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병동 호스피스에서 일하면서 발견한 암 환자들의 경력상 공통점이 있어. 전직 기업체 직원, 나이 50대, 현직 치킨집 사장이야. 이상하지 않아?”
한 대학병원에서 호스피스 활동을 하는 동창이 있다. 어느 날 통화를 하다 필자가 은퇴연구소에서 일한다는 얘기를 듣고 갑자기 궁금한 게 생겼다며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이 얘기를 들으면서 조기 퇴직과 구조조정으로 직장을 떠난 이 땅의 50대 가장들의 힘겨운 삶을 보는 듯해 가슴이 묵직해졌다.
日 노인, 5명 중 2명은 월급쟁이
한국 사회도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고용구조에 대한 논의와 갈등이 한창이다. 정년 60세 연장이 내년 본격적으로 도입되고, 이에 발맞춰 임금피크제도 공기업을 필두로 도입 중이다. 급여를 줄이더라도 오래 일하는 방향으로 고용구조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60세 정년 제도도 다른 나라들의 경험에 비춰볼 때 정년 시점이 더 늘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예를 들어 고령화 선배 국가인 일본의 경우, 이미 1998년 6월부터 정년을 55세에서 60세로 연장했고, 2013년 4월부터는 본인이 희망하면 65세까지 일할 수 있게 했다. 정부도 오래 일하는 것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일자리에 오래 머물러 있어야 국민연금 등 복지 부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임금피크제 같은 제도를 도입해 새로 연장되는 근로 기간에 대해서는 임금을 일정 수준에 묶어두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노인들을 계속 고용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65~69세 일본 노인 가운데 일하는 사람의 비율은 40.7%(2014년 기준)나 된다고 한다. 다섯 명 중 두 명은 일하는 셈이다. 일본 노인은 주로 ‘월급을 받는 일자리’를 얻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비정규직이거나 자영업에 뛰어들고 있다.
우리나라 전체 자영업자 수는 2013년 기준 565만1000명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전인 2007년 604만9000명에 비해 6.6% 줄었다. 하지만 60세 이상 자영업자는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128만2000명에서 142만2000명으로 10.9%나 늘었다(통계청). 이들 중 직원 없이 자영업을 영위하는 이들의 비율은 89.4%로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만큼 영세하다는 방증이다. 설령 일자리를 얻는다 해도 단순 노무직이나 비정규직이다. 60세 이상 임금 근로자 가운데 비정규직 비중은 67.5%로 전체 비정규직 비중(32.4%)의 2배에 달한다.
일본 노인은 주로 월급쟁이 일자리를, 한국 노인은 자영업이나 단순 노무 같은 일자리를 얻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일본도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30여 년 전만 해도 일하는 노인의 60%가 자영업자였다. 30여 년 세월이 흐르면서 노년층 일자리가 자영업에서 급여를 받는 직장으로 그 무게중심이 바뀐 것이다. 이런 변화는 현재 고령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우리 사회와 은퇴 준비를 하는 사람에게 적잖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창업은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물론 자신의 전문성을 살리거나 봉사 개념이 있는 사회적 기업을 설립하거나 어느 정도 자본금을 갖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로 창업하는 것은 괜찮겠지만, 그야말로 먹고살기 위해 하는 창업은 지양해야 한다. 주로 부가가치가 낮고 치열한 서비스 분야의 창업이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산업구조 변화도 눈여겨봐야 한다. 유통은 점차 대형화하면서 규모의 싸움을 하고 있고, 쇼핑 공간도 일정 지역에 집적하는 몰링(malling)화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또한 모바일의 발달로 친(親)모바일적 비즈니스를 하지 않으면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 더욱이 이런 유통산업 변화와 모바일 혁명은 현재진행형이다. 결국 창업에 초점을 맞춘 노후 준비나 정부 정책은 노력에 비해 실효성이 떨어질 개연성이 높다. 특히 정부 정책은 소득이 낮더라도 꾸준한 일자리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일, 인간관계, 행복
