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체 발생이 계통 발생을 요약한다고 했던가. 아이들도 지구의 변화 과정을 요약하듯 ‘공룡기’를 거친다. 조카를 둔 삼촌이나 이모, 자식을 키워본 부모라면 무슨 말인지 안다. 아이들의 성장 과정은 ‘뽀로로기’로 시작해 ‘곤충기’ ‘공룡기’ ‘토마스기차기’ ‘레고기’ ‘팽이기’ 등을 거친다. 지역별, 세대별로 ‘유희왕카드기’나 최근 등장한 ‘구름빵기’도 있다.
만약 ‘루피’ ‘에디’ ‘포비’라는 이름을 듣고 “아, 뽀로로 친구들!” 하고 얼른 떠올리거나, ‘홍시’와 ‘홍비’가 과일 종류가 아니라 ‘구름빵’의 주인공이며, ‘퍼시’나 ‘고든’ ‘에드워드’ ‘제임스’가 ‘꼬마기관차 토마스’의 직장 동료라는 사실까지 안다면 요즘 아이가 원하는 아빠, 엄마라 할 수 있겠다.
17종 80여 마리 공룡 등장
그래도 장수하늘소와 사슴벌레, 풍뎅이를 단번에 구별해내는 아이의 눈이 여전히 신기하고 티라노사우루스, 트리케라톱스, 브라키오사우루스, 힙실로포돈 등 이름도 괴상망측한 공룡이 왜 그렇게 많은지 불만스럽다면, 그리고 공룡의 종과 족보, 생존 시기를 줄줄 꿰는 아이의 머리가 경이롭다고 생각한다면, 1월 26일 개봉한 영화 ‘점박이 : 한반도의 공룡 3D’(이하 ‘점박이’)는 바로 당신과 당신의 아이를 위한 작품이다. 한국 영화 영상 기술의 약진을 보여주는 3D 영화로, 무엇보다 공룡에 열광하는 아이를 위한 ‘공룡대백과사전’ 구실에 충실하다. 어린 자녀와 함께 볼 영화를 찾는다면 이 작품, 상당히 좋다.
먼저 다채로운 종의 공룡이 놀랍다. 티라노사우루스보다 큰 덩치에 성격도 사나운 육식공룡 타르보사우루스, 백악기의 ‘하이에나’인 준족의 사냥꾼 벨로키랍토르, 갑옷으로 무장한 안킬로사우루스, 삼지창같이 날카로운 발톱으로 상대와 맞서는 테리지노사우루스, 유니콘처럼 이마에 난 뿔 하나가 신비한 친타오사우루스, 코뿔소를 닮은 토로사우루스, 바다의 지배자 상어의 조상뻘인 틸로사우루스, 백악기의 ‘배트맨’인 익룡 해남이크누스, 그리고길이 20m에 이르는 큰 덩치와 긴 목을 자랑하는 유순한 초식공룡 부경고사우루스까지. 화석이 발견된 한국 지명이 학명으로 붙은 부경고사우루스 등은 모두 8000만 년 전 백악기에 한반도에서 살았던 공룡들이다. 영화에는 17종 80여 마리의 공룡이 등장한다.
딱딱하고 거친 피부와 위압적인 골격, 들숨과 날숨에 따라 팽창과 수축을 거듭하는 근육, 땅을 박차는 다리와 흙을 움켜쥐는 발톱의 미세한 움직임…. 마치 눈앞에서 공룡이 살아 뛰노는 듯한 생생하고 섬세한 영상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실사와 컴퓨터 그래픽이 구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사실적이다. 웬만한 전문가나 마니아가 아니라면 ‘아바타’만큼이나 인상적인 깊이와 돌출감, 입체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이 작품은 2008년 EBS가 제작하고 방송한 다큐멘터리 ‘한반도의 공룡’을 토대로 제작한 애니메이션이다. 다큐멘터리는 방송 당시 EBS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으며 도서, 만화, 퍼즐 등으로 출시돼 ‘원 소스 멀티 유스(one source multi use)’의 대표적인 사례가 됐다. 미국, 독일, 이탈리아 등 해외 8개국에 수출했는데, 특히 한국 다큐멘터리 사상 최고가에 구입해간 독일 방송사 Super RTL은 이를 황금시간대에 편성해 42%라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했다. 극장용으로 부활한 ‘점박이’는 뛰어난 컴퓨터그래픽에 3D 영상 기술을 결합했고, 캐릭터를 대폭 보강했으며,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입혔다.
다큐멘터리와 애니메이션은 한반도에도 공룡이 살았다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기초로 백악기의 산하를 스크린에 구현했다. 백악기는 약 1억3500만 년 전부터 약 6500만 년 전까지 약 7000만 년의 시대다. 삼첩기(트라이아스기)와 쥐라기에 이은 시대로 중생대의 3기 중 마지막이다. 공룡은 트라이아스기 후반에 지구에 나타나 쥐라기를 거쳐 백악기 말에 멸종했다. ‘점박이’는 멸종이 가까운 백악기 말 한반도를 무대로 했으니 아메리카의 ‘쥐라기 파크’를 대신할 만한 한반도의 ‘백악기 파크’인 셈이다.
