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가 한동안 술렁였다. 형제간 노선, 재산, 헤게모니 다툼이 거칠었다. 동생이 형을 상대로 송사를 벌였다느니, 아들이 어머니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느니 하는 보도에 통일교 원로는 혀를 찼다. 언론은 ‘왕자의 난’이라는, 말초를 자극하는 표현을 쓰면서 통일교 사태를 다뤘다.
창시자 문선명(92) 총재의 3남 문현진(43) 씨, 4남 문국진(42) 씨, 7남 문형진(33) 씨가 소동의 중심에 있다. 통일교재단 이사장 겸 통일그룹 회장인 4남이 실권자다. 4남이 한국 및 일본 조직과 통일그룹을 장악했다. 재정권, 인사권도 틀어쥐었다. 4남과 단짝인 7남이 종교로서의 통일교를 이끈다.
장남, 차남이 별세해 문 총재의 사실상 장남인 문현진 씨는 글로벌피스페스티벌(GPF) 재단을 이끈다. 통일교가 1977년 세운 국제조직 UCI의 자산이 GPF 토대다. 통일그룹처럼 UCI도 기업군을 거느린다. 미국에 다수 기업을 갖고 있으며 서울 강남의 JW 메리어트호텔 서울도 UCI 소유다.
3남, 4남은 2010~2011년 서울 여의도 땅 송사(상자기사 참조)를 거치면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신동아’ 2011년 6월호 ‘통일교 왕자의 난’ 제하 기사 참조). 통일교 실권을 장악한 4남은 3남 측을 사탄으로 몰았다.
“그것은 매우 분명한 사실이에요. 우리 신학을 공부할 기회가 있으면 그것이 얼마나 명확한지 알 겁니다. 신학적으로는 정확해요. 아버지는 우리 메시아인 하나님의 대신자입니다. 아버지를 돕는 교회 지도자는 천사장의 위치에 있어요. 신을 배신한 천사장처럼 메시아인 아버지를 배신하면 그것은 사탄이고, 타락한 천사장입니다. 우리 신학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매우 간단하고, 적당한 표현임을 알 겁니다.”
3남은 4남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장남 위치가 중요한 것은 비단 한국에서만은 아닙니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죠. 장남의 책임은 가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부모와 가정, 그분이 대표하는 모든 것에 영광을 돌리는 겁니다. 나는 내가 사랑하고 나와 혈연관계인 모든 사람을 존중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동생들이 어떻게 행동하든 형으로서 품위(dignity)를 지켜야 한다고 믿습니다.”
형제 등 돌리고 신도도 나뉘고
3남과 4남이 벌인 열전(熱戰)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으나 냉전(冷戰)은 지금껏 치열하다. 통일교는 결국 둘로 쪼개졌다. 4남, 7남의 통일교와 3남의 GPF. GPF는 통일교에 대응하는 조직을 한국에도 꾸렸다. 누구를 지지하느냐에 따라 신도도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 냉전은 후계자 다툼이라기보다 문 총재를 ‘믿는’ 사람에 대한 앞으로의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경쟁이다. 헤게모니 다툼은 한국, 일본, 미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에서 일어난다. 주도권을 쥐려는 형제간 경쟁은 최근 북한으로 옮겨 붙었다. 시곗바늘을 1991년 12월 6일로 돌려보자.
“형님!”
문 총재는 여덟 살 위인 김일성(1912~1994)을 처음 만났을 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종교의 자유, 경제 협력, 통일 방안을 논의하고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김일성과 문선명의 만남 이후 통일교는 대북 투자에 나섰다. 평화자동차, 보통강호텔, 세계평화센터 등을 북한에서 운영한다.
“통일교가 북한에 들어갈 때 힘들었어. 문선명 총재가 중국 비자가 안 나왔거든. 우여곡절 끝에 비자를 받았지. 나중에 달러를 실어서….”
김일성과 문선명의 만남을 알선한 박경윤(78) 금강산국제그룹 회장의 회고다. 금강산국제그룹은 통일교와 박 회장, 북한 당국이 함께 세운 북한 법인. 박 회장은 오프더레코드를 전제로 대북사업을 시작하면서 통일교가 북한에 건넨 돈 액수를 밝혔다. 현대그룹의 그것보다는 적지만 상당한 금액이다.
