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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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자리 거래’ 황당 시추에이션

前 총리 뇌물수수 논란, 조고의 지록위마(指鹿爲馬) 판박이?

  • 이영철 목원대 겸임교수 hanguksaok@hanmail.net

    입력2009-12-29 18: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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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뇌물수수 커넥션을 보면 ‘지록위마(指鹿爲馬)의 정치놀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검찰의 수사결과와 한 전 총리의 주장은 엇갈리지만,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국가 기간산업체의 사장 자리가 그렇게 ‘밀실’에서 정해진다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5만 달러를 전달했다는 사람도 그렇지만, 높은 분의 언질에 산업자원부 차관이 직접 돈을 전달한 사람에게 연락해 “석탄공사 사장에 지원하라”고 친절하게(?) 알려줬다는 ‘황당 시추에이션’은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부도덕하고 의혹을 받는 인물이 존경과 신뢰로 포장되고, 그를 높은 자리에 적합한 인물로 천거하는 것은 매화사슴을 명마라고 우기는 꼴과 다름없다. 여기에다 ‘세종시 수정’ 문제와 4대강 예산 논란에서처럼 견해를 달리하는 상대방을 엉터리 논리로 밀어붙이는 작태는 ‘호해와 조고의 시대’를 보는 듯하다. 새해 예산안 처리를 놓고 야당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장을 농성장으로 만들어 2008년 연말의 폭력국회를 재연하고 있다. 그렇다면 호해와 조고의 ‘합작품’ 지록위마는 어디서 왔을까.

    “쾌락이란 쾌락은 다 모아놓고 즐기고파”

    춘추전국시대(기원전 770∼221년) 550년의 분열기를 수습하고 부귀영화의 극치를 누렸던 진시황(秦始皇·기원전 259∼210년)도 인간의 수명을 이길 수는 없었다. 영원히 늙지 않는 불로초를 찾아 온갖 노력을 다했으나 죽음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지방 순행 도중에 임종을 맞게 되자 유언으로 태자 부소(扶蘇)를 보위에 오르도록 했으나, 승상 이사(李斯)와 측근인 환관 조고(趙高) 등이 시황의 유언을 거짓으로 꾸며 어린 호해(胡亥)를 세워 2세 황제로 삼았다.

    그 이면에는 부소가 똑똑한 데 비해 호해는 아직 철부지인 데다 천치라 할 만큼 아둔해 조종하기가 쉽기 때문이었다. ‘당서(唐書)’ 원진전(元傳)에는 “호해는 시서(詩書)를 읽을 줄 몰랐으며 옛 성현의 말도 귀찮게 여겨 물리쳐버렸다. 그런가 하면 조고와 같은 환관을 통해 잔인하고 가혹한 정치술을 배웠다. 호해는 사슴과 말을 놓고서 어느 것이 사슴이고 어느 것이 말이라는 것을 단정할 줄조차 몰랐다”라고 기술돼 있다.



    결국 호해를 황위에 앉힌 다음 순식간에 세력을 확대해 진(秦)나라의 실권을 잡은 사람은 조고였다. 호해는 황제의 자리에 오르기 무섭게 “짐은 천하의 쾌락이란 쾌락은 모두 모아놓고 그 속에서 일생을 보내고 싶다”라고 지껄였다. 간교한 조고는 때를 만난 듯 “정말로 훌륭한 생각이옵니다. 그러려면 먼저 나라의 법률을 엄하게 하고 형벌을 가혹하게 해서 백성이 벌을 무서워하게끔 하는 것이 제일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선제(先帝) 이래의 묵은 신하들을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제거해야 합니다. 폐하의 말씀이라면 소금 섬을 끌고 물에 들어가라 해도 서슴지 않고 들어갈 만큼 절대 복종하는 신인(新人)을 등용해야 합니다. 이들은 폐하를 위해 몸이 가루가 되도록 헌신할 것입니다. 그런 연후라야 비로소 폐하는 마음을 놓으시고 즐거움을 누리실 수가 있습니다”라며 호해를 꼬드겼다.

