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97

2007.08.07

선거권 행사가 서툰 다수의 흑인

  • 이명재 자유기고가

    입력2007-08-01 17: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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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권 행사가 서툰 다수의 흑인

    ‘만덜레이’

    배럭 오바마는 과연 미국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설령 대통령이 되지 못하더라도 흑인 대통령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분위기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현실에서는 가능성이 점쳐지는 단계지만 허구의 세계에서는 이미 등장했다. 인기 미국드라마 ‘24’에서 대통령 역을 맡은 것은 흑인 배우였다. 필자의 기억에 따르면 대중적인 영화나 TV 드라마를 통해 ‘흑인 대통령’이 등장한 것은 ‘24’가 처음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설정이 터무니없는 것으로 느껴지진 않았다. 오바마가 아니더라도 현실 정치세계에서 그 전조가 보였기 때문이다. 오바마 전에 미국 국무장관인 콘돌리자 라이스가 대통령 후보로 거론됐고, 그 전에는 콜린 파월이 공화당 후보로 오르내렸던 적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 곰곰이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런 사례들을 흑인 전체의 정치적 도약이라고 할 수 있을까. 라이스는 겉모습만 흑인일 뿐 백인보다 더 백인화된 인물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미국의 흑인들이 오바마가 아닌 힐러리를 지지하는 것은 무슨 이유에선가. 이는 피부색이 검다고 그의 정치 성향까지 피부색을 따르는 것이 아님을 뜻한다. 또 그렇기에 흑인 대통령의 가능성을 내다볼 수 있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요컨대 몇몇 흑인 개인의 정치적 도약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극소수 특출난 흑인의 도약 이면에는 아직 보통선거권조차 누리지 못하는 다수의 흑인이 존재한다는 현실이 있다. 덴마크 출신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신작 ‘만덜레이’를 보자. 미국의 노예제도를 다루는 이 영화의 제목인 만덜레이는 미국 남부 앨래배마주의 작은 마을 이름이다. 영화에서 만덜레이는 수십 년 전 폐지된 노예제도가 버젓이 유지되는 곳으로 그려진다. 도덕적인 여주인공은 농장을 흑인들 손에 넘겨준 뒤 그들이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돕고 흑인들에게 투표하는 법을 가르치는데, 정작 주인공이 부딪히는 어려움은 흑인들이 노예시절의 습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흑인들은 선거권을 부여받았지만 이를 제대로 행사할 수 없다. 이는 알렉스 헤일리의 원작을 영화로 옮긴 ‘뿌리’에서 노예해방 후 남부 흑인들에게 일종의 ‘투표권 시험’을 치르는 장면과도 흡사하다.

    오바마의 도약과 ‘만덜레이’의 풍경. 어느 쪽이 진실에 가까울까. 한쪽만의 진실이기보다는 두 가지 모순된 현실이 공존하는 상황이라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같은 이치로, 미국 대선에서 흑인 투표율이 낮은 것을 흑인의 정치적 무관심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만약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 대단한 진보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그것을 ‘끝이 아닌 시작’으로 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화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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