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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내리막길도 사이클로이드 곡선처럼

[궤도 밖의 과학] 가장 빠르게 떨어지기 위한 특별한 방법

  •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 nasabolt@gmail.com

인생 내리막길도 사이클로이드 곡선처럼

사이클로이드 곡선. [위키피디아]

사이클로이드 곡선. [위키피디아]

인류는 떨어지는 것에 익숙하다. 지구에 중심부로 향하는 중력이라는 힘이 늘 작용하기 때문이다. 우리 또한 아래쪽부터 몸을 지탱하고 있기에 중심부는 기본적으로 아래 방향이 된다. 그래서 ‘떨어지다’라는 표현은 그저 무언가가 위에서 아래로 움직이거나 분리되는 상태를 뜻한다. 그럼에도 가끔은 지극히 부정적 표현으로도 사용된다.

다행히 떨어지는 행위, 그것도 빠르게 떨어져야 긍정적 결과를 얻는 경우가 있다. 바로 온라인 게임 ‘배틀그라운드’가 그렇다. 프로레슬링 경기 규칙 가운데 하나의 링에서 여러 선수가 동시에 싸워 살아남은 최후 1인이 승자가 되는 방식을 배틀로열이라고 부른다. 이와 유사하게 ‘배틀그라운드’도 게임 속 세상에서 참가자 100명이 다양한 생존 전략을 펼치며 마지막 한 사람이 살아남을 때까지 전투를 벌인다. 게임은 날아가는 비행기 위에서 긴장감 넘치는 상태로 시작된다. 비행기가 전장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동안 모든 참가자는 자신이 원하는 순간에 뛰어내려야 한다. 그리고 낙하산을 펼쳐 지상에 도착하면 본격적으로 게임을 벌인다. 땅 위에는 다양한 무기와 탈것이 군데군데 몰려 있어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특정 지점으로 활강해야 초반에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결국 참가자는 대부분 비슷한 위치에 뛰어내릴 테니, 얼마나 빨리 목표 지점에 도착하느냐가 승리의 주요 요소가 된다.

배틀그라운드에서 이기려면

영국 수학자이자 물리학자, 천문학자 아이작 뉴턴(왼쪽)과 독일 철학자이자 수학자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헤르조그 안톤 울리히 미술관]

영국 수학자이자 물리학자, 천문학자 아이작 뉴턴(왼쪽)과 독일 철학자이자 수학자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헤르조그 안톤 울리히 미술관]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뛰어내려야 가장 먼저 지상에 도착할 수 있을까. 뛰어내리는 순간부터 게이머는 자기 캐릭터의 머리를 움직여 떨어지는 방향을 조정할 수 있다. 상식적으로 시작점과 도착점을 잇는 최단 거리로 떨어진다면 같은 속력일 때 시간도 가장 짧게 걸릴 것이다. 비행기가 날아가는 속도를 고려하면 아마 그 궤적은 비행기 위치와 목적지를 45도 각도로 연결한 직선이 될 테다. 하지만 놀랍게도 실제로 가장 빠르게 떨어지는 방법은 직선 경로가 아니었다. 물리법칙이 매우 현실적으로 적용되는 게임이다 보니 많은 게이머가 각자 방식으로 실험을 해봤는데, 거의 수직으로 내려오다 어느 정도 속도가 붙은 뒤 목표 지점을 향해 수평으로 이동하면 가장 빠르게 지상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렇게 중력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높이가 다른 임의의 두 점 사이를 물체가 내려올 때 걸리는 시간이 최소가 되는 곡선을 구하는 문제를 ‘최소 강하 곡선 문제’라고 한다. 뉴턴과 라이프니츠가 미적분 발명을 두고 ‘누가 최초인지’ 논쟁을 벌였던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라이프니츠로부터 인정받았던 스위스 수학자 요한 베르누이는 1969년 최소 강하 곡선 문제를 학회지에 공개했다. 스승을 대신해 뉴턴을 저격하려 한 것이다. 자존심이 상한 뉴턴은 베르누이가 2주에 걸쳐 푼 문제를 고작 12시간 만에 깔끔하게 풀어냈다. 외국인에게 놀림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익명으로 회신을 보냈다. 당연히 베르누이는 뉴턴이 보낸 서신이라는 사실을 바로 알아차렸고, 사자는 발톱만 봐도 알 수 있다며 감탄했다. 여기서 최단 시간이 걸리는 경로가 바로 사이클로이드라는 곡선을 기반으로 한다.

