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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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공천, 그 나물에 그 밥

여야 19대 공천에서도 반발과 탈당 되풀이

  • 이종훈 시사평론가

    입력2012-03-19 09: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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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만의 공천, 그 나물에 그 밥

    민주통합당 공천에서 탈락한 서양호 예비후보(왼쪽에서 두 번째)가 3월 7일 국회에서 한명숙 대표(오른쪽)에게 항의 성명 서를 전달하려다 끌려 나가고 있다.

    4년에 한 번 찾아오는 총선 시즌이 또 돌아왔다. 19대 총선을 앞두고 여야 정치권이 선보인 ‘공천 드라마’는 전작에 비해 길어졌지만, 내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공직후보자추천(이하 공천) 방식도 매한가지인 데다, 탈락자 행태도 특이할 게 없다. 어김없이 공천 시즌이 돌아왔고, 공천 반발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악순환 고리를 끊으려면 공천권을 유권자에게 돌려줘야 하지만, 정치인들은 정파를 떠나 그럴 마음이 별로 없다. 오히려 당권을 가진 사람은 그것을 독점하고자 한다.

    공천에서 탈락한 사람은 할 말이 많다. 그 억울한 심정을 이해 못할 바 아니지만, 그들이 내놓은 탈당의 변(辯)도 구태의연하기는 마찬가지다. 권력 핵심에서 멀어진 자의 생떼에 지나지 않는다. 공천에서 탈락하지 않았다면 절대 탈당하지 않았을 그들 아니던가. 유권자는 미사여구로 잘 포장한 탈당의 변이나 무소속 출마의 당위성에 이골이 난 상태다. 너무 익숙해 귀에 걸리는 말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오히려 문제라고나 할까.

    그런 점에서 탈당과 무소속 출마는 상당한 위험부담이 따른다. 권력 핵심에서 밀려난 사람의 투정을 귀담아들을 유권자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하려면 누구나 인정할 만한 대의명분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동정심이라도 유발해야 한다. 그래야 당선 가능하다.

    18대 총선 당시에는 무소속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그 바람을 이끈 세력이 ‘친박·무소속연대’다. 친박·무소속연대는 당시 지지율 3위를 기록하며 지역구에서 6명이 당선하고, 전국 득표율 13.2%로 비례대표 8명이 국회에 입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것이 가능했던 가장 큰 이유는 친이(친이명박)계의 공천학살에 대해 보수세력이 한편으로는 분노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친박(친박근혜)계를 동정했기 때문이다.

    내용과 결론이 뻔한 드라마



    그들만의 공천, 그 나물에 그 밥

    3월 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열린 경쟁후보의 공천에 반대하는 특정 후보 지지자 집회.

    당시 야권 역시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이 통합하는 과정에서 이번 19대와 마찬가지로 ‘호남 물갈이론’을 제기했다. 또 ‘국민공천, 쇄신공천, 미래공천’이라는 비전과 비리 전력자를 공천 심사에서 제외한다는 엄정한 원칙에 따라 구(舊)민주계가 상당수 탈락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인 김홍업 당시 의원, 박지원 전 대통령비서실장, 이용희 당시 국회부의장, 신계륜 당시 사무총장, 이상수 전 노동부 장관, 신건 전 국정원장 등이 그들이다. 이 가운데 무소속으로 출마해 18대 국회에 입성한 사람은 박지원, 강운태, 김영록, 이윤석이다. 최근 정통민주당을 창당한 한광옥 전 의원도 당시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낙선했고, 신건 전 국정원장은 2009년 4월 재·보궐선거에서 정동영 전 상임고문과 무소속으로 동반 출마해 당선한 바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번에도 그들이 물갈이 대상으로 거론된다는 점이다. 박지원 의원은 최고위원이라는 직위에 힘입어 공천받는 데 성공했고, 김영록 의원도 지역 경선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이상수, 신건은 이미 탈락이 결정됐으며 나머지 전·현직 의원도 비리 혐의로 탈락 위기에 놓였다.

