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동 무렵 새 볏집으로 초가지붕을 단장해 겨울을 준비한다(전남 순천시 낙안읍성).
대체로 입동으로 시작되는 겨울은 어떤 기운일까. 이에 대해 중국 전한(前漢) 시대 유학자 동중서(董仲舒)는 편찬서 ‘춘추번로(春秋繁露)’ 음양의(陰陽義)에서 사계절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기운을 재미있게 묘사했다.
“봄에는 기쁨의 기(喜氣)가 넘치므로 만물이 태어나고, 가을에는 성내는 기(怒氣)가 넘치므로 만물이 시들어가고, 여름에는 즐거움의 기(樂氣)가 넘치므로 만물이 잘 자라고, 겨울에는 슬픔의 기(哀氣)가 넘치므로 만물이 숨게 된다. 이 네 가지는 하늘과 사람에게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어서 그 이치와 작용도 동일하다.”(춘추번로)
사계절 기운을 인간 감정에 대입한 동중서의 논리는 ‘천인감응’(天人感應·하늘과 인간이 함께 감흥함)과 ‘음양오행’이라는 동아시아 고유의 자연관을 밑바닥에 깔고 있다. 사실 동중서라는 인물은 유교와 음양오행 이론을 통합해 독특한 정치철학을 펼치면서 공자가 체계화한 유교를 중국의 국교로 부상시키는 데 결정적 구실을 한 인물이다. 그는 유교 고전이자 공자가 손수 지은 역사서 ‘춘추’를 해석한 ‘춘추번로’에서 이 같은 관점을 구체적으로 드러냈다.
아무튼 동중서에 의하면 겨울은 슬픔의 기가 넘쳐나는 계절이요, 만물이 숨거나 죽는 계절이다. 이럴 때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나. 기자가1년 24절기 중 ‘입(立)’자가 들어간 절기만 되면 일부러 찾아 읽는 ‘관자’는 겨울의 추운 기운이 닥칠 때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덕목을 상세히 기록해놓고 있다.
첫째, 고아와 혼자된 사람을 품어주고 노인을 보살펴야 한다. 이는 겨울 추위에 약한 사람을 위한 당연한 사회적 배려일 것이다. 둘째, 음(陰) 기운에 잘 순응해 신에게 제사를 지내야 한다. 이는 우리 전통 풍속에도 일부 남아 전한다. 입동 무렵 우리 선조는 한 해의 노고와 무사함을 감사하는 고사를 지내고, 고사떡을 이웃집과 나눠먹거나 심지어 농사짓느라 애쓴 소에게도 나눠줬다. 셋째, 이사를 금하거나 유민(流民)을 저지하는 등 사람들을 돌아다니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는 겨울이 갈무리의 계절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민심을 고요히 안정시켜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관자’의 겨우살이 지침은 인체 건강에도 적용할 수 있다. ‘황제내경’은 겨울은 닫히고 갈무리하는 폐장(閉藏)의 시기이자 음기(陰氣)가 극성한 때이므로 양기(陽氣)가 동요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래서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것이 좋은데, 반드시 햇빛이 비칠 때를 기다렸다가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좋다고 한다. 모두 음기를 피하고 양기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또 추운 곳은 피하고 따뜻한 곳을 찾아야 하며, 모공이 열려 땀이 나올 정도로 양기를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한다. 겨울철에 사우나탕에 가서 땀을 너무 내다가 몸이 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가짐도 폐장 기운을 따라야 한다. 만물의 생기(生氣)가 숨어서 저장되듯이, 자신의 의지를 숨기거나 감춘 듯한 상태에 있어야 한다. 즉, 무언가 은밀한 비밀을 간직한 듯하거나 이미 목적한 것을 이룬 듯 만족한 마음 상태를 유지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겨울 본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겨울의 양생 도리를 어기면 신기(腎氣)가 상할 수 있는데, 이 경우 봄에 손발이 차고 근육이 위축돼 힘이 없는 질환이 생길 수 있다. 이는 겨울에 양기를 간직하지 못해 봄에 목기(木氣)가 활동하는 것을 돕는 기운이 약해졌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