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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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감 티셔츠 열풍은 포장된 상술?

여름철 아웃도어 브랜드 ‘쿨 마케팅’…실상은 광고 싸움

  • 정혜연 기자 grape06@donga.com

    입력2015-06-08 11: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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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감 티셔츠 열풍은 포장된 상술?
    더위에 지친 한 남성이 냉장고에 얼려둔 티셔츠를 꺼내 입자 눈이 번쩍 뜨이고 팔뚝에는 소름이 돋는다. 티셔츠 앞면에선 살얼음이 날리고 뒷면으로는 열기가 뿜어져 나간다. 국내 한 아웃도어 브랜드에서 여름을 맞아 출시한 냉감 티셔츠 TV 광고의 한 장면. 기상청이 올여름 무더위가 예년보다 빨리 시작되고 길게 갈 것으로 예보하면서 냉감 티셔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냉감 티셔츠는 명칭 그대로 소비자가 착용하는 동안 시원함을 느끼도록 원단에 각종 가공을 한 티셔츠다. 지난해부터 여러 아웃도어 브랜드에서 저마다 기능성을 강조하며 잇따라 출시하고 있다. 시장성이 입증돼 올해는 업체 간 경쟁이 더 치열해진 양상이다.

    그런데 업체들의 TV 광고를 보면 저마다 ‘아이스’ ‘쿨’ 등의 명칭을 넣어 마치 냉감 티셔츠를 입기만 하면 체온이 낮아지는 것처럼 선전하고 있다. 지면광고 문구도 일반 소비자에게 익숙지 않은 용어를 사용해 티셔츠의 특정 소재가 마치 체온을 낮추는 데 특별한 효과가 있는 듯이 설명한 경우가 많다. 과연 냉감 티셔츠는 무더운 여름이 두려운 소비자들에게 최적의 아이템인 것일까.

    TV 광고처럼 소름 돋을까? 글쎄…

    일단 일찌감치 냉감 티셔츠를 접한 소비자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자전거 트레킹이 취미인 직장인 이제성(34) 씨는 얼마 전 땀을 잘 흡수하는 티셔츠를 찾다 한 아웃도어 브랜드의 냉감 티셔츠를 구매했다. 자전거 트레킹을 나가면 한 번에 평균 10km 정도 달린다는 이씨는 “과거 가벼운 나일론 티셔츠를 입고 자전거를 타러 나가면 답답한 느낌이 있었는데 냉감 티셔츠는 통풍이 잘되고 땀 흡수가 빠른 데다 금방 말라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주말이면 산으로 향하는 직장인 장승일(37) 씨도 최근 한 아웃도어 브랜드에서 냉감 티셔츠를 샀다. TV 광고를 보고 구매했다는 장씨는 “산 정상에 오를 때쯤이면 온몸이 땀으로 젖는데 가만히 앉아 산바람을 느끼고 있으면 금세 땀이 마르고 시원한 느낌이 들어서 좋다”며 “땀을 많이 흘리는 체질인데 냉감 티셔츠는 금방 말라서 불쾌감이 덜하다”고 평했다.

    소비자 평을 살펴보면 땀 흡수가 빠르고(흡한·吸汗), 금방 마르며(속건·速乾), 바람이 잘 통한다(통풍·通風)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 TV 광고와 같이 티셔츠를 입자마자 시원한 느낌이 들었느냐고 묻자 “특별히 그런 것 같지는 않다”며 “착용 후 땀이 날 때 기능성(흡한·속건·통풍)을 발휘했다”고 답했다.

    그러면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저마다 밝히는 기능성의 실체는 무엇일까. 노스페이스 측은 주력 상품인 ‘아이스 쿨 숏 슬리브 라운드 티’의 특징에 대해 “신체 열을 방출하고 햇볕을 차단하는 아스킨(Askin) 냉감 소재를 사용하고, 땀이 많이 나는 겨드랑이와 등판 중앙 부분에는 통기성이 탁월한 메시(Mesh) 소재를 적용해 시원하고 쾌적한 느낌이 들게 했다”고 설명했다. 생소한 용어인 아스킨은 섬유화학기업 효성그룹에서 개발한 폴리에스터 냉감 소재. 독특한 횡단면 구조의 섬유가 피부와의 접촉면을 넓혀 신체 열을 방출하게 하고 자외선을 차단하며 빨리 마르는 성질을 갖고 있어 주로 스포츠웨어와 수영복, 커튼, 소파 등에 쓰인다.