점박이의 수중 결투 신 압권
주인공 점박이는 당시 육지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있는 포식자로 백악기의 제왕이라 불리는 타르보사우루스종의 공룡이다. 이야기는 전형적인 영웅담을 따른다. 권력다툼에서 패퇴하고 왕위에서 쫓겨난 존재가 모험을 거듭하다 운명의 적을 물리친 뒤 귀환하는 ‘오디세이’의 서사구조를 닮았다.
얼굴에 커다란 점을 달고 태어난 어린 공룡 점박이는 엄마의 사랑과 형의 보호, 쌍둥이 누나의 장난 속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중 과거 엄마로부터 한쪽 눈을 잃은, 흉포하고 비열한 티라노사우루스 ‘애꾸눈’이 다시 나타난다. 가족들은 몰살되고, 점박이만 홀로 살아남는다.
애꾸눈을 피해 방황하던 공룡 소년 점박이는 암컷 ‘푸른 눈’을 만나 동행한다. 5년이 가고 10년이 가고 20년이 지나 우람한 모습의 청년이 된 점박이는 푸른 눈과 어린 새끼들을 키우며 새롭게 둥지를 틀지만 다시금 만난 애꾸눈과 벼랑 끝 결투를 피할 수 없게 된다. 세상은 가뭄과 화산폭발 등 재앙이 계속되면서 끝없이 먹이를 찾아 헤매야 되는 때다.
20년간 한반도의 공룡을 연구해왔고 해남이크누스, 부경고사우루스 등을 학계에 등록시킨 허민 교수(전남대 한국공룡연구센터 소장)가 작품 전반의 고증을 맡아 완성도와 사실성을 높였다. 스토리는 비교적 단순하지만 가족애와 로맨스, 성장드라마, 영웅담의 서사를 충실히 구현했다. 무엇보다 백악기의 먹이사슬을 보여주는 사냥과 경쟁, 대결, 결투 장면이 압권이다. 후반부에 점박이와 애꾸눈이 물속에서 싸우는 장면도 탁월하다. 여기에 더해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과 일렁이는 파도, 신비로운 수중 기포까지 3D와 컴퓨터그래픽만을 놓고 봤을 때는 이제까지의 한국 영화 중 가장 완성도가 높은 영상으로 꼽을 만하다.
점박이와 애꾸눈 간 대결을 영화의 중심에 놓은 것은 영리한 선택이지만, 전체적으로 이야기가 다소 밋밋한 점은 아무리 볼거리를 강조한 영화라 해도 아쉽다. 이야기를 보강한다면 성인용 콘텐츠로도 훌륭할 듯하다. 그만큼 속편이 기대되는 작품이다.
만약 ‘루피’ ‘에디’ ‘포비’라는 이름을 듣고 “아, 뽀로로 친구들!” 하고 얼른 떠올리거나, ‘홍시’와 ‘홍비’가 과일 종류가 아니라 ‘구름빵’의 주인공이며, ‘퍼시’나 ‘고든’ ‘에드워드’ ‘제임스’가 ‘꼬마기관차 토마스’의 직장 동료라는 사실까지 안다면 요즘 아이가 원하는 아빠, 엄마라 할 수 있겠다.
17종 80여 마리 공룡 등장
그래도 장수하늘소와 사슴벌레, 풍뎅이를 단번에 구별해내는 아이의 눈이 여전히 신기하고 티라노사우루스, 트리케라톱스, 브라키오사우루스, 힙실로포돈 등 이름도 괴상망측한 공룡이 왜 그렇게 많은지 불만스럽다면, 그리고 공룡의 종과 족보, 생존 시기를 줄줄 꿰는 아이의 머리가 경이롭다고 생각한다면, 1월 26일 개봉한 영화 ‘점박이 : 한반도의 공룡 3D’(이하 ‘점박이’)는 바로 당신과 당신의 아이를 위한 작품이다. 한국 영화 영상 기술의 약진을 보여주는 3D 영화로, 무엇보다 공룡에 열광하는 아이를 위한 ‘공룡대백과사전’ 구실에 충실하다. 어린 자녀와 함께 볼 영화를 찾는다면 이 작품, 상당히 좋다.
먼저 다채로운 종의 공룡이 놀랍다. 티라노사우루스보다 큰 덩치에 성격도 사나운 육식공룡 타르보사우루스, 백악기의 ‘하이에나’인 준족의 사냥꾼 벨로키랍토르, 갑옷으로 무장한 안킬로사우루스, 삼지창같이 날카로운 발톱으로 상대와 맞서는 테리지노사우루스, 유니콘처럼 이마에 난 뿔 하나가 신비한 친타오사우루스, 코뿔소를 닮은 토로사우루스, 바다의 지배자 상어의 조상뻘인 틸로사우루스, 백악기의 ‘배트맨’인 익룡 해남이크누스, 그리고길이 20m에 이르는 큰 덩치와 긴 목을 자랑하는 유순한 초식공룡 부경고사우루스까지. 화석이 발견된 한국 지명이 학명으로 붙은 부경고사우루스 등은 모두 8000만 년 전 백악기에 한반도에서 살았던 공룡들이다. 영화에는 17종 80여 마리의 공룡이 등장한다.