북한에 통일교는 경색한 남북관계에 아랑곳하지 않고 대북사업을 벌이는 소중한 존재다. 통일교, GPF의 적통 경쟁에서도 북한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문 총재는 자신을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규정한다. 대북사업은 ‘적통은 내게 있다’라는 상징으로 기능할 수 있다. 또한 국가적, 세계적 행사를 기획하는 것은 믿는 이들에게 자부심을 안기게 마련이다. 통일교, GPF가 행사 때마다 국내외 저명인사를 초청하려고 애쓰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시곗바늘을 2011년 12월 24일로 돌려보자. 4남의 도움을 받아 종교로서의 통일교를 이끄는 7남은 크리스마스 전날 방북해 김정일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7남과 박상권 평화자동차 사장이 문 총재가 보낸 화환을 김정일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으로 직접 날랐다. 두 사람은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양건 통일전선부 부장, 원동연 통일전선부 부부장을 만났다.
박 사장과 7남은 12월에만 두 차례 평양을 찾았다. 12월 9일 평양행 비행기에 올라 12월 16일 돌아온 후 8일 만에 다시 방북한 것. 첫 방문은 문 총재 방북 20주년을 기념한 것이다. 통일교는 북한에 밀가루 300t을 제공했다. 북한은 외부 인사를 초청할 때 입장료를 받는 것을 관례 비슷하게 삼고 있다. 원 부부장은 방북단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님께서 문선명 총재님을 항상 잊지 못하고 회상하시는데, 특히 20주년을 맞아 자녀인 문형진 세계회장이 방북해 조국통일과 세계평화운동을 지속하려는 데 감사함을 느껴 모든 것을 배려하신 겁니다.”
북한과 통일교 남다른 관계 구축
7남은 “문선명 총재의 가르침에 따라 조국통일과 세계평화운동에 더욱 심혈을 기울이려 한다”고 화답했다고 한다. 방북 20주년 기념 통일교 방북단이 서울로 돌아온 다음 날(12월 17일) 김정일이 사망했다.
이렇듯 북한과 통일교의 관계는 남다르다. 북한은 지난해 2월 통일교에 금강산 국제관광을 제안한 일도 있다. 2월 16일 김정일 생일파티 때 김양건 부장은 박상권 평화자동차 사장을 만나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했다.
“현대그룹에 준 금강산 관광 관련 독점권을 파기하려 합니다. 장군님께서 금강산을 국제 관광단지로 개발하라고 하십니다. 그 일을 도와줬으면 좋겠습니다.”
널리 알려진 대로 금강산 관광 독점권은 통일교가 세운 금강산국제그룹이 갖고 있었다. 통일교가 북한에 주려고 한 돈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액수를 현대그룹이 내지르면서 가로채간 것이다.
통일교가 북한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것을 GPF가 강 건너 불구경하듯 들여다볼 수만은 없는 노릇. 3남도 북한에 안테나를 세우고 대북사업에 나섰다. GPF는 지난해 8월 26일~8월 27일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글로벌 피스 리더스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국가 및 지역 간 불균형과 이해 결여를 타파해 지구촌 평화를 실현하자는 게 이 행사의 모토다. 동북아 평화가 행사 주제였다. 몽골 대통령궁에서 열린 행사에는 한국 쪽에서 남덕우 전 국무총리, 이승윤 전 경제부총리, 이상희 국립과천과학관장, 조백제 서울디지털대 총장, 송영선 국회의원 등이 참석했다. GPF는 몽골 행사 때 북한의 리더를 초청하고자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실패했다. 몽골 관료에게 북한 쪽에 다리를 놓아달라고 부탁도 했다. 3남은 한반도 평화정착에 힘을 보태고자 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몽골이 남북한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어요. 남북이 대화하지 않으려는 상황에서 몽골이 다리 구실을 할 수 있습니다. 몽골은 일본, 미국과도 우호관계를 맺고 있어 중재자 구실을 할 수 있습니다.”
7남 문형진 김정일 조문
3남은 빵 공장 지원으로 대북사업을 시작했다. 나진, 선봉, 함흥, 해주, 사리원, 흥남, 신의주에서 빵을 생산하거나 공장을 마련하고 있다. 공장 한 곳당 하루 빵 생산량은 3000개다. 북한 공민을 고용하는 대가로 밀가루를 지원한다. GPF와 통일교가 모두 북한에 밀가루를 제공하는 꼴이다.
