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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씻기 힘든 상처 달래주는 칠산바다 저 붉은 노을

부안 모항해변과 군산 선유도 차분한 마음과 힐링 코스

  • 양영훈 여행작가 travelmaker@naver.com

    입력2014-05-19 13: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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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씻기 힘든 상처 달래주는 칠산바다 저 붉은 노을

    솔섬 주변 바다와 하늘을 붉게 물들인 저녁노을.

    여행은 전업 여행작가의 생업이자 의무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들의 여행은 계속돼야 한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발길이 쉽게 떨어지질 않았다.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 세상 사람도 모두 울며 안타까워하는 이때 어딘가를 싸돌아다닌다는 것이 죄스럽기까지 했다. 원고 마감을 눈앞에 두고도,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조차 잡을 수 없었다. 그런 나를 움직이고 목적지까지 일러준 것은 안도현 시인의 시 한 편이었다.

    바다를 껴안고 하룻밤 보내

    오랜만에 다시 음미해본 ‘모항 가는 길’(아래 상자 안) 속 동선이 머릿속에 또렷하게 그려졌다. 처음부터 끝까지 찬찬히 되뇌다 보니, 어느새 시인이 다가와 귀엣말로 이렇게 속삭이는 듯했다.

    “모항에나 한번 댕겨와요.”

    시인은 “모항에 도착하면 바다를 껴안고 하룻밤 잘 수 있을 것”이라는 말까지 덧붙이며 축 처진 내 등을 떠밀었다.



    서해안고속도로 줄포IC를 빠져나와 곧장 변산반도 남쪽 해안에 위치한 모항으로 향했다. 실학자 반계 유형원의 자취가 서린 전북 부안군 보안면 우동리, 천일염과 젓갈 산지로 유명한 곰소항, 전나무 숲길이 아름다운 내소사 입구 등을 그냥 지나쳐 40여 분 만에 모항에 도착했다. 고향처럼 친근하고도 익숙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아담한 모항해변과 그 너머에 있는 잔잔한 곰소만 바다, 바다 저편에 아스라한 선운산 실루엣이 고스란히 시야에 들어왔다. 모항해변의 한적한 솔숲에 작은 텐트를 설치했다. 한나절 내내 텐트 안에서 뒹굴었다. 쉼 없이 들려오는 해조음을 듣다 보니 마음이 누긋해졌다.

    씻기 힘든 상처 달래주는 칠산바다 저 붉은 노을

    모항 부근 30번 국도에서 바라본 줄포만과 선운산 자락(왼쪽). 바다를 껴안고 하룻밤 지새우기 좋은 모항해변의 솔숲 캠핑장.

    변산반도 서쪽 칠산바다로 해가 설핏 기울 무렵 전북학생해양수련원 옆에 있는 작은 몽돌해변을 찾았다. 모항에서 2.5km가량 떨어진 이 해변 앞에 작은 무인도 솔섬이 떠 있다. 불덩이 같은 태양이 솔섬 주변과 칠산바다에 붉은 노을을 드리우며 뉘엿뉘엿 저물었다. 그 광경은 아무리 가슴 메마른 사람이라도 시심(詩心)이 절로 생길 만큼 아름답고 서정적이었다. 노을처럼 발그레한 얼굴을 하고 모항으로 돌아왔다. 시인의 권유대로 모항해변 솔숲에서 바다를 껴안고 하룻밤을 보냈다. 그날 밤은 적막했으나 쓸쓸하지는 않았다. 바깥 기온은 약간 쌀쌀했어도 잠자리는 더없이 포근했다.