크래프톤의 MMO 슈팅게임 배틀그라운드. [크래프톤 홈페이지 캡처]

크래프톤의 MMO 슈팅게임 배틀그라운드. [크래프톤 홈페이지 캡처]

두통마저 잊게 한 기하학의 아름다움

바퀴가 처음 만들어진 건 기원전 3500년 무렵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수메르인들이 나무판자 조각을 못으로 연결하면서부터였다. 사이클로이드 곡선 역시 오래전 바퀴 발명과 함께 세상에 나왔을지도 모른다. 사이클로이드(cycloid)는 바퀴(wheel)라는 뜻의 고대 그리스어(kuklos)에서 유래했으며, 직선 위에서 회전하는 바퀴에 놓인 한 점이 그리는 곡선을 말한다. 여기서 바퀴에 해당하는 원은 사이클로이드의 생성원(generating circle)이며, 생성원의 반지름과 회전하는 각도로 새롭고 독특한 곡선을 쉽게 그려낼 수 있다. 사이클로이드 곡선은 얼핏 호빵처럼 넓적한 모양이 반복되는 형태지만, 생성원의 움직임과 비교하면 이동하는 거리에 따라 각도는 일정 패턴에 따라 변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프랑스 수학자 샤를 드 부벨은 1501년 처음으로 원 넓이를 구하는 과정에서 원 위 한 점에 의해 생성된 곡선을 활용했다. 이탈리아 물리학자이자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이러한 곡선을 사이클로이드라고 처음 부르기 시작했다. 곡선 아랫부분 넓이를 계산해보면 생성원 넓이의 3배가 된다는 사실도 직관적으로 알아냈다. 사실 미적분학이 세상에 나오기 전이라 증명 자체는 어려운 일이었다. 1634년 프랑스 수학자 질 드 로베르발이 두 평면도형의 임의의 같은 높이에서 평행한 직선으로 생기는 두 선분의 비가 넓이의 비와 같다는 ‘카발리에리(이탈리아 수학자)의 원리’를 통해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이렇게 해서 얻게 된 결과를 로베르발의 증명이라 부르고 있다.

영국 건축가이자 천문학자 크리스토퍼 렌. [헤르조그 안톤 울리히 미술관]

영국 건축가이자 천문학자 크리스토퍼 렌. [헤르조그 안톤 울리히 미술관]

사이클로이드 곡선의 길이가 생성원 지름의 4배라는 사실 역시 미적분학이 없어 증명하기 어려웠지만, 영국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은 기하학적 방식만을 사용해 증명해냈다. 수학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곡선을 하나 고르자면 항상 사이클로이드 곡선이 포함될 정도로 인기 많은 대상이었기에, 여기에 접선을 그리거나 넓이를 구하는 다양한 방식을 고민한 수학자가 정말 많았다.

네덜란드 물리학자 크리스티안 하위헌스 역시 그중 한 명이었다. 당시 일정 주기로 움직이는 진자를 만들기 위해 진자가 움직이는 궤적을 보통 원의 형태로 설계했는데, 그는 꼼꼼히 계산한 결과 원이 아니라 사이클로이드 곡선이 돼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말을 남긴 프랑스 철학자이자 수학자 블레즈 파스칼은 1658년 잠도 제대로 못 잘 정도로 극심한 두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괴로움을 호소하던 그는 어느 날 사이클로이드 곡선을 마주하게 됐는데, 아름답고 신비로운 곡선에 매료돼 두통도 잊고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당시 사이클로이드는 고대 그리스 미녀의 이름에서 따와 ‘기하학의 헬렌(Helen of geometry)’으로 불릴 정도였다. 물론 사이클로이드 곡선이 매력적인 기하학의 결정체인 것도 맞지만, 트로이 전쟁을 일으킨 헬렌의 미모처럼 사이클로이드 곡선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수학자들끼리 숱한 논쟁이 벌어진 바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깊이 있는 미적분학 응용과 기하학의 확장이 일어났고, 많은 수학자가 사이클로이드의 다양한 변형과 독자적 접근 방법을 도출해냈다.

생활 곳곳에 적용된 사이클로이드 곡선

직선은 두 점 사이를 가장 짧은 거리로 연결한 선이다. 이러한 정의는 차원이 바뀌면 의미가 없지만, 같은 차원이라면 종종 수학에서 절대적 기준으로 쓰인다. 가장 짧은 낙하 시간을 갖는 최소 강하 곡선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정의들을 토대로 사이클로이드 곡선이 갖는 다양한 특성을 확인하는 것이 가능하며, 주변 일상생활에도 쉽게 적용할 수 있다.

