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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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질이들의 속물근성 뒤집기

홍상수 감독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

  • 강유정 영화평론가·국문학 박사 noxkang@hanmail.net

    입력2009-05-29 12: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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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찌질이들의 속물근성 뒤집기

    유부녀 고순(고현정)에게 “사랑한다”며 매달리는 구경남(김태우).

    홍상수의 영화는 지적인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다. 왜일까? 지적인 사람들의 삶을 잘 그려내서? 도리도리. 이유는 정반대에 있다. 홍상수의 영화에는 온갖 찌질이가 등장한다. 그것도 가방끈이 긴, 지적인 찌질이들 말이다. 낮에는 멋지게 폼 잡고 인생과 예술을 논하지만 밤이 되면 한 번 자줄 여자를 구걸한다. 홍상수는 이들의 이중생활을 낱낱이 파헤쳐, 보는 사람들을 낯 뜨겁게 만든다. ‘당신들의 속내를 알고 있다.’ 홍상수 영화의 재미라면 바로 깊숙한 곳에 숨겨둔 속물근성을 들키는 재미일 것이다.

    홍상수의 아홉 번째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그의 특징을 함축하고 있는 작품이다. 기시감은 여자들에게서 비롯된다. ‘해변의 여인’ ‘생활의 발견’ ‘밤과 낮’처럼 두 여자가 등장한다. 두 여자는 닮은 듯 다르고 다른 듯 비슷하다. 한편 ‘강원도의 힘’을 비롯한 대개의 영화처럼 제천과 제주라는 두 여행지에서의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주인공의 면모가 어딘가 홍상수 감독을 닮은 듯하다는 것도 유사한 맥락 중 하나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영화제 심사위원을 맡은 감독 구경남이 제천에 간다. 영화평론가, 배우 등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은 매일 영화를 서너 편 보고 밤이면 파티에 참석한다. 재미있는 것은 구경남이 심사 일정엔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밤새 술을 마시다가 막상 상영 시간엔 꾸벅꾸벅 존다. 더 재미있는 것은 대부분 영화제의 일상이라는 것이 구경남의 것과 같다는 점이다. 꾸벅꾸벅 졸면서 영화를 보고, 혀를 굴려가며 어설픈 영어로 대화를 나누고, 밤이면 꼬박꼬박 파티에 참석해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늦게 일어나는 것. 찔리지만 이것이야말로 대부분 영화제 참석자가 경험하는 일상의 패턴이다.

    홍상수는 자신과 닮은 인물을 중심에 두고 우스꽝스러운 일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한다. 자신의 작품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게 됐다는 평론가의 말을 되뇌며 히죽히죽 웃는 감독, 잘나가는 감독과 어떻게든 ‘자려고’ 애쓰는 신인 여배우, 그리고 이 광경을 부러워하는 주변의 남자들. 이 궁상맞고 찌질한 일화들은 안타깝게도 너무나 사실적이다. 홍상수는 이른바 예술을 한다는 이들의 찌질한 욕망을 조금 먼 거리에서 풍경화처럼 제시한다.

    홍상수식 인간 풍속도는 제천을 벗어나 제주로 가면서 더 노골적이 된다.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인간이라는 피조물의 비루한 욕망은 초라하게 대비된다. 쫓기듯 제천을 빠져나온 구경남은 12일 후 제주도에 내려간다. 그곳에서 전설적인 화가 양천수를 만나 그와 며칠을 보낸다. 문제는 양천수의 젊은 아내 고순이 구경남이 좋아했던, 그래서 청혼까지 했던 대학 후배라는 것. 게다가 고순은 남편 양천수가 제주를 비운 틈을 타서 구경남을 집으로 불러들인다.



    고순과 불륜을 저지른 구경남은 “사랑한다”며 애걸복걸한다. 그런데 고순은 그저 한 번쯤 하는 불장난이었다고 말한다. 자신과의 섹스에 아무런 의미를 두지 않는 고순에게 구경남은 온갖 형이상학적 감언이설을 내뱉는다. 당신은 내 영혼의 정화라는 둥, 사랑의 금자탑을 쌓자는 둥 말이다. 웃음이 터져 나오는 대목도 바로 이 지점이다. ‘난 당신과 자고 싶다’라고 말하면 될 것을 구경남은 너무도 어렵게 그리고 현학적으로 말한다. 구경남은 끌리는 여자와 자고 싶다는 동물적 욕망을 매우 철학적인 감각의 경지로 설명하고자 한다.

    젖먹이 아기처럼 징징대는 구경남을 향해 고순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러지 말라고 충고한다. 피식, 엉뚱한 제목은 이렇게 스치듯 지나간다. 하긴 그렇다. 우린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하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모든 것을 이해하는 척한다. 홍상수는 여지없이 그 ‘척’을 드러내놓고 전시한다. 당신들, 우리들의 일상이라는 것이 이렇게 비루하고 찌질한 것이 아니냐면서, 이른바 작가주의 영화를 보러 왔노라며 영화관에 앉아 있는 고상한 관객마저도 말이다. 찔리면서도 키득거릴 수밖에 없는 재미, 홍상수 영화에는 이 기묘한 메커니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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