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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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 없는 ‘급발진 미스터리’

끊이지 않는 사고에 원인 규명 ‘오리무중’…피해 운전자만 분통 터져

  • 양충모 객원기자 gaddjun@gmail.com

    입력2014-04-08 11: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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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년이나 지속돼온 일본 최대 자동차 업체 도요타의 험난한 길이 끝나는 분위기다. 하지만 기분 좋게 찍은 마침표는 아니다. 3월 19일 미국 법무부는 벌금 12억 달러(약 1조3000억 원)를 도요타에 부과한다고 밝혔다. 2009년과 2010년 도요타 렉서스 차량 급발진 추정사고와 관련해 도요타가 정부 당국과 일반인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한 사실을 시인한 것에 따른 조치였다. 이 액수는 미국 정부가 자동차 업체에 매긴 벌금 가운데 사상 최고액이다.

    그동안 도요타는 운전석 바닥 매트가 가속페달을 눌러 급발진 사고가 날 수 있다는 점을 파악하고도 이를 숨기기에 바빴다. 이날 에릭 홀더 미 법무부 장관은 “도요타의 행위는 수치스러운 짓”이라고 강하게 질타하면서 “도요타는 안전문제를 개선하지 않은 채 소비자를 호도하고 의회에 잘못된 정보를 전달했다”고 비난했다.

    도요타는 미 법무부에 벌금을 납부하는 대신 3년간 기소유예 처분을 받아 형사처벌은 피할 수 있게 됐다. 집요하던 수사도 이것으로 종결된다. 하지만 도요타가 받은 상처는 쓰라리다. 현재까지 도요타가 급발진 문제로 리콜한 자동차는 1200만 대, 배상에 지불한 돈은 40억 달러(약 4조3212억 원)다. 이번 벌금까지 합산하면 52억 달러로 늘어난다. 이는 도요타 연간 영업이익의 40%에 달하는 수치다. 여기에 자동차 업체에게는 치명적인 ‘브랜드 이미지 실추’가 가져올 손해까지 더하면 도요타는 이번 벌금으로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미 법무부가 자동차 급발진 원인을 도요타 자동차의 결함 때문으로 판단한 것은 아니다. 미 법무부가 도요타에 벌금을 부과한 이유는 도요타가 의도적으로 안전 정보를 감추고 차량에 결함이 있음에도 운전자를 속인 점, 그리고 이에 대한 개선 의지를 보이는 데 소홀했기 때문이다. 즉, 도요타가 충분한 설명과 조치를 취하지 않고 변명으로 일관했다는 부분에 대한 벌금인 것이다.

    브레이크 없는 ‘급발진 미스터리’

    미국 뉴욕 도요타 대리점.

    1970년대부터 의심 사고 보고



    이는 급발진 사고에 대한 원인 규명이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자동차 급발진이란 통상 차량이 정지 또는 매우 낮은 출발 속도에서 운전자가 의도하지 않은 높은 출력이 굉음과 함께 나타나면서 차량을 제어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현상을 뜻한다. 그러나 자동차 자체가 부품 3만 개 이상이 결합해 움직이는 복잡한 구조이다 보니 정확한 원인을 찾기가 매우 힘들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급발진 원인을 규명하려는 노력이 이어졌으나 명확한 결론은 내리지 못했다.

    조사는 주로 미국, 일본, 한국 등 급발진 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국가에서 이뤄진다. 급발진 사고는 가솔린엔진에 자동변속기를 장착한 차량에서 발생하는데, 이들 국가에 주로 보급된 자동차가 이런 차종이기 때문이다.