    K2는 주력 상품인 ‘쿨360 티셔츠’에 열을 흡수, 저장해 방출하는 상변환물질(Phase Change Material·PCM)로 이뤄진 마이크로캡슐이 내재돼 있어 체온이 올라가면 주변 열을 빨아들여 차가운 느낌을 준다고 선전한다. 상변환물질이란 형태가 변하면서 많은 열을 흡수 또는 방출할 수 있는 잠열재, 축열재로 냉감 소재뿐 아니라 냉온 소재로도 사용된다. 1988년 미국 아웃라스트 테크놀로지사가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우주복을 위해 최초로 상변화 기술을 개발했고 소방관, 직업 어부, 군인 등의 의복에 사용했다. K2 측은 “쿨360 티셔츠에 상변환물질뿐 아니라 등판에는 세로로 다른 크기의 통기 구멍을 가진 메시 소재를 배열해 통풍이 잘되게 하는 등 냉감 기능을 종합했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 아이더는 주력 상품 ‘케이네온2 라운드티’에 대해 “체온이 37도 이상 올라가면 티셔츠 안쪽에 프린트된 버추얼 아이스 큐브의 하얀색이 사라지면서 땀과 수분에 반응해 냉감 효과를 일으키는 원리를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또 네파는 주력 상품인 ‘아이스 콜드 티셔츠’에 대해 “원단에 천연 자일리톨 처리를 해 땀이나 물과 반응할 때 열을 흡수해 냉감 효과를 발휘하는 아이스필(Icefil) 소재와 통풍이 잘되는 메시 소재를 혼합했다”고 말했다.

    냉감 기능 검증한 업체 없어

    냉감 티셔츠 열풍은 포장된 상술?

    의류업체의 제품 기능성을 시험하는 국내 연구원들에 냉감 티셔츠와 관련한 기능성 시험에 대해 문의했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아웃도어 브랜드에서 주장하는 기능성을 뒷받침할 만한 검증된 기관의 평가 결과를 찾기 위해 FITI시험연구원과 한국의류시험연구원(KATRI)에 문의했지만 “냉감 티셔츠와 관련한 기능성 시험이 이뤄진 경우는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현재까지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출시한 냉감 티셔츠의 기능성을 인정해준 기관도, 입증한 마크도 없는 상황이다.

    그러면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냉감 기능성을 광고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시험한 결과는 있지 않을까. 앞서 언급한 4개 브랜드에 관련 시험을 진행한 적이 있는지, 기능성을 입증할 만한 근거가 있는지에 관해 공통된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업체들은 하나같이 “회사 차원에서 체온이 얼마나 내려가는지 시험을 진행한 경우는 없다”며 “우리는 원단을 가공해 판매할 뿐 원단의 기능성에 대한 질문은 원단업체에 문의하라”고만 했다.

    한편 섬유 전문가들은 업체들이 선전하는 냉감 티셔츠 소재가 새로울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창호 한국섬유개발연구원(KTDI) 창조제품연구팀 선임연구원은 “냉감 신소재가 개발된 것이라기보다 업체 간 아이디어 경쟁으로 창의적인 제품들이 출시된 것으로 분석된다. 제품을 살펴보면 한 가지 기능성 원단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부분별로 다른 원단을 사용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땀이 많이 나는 겨드랑이나 가슴, 등에는 통풍 기능성의 메시 원단을 넣고 나머지 다른 부분에는 냉감제 가공을 한 원단을 사용하는 등의 방식이다. 업체가 각 부위에 맞게 원단을 가공한 뒤 기능성을 광고하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일부 전문가는 냉감 티셔츠에 대해 일정 부분 기능성을 갖추고 있다고 평했다. 나노섬유 개발업체 ㈜에프티이앤이의 김준성 과장은 “실험실 온도와 습도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한 뒤 냉감 소재 의류의 기능을 테스트하면 대체로 그 기능성을 발현한다. 기본적으로 열을 빨아들이면서 밖으로 배출하는 기능은 실험을 통해 증명된 결과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김 과장은 입는 순간 소름이 돋고 온몸이 얼음이 될 정도로 시원해진다는 TV 광고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그는 “각기 다른 신체 조건을 가진 냉감 티셔츠 착용자들이 산 혹은 바다, 계곡 등 다른 환경에 노출됐을 경우 냉감 티셔츠의 기능이 시험실 안에서처럼 발현되리라 보장할 수 없다. 어느 정도 냉감 효과를 나타내는지 특정할 수 없기 때문에 광고처럼 엄청나게 시원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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