GPF의 최근 사업은 북한에 곁점이 찍혀 있다. 2011년 11월 서울에서 열린 GPF 행사 주제도 남북관계다. 12월 1일엔 국회 의원회관(서울 여의도)에서 ‘유엔 남북 동시가입 20주년 기념 남북 평화미술전’을 개최했다. 3남은 부인 곽전숙 씨와 함께 이 행사에 참석했다. 곽씨는 곽정환 전 통일교재단 이사장의 딸이다. 통일교 쪽에서는 곽 전 이사장을 눈엣가시로 여긴다. 곽 전 회장 최측근이 지난해 9월 방북했다. 평양은 통일교 3남의 방북을 원했다고 한다.
GPF는 최근 통일전선부와 핫라인도 뚫었다. 세계 각국에서 300명이 참석하는 콘퍼런스를 북한에서 열겠다고 통일전선부에 제안했다. 또한 평양에서 국제축구대회를 개최하고자 한다고도 밝혔다. 3남의 최측근 인사가 아시아축구연맹(AFC) 간부다. 통일전선부는 두 행사 모두 “진행하자”고 화답하면서 인프라 투자에 나서달라고 역제안했다.
김양건, 원동연이 ‘두 개의 통일교’를 상대하면서 어리둥절해할 법도 하지만 북한 처지에서 통일교는 남북경협의 디딤돌을 놓은 존재다. 북한이 GPF, 통일교와의 협력을 마다할 까닭이 없다. 문 총재 아들들은 미국 국적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7남이 김정일을 조문한 것도 그래서 가능했다고 한다. 통일교, GPF는 남북관계 경색과 무관하게 방북할 수 있는 데다 해외 법인을 통한 북한 투자도 가능하다. 통일전선부 처지에선 놓치기 아까운 손님인 것이다.
3남, 4남을 공히 비판적으로 바라봐온 한 통일교 인사는 “그간 여의도 땅 다툼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지만 대북사업을 두고 형제가 경쟁하는 것은 나쁘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통일교 갈등’ 관련 반론보도
본지 1월 20일자(821호) ‘통일교 갈등’ 관련 기사에 대해 통일교 측은 창시자인 문선명 총재가 최근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어 교단이 분열되지 않았으며, 여의도 파크윈 공사 관련 재판에서는 통일교가 아닌 통일교재단이 배상 판결을 받은 것이라고 알려왔습니다. 또한 한국과 일본 통일교는 한국인 대표와 일본인 대표가 각각 재정권, 인사권을 가지고 별도로 조직 운영을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위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창시자 문선명(92) 총재의 3남 문현진(43) 씨, 4남 문국진(42) 씨, 7남 문형진(33) 씨가 소동의 중심에 있다. 통일교재단 이사장 겸 통일그룹 회장인 4남이 실권자다. 4남이 한국 및 일본 조직과 통일그룹을 장악했다. 재정권, 인사권도 틀어쥐었다. 4남과 단짝인 7남이 종교로서의 통일교를 이끈다.
장남, 차남이 별세해 문 총재의 사실상 장남인 문현진 씨는 글로벌피스페스티벌(GPF) 재단을 이끈다. 통일교가 1977년 세운 국제조직 UCI의 자산이 GPF 토대다. 통일그룹처럼 UCI도 기업군을 거느린다. 미국에 다수 기업을 갖고 있으며 서울 강남의 JW 메리어트호텔 서울도 UCI 소유다.
3남, 4남은 2010~2011년 서울 여의도 땅 송사(상자기사 참조)를 거치면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신동아’ 2011년 6월호 ‘통일교 왕자의 난’ 제하 기사 참조). 통일교 실권을 장악한 4남은 3남 측을 사탄으로 몰았다.
“그것은 매우 분명한 사실이에요. 우리 신학을 공부할 기회가 있으면 그것이 얼마나 명확한지 알 겁니다. 신학적으로는 정확해요. 아버지는 우리 메시아인 하나님의 대신자입니다. 아버지를 돕는 교회 지도자는 천사장의 위치에 있어요. 신을 배신한 천사장처럼 메시아인 아버지를 배신하면 그것은 사탄이고, 타락한 천사장입니다. 우리 신학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매우 간단하고, 적당한 표현임을 알 겁니다.”