딱딱하고 거친 피부와 위압적인 골격, 들숨과 날숨에 따라 팽창과 수축을 거듭하는 근육, 땅을 박차는 다리와 흙을 움켜쥐는 발톱의 미세한 움직임…. 마치 눈앞에서 공룡이 살아 뛰노는 듯한 생생하고 섬세한 영상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실사와 컴퓨터 그래픽이 구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사실적이다. 웬만한 전문가나 마니아가 아니라면 ‘아바타’만큼이나 인상적인 깊이와 돌출감, 입체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이 작품은 2008년 EBS가 제작하고 방송한 다큐멘터리 ‘한반도의 공룡’을 토대로 제작한 애니메이션이다. 다큐멘터리는 방송 당시 EBS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으며 도서, 만화, 퍼즐 등으로 출시돼 ‘원 소스 멀티 유스(one source multi use)’의 대표적인 사례가 됐다. 미국, 독일, 이탈리아 등 해외 8개국에 수출했는데, 특히 한국 다큐멘터리 사상 최고가에 구입해간 독일 방송사 Super RTL은 이를 황금시간대에 편성해 42%라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했다. 극장용으로 부활한 ‘점박이’는 뛰어난 컴퓨터그래픽에 3D 영상 기술을 결합했고, 캐릭터를 대폭 보강했으며,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입혔다.
다큐멘터리와 애니메이션은 한반도에도 공룡이 살았다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기초로 백악기의 산하를 스크린에 구현했다. 백악기는 약 1억3500만 년 전부터 약 6500만 년 전까지 약 7000만 년의 시대다. 삼첩기(트라이아스기)와 쥐라기에 이은 시대로 중생대의 3기 중 마지막이다. 공룡은 트라이아스기 후반에 지구에 나타나 쥐라기를 거쳐 백악기 말에 멸종했다. ‘점박이’는 멸종이 가까운 백악기 말 한반도를 무대로 했으니 아메리카의 ‘쥐라기 파크’를 대신할 만한 한반도의 ‘백악기 파크’인 셈이다.
점박이의 수중 결투 신 압권
주인공 점박이는 당시 육지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있는 포식자로 백악기의 제왕이라 불리는 타르보사우루스종의 공룡이다. 이야기는 전형적인 영웅담을 따른다. 권력다툼에서 패퇴하고 왕위에서 쫓겨난 존재가 모험을 거듭하다 운명의 적을 물리친 뒤 귀환하는 ‘오디세이’의 서사구조를 닮았다.
얼굴에 커다란 점을 달고 태어난 어린 공룡 점박이는 엄마의 사랑과 형의 보호, 쌍둥이 누나의 장난 속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중 과거 엄마로부터 한쪽 눈을 잃은, 흉포하고 비열한 티라노사우루스 ‘애꾸눈’이 다시 나타난다. 가족들은 몰살되고, 점박이만 홀로 살아남는다.
애꾸눈을 피해 방황하던 공룡 소년 점박이는 암컷 ‘푸른 눈’을 만나 동행한다. 5년이 가고 10년이 가고 20년이 지나 우람한 모습의 청년이 된 점박이는 푸른 눈과 어린 새끼들을 키우며 새롭게 둥지를 틀지만 다시금 만난 애꾸눈과 벼랑 끝 결투를 피할 수 없게 된다. 세상은 가뭄과 화산폭발 등 재앙이 계속되면서 끝없이 먹이를 찾아 헤매야 되는 때다.
20년간 한반도의 공룡을 연구해왔고 해남이크누스, 부경고사우루스 등을 학계에 등록시킨 허민 교수(전남대 한국공룡연구센터 소장)가 작품 전반의 고증을 맡아 완성도와 사실성을 높였다. 스토리는 비교적 단순하지만 가족애와 로맨스, 성장드라마, 영웅담의 서사를 충실히 구현했다. 무엇보다 백악기의 먹이사슬을 보여주는 사냥과 경쟁, 대결, 결투 장면이 압권이다. 후반부에 점박이와 애꾸눈이 물속에서 싸우는 장면도 탁월하다. 여기에 더해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과 일렁이는 파도, 신비로운 수중 기포까지 3D와 컴퓨터그래픽만을 놓고 봤을 때는 이제까지의 한국 영화 중 가장 완성도가 높은 영상으로 꼽을 만하다.
점박이와 애꾸눈 간 대결을 영화의 중심에 놓은 것은 영리한 선택이지만, 전체적으로 이야기가 다소 밋밋한 점은 아무리 볼거리를 강조한 영화라 해도 아쉽다. 이야기를 보강한다면 성인용 콘텐츠로도 훌륭할 듯하다. 그만큼 속편이 기대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