    이에 호해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조고는 시황제 때부터 세력을 놓고 경쟁해오던 이사를 살해하고 선제 이래의 충신과 장군, 나아가 왕자까지 암살해버린 다음 승상의 감투를 차지함으로써 실권을 장악했다.

    간악한 인간의 욕심에는 한이 없다. 조고는 권세를 누리게 되자 황제 자리까지 넘보았다. 그러나 출신 성분이 미천해 조정 대신들이 따르지 않을까 우려돼 조고는 은근히 궁중 관리들이 호해와 자신 중 누구를 지지하는지 확인하려 했다. 우선 그것부터 판가름하되, 만일 자기를 따르지 않으면 제거하리라는 암시를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조고는 어느 날 기괴한 ‘데먼스트레이션’을 획책했다.

    조고의 저잣거리 효수는 인과응보

    조고가 황제 호해에게 매화사슴 한 마리를 잡아다 바치면서 “폐하, 신이 명마(名馬) 한 필을 헌상하옵니다”라고 했다. 눈앞에 있는 것은 분명 사슴인데 명마라고 하니 호해는 의아스러우면서도 “승상은 지금 농담을 하는 거요? 이건 사슴인데 말이라 하니(指鹿爲馬) 어디 자세히 볼까” 하며 좌우를 둘러봤다. 여러 신하 중에는 호해와 같이 웃음을 띤 자가 있는가 하면, 처음부터 시선을 피하고 외면하는 자도 있었다. 또한 조고에게 아첨하는 태도로 불쑥 나서며 “승상의 말씀처럼 그것은 사슴이 아니라 말이올시다”라고 외치는 자도 있었다. “무슨 쓸데없는 말을 하시오. 그게 분명 사슴인데 어째서 말이라 하오”라고 직언하는 신하 몇몇과 말이라고 우기는 간신들 사이에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호해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조고는 그러한 속에서 눈알을 번득이며 사슴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흉계를 품고 있던 조고는 사슴을 사슴이라고 한 사람들에게는 억지 죄를 뒤집어씌워 하나하나 죽였다.

    그러나 악은 언젠가 꼬리를 밟히고 천벌을 받게 마련. 조고가 진나라를 제멋대로 주무르는 동안 여기저기서 반란군이 벌떼처럼 일어났다. 한편 항우(項羽), 유방(劉邦) 등의 영웅호걸이 장차 천하를 바라보며 군사력을 키우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조고는 점차 나이가 들면서 고집이 세진 호해를 중국사 최초의 민란인 진승(陳勝), 오광(吳廣)의 난이 일어났을 때 죽여버리고 부소의 아들 자영(子)을 진의 3대 황제로 앉혔다.

    하지만 자영은 “조고는 위압적으로 남을 속이려 드니 믿을 수 없는 인물이다. 지금까지 그가 자행해온 정치적 만행은 용서할 수 없다. 조고가 살아 있는 한 나도 2대 황제의 꼴이 될 것이 틀림없다. 종묘사직을 보존하고 내가 살기 위해서는 조고를 먼저 죽일 수밖에 없다”라고 결론 내려 한담(韓談)을 시켜 조고를 살해, 함양의 저잣거리에 효수(梟首)했으니 인과응보가 아니겠는가.

    아무튼 너무나 확실한 일을 놓고 서로 거짓을 억눌러 틀린 대로 밀고 나가는 행위와, 사람을 속여 옳은 것을 그르다 하고 그른 것을 옳다고 우겨댐으로써 끝끝내 버텨내는 것은 우리 고사에서 ‘콩을 팥이라 한다’라는 말과도 통한다.

    아, 대한민국 정치판은 언제나 지록위마의 정치놀음을 접고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여왕시대 디즈레일리와 글래드스톤의 멋진 의회정치를 꽃피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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