    이번 총선의 무소속 바람과 18대 총선 당시 무소속 바람의 차이는 무엇일까. 먼저 새누리당의 경우, 친이계와 친박계의 운명이 극적으로 뒤바뀌었지만 친이계 핵심인 이재오 의원에게 공천을 준 까닭에 ‘학살’이라는 표현을 쓰기에는 다소 민망한 상황이다.

    일부 친이계는 탈당과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고 전여옥 의원은 국민생각에 입당했지만, 나경원 전 의원을 비롯한 주류는 공천에 불만을 제기하면서도 잔류하는 쪽을 택하는 분위기다. 친이계의 탈당 행렬에 발목을 잡는 또 다른 변수는 야권이 정권심판론을 적극 제기하는 상황에서 명분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야권과 새누리당이 ‘이명박 잔당’이라고 협공하는 순간 사라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가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친이계 탈당에 부정적 반응을 보이는 이유도 같은 배경이다.

    그들만의 공천, 그 나물에 그 밥

    4·11총선 공천에서 배제된 정해걸 새누리당 의원(왼쪽)이 3월 6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권영세 새누리당 사무총장을 막고 재심 청구서를 전달하고 있다.

    이 대통령으로선 이제 ‘강제 탈당’당하지 않고 임기를 무사히 마치기만 바랄 것이다. 약간의 노림수도 있다고 봐야 한다. 이번 총선에서 패배할 경우 ‘박근혜 책임론’이 불같이 일 것은 자명한 사실. 그때 다시 주도권을 쥐는 반전을 기대할 수도 있다. 이렇게 새누리당 내 무소속 바람은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나가는 분위기다.

    반면, 민주통합당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구민주계가 명분을 획득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기 때문이다. 첫 번째 이유는 친노(친노무현)계의 부활이다. 친노계는 2007년 대선에서 패배한 후 자신들을 ‘폐족(廢族)’이라고 불렀다. 이후 반전을 꾀해 야권연합을 통해 2008년 총선 당시 통합민주당을 만들어냈고, 이번에 다시 민주통합당을 창당했다. 그리고 그때와 동일하게 이번에도 구민주계 세력의 호남 기득권을 문제삼으며 물갈이론을 제기했다.

    무소속 태풍일까, 미풍일까

    19대 총선 공천에 임하면서 민주통합당은 ‘공천혁명’을 약속했다. 유권자에게 공천권을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약속에 따라 100만 명이 넘는 유권자가 경선선거인단에 등록하는 사상 초유의 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많은 지역을 단수후보 지역으로 묶어 친노계 기득권을 지켜줬고, 경선마저도 관리를 제대로 못해 대리등록 파문을 낳았다. 빛바랜 경선 결과 역시 친노계와 전·현직 의원의 승리로 귀결됐다.

    야권연대 협상 결과,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후보 간 경선이 76곳에서 치러지지만, 민주통합당의 조직적 승리가 예견된다. 요즘은 누구도 ‘공천혁명’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는다. 이로써 구민주계에 반격 기회를 허락한 셈이다. 숭어가 뛰니 망둥이도 뛴다고, 전국 각지 공천에서 탈락한 예비후보들이 무소속으로 함께 뛸 태세다. 민주통합당 내 무소속 바람은 찻잔 속 태풍에서 몸집을 키워 경량급 열대성 저기압으로 성장한 상태다.

    이제 선택은 유권자에게 달렸다. 새누리당이 제시한 ‘미래권력론’ 또는 ‘과거단절론’이냐, 아니면 야권이 제시한 ‘정권심판론’이냐 하는 80점짜리 문제에 점수를 매기는 동시에, 공천 결과라는 20점짜리 문제에 대해서도 점수를 매겨야 하는 것이다. 20점이라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이번처럼 격전이 예상되는 선거에서는 절대 무시할 수 없다. 야구에서 마무리 투수의 구실이 중요하듯, 공천과 관련해서도 누군가 제구실을 잘해내야 한다. 그 사람이 공천위원장일 수도 있고, 당 지도부 또는 원로일 수도 있다. 전략적 사고를 가지고 이해관계를 조율하면서 마무리를 누가 잘하느냐에 따라 무소속 바람은 태풍으로 발전할 수도 있고 미풍에 그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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