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31

2018.03.28

강양구의 지식 블랙박스

맹독성 청산 든 매실주 마셔도 되나

유해성분 있다고 건강에 꼭 나쁜 건 아냐 … 노출량도 중요 요소

  • 입력2018-03-27 11:3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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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해성 화학물질이 미량 함유돼 있다고 해도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을 수 있다.

    유해성 화학물질이 미량 함유돼 있다고 해도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을 수 있다.


    얼마 전 있었던 일이다. 오랜만에 지인 몇몇과 저녁식사를 할 일이 있었다. 한 선배가 주섬주섬 술병을 꺼냈다. 보니까 매실에 소주를 부어 담근 매실주였다. 3년간 고이 간직해둔 매실주를 챙겨온 것이었다. 달착지근한 매실주가 그날 저녁식사 자리와 그럴싸하게 어울렸다. 

    식자우환. 일상생활 속 화학물질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매실주를 마실 때마다 뜬금없이 과학 상식 하나가 떠오른다. 매실씨에는 아미그달린(amygdalin)이 들어 있다. 이 아미그달린에 포함된 시안(CN)이 떨어져 나오면 시안화수소(HCN)가 된다. 바로 맹독성의 청산이다. 즉 아주 적은 양이긴 하지만 매실씨에서는 청산이 나온다. 

    사실 매실차를 먹을 때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매실씨 수십 개를 정제해 청산을 뽑아내지 않는 한 그 양이 무시해도 좋을 정도로 적기 때문이다. 그런데 매실주는 사정이 다르다. 매실씨에서 나온 청산이 소주 속 에탄올과 만나면 발암물질(에틸카바메이트)이 생기니까.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매실주를 담가놓은 시간이 길수록 이 발암물질이 많아진다고 경고한다. 

    그래서 매실주는 아예 씨를 제거하고 담그든지, 아니면 숙성 기간 100일을 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술은 오래 묵힐수록 좋다는 통념과는 어긋난다. 더구나 차, 술 또는 음료로 먹는 매실씨에서 극미량이지만 맹독성 화학물질이 나오다니! 왠지 생명의 기운이 들어 있어 몸에 좋을 것 같은 씨앗에 대한 통념도 깨지는 순간이다. 

    이처럼 일상생활 속 곳곳에서 우리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화학물질과 맞닥뜨린다. 며칠 전 환경부가 ‘피죤’ 같은 잘 알려진 기업에서 파는 탈취제에서 가습기살균제에 쓰인 화학물질(PHMG) 등이 나왔다고 야단법석을 떤 것도 비슷한 일이다. 그렇다면 일상생활 속 화학물질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화학물질 위험 파악하는 ‘절대 공식’

    2016년 유해성 논란이 일었던 한 탈취제. 환경부는 탈취제 속 유해성분이 신체에 위해를 주는 수준은 아니라고 밝혔다. [뉴스1]

    2016년 유해성 논란이 일었던 한 탈취제. 환경부는 탈취제 속 유해성분이 신체에 위해를 주는 수준은 아니라고 밝혔다. [뉴스1]

    학교에 몸을 담지 않은 재야 화학 고수 가운데 김병민 씨(‘사이언스 빌리지’ 저자)가 있다. 그는 대학에서 화학공학을 연구하다 요즘은 시민에게 과학 지식을 전달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몇 주 전 우연히 그의 강연을 듣다 무릎을 쳤다. 평소 내가 주저리주저리 말글로 떠들던 이야기를 한 줄짜리 공식으로 요약했기 때문이다. 

    ‘위해성=유해성×노출량.’ 

    공식만 보고는 감이 안 올 테니 설명을 덧붙이자. 위해성은 ‘위험(risk)’과 똑같은 말이다. 유해성은 말 그대로 ‘해롭다(hazard)’는 의미다. 우리는 흔히 ‘해롭다’를 ‘위험’과 똑같이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접근은 틀렸다. 위험을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는 바로 노출량이다. 맹독성 화학물질 청산이 들어 있는 매실차를 먹어도 괜찮은 이유는 노출량이 적기 때문이다. 

