴먼 1명이 생기면 일자리는 100개가 줄어든다. 대전환기가 오고 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하며 살게 될까.

    기계와 기술에 밀려나는 사람들

    기술 발전은 
산업의 자동화와 기계화를 가속화할 것이다. [GettyImages]

    기술 발전은 산업의 자동화와 기계화를 가속화할 것이다. [GettyImages]

    기술 발전은 노동현장의 자동화와 기계화를 가속화할 것이다. 슈퍼휴먼조차 특정한 일의 영역에서는 지치지 않는 자동화 로봇과 경쟁에서 열세일 수밖에 없다. 미국 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에서 발간한 보고서 ‘자동화의 부상 : 로봇이 미국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The Rise of Automation: How Robots May Impact the U.S. Labor Market)’은 미국 근로자를 크게 4그룹으로 나누고, 각 그룹의 변화 추이를 통해 직업의 미래를 예측하고 있다. 

    지난 30년간 비반복적 인지노동자와 육체노동자의 수는 꾸준히 증가했지만, 반복적 육체노동과 인지노동을 필요로 하는 직업군은 감소세로 돌아섰음을 볼 수 있다. 특히 미국의 대표적인 5대 직업군 가운데 콜센터직원, 영업판매직원, 화물차운전자, 제조생산직 등은 반복적 육체노동과 인지노동을 필요로 하는 대표적인 직종으로, 자동화로 인해 가장 빠르게 사라질 것이다. 몇 명의 슈퍼휴먼이 수백, 수천 명을 대신해 자동화를 이끄는 생산성 혁명이 일어나는 동안 나머지 대부분은 노동시장에서 더는 필요 없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보통 사람들의 전쟁’을 쓴 앤드루 양이 이야기했듯이 사람은 일을 필요로 하지만, 일은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 시대가 코앞에 닥쳤다.

    인간의 창의성과 감성이 경쟁력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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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까지 인간에게 일은 생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재화를 획득하는 수단이었다. 인류 역사가 곧 노동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인류에게 노동은 생존의 중요한 방식으로 자리 잡아왔다. 산업혁명 시대에도 기계화로 일자리가 사라질 것을 염려한 노동자들이 심하게 반발했지만 오히려 산업혁명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들이 창출됐다. 그렇다면 이 패턴은 반복될까. 새로운 일자리는 어디서 어떻게 생겨날까. 



    인간은 의외로 반복적인 업무에서 집중도가 떨어지고 실수를 저지른다. AI(인공지능) 같은 기술의 발달은 우리를 반복적인 단순 업무로부터 해방시켜줄 수 있을 것이다. 세계적 테니스대회인 윔블던은 IBM 왓슨(Watson)과 협업해 경기 직후 실시간으로 2분짜리 하이라이트 영상을 만들어냈다. 과거 수많은 에디터가 경기마다 일일이 영상을 확인하고 이어 붙여 만들던 활동을 100배 이상 단축했다. 그 대신 에디터들은 경기에 더 집중해 창의적으로 경기를 해석하고 시청자에게 감동을 주는 글을 창작하는 활동에 집중했다고 한다. 

    미국 위기상담 서비스인 ‘크라이시스 텍스트 라인(Crisis Text Line)’은 상담사의 업무를 조정했다. ‘트레버 프로젝트(Trevor Project)’ 머신러닝 기술을 활용해 상담 신청자의 텍스트 메시지를 분석하는 일의 생산성을 향상시킨 것이다. 상담사는 기계가 대신해준 메시지 분석을 바탕으로 상담 신청자의 심리 상태를 미리 파악해 좀 더 밀착된 상담 서비스를 진행할 수 있게 됐다. 

    대표적 AI 기술인 음성인식은 어떨까. 이제까지 인간이 듣지 못했던 미묘한 소리의 차이를 느낄 수 있게 해 환경이나 심리 변화를 읽어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한다.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로 인식하지 못했던 미묘한 감정선의 변화를 기술을 통해 인식할 수 있게 되면 우리는 가장 인간적인 커뮤니케이션을 바탕으로 공감을 만들어내는 일에 집중할 수 있다. 

    2019년 독일 괴팅겐대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물류산업에서 인간과 로봇을 투입해 업무를 진행할 때 우리의 예상과 달리 인간과 로봇이 협업한 팀이 인간팀, 로봇팀에 비해 생산성이 더욱 높다는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미국 필드뷰 드라이브(FieldView Drive)는 농기구에 날씨 변화, 농부의 활동 등을 수집하는 작은 기기를 부착해 수집한 데이터를 머신러닝을 통해 분석함으로써 기존 농업 관행을 개선하고, 잠재적으로 농부들의 수익을 높이면서 전 세계 식량 생산도 촉진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한다. 즉 데이터 수집과 분석을 통해 농부가 구매해야 할 종자, 수정 방법, 수확 시기와 관련해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제 농부들은 전통적인 일이던 작물을 키우는 활동보다 새로운 종자를 개발하거나 농작물을 활용한 새로운 식자재 개발을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활동에 집중할 수 있다. 농부는 과학자 또는 경영자로서 자신의 일을 재정의해야 한다.

    노동의 재정의(再定義)

    일이 재정의되는 시대는 이제 시작이다. 혁명적 기술과 협업을 통해 보통 사람도 일정 수준 이상의 생산성에 도달하는 시대에 전통적인 ‘일’의 의미나 가치는 계속 상실될 것이다. 아직 불확실하고 모호하지만 피할 수 없는 미래다. 만약 일론 머스크의 비전처럼 자동차를 사용하지 않을 때 ‘자율자동차’가 혼자 돌아다니며 사람을 태우고 나 대신 돈을 벌어주는 시대가 온다면, 노동하지 않아도 생활이 유지되는 미래가 도래한다면 어떻게 될까. 과연 인간은 여전히 생계유지를 위한 일을 할까. 

    조지프 아운(Joseph Aoun) 미국 노스이스턴대 교수는 기술이 빠르게 진화하는 새로운 시대에 AI와 로봇이 할 수 없는 일을 인간이 하기 위해서는 기술, 데이터, 그리고 사람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산업혁명 시대의 패턴에서 배운다면 기술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과 공생함으로써 새로운 일자리가 탄생한다. 그리고 이 공생의 영역은 인간 고유의 강점인 호기심, 창의력, 감성적 소통을 극대화하는 부분에 있다. 이는 곧 우리가 지금까지 일이라 부르지 않은 영역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다. 이 미지의 모호한 감성적 공간에서 인간의 역할을 다시 찾아야 할 것이다. 넘어야 할 사회적 난제가 많지만 이미 시작된 일의 혁명은 돌이킬 수 없으며, 갈수록 ‘일’은 생존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자기실현적 활동으로 변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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