    곰소만에 낮게 드리운 안개가 걷히기도 전 모항을 뒤로하고 길을 나섰다. 변산반도 맨 서쪽 적벽강에 들렀다.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 해안에 위치한 적벽강은 해질녘 풍광이 아름답다. 바닷가에 병풍처럼 둘러쳐진 절벽이 해질 무렵이면 온통 붉은빛을 띤다. 중국 송나라 시인 소동파가 즐겨 찾던 적벽강과 닮았다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인근 채석강에 비해 덜 유명하지만, 우리나라 어디서도 보기 어려운 자연사 유적이 있어 꼭 들러볼 만하다. 적벽강 일대 해안절벽에 형성된 유문암 주상절리와 페페라이트(peperite)가 그것이다. 찻길 바로 옆이라 찾아가기도 쉽다.

    후추를 뿌려놓은 듯한 ‘후추암’

    씻기 힘든 상처 달래주는 칠산바다 저 붉은 노을

    새만금방조제와 고군산군도 여러 섬이 한눈에 들어오는 대각산 산등성이길.

    유문암은 현무암과 같은 화산암 일종이다. 마그네슘, 철 등의 금속광물이 많은 현무암은 검은빛을 띤다. 반면 장석, 석영 같은 규산염광물을 다량으로 함유한 유문암은 색이 밝다. 이 해변에는 세계적으로 흔치 않은 페페라이트도 광범위하게 분포해 있다. 역암(礫巖)의 일종인 페페라이트는 바다에 흘러든 용암이 퇴적물과 뒤섞인 채 급격하게 식어 형성된 암석이다. 마치 후추를 뿌려놓은 바위 같다고 해서 ‘후추암’이라고도 부른다.

    변산 바닷가를 굽이굽이 돌아가는 30번 국도는 변산면 대항리에서 새만금방조제와 만난다. 방조제 초입에 자리 잡은 새만금홍보관에 들렀다.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 건설로 생긴 새만금간척지의 역사, 현황, 미래 전망을 담은 전시물과 자료가 전시실마다 가득했다. 이제 새만금방조제를 폄훼하고 부정하는 주장은 별 의미가 없다. 그보다는 나랏돈이 3조 원 이상 투입됐고, 축구장 3만7000여 개를 합쳐놓은 것만큼 넓은 새만금간척지를 어떻게 제대로 활용할지에 대해 고심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총길이 33.9km인 새만금방조제는 군산시 옥도면의 고군산군도에 속한 신시도, 야미도 같은 섬을 육지로 탈바꿈시켰다. 문자 그대로 상전벽해인 셈이다. 신시도의 새만금휴게소 옆에 불끈 치솟은 대각산(187m)과 월령봉(199m)에 올라서면 고군산군도에 딸린 선유도, 무녀도, 장자도, 대장도, 방축도, 관리도 등 여러 섬, 그리고 새만금지구의 장대한 방조제와 바다 같은 간척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 탁월한 조망을 누릴 수 있기에 1~2시간 소요되는 산행조차 기껍다.

    주변 섬 연결 연륙교 내년 완공

    씻기 힘든 상처 달래주는 칠산바다 저 붉은 노을

    대중교통편이 없는 선유도에서 자전거는 효율적인 이동수단이다.

    연륙교가 완공되는 내년쯤에는 배를 타지 않아도 선유도를 비롯한 여러 섬을 들락거릴 수 있다. 하지만 육지와 연결된 섬은 더는 섬이 아니다. 단순히 지형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섬 고유문화와 자연생태, 주민 인심까지도 급속히 달라지게 마련이다. 상전벽해를 앞둔 선유도와 그 주변 무녀도, 장자도, 대장도를 다시 둘러보고 싶었다. 야미도 선착장에서 출발하는 새만금유람선(063-464-1919)에 올랐다.

    다리 가설공사와 도로 개설공사가 한창인 선유도와 주변 섬의 분위기는 다소 산만했다. 그래도 고군산군도의 중심인 선유도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고운 모래가 깔린 백사장, 푸른 물이 넘실거리는 바다, 곳곳마다 우뚝한 기암절벽은 옛 모습 그대로였다. 한적한 해변에서 삼삼오오 짝을 지어 한가로이 먹이를 찾는 검은머리물떼새(천연기념물 제326호)도 종종 눈에 띄었다. 그런 풍경이 영원히 변치 않기를 간절히 염원하며 야미도선착장으로 되돌아가는 유람선에 몸을 실었다.

