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 3인 가구 외벌이 가장
현대자동차 계열사에서 올해로 8년째 근무 중인 회사원 김모(37) 씨. 지난해 연봉이 500만 원 올라 6900만 원을 받을 때까지만 해도 기분이 좋았지만 올해 연말정산 시뮬레이션을 해본 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절세를 노릴 수 있는 보장성 보험의 추가 가입이나 출산 등 연말정산 혜택을 받을 만한 변동사항이 전혀 없어 세금을 더 내게 된 것. 지난해에는 140만 원을 냈는데 올해는 50만 원가량 더해져 200만 원 가까이 내야 한다. 김씨는 결혼 4년 차로 아들 하나를 키우고 있어 부양가족은 아내를 포함해 2명인 상태. 부양가족 수를 늘리는 것이 유일한 절세법이라고 생각한 그는 현재 처남이 부양가족으로 올려놓은 장모를 양해를 구해 자신의 부양가족으로 등록할 계획이다.
김씨는 올해 연말정산 시뮬레이션 결과를 놓고 “월급이 소폭 올랐지만 그만큼 세금도 더 나간다고 생각하니 달갑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에는 세제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금융상품이 있어 절세 전략을 짜기도 하고, 양육비 공제와 출산 공제 등에 따라 자녀 계획을 세우기도 했는데 이제는 혜택받을 수 있는 항목이 다 사라졌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2월 월급에 갑자기 세금폭탄이 떨어지니 가계에 부담이 된다. 차라리 많이 걷고 많이 돌려주던 때가 부담 분산 측면에서 더 나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02 | 2인 가구 맞벌이 부부
삼성전자 입사 9년 차인 회사원 최모(34) 씨. 연봉은 6500만 원이지만 매년 연초에 나오는 인센티브가 많게는 2000만 원에 달해 이를 추가한 뒤 연말정산 시뮬레이션을 돌려왔다. 올해는 아직까지 정확한 인센티브가 발표되지 않은 상황. 이 때문에 최씨는 인센티브 1000만 원과 2000만 원을 받는 두 가지 경우로 연말정산을 해봤다. 세금을 내야 하는 결과는 다르지 않지만 지난해 토해낸 200만 원에서 적게는 50만 원, 많게는 100만 원이 추가될 것으로 예상돼 부담이 훨씬 늘었다. 그의 남편도 비슷한 연봉을 받고 있어 연말정산 결과가 최씨와 크게 다르지 않다.
최씨는 “올해 결혼을 해 추가로 부녀자 공제를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종합소득금액이 기준치인 3000만 원보다 높아 해당이 안 된다”고 말했다. 절세 전략의 일환으로 결혼 후 연금보험에 추가로 가입했는데 이 역시 별 도움이 안 되게 생겼다. 최씨는 “올해 보험료 공제 방식이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 12%로 바뀌면서 절세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소득이 높은 사람은 세금을 많이 내야 한다는 정부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한꺼번에 많은 세금을 내게 하는 건 직장인으로서 부담이 크다”고 덧붙였다.
1월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가운데)이 “정부가 봉급생활자들의 지갑을 털어 재벌 감세로 부족해진 세수를 메우려 한다”고 비판했다(왼쪽). 1월 20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연말정산과 관련한 긴급 기자회견을 가진 뒤 굳은 표정으로 연단에서 내려오고 있다.
공기업에 다니는 입사 4년 차 독신 남성 이모(34) 씨. 입사와 동시에 독립해 혼자 사는 이씨는 이번 연말정산에서 처음으로 세금을 내게 됐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매번 15만 원 안팎의 세금을 돌려받았는데 올해는 25만 원을 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큰 금액은 아니지만 손해를 본 듯한 기분이다. 연봉이 200만 원 올라 4900만 원의 소득을 얻게 된 것을 제외하고는 변동사항이 없기 때문에 세금을 낼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인적공제라도 받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부모 모두 부양가족으로 등록할 수 있는 65세를 넘지 않아 해당사항이 없고, 매년 납부하는 연금저축은 올해부터 세액공제로 바뀌어 공제 폭이 줄었다.