개인도 일자리의 가치에 대해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수명이 길어지고 금리가 낮아질수록 인적 자산으로서 일자리의 가치는 더 올라가게 마련이다. 월 150만 원 급여를 받는 것은 현금 9억 원을 들고 있는 것과 같은 가치를 지닌다(금리가 2%인 경우 단순 계산으로 연 1800만 원 이자를 받을 수 있다). 금리가 낮아지면 일자리의 가치는 더더욱 올라간다. 그런데 사람은 대부분 노후에 필요한 모든 돈을 모을 수도, 그렇다고 높은 급여를 받는 일자리를 구할 수도 없다. 따라서 노후생활비를 고민할 때 자신이 보유한 자산과 국민연금 등 공적 시스템으로부터 받는 돈, 그리고 일해서 버는 돈을 합해 종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일자리는 인생 행복과도 연관돼 있다. 행복 연구자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행복의 원천 가운데 하나가 ‘사람과의 관계’다. 부부 사이가 나쁜 사람은 상처가 잘 낫지 않는다는 연구도 있고, 배우자가 먼저 죽으면 수명이 단축된다는 분석도 있다. 종교인이 더 행복한 이유는 신앙뿐 아니라 종교 공동체를 통한 인간관계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우리나라처럼 일자리를 중심으로 사회적 관계가 만들어진 곳에서 퇴직은 곧 인간관계의 혁명적인 변화를 낳는 인생의 대사건이다. 은퇴 후 새로운 일자리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누리는 삶의 질은 크게 벌어진다.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정서적 측면에서도 그렇다. 은퇴 후에도 일자리를 갖고 있으면 인간관계가 유지되고, 행복감도 증가한다. 일을 하면 행복해지는 것이다.
영국과 독일에서 동일인 2만 명을 대상으로 20여 년 동안 실시한 인생 만족도 조사를 분석한 내용을 보면, 9개 중 4개가 부부관계 등 인간관계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다(상자기사 참조). 사교활동이 많고, 신앙심이 깊으며, 직업이 있는 사람의 인생 만족도가 더 높았다. 따라서 앞으로는 일자리를 인적 자산이란 자산 관점에서도 봐야겠지만, 인생의 행복이라는 주관적 안녕감이란 관점에서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여러 측면에서 일자리에 대한 종합적인 접근법을 갖고 자신에게 맞는 일자리를 찾으려는 노력이 은퇴 전부터 이뤄져야 할 것이다.
한 대학병원에서 호스피스 활동을 하는 동창이 있다. 어느 날 통화를 하다 필자가 은퇴연구소에서 일한다는 얘기를 듣고 갑자기 궁금한 게 생겼다며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이 얘기를 들으면서 조기 퇴직과 구조조정으로 직장을 떠난 이 땅의 50대 가장들의 힘겨운 삶을 보는 듯해 가슴이 묵직해졌다.
日 노인, 5명 중 2명은 월급쟁이
한국 사회도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고용구조에 대한 논의와 갈등이 한창이다. 정년 60세 연장이 내년 본격적으로 도입되고, 이에 발맞춰 임금피크제도 공기업을 필두로 도입 중이다. 급여를 줄이더라도 오래 일하는 방향으로 고용구조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60세 정년 제도도 다른 나라들의 경험에 비춰볼 때 정년 시점이 더 늘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예를 들어 고령화 선배 국가인 일본의 경우, 이미 1998년 6월부터 정년을 55세에서 60세로 연장했고, 2013년 4월부터는 본인이 희망하면 65세까지 일할 수 있게 했다. 정부도 오래 일하는 것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일자리에 오래 머물러 있어야 국민연금 등 복지 부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임금피크제 같은 제도를 도입해 새로 연장되는 근로 기간에 대해서는 임금을 일정 수준에 묶어두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노인들을 계속 고용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65~69세 일본 노인 가운데 일하는 사람의 비율은 40.7%(2014년 기준)나 된다고 한다. 다섯 명 중 두 명은 일하는 셈이다. 일본 노인은 주로 ‘월급을 받는 일자리’를 얻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비정규직이거나 자영업에 뛰어들고 있다.
