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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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실 언니’ 권정생을 다시 추억함

  •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입력2012-05-21 09: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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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실 언니’ 권정생을 다시 추억함
    흔히 아동출판 역사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은 지금의 교육부에 해당하는 학부 편집국에서 초등학생용 교과서 ‘소학독본(小學讀本)’을 펴낸 1895년이다. 하지만 시간이 한참 지난 1970년대 말에도 국적불명의 중역본 ‘세계문학전집’이 위세를 떨쳤고, 감상적이고 허황된 꿈만 좇게 만드는 경박단소한 책이 주류를 이뤘다. 그래서 본격적인 아동출판 시대의 출발점을 ‘창비아동문고’를 처음 출간한 1977년으로 꼽기도 한다. 이해 창비아동문고는 ‘꼬마 옥이’(이원수), ‘못나도 울 엄마’(이주홍), ‘사슴과 사냥개’(마해송) 등 동화집 세 권을 한꺼번에 출간했다.

    아동도서로 베스트셀러 목록에 처음 오른 책은 1985년 출간돼 ‘명랑소설’ 붐을 몰고 온 ‘5학년 3반 청개구리들’(최승환, 현암사)이다. 이를 계기로 출판인들이 아동출판 시장에서도 자본을 축적할 수 있다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호황을 누리던 인문·사회과학 시장이 사회주의 붕괴 이후 퇴조하자 많은 출판사가 아동출판 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우리 아동출판에서 문학성과 상업성이 행복한 조화를 이룬 최고의 작가로 권정생을 꼽는다. 그의 대표작 ‘몽실 언니’가 최근 100만 권을 돌파했다. ‘몽실 언니’의 주인공 정몽실은 1941년생으로, 해방 다음해인 1946년 ‘일본 거지’로 귀국해 가난과 전쟁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삶을 지켜낸 불멸의 인물이다. 1981년 강원도 한 시골교회 청년회지에 연재를 시작한 ‘몽실 언니’는 1982년 1월 월간지 ‘새가정’으로 옮겨 연재하다 84년 3월 끝을 냈다.‘몽실 언니’는 인민군을 다룬 부분이 문제가 돼 연재를 중단하고 부분 삭제하는 등 진통을 겪으면서 원고 1000장을 700장 정도로 줄였고, 그 상태 그대로 출간한 것이 1984년 4월 말이다.

    ‘몽실 언니’는 1984년 ‘문화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추천도서’로 선정됐다. 하지만 이듬해 책을 낸 창작과비평사(현 창비)의 출판사 등록이 취소됐다. 이후 “창비아동문고에 민중론이 침투됐다”는 당국의 억지횡포 탓에 ‘몽실 언니’도 엄청난 수난을 겪었다. 이 책을 제자에게 생일선물로 준 교사가 징계위원회에 회부되는 일마저 벌어졌다.

    권정생은 어머니가 “남의 집 자식은 잘도 죽는데 우리 집 자식은 죽지도 않는다”고 넋두리하는 것을 듣고 그날로 가출했다. 그 후 얻은 병은 평생 그를 괴롭혔다. 1968년 31세 때 권정생은 살기가 너무 힘들어 물에 빠져 죽으려고 강가에 갔다. 하지만 강물에 뜬 달을 보고 강과 달을 더럽힐 수 없다는 생각에 집으로 돌아왔고, 그때 통곡하면서 쓴 시가 바로 ‘강아지똥’이다. 세상에 태어났다 그냥 죽는 게 억울해서 쓴 이 시를 이듬해 50일간의 산고 끝에 동화로 다시 만든 ‘강아지똥’은 제1회 기독교아동문학상 현상 모집에 당선됐다.



    ‘강아지똥’은 태어나면서부터 천대받은 강아지똥이 온몸에 비를 맞고 땅속으로 스며들어가, 겨울을 나면서 오랜 기다림 끝에 민들레꽃으로 피어난다는 내용이다. 이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는 하나도 없다는 교훈을 안겨준 이 책은 1997년 길벗어린이에서 그림책으로 출간해 2010년 우리 그림책 최초로 밀리언셀러가 됐다. 권정생은 생전에 “몽실 언니가 사촌”여동생이거나 마을 아주머니거나 평범한 이웃이 될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몽실 언니’는 극심한 이념갈등과 남북한 대립의 아픈 현대사를 온몸으로 살아낸 우리의 모습이고, ‘강아지똥’은 권정생의 분신이자 우리의 다른 모습이다.

    ‘몽실 언니’ 권정생을 다시 추억함
    올해 5월 17일은 권정생의 5주기다. 가정의 달 5월, 한민족 원형이나 다름없는 권정생 작품 속 주인공에게 온 가족이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1958년 출생.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학교도서관저널’ ‘기획회의’ 등 발행. 저서 ‘출판마케팅 입문’ ‘열정시대’ ‘20대, 컨셉력에 목숨 걸어라’ ‘베스트셀러 30년’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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