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1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동아미디어센터 오픈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새누리당 서울시장 경선 후보들의 3차 TV 토론회를 우산을 든 시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2012년 대통령선거를 앞둔 4월 총선은 대선 전초전 성격이 강했다. 각종 여론조사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심판론을 근거로 야권 우세를 점쳤다. 하지만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고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전 방위적 지원 유세가 개시됐다. 승패 분수령인 충북과 강원에서 판세가 뒤집어졌고, 새누리당은 예상과 달리 과반 의석을 확보하며 대선 승리 교두보를 마련한다.
40대 표심에 막대한 영향 미쳐
두 선거에서 주역은 단연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2004년 이후 각종 선거에서 보수 성향의 한나라당 혹은 새누리당이 거둔 승리는 박 대통령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런 박 대통령의 영향력은 세월호 사고 직전까지 고스란히 유지되는 듯했다. 선거를 두 달여 앞두고 실시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새누리당 후보들의 승리 전망은 밝아 보였다. 높은 대통령 지지율이 뒷받침해준 덕분이었다.
세월호 사고는 집권 여당에 유리하던 선거 판세를 송두리째 바꿔놓았다(표 참조). 특히 수도권, 충청권, 강원권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은 이들 박빙승부 지역을 싹쓸이했지만, 이번에는 선거를 2주일여 남겨놓은 현재 수세에 몰려 있다. 세월호 사고가 대통령 지지율과 정당 지지율, 40대 표심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것이다.
특히 가장 큰 요인은 집권 여당의 구심점 구실을 해온 박 대통령 지지율 침몰이다. 대통령의 선거 영향력이 유명무실화한 것. 2006년과 2012년 선거에서는 박 대통령과의 동반 유세만으로도 유권자의 표심이 움직였다. 그러나 최근 새누리당 경선에서 ‘박심’(박근혜 대통령의 영향력이 특정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주장) 카드를 꺼내들었던 후보자가 연이어 고배를 마셨다. 공식 선거운동 기간을 앞두고 오히려 대통령과 일정 거리를 유지하기도 한다.
역대 지방선거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50%대 중반 이상 고공행진을 하는 경우, 집권 여당 후보의 당선은 ‘떼어놓은 당상’처럼 보였다(그래프1 참조).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바로 그런 선거였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80%를 넘는 지지율은 여권 후보들에게 결정적인 지원사격이 됐다. 95년 지방선거 재개 이후 진보 정당이 보수를 압도한 유일한 지방선거였다(여당이 16곳 중 10곳에서 승리). 그러나 세월호 사고 이후 이른바 ‘핫 세븐’(Hot Seven·전체 광역단체 17곳 중 경합도가 높은 7곳)에서 대통령 지지율 프리미엄은 거의 사라졌다. 2006년 직접 진두지휘할 때 핫 세븐을 휩쓸었던 ‘선거의 여왕’ 효과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선거 판세 변화의 또 다른 원인은 정당 지지율 하락이다. 대통령 지지율 하락과 함께 새누리당 지지율도 떨어졌다. 세월호 사고 이전 40%대 중반 지지율에서 사고 이후 30% 후반대로 낮아졌고,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2006년 수도권, 충청권, 강원권 선거에서 압승을 거둘 당시 한나라당 지지율은 열린우리당의 2배에 가까웠다. 반대로 야권이 이들 지역에서 성공한 2010년 선거에서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지지율 격차가 오차범위 안팎에 불과했다.
세월호 사고 이후에도 새누리당은 두 자릿수 격차로 새정치민주연합을 앞서지만 차이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다만 새누리당 지지율이 낮아진다고 해서 새정치민주연합이 반사이익을 얻는 구조는 아니다. 새정치민주연합 지지율 역시 세월호 사고 이후 소폭 낮아졌다(그래프2 참조).
