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파지오가 설계한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웨이드햄프턴 골프클럽.
다들 워낙 오래된 전통 명문 골프장이라 근대에 만들어진 코스가 이들을 제치고 올라가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하지만 그 뒤로 순위 변동은 꽤나 있는 편이다. 그렇다면 100대 코스에서 가장 많은 코스를 설계한 이는 누구일까. 올해의 경우 톰 파지오(Tom Fazio)가 디자인한 코스가 15곳이나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피트 다이가 10곳, A. W. 틸링하스트는 8곳, 도널드 로스가 7곳이다.
파지오디자인 대표인 톰 파지오는 1945년 2월 10일생으로 50년 넘는 기간에 200여 곳의 코스를 설계했다. 한창 때 골프장 오너들은 자신의 코스만 경쟁적으로 돋보이게 하고자 그에게 백지수표를 건네곤 했다. 80년대 후반 50만 달러이던 설계비가 2000년대 후반엔 200만 달러 이상으로 4배나 뛴 것은 그가 평균 가격을 올려놨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가 설계한 코스 가운데 가장 순위가 높은 곳은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웨이드햄프턴으로 올해 21위에 올랐다. 네바다 주 라스베이거스의 평평한 황야에 2만여 그루의 소나무를 심고 계곡, 호수를 아기자기하게 조성한 섀도크리크(32위)는 파지오의 명성을 드높인 대표 코스다. 공사비는 당시로선 상상을 초월하는 4000만 달러였고, 설계비 역시 시세의 2배인 100만 달러였다. 초특급으로 고급스럽게 지은 만큼 오늘날 그린피가 500달러로 미국에서 가장 비싸고(페블비치는 490달러), 그것도 MGM 호텔이나 미라지 호텔에 묵는 고객만 부킹 가능하다.
미국 최고 골프 코스 설계자 톰 파지오.
파지오가 추구하는 설계 철학은 두 가지다. 첫째, 주어진 코스 환경을 극대화해 눈이 즐겁고 전략적인 코스를 만든다. 둘째, 어려워 보이지만 실제로 쳐보면 쉬운 코스를 만든다. 예컨대 골퍼 대부분이 자신의 예상과 달리 공을 오른쪽으로 보내는 슬라이스를 자주 내는 데서 착안해 홀 오른쪽 공간을 넉넉하게 만드는 식이다. 그러니 파지오의 코스는 처음에 마주했을 때 “와” 하고 찬사를 쏟고, 샷을 앞둘 때면 “어휴” 하고 한숨을 내쉬며, 실제 공을 치면서 나아가면 넉넉히 받아줘 “야호” 하고 신나는 감정의 흐름을 갖게 된다.
파지오의 코스를 한국에서도 볼 수 있을까. 그의 형 짐 파지오(경기 이천 휘닉스스프링스)와 조카 톰 파지오 2세(경기 여주 트리니티)가 각각 작품 하나씩을 남겼다. 그리고 그는 강원 원주 한솔 오크밸리로부터 수주받아 설계 작업을 마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