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야구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자는 큰 목표를 세우고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창설했다. 그동안 국제대회 참가에 소극적이던 세계 최고 선수들이 국가를 대표해 자웅을 겨뤄보자는 흥미로운 발상이었다. 물론 그 안에는 미국프로농구(NBA)가 1990년대 큰 성공을 거둔 것처럼 미국 야구의 인기를 전 세계로 확대해나가겠다는 속내가 담겨 있었다.
2006년 3월 개최한 제1회 WBC는 세계 야구는 물론 한국 야구에도 큰 영항을 미쳤다. 사실상 사상 처음으로 열리는 야구 A매치 대회였다. 제1회 WBC에 대비해 한국도 최고 선수들을 모았다. 미국에서 뛰고 있던 박찬호와 김병현, 서재응, 최희섭, 일본에서 활약하던 이승엽을 모두 소집했다. 사령탑은 현역 감독으로 한화를 이끌고 있던 김인식 감독이 맡았다. 당시 김재박 현대 감독, 조범현 SK 감독, 선동열 삼성 감독 등 3명의 현역 감독도 코치로 합류했다.
선수단은 물론 코칭스태프도 막강했다. 그리고 한국은 4강 신화를 달성했다. 국제무대에서 B급으로 평가되던 한국이 세계 최정상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쾌거였다. 곧장 한국에는 야구붐이 일었고 이어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과 2009 제2회 WBC 준우승까지 이어지며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제1의 르네상스라 부르는 절정기를 맞는다. 그 힘으로 제9구단 NC, 제10구단 kt가 창단됐고 광주와 대구에 최신식 구장이 건설되기 시작했다.
야구 대표팀 감독의 수난사
야구 인기가 높아지면서 선수들의 연봉도 가파르게 올랐다. 제1회 WBC와 2008 베이징올림픽 대표선수들은 병역특례 혜택도 받았다. 그러나 제2회 WBC부터 대표팀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특히 감독직은 현역 사령탑들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실제로 2009년 ‘위대한 도전’이라는 모그룹 한화의 캐치프레이즈를 전 국민에게 알린 김인식 감독은 대표팀에서는 WBC 준우승을 이끌었지만 대회 종료와 함께 시작된 그해 시즌에서는 최하위로 떨어지며 재계약에 실패했다. 김 감독은 한 해 농사를 시작하는 스프링캠프를 지휘하지 못하면서 자신의 팀 전력구성에 어려움이 따랐다. WBC 후유증이었다.
일부 선수도 체력 저하와 부상을 호소했다. 몸을 만들어야 하는 시기에 전력으로 공을 던지면서 큰 무리가 왔다는 해석도 뒤따랐다. 이후 대표팀 감독은 ‘독이 든 성배’로 불리기 시작했다. 아시아경기대회는 병역특례가 걸린 금메달이 아니면 무조건 실패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김재박 전 감독은 KBO에서 최고 명장 가운데 한 명으로 꼽혀왔지만 2003 삿포로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2004 아테네올림픽 예선), 2006 도하아시아경기대회에서 연이어 일본과 대만에 패하며 공개적인 평가절하에 시달렸다. 특히 2006년은 연초 WBC 4강 진출로 대표팀에 대한 기대가 절정이었다. 코치로 WBC 대표팀에 헌신했던 김 전 감독은 도하아시아경기대회에서 동메달을 땄지만 쓸쓸히 귀국했다. 이후 ‘명장’이라는 타이틀은 멀어져갔다.
국가대표 감독직이 주는 큰 영광보다 그 이면의 무거운 책임감이 현역 감독들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2009년 WBC를 앞두고 모두가 사양한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김인식 전 감독은 “국가가 있어야 야구가 있다”는 말로 큰 울림을 주기도 했다. 이후 KBO는 감독 선임의 어려움을 없애고자 ‘국가대표 감독은 현역 감독으로 전년도 우승 구단 감독-준우승 구단 감독 순으로 총재가 선임한다’ 조항을 야구규약에 신설했다.