    여행정보

    ● 모항해변과 선유도의 캠핑장 이용안내

    우리나라의 수많은 해수욕장에 위치한 여느 캠핑장과 마찬가지로, 모항해변의 솔숲 캠핑장도 정식 캠핑장은 아니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캠핑장으로 활용돼왔다. 부안군청은 올해 안에 이곳을 정식 캠핑장으로 단장할 예정이라고 한다. 솔숲은 화장실, 야외 테이블과 벤치, 샤워장, 운동시설 같은 편의시설을 두루 갖추고 있다. 단, 샤워장은 비수기에는 이용할 수 없다. 관리인이 상주하지 않는 비수기에는 이용료도 없고, 캠핑사이트도 먼저 잡는 사람이 임자다. 주변에 식수, 부식 등을 파는 가게가 있다.

    풍광 좋은 선유도해수욕장에서도 캠핑할 수 있다. 백사장과 나란히 이어지는 도로변에 길게 늘어선 솔숲이 바로 캠핑장이다. 도로와 맞붙어 있어 관광객이 많은 주말이나 휴일에는 갖가지 소음을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해지는 서쪽 바다와 선유도해수욕장이 한눈에 들어올 만큼 입지 조건이 좋아 다른 불편함은 기꺼이 감내할 만하다. 근처에는 관리가 잘되는 화장실도 있다. 식수와 부식을 구매하거나 유료 샤워가 가능한 마트, 민박집 등도 가까이에 많다.

    ● 숙식

    모항해변 주변에는 모항해나루가족호텔(063-580-0700), 모항비치텔(063-583-5545), 모항레저타운(063-584-8867), 소나무그늘아래펜션(063-582-8892) 같은 숙박업소가 있다. 적벽강 입구에도 쁘띠블랑(063-581-2767), 변산마실길펜션(010-2400-2151), 해넘이타운(063-582-7500) 등 펜션이 많다. 선유도와 그 주변 섬에는 섬마을풍경펜션(063-468-7300), 그 섬에 가고 싶다(010-5196-2112), 선유도옥돌펜션(063-465-9317), 밀파소펜션(063-466-6024) 등을 비롯한 펜션과 민박이 많다.

    씻기 힘든 상처 달래주는 칠산바다 저 붉은 노을

    곰소에 있는 ‘칠산꽃게장’집의 꽃게장정식.

    모항에서 멀지 않은 곰소에는 꽃게장 전문점으로 이름난 칠산꽃게장(063-581-3470)이 있다. 짜거나 싱겁지 않고 간이 적당히 밴 꽃게장 맛이 일품이다. 곰소에는 곰소쉼터(063-584-8007)를 비롯한 젓갈백반집이 많다. 해산물이 풍부한 격포항 주변에는 군산식당(백합죽/ 063-583-3234), 격포항횟집(생선회/ 063-584-8833) 같은 맛집이 즐비하다. 근처 궁항마을의 신용횟집(063-582-8911)과 야미도선착장 부근의 석수횟집(063-462-6510)은 자연산 생선회만 파는 맛집이다. 새만금홍보관에서 자동차로 약 5분 거리인 변산온천산장(063-584-4874)은 부안의 향토별미 가운데 하나인 바지락죽 원조집이다.

    ●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 줄포IC→줄포면 소재지(23번 국도, 고창 방면)→영전 삼거리(30번 국도, 변산 방면)→모항해변 입구→격포~적벽강~고사포 해안도로→운산 교차로(30번 국도, 부안 방면)→새만금홍보관 삼거리(좌회전, 군산 방면)→새만금로(새만금방조제) 새만금휴게소→야미도선착장→비응항 입구→새만금북로(21번 국도)→대야 교차로→서해안고속도로 동군산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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