우리나라 전체 자영업자 수는 2013년 기준 565만1000명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전인 2007년 604만9000명에 비해 6.6% 줄었다. 하지만 60세 이상 자영업자는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128만2000명에서 142만2000명으로 10.9%나 늘었다(통계청). 이들 중 직원 없이 자영업을 영위하는 이들의 비율은 89.4%로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만큼 영세하다는 방증이다. 설령 일자리를 얻는다 해도 단순 노무직이나 비정규직이다. 60세 이상 임금 근로자 가운데 비정규직 비중은 67.5%로 전체 비정규직 비중(32.4%)의 2배에 달한다.
일본 노인은 주로 월급쟁이 일자리를, 한국 노인은 자영업이나 단순 노무 같은 일자리를 얻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일본도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30여 년 전만 해도 일하는 노인의 60%가 자영업자였다. 30여 년 세월이 흐르면서 노년층 일자리가 자영업에서 급여를 받는 직장으로 그 무게중심이 바뀐 것이다. 이런 변화는 현재 고령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우리 사회와 은퇴 준비를 하는 사람에게 적잖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창업은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물론 자신의 전문성을 살리거나 봉사 개념이 있는 사회적 기업을 설립하거나 어느 정도 자본금을 갖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로 창업하는 것은 괜찮겠지만, 그야말로 먹고살기 위해 하는 창업은 지양해야 한다. 주로 부가가치가 낮고 치열한 서비스 분야의 창업이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산업구조 변화도 눈여겨봐야 한다. 유통은 점차 대형화하면서 규모의 싸움을 하고 있고, 쇼핑 공간도 일정 지역에 집적하는 몰링(malling)화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또한 모바일의 발달로 친(親)모바일적 비즈니스를 하지 않으면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 더욱이 이런 유통산업 변화와 모바일 혁명은 현재진행형이다. 결국 창업에 초점을 맞춘 노후 준비나 정부 정책은 노력에 비해 실효성이 떨어질 개연성이 높다. 특히 정부 정책은 소득이 낮더라도 꾸준한 일자리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일, 인간관계, 행복
개인도 일자리의 가치에 대해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수명이 길어지고 금리가 낮아질수록 인적 자산으로서 일자리의 가치는 더 올라가게 마련이다. 월 150만 원 급여를 받는 것은 현금 9억 원을 들고 있는 것과 같은 가치를 지닌다(금리가 2%인 경우 단순 계산으로 연 1800만 원 이자를 받을 수 있다). 금리가 낮아지면 일자리의 가치는 더더욱 올라간다. 그런데 사람은 대부분 노후에 필요한 모든 돈을 모을 수도, 그렇다고 높은 급여를 받는 일자리를 구할 수도 없다. 따라서 노후생활비를 고민할 때 자신이 보유한 자산과 국민연금 등 공적 시스템으로부터 받는 돈, 그리고 일해서 버는 돈을 합해 종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일자리는 인생 행복과도 연관돼 있다. 행복 연구자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행복의 원천 가운데 하나가 ‘사람과의 관계’다. 부부 사이가 나쁜 사람은 상처가 잘 낫지 않는다는 연구도 있고, 배우자가 먼저 죽으면 수명이 단축된다는 분석도 있다. 종교인이 더 행복한 이유는 신앙뿐 아니라 종교 공동체를 통한 인간관계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우리나라처럼 일자리를 중심으로 사회적 관계가 만들어진 곳에서 퇴직은 곧 인간관계의 혁명적인 변화를 낳는 인생의 대사건이다. 은퇴 후 새로운 일자리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누리는 삶의 질은 크게 벌어진다.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정서적 측면에서도 그렇다. 은퇴 후에도 일자리를 갖고 있으면 인간관계가 유지되고, 행복감도 증가한다. 일을 하면 행복해지는 것이다.
영국과 독일에서 동일인 2만 명을 대상으로 20여 년 동안 실시한 인생 만족도 조사를 분석한 내용을 보면, 9개 중 4개가 부부관계 등 인간관계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다(상자기사 참조). 사교활동이 많고, 신앙심이 깊으며, 직업이 있는 사람의 인생 만족도가 더 높았다. 따라서 앞으로는 일자리를 인적 자산이란 자산 관점에서도 봐야겠지만, 인생의 행복이라는 주관적 안녕감이란 관점에서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여러 측면에서 일자리에 대한 종합적인 접근법을 갖고 자신에게 맞는 일자리를 찾으려는 노력이 은퇴 전부터 이뤄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