이씨는 “정부가 고소득층의 세금 부담이 늘고 저소득층은 오히려 줄어든다고 했지만 부양가족이 없는 나 같은 싱글은 해당이 안 된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어 “결혼을 계획하고 있지만 미래를 위해 투자할 만한 금융상품들에 절세 효과가 없는 것도 불만”이라며 “사회적으로 점점 1인 가구가 늘고 있는데 정부가 그들의 처지는 외면한 채 세금을 부과하는 것 같다”며 정부 정책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비용 성격 항목들, 세액공제로 바뀌어
2013년 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정부는 연말정산으로 연봉 5500만 원 이하는 세 부담이 늘지 않고, 7000만 원 이하는 2만~3만 원, 연봉 8000만 원 이하는 33만 원가량 증세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한국납세자연맹에서 올해 직장인 1만 명의 사례를 시뮬레이션해본 결과 정부 예상과 다른 경우가 80%에 달했다. 김선택 한국납세자연맹 회장은 “공평한 기준 없는 세제 개편으로 연봉과 관계없이 뒤죽박죽으로 결과가 나왔고, 이는 운에 따라 세액이 결정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결과는 크게 두 가지 사항이 변동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월급에서 빠지는 원천징수세액이 줄면서 환급액도 줄어든 것이 첫째 요인이다. 정부는 2012년 9월부터 소득세 원천징수세액을 10% 덜 거둬들였다. 소득세 징수를 덜해 가계 부담을 줄이고 그에 따라 소비가 자연히 늘어나면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소득세 징수 정책에 변화가 있었을 뿐 개인이 내야 할 세금에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매월 1만 원씩 덜 내고 연말에 12만 원을 한꺼번에 내야 하는 상황이 닥치면서 부담은 오히려 늘었다. 실제로 국세청 간이세액표에 따른 월납부세액 변화를 살펴보면 월급여액이 400만 원인 직장인의 경우 2013년에는 월납부세액이 약 11만6000원이었지만 2014년에는 약 10만6000원으로 1만 원 줄어 연말정산 이후 내야 할 세액은 약 12만 원인 것으로 나온다. 여기에 지방소득세 10%인 약 1만2000원을 추가하면 내야 할 세금은 대략 13만 원인 것으로 집계된다. 소득이 높을수록 연말정산에서 더 내야 할 세액은 올라간다. 따라서 직장인은 세금이 늘어난 것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
사실 원천징수세액의 변화는 2013년 소득분부터 적용됐기 때문에 지난해 연말정산 때부터 반영된 부분이다. 이보다 직장인의 체감 증세 폭이 높은 이유는 세액공제 방식으로 세법이 개정되면서 많은 소득공제 항목이 사라진 데 있다. 기존 소득공제 방식이 적용됐던 항목의 경우 지출액만큼 전체 소득을 줄여 계산할 수 있었기 때문에 과세표준을 낮추는 데 유리했다. 그러나 바뀐 세액공제는 소득에 변화를 주지 않고 정해진 세액을 일괄적으로 적용해 소득이 높은 직장인에겐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특히 소득공제로 혜택을 받을 수 있었던 자녀양육비, 연금저축, 교육비, 의료비, 보험료, 기부금, 월세 등 7개 주요 특별공제항목이 세액공제로 변경돼 직장인이 체감하는 세금 증가 폭은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세액공제 전환 항목의 기준은 어떻게 결정된 걸까. 김경희 기획재정부 소득세제과 과장은 “비용적 성격이 큰 항목 위주로 세액공제 전환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이어 “고소득자의 경우 비용 지출 능력이 있다고 보고, 선택적 지출 성격이 큰 항목 위주로 선별했다. 그러나 인적공제는 소득에 관계없이 부양해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건드리지 않았다. 소득이 많은 직장인은 소득공제가 더 나았다고 말하지만 세액공제 방식이 저소득층에 유리한 산출 방식이기 때문에 소득공제로의 전환 계획은 없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도 조세형평성을 높이려는 정부의 취지에 따르면 세액공제 방식이 소득공제 방식보다 더 적절하다고 평했다. 정지선 서울시립대 세무전문대학원 교수는 “올해 연말정산이 논란이 되는 이유는 세액공제 방식 때문이라기보다 세액공제 적용 항목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항목이 바로 의료비와 교육비”라며 “예를 들어 연봉 8000만 원인 근로자가 과다한 업무량을 소화해내는 과정에서 의료비가 1000만 원 발생했다면 소득은 결국 7000만 원에 불과한 셈이다. 그런데 이 경우 의료비에 일괄적으로 15% 세액공제를 적용해버리면 일하느라 병이 생긴 것도 억울한데 세금까지 더 내야 하는 꼴이 된다”고 설명했다.
2014년 11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제1차 조세소위원회에서 여당은 담뱃세 인상을, 야당은 법인세 인상을 요구해 갈등을 빚었다.