워터파크에 흔히 있는 워터슬라이드에도 사이클로이드 곡선이 적용된다. 탑승자가 초반에 체감하는 중력은 단순히 직선으로 만들어진 미끄럼틀에 비해 크기 때문에 매우 빠르게 내려오다 후반부에는 관성에 의해 속도가 거의 그대로 이어지게 된다. 맨몸으로 타는 긴장감과 더불어 속도까지 빠르니 재미있다.

워터슬라이드를 탈 때 가장 조심해야 하는 건 안전사고다. 앞서 출발한 탑승자와 바로 뒤이어 출발한 탑승자가 부딪치지 않도록 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먼저 도착한 탑승자가 워터슬라이드에서 완전히 빠져나가기 전까지는 다음 탑승자가 출발하지 않아야 한다. 여기서도 사이클로이드 곡선의 동시 강하 곡선이라는 특성이 적용된다. 사이클로이드 곡선 위 어느 위치에서 출발해도 목적지에 도달하는 시점은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기에 자칫 잘못하면 충돌사고로 이어질 상황에 미리 대비할 수 있는 것이다.

사이클로이드 곡선, 수학의 기본

사이클로이드 곡선 원리가 적용된 워터슬라이드. [위키피디아]

사이클로이드 곡선 원리가 적용된 워터슬라이드. [위키피디아]

추가 달려 진폭과 무관하게 일정한 주기의 진자운동을 보여주는 진자시계 역시 같은 원리다. 추는 줄의 마찰력이나 공기 저항 등 외부 요인을 제외하면 1회 왕복 시간이 언제나 일정하게 유지된다. 이를 ‘진자의 등시성’이라 하는데, 특히 사이클로이드 곡선을 따라 움직이는 진자는 일반 단진자와 달리 진폭 크기와 관계없이 항상 등시성을 만족시킨다.

대자연에 존재하는 생물체는 사이클로이드 곡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진화해왔다. 독수리나 매처럼 아주 높은 곳에서 먹이를 사냥하는 맹금류는 사냥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우리가 배틀그라운드 게임 속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는 경로와 똑같이 사이클로이드 곡선을 따라 활강한다. 물속에서 최대한 빠르게 헤엄치고자 비늘 모양이 사이클로이드 곡선 형태로 진화한 물고기들도 있다. 물이 가장 빠르게 흘러가는 방법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둥근 곡선 모양 비늘을 빽빽하게 몸에 새긴 것이다.

과거 우리 조상도 건축물에 사이클로이드 곡선을 활용했다. 덕수궁 같은 전통 목조 건물은 빗물 때문에 썩을 것에 고려해 지붕 기와를 사이클로이드 곡선 형태로 설계했다. 빗물이 가장 빠르게 떨어지다 보니 현재까지도 안전하게 보존될 수 있었다. 최근에는 자동차 감속기 효율성을 높이고자 사이클로이드 곡선에서 파생된 형태를 기어의 톱니바퀴 모양에 활용하기도 한다. 그저 재미있고 간단한 발견이라고만 생각했던 기하학 형태가 이렇게 많은 곳에서 중요하게 쓰이고 있는 것이다.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말을 흔히 한다. 기본은 모든 것의 시작이기도 하지만, 다음 단계로 나아가려면 다시 돌아와 재정비해야 하는 종착점이자 임시 거점이기도 하다. 바퀴에 찍힌 점에서 시작된 사이클로이드 곡선이야말로 수학의 기본 중 기본이지만, 생각지도 못한 다양한 곳에 활용되면서 어떤 형태의 곡선보다도 유명해졌다. 어쩌면 무한하게 반복되는 사이클로이드 곡선이야말로 기본에서 시작해 반복되는 모든 과정을 우리에게 끝없이 보여주는 수학적 장치가 아닐까. 가장 빠르게 펼쳐지는 인생 내리막길에서도 사이클로이드 곡선을 기억하자. 다시 반복되는 희망찬 미래의 출발점일지도 모른다.

궤도는…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학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감시센터와 연세대 우주비행제어연구실에서 근무했다. ‘궤도’라는 예명으로 팟캐스트 ‘과장창’, 유튜브 ‘안될과학’과 ‘투머치사이언스’를 진행 중이며, 저서로는 ‘궤도의 과학 허세’가 있다.





주간동아 1320호 (p5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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