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섬 주변 바다와 하늘을 붉게 물들인 저녁노을.
바다를 껴안고 하룻밤 보내
오랜만에 다시 음미해본 ‘모항 가는 길’(아래 상자 안) 속 동선이 머릿속에 또렷하게 그려졌다. 처음부터 끝까지 찬찬히 되뇌다 보니, 어느새 시인이 다가와 귀엣말로 이렇게 속삭이는 듯했다.
“모항에나 한번 댕겨와요.”
시인은 “모항에 도착하면 바다를 껴안고 하룻밤 잘 수 있을 것”이라는 말까지 덧붙이며 축 처진 내 등을 떠밀었다.
서해안고속도로 줄포IC를 빠져나와 곧장 변산반도 남쪽 해안에 위치한 모항으로 향했다. 실학자 반계 유형원의 자취가 서린 전북 부안군 보안면 우동리, 천일염과 젓갈 산지로 유명한 곰소항, 전나무 숲길이 아름다운 내소사 입구 등을 그냥 지나쳐 40여 분 만에 모항에 도착했다. 고향처럼 친근하고도 익숙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아담한 모항해변과 그 너머에 있는 잔잔한 곰소만 바다, 바다 저편에 아스라한 선운산 실루엣이 고스란히 시야에 들어왔다. 모항해변의 한적한 솔숲에 작은 텐트를 설치했다. 한나절 내내 텐트 안에서 뒹굴었다. 쉼 없이 들려오는 해조음을 듣다 보니 마음이 누긋해졌다.
모항 부근 30번 국도에서 바라본 줄포만과 선운산 자락(왼쪽). 바다를 껴안고 하룻밤 지새우기 좋은 모항해변의 솔숲 캠핑장.
곰소만에 낮게 드리운 안개가 걷히기도 전 모항을 뒤로하고 길을 나섰다. 변산반도 맨 서쪽 적벽강에 들렀다.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 해안에 위치한 적벽강은 해질녘 풍광이 아름답다. 바닷가에 병풍처럼 둘러쳐진 절벽이 해질 무렵이면 온통 붉은빛을 띤다. 중국 송나라 시인 소동파가 즐겨 찾던 적벽강과 닮았다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인근 채석강에 비해 덜 유명하지만, 우리나라 어디서도 보기 어려운 자연사 유적이 있어 꼭 들러볼 만하다. 적벽강 일대 해안절벽에 형성된 유문암 주상절리와 페페라이트(peperite)가 그것이다. 찻길 바로 옆이라 찾아가기도 쉽다.
후추를 뿌려놓은 듯한 ‘후추암’
새만금방조제와 고군산군도 여러 섬이 한눈에 들어오는 대각산 산등성이길.
변산 바닷가를 굽이굽이 돌아가는 30번 국도는 변산면 대항리에서 새만금방조제와 만난다. 방조제 초입에 자리 잡은 새만금홍보관에 들렀다.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 건설로 생긴 새만금간척지의 역사, 현황, 미래 전망을 담은 전시물과 자료가 전시실마다 가득했다. 이제 새만금방조제를 폄훼하고 부정하는 주장은 별 의미가 없다. 그보다는 나랏돈이 3조 원 이상 투입됐고, 축구장 3만7000여 개를 합쳐놓은 것만큼 넓은 새만금간척지를 어떻게 제대로 활용할지에 대해 고심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총길이 33.9km인 새만금방조제는 군산시 옥도면의 고군산군도에 속한 신시도, 야미도 같은 섬을 육지로 탈바꿈시켰다. 문자 그대로 상전벽해인 셈이다. 신시도의 새만금휴게소 옆에 불끈 치솟은 대각산(187m)과 월령봉(199m)에 올라서면 고군산군도에 딸린 선유도, 무녀도, 장자도, 대장도, 방축도, 관리도 등 여러 섬, 그리고 새만금지구의 장대한 방조제와 바다 같은 간척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 탁월한 조망을 누릴 수 있기에 1~2시간 소요되는 산행조차 기껍다.
주변 섬 연결 연륙교 내년 완공
대중교통편이 없는 선유도에서 자전거는 효율적인 이동수단이다.
다리 가설공사와 도로 개설공사가 한창인 선유도와 주변 섬의 분위기는 다소 산만했다. 그래도 고군산군도의 중심인 선유도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고운 모래가 깔린 백사장, 푸른 물이 넘실거리는 바다, 곳곳마다 우뚝한 기암절벽은 옛 모습 그대로였다. 한적한 해변에서 삼삼오오 짝을 지어 한가로이 먹이를 찾는 검은머리물떼새(천연기념물 제326호)도 종종 눈에 띄었다. 그런 풍경이 영원히 변치 않기를 간절히 염원하며 야미도선착장으로 되돌아가는 유람선에 몸을 실었다.
여행정보
● 모항해변과 선유도의 캠핑장 이용안내
우리나라의 수많은 해수욕장에 위치한 여느 캠핑장과 마찬가지로, 모항해변의 솔숲 캠핑장도 정식 캠핑장은 아니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캠핑장으로 활용돼왔다. 부안군청은 올해 안에 이곳을 정식 캠핑장으로 단장할 예정이라고 한다. 솔숲은 화장실, 야외 테이블과 벤치, 샤워장, 운동시설 같은 편의시설을 두루 갖추고 있다. 단, 샤워장은 비수기에는 이용할 수 없다. 관리인이 상주하지 않는 비수기에는 이용료도 없고, 캠핑사이트도 먼저 잡는 사람이 임자다. 주변에 식수, 부식 등을 파는 가게가 있다.
풍광 좋은 선유도해수욕장에서도 캠핑할 수 있다. 백사장과 나란히 이어지는 도로변에 길게 늘어선 솔숲이 바로 캠핑장이다. 도로와 맞붙어 있어 관광객이 많은 주말이나 휴일에는 갖가지 소음을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해지는 서쪽 바다와 선유도해수욕장이 한눈에 들어올 만큼 입지 조건이 좋아 다른 불편함은 기꺼이 감내할 만하다. 근처에는 관리가 잘되는 화장실도 있다. 식수와 부식을 구매하거나 유료 샤워가 가능한 마트, 민박집 등도 가까이에 많다.
● 숙식
모항해변 주변에는 모항해나루가족호텔(063-580-0700), 모항비치텔(063-583-5545), 모항레저타운(063-584-8867), 소나무그늘아래펜션(063-582-8892) 같은 숙박업소가 있다. 적벽강 입구에도 쁘띠블랑(063-581-2767), 변산마실길펜션(010-2400-2151), 해넘이타운(063-582-7500) 등 펜션이 많다. 선유도와 그 주변 섬에는 섬마을풍경펜션(063-468-7300), 그 섬에 가고 싶다(010-5196-2112), 선유도옥돌펜션(063-465-9317), 밀파소펜션(063-466-6024) 등을 비롯한 펜션과 민박이 많다.
곰소에 있는 ‘칠산꽃게장’집의 꽃게장정식.
●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 줄포IC→줄포면 소재지(23번 국도, 고창 방면)→영전 삼거리(30번 국도, 변산 방면)→모항해변 입구→격포~적벽강~고사포 해안도로→운산 교차로(30번 국도, 부안 방면)→새만금홍보관 삼거리(좌회전, 군산 방면)→새만금로(새만금방조제) 새만금휴게소→야미도선착장→비응항 입구→새만금북로(21번 국도)→대야 교차로→서해안고속도로 동군산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