정 교수는 이어 “교육비도 마찬가지로 근로자가 업무 효율을 높이고 연봉을 올리기 위해 비용을 지출하는 것인데 소득에서 제외하지 않고 세액공제 항목에 넣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저출산 대책의 일환이던 양육비 공제와 출산 공제를 없앤 것과 고령화 사회를 앞둔 요즘 직장인에게 유일한 대비책으로 꼽히는 연금펀드와 연금저축이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전환된 것도 다시금 검토해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1월 20일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공제 항목 및 수준을 조정해 근로소득세제 개편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뒤늦게 정부가 세액공제율 조정에 나서는 데 대해 정 교수는 “늦었지만 환영할 만한 움직임”이라고 말했다. 그는 “조세형평성을 높이려면 고소득층으로부터 세금을 더 걷고, 저소득층은 덜 내며, 중간 소득 계층에는 부담이 덜한 정도의 세금을 부과해야 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맞다. 그러나 정부가 생각하는 적정선과 국민이 생각하는 적정선에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치밀한 조사 작업을 통해 일부 항목의 소득공제 전환과 세액공제율 조정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여론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하자 1월 21일 정부와 여당은 당정협의를 통해 연말정산 보완책을 내놓고 올해 연말정산에 소급적용하기로 했다. 구체적인 해결 방안은 기존 세액공제는 그대로 두면서 자녀 수와 노후 대비에 대한 공제를 조정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러나 정작 소득공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되는 교육비와 의료비 공제 조정은 당정이 합의를 보지 못해 2월 임시국회까지 지켜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법인세 감소, 투자·고용 효과 미미
올해 연말정산을 놓고 직장인의 불만이 높아진 근본 원인은 정부가 세수 확보 정책을 잘못 내놓은 데 있다. 박근혜 정부가 2013년 세법 개정안을 발표하면서 “증세 없이 세금을 마련하겠다”고 장담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직장인의 부담이 더 늘어난 형국이다. 그에 반해 기업에 부과하는 법인세는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 직장인의 상대적 박탈감은 분노로 이어졌다.
국세청이 지난해 발간한 ‘2014년 국세통계연보’를 살펴보면 근로소득세는 2012년 약 20조2430억 원, 2013년 약 22조4940억 원으로 전년 대비 11.1% 증가했다(표 참조). 반면 법인세는 2012년 약 45조9310억 원, 2013년 약 43조8540억 원으로 전년 대비 4.5% 감소했다. 이는 정부가 법인세 감소로 발생한 세수 부족을 직장인의 지갑에서 빼내 메웠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법인세 감면은 2008년 이명박 정부가 기업의 투자 확대와 고용 증대에 따른 경제 활성화를 목표로 실시한 정책이다. 기업의 세금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경제 부흥을 이끌겠다는 정부의 발상에 문제는 없었을까. 조원희 국민대 경제학부 교수는 “투자를 자극하는 데 법인세 감면은 아무런 효과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기업이 투자를 결정할 때 고려하는 요소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 가운데 비용, 즉 지출 감소와 법인세 경감 등에 따른 기업 재무구조 개선은 투자에서 가장 미미한 결정 요소”라고 설명했다. 이어 조 교수는 “이명박 정부가 잘못된 정책을 내놓은 데는 당시 나빠진 경제 상황도 한몫했다”며 “미국발(發) 경제위기가 한국을 덮치면서 전 세계가 비관적 전망을 쏟아내자 정부가 기업 투자를 어떻게든 이끌어내기 위해 법인세 감면이라는 견강부회식 정책을 내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 야당은 법인세율과 법인세의 최저한세율을 높일 것을 정부에 요청했다. 담뱃값 인상으로 서민 부담이 늘어난 것만큼 기업도 세금 부담을 더 져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그러나 최경환 부총리는 “법인세를 올리면 투자가 줄어들 수 있다”며 반대했다. 이에 대해 조 교수는 “한국의 법인세는 미국 등 선진국과 비교하면 높은 수준이 아니다. 적절한 수준의 법인세 증세는 필요하다. 담뱃세 같은 간접세는 올리면서 법인세 같은 직접세는 묶어두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이 법인세 감세 이후 투자와 고용을 늘리기보다 사내 유보금만 쌓아둔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지난해 말 정부는 “쌓아둔 사내 유보금에 세금을 부과하겠다”며 기업소득환류세제 정책을 내놓았다. 이에 따르면 기업은 당해 소득의 80%를 임금, 배당, 투자로 사용해야 하고 사내 유보로 남길 경우 해당 액수의 10%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조 교수는 “정부가 법인세를 올리는 직접적인 방법을 놔두고 왜 땜질식 처방을 계속 내놓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우량기업일수록 주주가 대부분 외국인인데 기업이 환류세를 피하기 위해 가장 손쉬운 방법인 배당을 선택할 경우 오히려 해외로 빠져나가는 돈이 늘어나게 된다. 차라리 법인세를 올리는 편이 국가뿐 아니라 기업을 위해서도 더 나은 해결 방안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