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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대한민국 국회에 ‘최보’는 없다

현실 속 보좌관은 예고도 없이 면직처리되는 비정규직일 뿐

대한민국 국회에 ‘최보’는 없다

대한민국 국회에 ‘최보’는 없다

KBS 2TV 수목드라마 ‘어셈블리’ 한 장면.

9월 17일 20부작으로 막을 내린 KBS 2TV 수목드라마 ‘어셈블리’는 국회를 배경으로 한 정치 드라마였다. 정리해고로 실직한 노동자 진상필(정재영 분)이 우여곡절 끝에 집권여당 후보로 전략공천을 받아 국회에 등원하고, 1년 남짓한 임기 동안 진정한 의미에서의 국리민복을 실천하려 노력하는 과정을 그렸다. 드라마 ‘어셈블리’는 진 의원 수석보좌관으로 나오는 최인경(송윤아 분) 보좌관, 일명 ‘최보’(최인경 보좌관의 준말)의 비중이 특히 높았다. 최보는 국회와 정치 경험이 없는 초선의원 진상필의 정무적 판단을 돕는 조력자이자, 정치적 동지, 때로는 정치적 스승 노릇까지 담당하는 것으로 그려졌다. 그러나 정작 대한민국 국회에서 일하는 보좌진(보좌관, 비서관, 비서를 통칭)은 드라마 ‘어셈블리’를 “현실과 동떨어진 국회 판타지”라고 평가절하했다.

“단언컨대 대한민국 국회에 ‘최인경 보좌관’은 존재할 수 없다. 의원에게 또박또박 말대꾸하고, 때로는 의원을 가르치려 드는 보좌관은 여기(국회 의원회관)에서 하루도 버티기 힘들 것이다”

국회의원 비서와 비서관, 보좌관을 두루 거친 국회 보좌진 경력 10년 차 이상인 A보좌관의 얘기다.

▼ 최보가 왜 비현실적이라는 건가.

“우리 처지가 의원에게 입바른 소리 하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다.”



▼ 왜 그런가.

“신분이 그렇다. 국회 보좌진은 ‘국회의원수당 등에 관한 법률’에 근거를 두고 있다. 법명(法名)처럼 실제로 의원수당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경우가 많다.”

보좌진 막 대하는 의원

정당에서 당료로 활동한 뒤 19대 국회에 의원 보좌관으로 들어온 B보좌관은 “국회 보좌진은 사노비”라고 규정했다.

“우리는 영감(의원)이 언제든 자를 수 있는 사노비다. 내일부터 그만두라고 하면 오늘 당장 짐을 싸야 한다. 우리 사회가 비정규직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 비정규직이라 해도 최소 계약기간만큼은 신분이 보장되지 않나. 우리는 그것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계약기간 없는 비정규직이 바로 우리(국회 보좌진)다.”

9월 8일 종합편성채널 채널A는 새누리당 K의원이 일처리가 더디다는 이유로 자기 보좌관에게 막말을 하고 발로 찼다는 주장을 보도했다. 이후 국회 의원회관에는 ‘보좌진을 막 대하는 의원 순서’라며 새정치민주연합 H의원-새누리당 K의원-새누리당 M의원-새정치민주연합 L의원-새누리당 K의원 등의 이름이 적힌 문자메시지가 돌았다. 채널A가 보좌관을 폭행했다고 보도한 K의원은 보좌진을 막 대하는 두 번째 의원에 이름이 올라 있다. 보좌진을 가장 막 대하는 것으로 알려진 H의원실의 Y보좌관은 ‘저희 방 화기애애 잘 지내고 있습니다. 갑을·주종 관계가 아닌 소통의 동료·선후배 사이입니다. 못 믿으시겠거든 언제든 차 한 잔 하러 오시기 바랍니다’라며 국회 의원회관 보좌관들에게 해명성 글을 보내기도 했다.

네 번째로 보좌진을 막 대하는 의원으로 이름이 올라간 L의원실의 L보좌관은 “소문과 진실에 큰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L의원실은 임기 동안 보좌진이 10명 가까이 교체돼 보좌진 교체율이 가장 높기로 소문이 났다. L보좌관은 “의원실을 그만둔 사람 중에는 음주운전 등 자기 과실로 그만두거나 다른 의원실로 직급을 올려 옮겨간 경우가 많다”며 “보좌진이 자주 바뀌었다는 것만으로 해당 의원에게 문제가 있는 듯 몰아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막 대하는 의원 톱5에는 오르지 않았지만, 자료를 제때 가져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개회의 석상에서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의 비서관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 새정치민주연합 P의원도 ‘보좌진을 자주 교체하는 의원’으로 정평이 나 있다.

B보좌관은 “가슴에 금배지를 달고 나면 왕자, 공주로 대접받으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며 “비례대표 K의원의 경우 국회 입성 초기 비오는 날이면 우산 드는 직원, 차 문 여는 직원, 옷 드는 직원 등 보좌진 몇 명을 시종 부리듯 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전했다.

오죽하면 ‘면직예고제’ 도입 요구

19대 국회에서 자료 분석을 위해 C의원을 보좌했던 한 인사는 본인에게 통보도 없이 면직처리되는 황당한 경험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어느 날 출근길에 국회주차장 차단기가 올라가지 않아 사무처에 확인해보고서야 하루 전날 면직처리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의원과 보좌진의 신분이 이처럼 상하 종속적인 일방적 관계인 이유는 무엇보다 보좌진의 불안정한 신분에 있다. 별정직 공무원이지만 임면이 전적으로 의원의 뜻에 따라 이뤄지기 때문에 의원 눈 밖에 나는 순간 하루아침에 그만둬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것.

18대 국회에서 면직된 보좌진의 수는 모두 5692명. 의원이 둘 수 있는 보좌진이 4급 보좌관 2명, 5급 비서관 2명, 6급과 7급, 9급 비서 각 1명씩이라는 점에서 의원 1명이 4년 동안 평균 2.7회 이상 보좌진을 면직시킨 셈이다. 의원별 보좌진 면직률은 천차만별이다. 4년 임기 동안 보좌진을 한 번도 바꾸지 않은 의원이 있는가 하면, 1년에도 몇 차례씩 수시로 교체하는 의원도 여럿 있다.

“보좌진 교체는 의원들의 상임위원회가 변경될 때와 국정감사를 전후해 활발하게 이뤄진다. 원활한 의정활동을 위해 의원이 보좌진을 교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꼭 필요한 일이다. 다만 면직에 앞서 재취업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시간을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고용 불안정에 시달리는 국회 보좌진들은 이구동성으로 면직예고제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국회의원수당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법안은 ‘국회의원수당 등에 관한 법률’로 돼 있는 법 이름을 ‘국회의원 의정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로 바꾸고, 법률체계를 보좌직원, 수당 순으로 조정하며, 보좌직원의 직무안정성을 위해 면직예고제를 신설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입법권을 가진 의원들의 무관심 속에 이 법은 해당 상임위원회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은 채 방치돼 있다. 19대 국회의원 임기 종료 전 국회 보좌진의 처우 개선 내용을 담은 ‘국회의원수당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수 있을까.



주간동아 2015.09.21 1006호 (p32~33)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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