첫 해당자는 2010 광저우아시아경기대회 사령탑을 맡은 당시 조범현 KIA 감독(현 kt 감독)이었다. 조 감독은 8년 만에 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을 설욕하자며 삼고초려한 끝에 자신보다 1년 선배인 당시 김시진 넥센 감독을 대표팀 투수코치로 영입했다. 조 감독은 2009년에는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지만 2010년 포스트시즌에서 탈락하며 팀 내 상황이 매우 어려웠고, 그 외에도 여러 부담을 안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조 감독은 투수코치 선임부터 선수 선발과 훈련까지 전력을 다해 금메달을 이끌었다. 사석에서 김 전 감독과 형 동생 사이인 조 감독은 광저우로 출발하기 며칠 전 대표팀 회식자리에서 “시진이 형, 우리 금메달 못 따면 한국 못 들어온다. 어디로 도망가지?”라는 농담으로 그 중압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2013년 제3회 WBC는 현역 감독들이 왜 그토록 국가대표 감독직의 무게를 버거워하는지 그 모든 것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4번째 국가대표 감독
류중일 삼성 감독은 2011~2012 2년 연속 페넌트레이스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며 새로운 스타 감독으로 올라섰다. 규약에 따라 WBC 감독을 맡았지만 추신수(당시 신시내티)가 트레이드를 이유로 대표팀 참가를 거부했고, 류현진(LA 다저스)이 미국 무대에 도전하며 참가가 어려워졌다. 주축 선수들의 잔부상도 많았다. 류 감독은 팀 우승으로 대표팀을 맡기 전까지 물리적인 시간도 매우 부족했다. 결국 네덜란드에 일격을 당하며 1라운드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우승 감독이라는 프리미엄은 단 한순간에 사라졌고 여러 비난과 비평이 쏟아졌다. 류 감독은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로 명예회복을 했지만 국가대표 감독직이 짊어져야 할 무게를 그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껴야 했다.
모든 현역 감독이 이제 국제대회는 2017 제4회 WBC밖에 없을 거라 안도했지만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은 야구의 올림픽 종목 재진입과 국제화를 위해 세계랭킹 상위 12개국이 참가하는 국가대항전 ‘프리미어12’ 개최를 선언했다. 첫 대회는 11월 8일 대만과 일본에서 나눠 개최된다. 세계랭킹 상위 12개국이 참가하며 WBC에 맞서 세계 최고 권위의 대회로 만들기 위해 수백만 달러 상금, 월드랭킹 포인트를 걸었다. 향후에는 올림픽 출전권도 부여할 계획이다.
당장 선수단 구성과 대표팀 감독 선임부터 난항이었다. 11월은 한국시리즈 종료 직후다. 현 규약대로라면 류중일 삼성 감독이 포스트시즌 직후 아무런 준비 없이 일본으로 달려가 팀을 지휘해야 한다. KBO는 결국 6월 29일 사상 첫 국가대표 전임감독을 발표했다. 주인공은 김인식(66) KBO 기술위원장이다.
2002 부산아시아경기대회와 2006, 2009 WBC에 이은 4번째 국가대표 감독이다. 양해영 KBO 사무총장은 “1·2위 팀 감독(류중일 감독, 염경엽 넥센 감독) 모두 부담스럽다며 고사했다. 11월은 현역 감독이 지휘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그동안 국제대회에서 성과를 거둔 분이고, 코치들과 선수들에게 전체적으로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판단했다”며 “재야 감독들로 코칭스태프를 구성하더라도 충분히 무게감 있는 사령탑이고, 각 구단이나 감독들에게 협조를 구하기에도 가장 적합한 분이다. 또 그동안 김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에서 혜택을 본 선수도 많기 때문에 선수 구성에서도 이점이 있으리라 여겼다”고 말했다.
대표팀 사령탑으로 돌아온 김인식 감독은 현역 때에 비해 한결 홀가분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더 깊은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김 감독은 “국내 리그가 치열하게 전개되고 일정상으로도 현역 감독이 맡기에는 부담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국가대표 감독 자리가 이렇게 재야까지 돌아온 것 같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또한 “국가대표가 뭔가. 국가대표는 말 그대로 국가를 대표하는 것이다. 국가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최고의 멤버들로 꾸려야 한다”며 야구계의 동참을 호소했다. 김 감독은 제3회 WBC 참가를 거부한 추신수(텍사스) 등 해외파들에게도 동참을 권유할 예정이다.