    이 공식을 염두에 두면, 야단법석을 떨게 하는 일상생활 속 화학물질 유해성 보도도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1년쯤 전에는 물티슈에 메탄올이 들어 있다는 보도에 소비자들이 깜짝 놀랐다. 

    특히 아기에게 물티슈를 많이 사용하는 엄마 아빠가 불안에 떨었다. 하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여기서도 노출량이 중요하다. 메탄올은 우리 몸속에 들어가면 실명을 일으키는 유독물질인 포름알데히드로 바뀔 수 있다. 하지만 물티슈에 함유된 메탄올의 양은 비유하자면 아주 작은 티스푼에 살짝 묻은 정도의 소량이 1ℓ짜리 물병에 들어 있는 것이다. 이 정도면 100% 몸에 흡수되더라도 위험하다고 보기 힘들다. 

    더구나 물티슈는 피부를 닦는 용도지 먹는 것도 아니다. 물티슈로 피부를 닦는 순간 그 안에 함유된 메탄올은 금세 공기 중으로 날아갈 가능성이 높다. 만에 하나 철없는 아기가 물티슈를 입에 물고 빤다 해도 메탄올 양이 미미하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1년 전에는 이런 정확한 정보를 제대로 전하는 곳이 거의 없었다. 

    최근 해프닝도 마찬가지다. 사용이 금지된 가습기살균제에 들어갔던 해로운 화학물질이 생활용품에도 함유돼 있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곧바로 판매사는 소비자에게 사과하고, 환불 조치했다. 또 제조사에 법적 책임도 물을 예정이란다. 일단 잘못부터 인정했으니 잘한 일이다.

    탈취제 속 화학물질은 정말 위험한가

    하지만 직장 동료가 집에 있는 해당 탈취제를 사용해도 되는지 물었을 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도 노출량이 중요하다. 탈취제에 들어 있는 해로운 화학물질의 양은 아주 적다. 더구나 탈취제는 코에다 대고 흡입하는 용도가 아니라 냄새 나는 옷에 뿌리는 것이다. 옷에 뿌린 탈취제의 일부가 코로도 들어가겠지만 화학물질의 양은 훨씬 적어진다. 

    결정적으로 한 가지가 더 있다. 가습기살균제 속 화학물질이 수많은 희생자를 낳은 이유는 그것이 가습기 안에서 아주 작은 크기로 쪼개져 호흡기 깊숙이 흡수됐기 때문이다. 분무기를 통해 뿌리는 탈취제는 가습기에서 나오는 에어로졸보다 화학물질 알맹이가 크기 때문에 호흡기 깊숙이 침투할 확률이 거의 없다. 

    미세먼지의 위험과 똑같다. 우리 주변에는 엄청나게 많은 먼지가 있다. 우리는 그런 먼지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동차, 발전소, 공장에서 나오는 미세먼지는 그 크기가 아주 작아 호흡만 해도 우리 몸속 깊숙이 들어와 폐를 망가뜨릴 수 있기 때문에 무서운 것이다. 

    앞으로 화학물질의 위험을 따질 때는 꼭 ‘노출량’을 기억하자. 안 그래도 스트레스 받을 일이 많은데, 괜한 걱정으로 몸과 마음까지 상할 이유는 없으니까. 이 대목에서 환경부에 쓴소리를 해야겠다. 이런 해로운 화학물질 정보를 세상에 알릴 때 환경부가 조금만 더 세심하게 과학적 고려를 한다면 혼란이 크게 줄어들 것이다. 더구나 안병옥 환경부 차관은 과학자 출신으로 오랫동안 환경운동을 하면서 누구보다 과학적 사실과 관련해 시민과 소통한 전문가 아닌가! 

    아무튼, 소량이지만 발암물질이 들었을 가능성이 높은 매실주는 그 자리에서 바닥이 났다. 그러고 나서도 일행은 소주를 몇 병이나 비웠다. 아마도 매실주 속 발암물질보다 알코올이 내 몸에 훨씬 더 안 좋은 영향을 미쳤으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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