여야 구분 없이 안정적 후보 선택
세월호 사고는 선거에 ‘안전’이라는 정책 이슈를 부각했다. 이전에는 기껏해야 민생 경제나 경제민주화를 논의하는 정도였지만, 사고 이후 모든 후보의 최우선 공약이 안전과 관련한 것들이다. 가족 안전에 민감한 주부들은 후보들의 안전정책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세월호 사고 이후 여론조사에서 이미 검증된 현역 단체장들이 우세를 보인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안정적으로 의정 활동을 해온 정치권 후보도 각당 경선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세월호 사고 이전 40대 이상 주부는 보수적 잣대로 여권 후보를 더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사고 이후에는 여야 상관없이 안정적 후보를 더 많이 선택하고 있다. 이념적으로 ‘안정희구’ 성향이던 40대 유권자가 ‘안전희구’ 관점에서 지지 후보를 결정하게 된 것이다. 현역 단체장의 경우 임기 중 안전문제와 관련한 정책적 실책이 알려질 경우 회복하기 힘든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지방선거 판세의 남은 변수는 투표율이다. 투표율은 선거에 대한 관심도, 이념성향별 결집 정도, 2030세대의 투표 적극성에 따라 결정된다. 지방선거 관심도는 대선과 총선에 비해 떨어진다. 관심도가 높은 광역단위부터 현저히 무관심해지는 기초단위까지 투표의 복잡성과 정보 비대칭성이 존재한다.
지난 대선 투표율 상승의 견인차는 이념성향별 결집 정도였다. 보수와 진보의 극한 대립이 나타날 경우 선거는 박빙승부로 접어들고, 유권자의 투표 적극성은 상승한다. 하지만 조용한 선거, 애도하는 분위기 속에서 치르는 선거의 경우 극한 이념대립 구도가 만들어지기 힘들다. 그렇다면 투표율은 선거 무관심이 극에 달했던 2002년(48.8%)과 무상급식 이슈로 정리된 2010년(54.5%) 선거 사이가 될 개연성이 높다.
더욱이 2030세대를 위한 맞춤형 정책이 크게 고려되지 않는 게 지방선거의 일반적 형태다. 세월호 사고로 이들 세대의 반정부 성향이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2004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만큼 2030세대의 ‘분노’가 투표 열기로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선거 결과가 전체 투표율보다 세대 투표율에 달렸다는 점이다. 이는 투표율이 낮더라도 마찬가지다. 2030세대 투표율이 1998년 지방선거(진보 성향의 여권 승리) 수준에 이른다면 수도권 지역에서는 야권에 유리할 것이다.
40대 표심은 어디로
여기서 40대 표심이 중요한 변수로 떠오른다. 전체 유권자 가운데 2030세대의 비율보다 50대 이상 고령자의 비율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2030세대의 투표율을 감안할 때 고령자 비율의 증가는 보수 쪽에 유리한 선거 국면이 만들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후보자의 당락은 40대 유권자가 어느 쪽 손을 얼마나 높이 들어주느냐에 달렸다.
선거 20여 일을 앞두고 실시한 리서치앤리서치의 여론조사 결과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은 40대 표심을 장악하고 있다(그래프3 참조). 비슷한 시기인 5월 11~12일 실시한 리서치앤리서치의 경기도지사 여론조사(경기도민 700명, 유무선 RDD 전화조사,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7%p)에서도 새누리당 남경필 후보가 33.8%, 새정치민주연합 김진표 후보가 33.6%로 40대 지지율에서 거의 차이가 없었다. 세월호 사고 이전 40대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던 남 후보의 지지율에 큰 변화가 생긴 것이다.
이렇듯 세월호 사고는 2014년 지방선거 곳곳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10년 지방선거 당시 40대의 최대 관심사가 무상급식이었다면, 이번에는 안전이라는 이슈가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 부모에게 가장 민감한 것은 자녀와 직결된 사안이다. 먹을거리 문제보다 더 중요한 이슈가 삶과 죽음의 문제임은 부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