2006년 3월 개최한 제1회 WBC는 세계 야구는 물론 한국 야구에도 큰 영항을 미쳤다. 사실상 사상 처음으로 열리는 야구 A매치 대회였다. 제1회 WBC에 대비해 한국도 최고 선수들을 모았다. 미국에서 뛰고 있던 박찬호와 김병현, 서재응, 최희섭, 일본에서 활약하던 이승엽을 모두 소집했다. 사령탑은 현역 감독으로 한화를 이끌고 있던 김인식 감독이 맡았다. 당시 김재박 현대 감독, 조범현 SK 감독, 선동열 삼성 감독 등 3명의 현역 감독도 코치로 합류했다.
선수단은 물론 코칭스태프도 막강했다. 그리고 한국은 4강 신화를 달성했다. 국제무대에서 B급으로 평가되던 한국이 세계 최정상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쾌거였다. 곧장 한국에는 야구붐이 일었고 이어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과 2009 제2회 WBC 준우승까지 이어지며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제1의 르네상스라 부르는 절정기를 맞는다. 그 힘으로 제9구단 NC, 제10구단 kt가 창단됐고 광주와 대구에 최신식 구장이 건설되기 시작했다.
야구 대표팀 감독의 수난사
야구 인기가 높아지면서 선수들의 연봉도 가파르게 올랐다. 제1회 WBC와 2008 베이징올림픽 대표선수들은 병역특례 혜택도 받았다. 그러나 제2회 WBC부터 대표팀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특히 감독직은 현역 사령탑들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실제로 2009년 ‘위대한 도전’이라는 모그룹 한화의 캐치프레이즈를 전 국민에게 알린 김인식 감독은 대표팀에서는 WBC 준우승을 이끌었지만 대회 종료와 함께 시작된 그해 시즌에서는 최하위로 떨어지며 재계약에 실패했다. 김 감독은 한 해 농사를 시작하는 스프링캠프를 지휘하지 못하면서 자신의 팀 전력구성에 어려움이 따랐다. WBC 후유증이었다.
일부 선수도 체력 저하와 부상을 호소했다. 몸을 만들어야 하는 시기에 전력으로 공을 던지면서 큰 무리가 왔다는 해석도 뒤따랐다. 이후 대표팀 감독은 ‘독이 든 성배’로 불리기 시작했다. 아시아경기대회는 병역특례가 걸린 금메달이 아니면 무조건 실패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김재박 전 감독은 KBO에서 최고 명장 가운데 한 명으로 꼽혀왔지만 2003 삿포로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2004 아테네올림픽 예선), 2006 도하아시아경기대회에서 연이어 일본과 대만에 패하며 공개적인 평가절하에 시달렸다. 특히 2006년은 연초 WBC 4강 진출로 대표팀에 대한 기대가 절정이었다. 코치로 WBC 대표팀에 헌신했던 김 전 감독은 도하아시아경기대회에서 동메달을 땄지만 쓸쓸히 귀국했다. 이후 ‘명장’이라는 타이틀은 멀어져갔다.
국가대표 감독직이 주는 큰 영광보다 그 이면의 무거운 책임감이 현역 감독들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2009년 WBC를 앞두고 모두가 사양한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김인식 전 감독은 “국가가 있어야 야구가 있다”는 말로 큰 울림을 주기도 했다. 이후 KBO는 감독 선임의 어려움을 없애고자 ‘국가대표 감독은 현역 감독으로 전년도 우승 구단 감독-준우승 구단 감독 순으로 총재가 선임한다’ 조항을 야구규약에 신설했다.