    자동차 대국인 미국에서는 1970년대부터 급발진 의심 사고가 보고되기 시작했다. 가장 최근에 조사가 행해진 것은 2010년이다. 전년도 도요타 자동차의 급발진 의심 사고가 발생하자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조사에 팔을 걷어붙였다. 초점은 전자장치였다. 급발진과 전자파의 관련성 여부, 사고기록장치에 대한 조사가 이뤄졌으며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잘못 밟았을 가능성도 조사 대상이었다. 조사 결과, 전자식가속제어시스템(ETCS) 고장에 의한 급발진 현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급발진 현상 규명에 실패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운수성의 요청으로 일본 자동차공업협회가 87년부터 2년간 조사를 벌였다. 일본 자동차연구소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90년 급발진 사고가 자동변속기 자동차의 직접적인 결함과는 무관하다는 취지의 결론을 발표한 바 있다. 유럽의 경우, 많은 차량이 가솔린엔진이 아닌 디젤엔진을 장착하고 수동변속기를 사용해 급발진 의심 사고 발생 빈도가 낮아 그에 대한 조사 사례가 거의 전무한 상태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국토교통부(국토부)가 급발진이 발생할 만한 상황을 인위적으로 꾸며 재현실험을 진행한 바 있다. 실험 내용은 엔진제어장치(ECU)의 습기, 엔진제어장치의 전기 충격 및 발전기 고장, 주행 중 가속페달과 제동페달을 동시에 밟을 경우 제동력 상실 여부, 엔진제어장치 가열 및 회로 단선, 연소실 내 카본 퇴적 등이었다. 실험 6건 가운데 5건에서는 이상 현상이 발생하지 않았으며, 엔진제어장치에 전기 충격 및 발전기 고장 실험은 제안자가 당일 불참의사를 통보하며 실험 대상에서 제외됐다. 국토부는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현재 기술 수준으로는 (급발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공식 견해를 발표했다. 일각에서는 단발성 공개 실험의 한계를 지적하며 실험 결과의 신뢰성에 의문을 표하기도 했다.

    운전자 승소 판결은 없어

    세계적으로 급발진 의심 사고는 차량 수만 대에서 수십만 대당 한 건씩 발생하는 수준이다. 국내에서 발생하는 급발진 의심 사고는 1994년 한국소비자원에 처음 접수된 이래 최근에는 1년에 200여 건씩 접수되고 있다. 최근 5년간 자동차 급발진 의심 사고 현황을 보면 2009년 7건에 불과하던 것이 2012년에는 136건으로 껑충 뛰었다. 국토부 산하 교통안전공단은 2월 4일 지난해 자동차결함신고센터를 통해 접수된 급발진 신고 건수를 발표했는데, 총 139건으로 전년에 비해 3건 늘어났다.

    급발진 의심 사고는 출발과 정지 과정에서 많이 발생한다. 이때 굉음과 함께 가속이 붙으면서 제동이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소비자원에서는 2011년부터 2012년 6월까지 자동차 급발진 상담 사례 101건의 유형을 조사했는데, 가장 많은 유형이 주정차 또는 방향을 선회하려고 브레이크를 밟거나 전·후진을 반복하는 과정에서의 사고로 총 32건(31.7%)이었다. 이어 시동을 켜고 출발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가 23건(22.8%), 주유나 세차, 신호대기 등을 위해 잠시 정차한 상태, 혹은 정차 후 출발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가 20건(19.8%)으로 나타났다.

    고속도로나 국도에서 고속주행을 하다 급발진 의심 사고가 발생한 경우도 10건(9.9%) 있었다. 2012년 김모 씨는 자기 소유의 2010년식 도요타 프리우스 차량을 운전하던 중 사거리 앞에 신호 대기하고 있던 차량을 보고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되레 급발진이 발생해 앞차를 추돌한 후 멈추는 사고를 당했다.

    3월 19일 사망자 3명을 낸 송파버스사고를 비롯해 최근에도 급발진 의심 사고가 끊이지 않지만, 차량 결함이 사고 원인으로 지목된 사례는 현재까지 없다. 급발진 추정 사고의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다 보니, 소송에서 자동차 업체가 승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10년 판례가 대표적이다. 70대 운전자가 빌라 지하주차장에서 승용차를 운전해 주차장 입구로 나온 후 큰길로 나가려고 우회전하는데, 갑자기 차가 굉음을 내며 30m가량 질주해 빌라 외벽에 충돌한 사건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차량 진단 결과 엔진이나 제동장치에서 이상을 발견할 수 없었다는 점을 들면서 후미 브레이크 등이 점등되지 않았다는 점, 운전자가 차량을 인수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 등 운전자의 운전 미숙 가능성도 함께 제시했다. 또 2006년에는 탤런트 김수미 씨가 자동차 급발진 사고로 시어머니가 숨졌다며 자동차 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브레이크 없는 ‘급발진 미스터리’

    3월 19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송파구청 사거리 인근에서 달리던 시내버스가 다른 차량들을 연쇄적으로 들이받아 20명의 사상자를 냈다. 운전자가 사고 직전 졸기는 했지만 1차 사고 후에도 운전대를 놓지 않고 급추돌해 급발진 사고를 의심케 했다.

    세계적으로 급발진 원인을 자사 자동차의 결함 때문이라고 얘기하는 기업은 거의 없다. 국내 자동차 업체들도 마찬가지다. 현대·기아자동차 관계자는 “단적으로 급발진은 없다고 본다”며 “급발진 사고로 신고된 것을 조사해보면 자동차 결함은 전혀 없는 것으로 나온다”고 말했다. 또 그는 “사고는 여러 상황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운전자 개인의 과실 탓이라고 주장하지도 않는다”고 덧붙였다. 한 해외 자동차 업체 관계자는 “급발진에 대해 특별히 정리된 견해가 없다”며 말을 아꼈다.

    자동차 급발진에 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결국 과실이 자동차 자체 결함이냐, 운전자의 운전 미숙이냐는 부분에서 과학적으로 결론이 내려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급발진을 둘러싼 국내외 분위기로 볼 때 가까운 시일 안에 규명할 수 있으리라 보지만, 수십 년을 끌어온 논란이 일시에 제거될지는 미지수다.

    원인 규명과 제도 개선 나서야

    원인 규명과 함께 제도적 보완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는 제조물책임법(PL법)상 급발진 사고 피해자가 실수나 운전 미숙으로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음을 입증해야 하는 책임을 져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반면, 미국에서는 자동차에 결함이 없다는 것을 자동차 업체가 입증하도록 재판관이 명령할 수 있다. 자동차 업체와 운전자가 함께 입증 책임을 지는 구조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미국에서 자동차 업체들이 차량 결함은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도의적으로 보상하는 경우가 많은 배경이다.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에는 소비자의 입증 책임 완화를 골자로 한 제조물책임법 일부 개정안(김관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대표 발의)이 계류 중이다. 김관영 의원실 관계자는 “계류 법안이 언제쯤 통과할지는 알 수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급발진 발생 시 대처법

    브레이크 밟고 기어 중립에 놓아야


    급발진이 갑자기 발생하면 누구나 당황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급발진 대처법을 숙지하고 있으면 큰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을 다소나마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미국 컨슈머리포트’가 밝힌 급발진 발생 시 대처법을 소개한다.

    먼저 브레이크를 계속 밟고 있어야 한다. 밟았다 뗐다를 반복하면 브레이크의 진공 상태를 소진할 수 있어 브레이크 힘이 떨어진다.

    다음으로 브레이크를 계속 밟은 채 기어 변속을 중립에 놓는다. 이는 자동차가 빠르고 안전하게 정지할 수 있게 한다. 자동차가 멈춰도 RPM(분당 엔진 회전 수)이 높은 수준에서 유지될 수 있는데,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자동차는 스스로 엔진을 보호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시동은 이 과정을 완료한 후 끈다. 이런 방법이 통하지 않을 경우에는 중앙분리대나 가드레일 등 도로 안전시설에 차체를 부드럽게 마찰시켜 속도를 줄여야 한다.

    전문가들은 자동차 급발진 사고는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 발생하므로 사전에 대처법을 충분히 숙지해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사고에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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