첫 해당자는 2010 광저우아시아경기대회 사령탑을 맡은 당시 조범현 KIA 감독(현 kt 감독)이었다. 조 감독은 8년 만에 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을 설욕하자며 삼고초려한 끝에 자신보다 1년 선배인 당시 김시진 넥센 감독을 대표팀 투수코치로 영입했다. 조 감독은 2009년에는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지만 2010년 포스트시즌에서 탈락하며 팀 내 상황이 매우 어려웠고, 그 외에도 여러 부담을 안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조 감독은 투수코치 선임부터 선수 선발과 훈련까지 전력을 다해 금메달을 이끌었다. 사석에서 김 전 감독과 형 동생 사이인 조 감독은 광저우로 출발하기 며칠 전 대표팀 회식자리에서 “시진이 형, 우리 금메달 못 따면 한국 못 들어온다. 어디로 도망가지?”라는 농담으로 그 중압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2013년 제3회 WBC는 현역 감독들이 왜 그토록 국가대표 감독직의 무게를 버거워하는지 그 모든 것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4번째 국가대표 감독
류중일 삼성 감독은 2011~2012 2년 연속 페넌트레이스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며 새로운 스타 감독으로 올라섰다. 규약에 따라 WBC 감독을 맡았지만 추신수(당시 신시내티)가 트레이드를 이유로 대표팀 참가를 거부했고, 류현진(LA 다저스)이 미국 무대에 도전하며 참가가 어려워졌다. 주축 선수들의 잔부상도 많았다. 류 감독은 팀 우승으로 대표팀을 맡기 전까지 물리적인 시간도 매우 부족했다. 결국 네덜란드에 일격을 당하며 1라운드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우승 감독이라는 프리미엄은 단 한순간에 사라졌고 여러 비난과 비평이 쏟아졌다. 류 감독은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로 명예회복을 했지만 국가대표 감독직이 짊어져야 할 무게를 그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껴야 했다.
모든 현역 감독이 이제 국제대회는 2017 제4회 WBC밖에 없을 거라 안도했지만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은 야구의 올림픽 종목 재진입과 국제화를 위해 세계랭킹 상위 12개국이 참가하는 국가대항전 ‘프리미어12’ 개최를 선언했다. 첫 대회는 11월 8일 대만과 일본에서 나눠 개최된다. 세계랭킹 상위 12개국이 참가하며 WBC에 맞서 세계 최고 권위의 대회로 만들기 위해 수백만 달러 상금, 월드랭킹 포인트를 걸었다. 향후에는 올림픽 출전권도 부여할 계획이다.
당장 선수단 구성과 대표팀 감독 선임부터 난항이었다. 11월은 한국시리즈 종료 직후다. 현 규약대로라면 류중일 삼성 감독이 포스트시즌 직후 아무런 준비 없이 일본으로 달려가 팀을 지휘해야 한다. KBO는 결국 6월 29일 사상 첫 국가대표 전임감독을 발표했다. 주인공은 김인식(66) KBO 기술위원장이다.
2002 부산아시아경기대회와 2006, 2009 WBC에 이은 4번째 국가대표 감독이다. 양해영 KBO 사무총장은 “1·2위 팀 감독(류중일 감독, 염경엽 넥센 감독) 모두 부담스럽다며 고사했다. 11월은 현역 감독이 지휘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그동안 국제대회에서 성과를 거둔 분이고, 코치들과 선수들에게 전체적으로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판단했다”며 “재야 감독들로 코칭스태프를 구성하더라도 충분히 무게감 있는 사령탑이고, 각 구단이나 감독들에게 협조를 구하기에도 가장 적합한 분이다. 또 그동안 김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에서 혜택을 본 선수도 많기 때문에 선수 구성에서도 이점이 있으리라 여겼다”고 말했다.
대표팀 사령탑으로 돌아온 김인식 감독은 현역 때에 비해 한결 홀가분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더 깊은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김 감독은 “국내 리그가 치열하게 전개되고 일정상으로도 현역 감독이 맡기에는 부담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국가대표 감독 자리가 이렇게 재야까지 돌아온 것 같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또한 “국가대표가 뭔가. 국가대표는 말 그대로 국가를 대표하는 것이다. 국가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최고의 멤버들로 꾸려야 한다”며 야구계의 동참을 호소했다. 김 감독은 제3회 WBC 참가를 거부한 추신수(텍사스) 등 해외파들에게도 동참을 권유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