3남은 4남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장남 위치가 중요한 것은 비단 한국에서만은 아닙니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죠. 장남의 책임은 가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부모와 가정, 그분이 대표하는 모든 것에 영광을 돌리는 겁니다. 나는 내가 사랑하고 나와 혈연관계인 모든 사람을 존중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동생들이 어떻게 행동하든 형으로서 품위(dignity)를 지켜야 한다고 믿습니다.”
형제 등 돌리고 신도도 나뉘고
3남과 4남이 벌인 열전(熱戰)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으나 냉전(冷戰)은 지금껏 치열하다. 통일교는 결국 둘로 쪼개졌다. 4남, 7남의 통일교와 3남의 GPF. GPF는 통일교에 대응하는 조직을 한국에도 꾸렸다. 누구를 지지하느냐에 따라 신도도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 냉전은 후계자 다툼이라기보다 문 총재를 ‘믿는’ 사람에 대한 앞으로의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경쟁이다. 헤게모니 다툼은 한국, 일본, 미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에서 일어난다. 주도권을 쥐려는 형제간 경쟁은 최근 북한으로 옮겨 붙었다. 시곗바늘을 1991년 12월 6일로 돌려보자.
“형님!”
문 총재는 여덟 살 위인 김일성(1912~1994)을 처음 만났을 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종교의 자유, 경제 협력, 통일 방안을 논의하고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김일성과 문선명의 만남 이후 통일교는 대북 투자에 나섰다. 평화자동차, 보통강호텔, 세계평화센터 등을 북한에서 운영한다.
“통일교가 북한에 들어갈 때 힘들었어. 문선명 총재가 중국 비자가 안 나왔거든. 우여곡절 끝에 비자를 받았지. 나중에 달러를 실어서….”
김일성과 문선명의 만남을 알선한 박경윤(78) 금강산국제그룹 회장의 회고다. 금강산국제그룹은 통일교와 박 회장, 북한 당국이 함께 세운 북한 법인. 박 회장은 오프더레코드를 전제로 대북사업을 시작하면서 통일교가 북한에 건넨 돈 액수를 밝혔다. 현대그룹의 그것보다는 적지만 상당한 금액이다.
북한에 통일교는 경색한 남북관계에 아랑곳하지 않고 대북사업을 벌이는 소중한 존재다. 통일교, GPF의 적통 경쟁에서도 북한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문 총재는 자신을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규정한다. 대북사업은 ‘적통은 내게 있다’라는 상징으로 기능할 수 있다. 또한 국가적, 세계적 행사를 기획하는 것은 믿는 이들에게 자부심을 안기게 마련이다. 통일교, GPF가 행사 때마다 국내외 저명인사를 초청하려고 애쓰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시곗바늘을 2011년 12월 24일로 돌려보자. 4남의 도움을 받아 종교로서의 통일교를 이끄는 7남은 크리스마스 전날 방북해 김정일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7남과 박상권 평화자동차 사장이 문 총재가 보낸 화환을 김정일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으로 직접 날랐다. 두 사람은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양건 통일전선부 부장, 원동연 통일전선부 부부장을 만났다.
박 사장과 7남은 12월에만 두 차례 평양을 찾았다. 12월 9일 평양행 비행기에 올라 12월 16일 돌아온 후 8일 만에 다시 방북한 것. 첫 방문은 문 총재 방북 20주년을 기념한 것이다. 통일교는 북한에 밀가루 300t을 제공했다. 북한은 외부 인사를 초청할 때 입장료를 받는 것을 관례 비슷하게 삼고 있다. 원 부부장은 방북단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님께서 문선명 총재님을 항상 잊지 못하고 회상하시는데, 특히 20주년을 맞아 자녀인 문형진 세계회장이 방북해 조국통일과 세계평화운동을 지속하려는 데 감사함을 느껴 모든 것을 배려하신 겁니다.”
2000년 2월 3일 평남 남포시에서 열린 평화자동차 공장 착공식.
7남은 “문선명 총재의 가르침에 따라 조국통일과 세계평화운동에 더욱 심혈을 기울이려 한다”고 화답했다고 한다. 방북 20주년 기념 통일교 방북단이 서울로 돌아온 다음 날(12월 17일) 김정일이 사망했다.
이렇듯 북한과 통일교의 관계는 남다르다. 북한은 지난해 2월 통일교에 금강산 국제관광을 제안한 일도 있다. 2월 16일 김정일 생일파티 때 김양건 부장은 박상권 평화자동차 사장을 만나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했다.
“현대그룹에 준 금강산 관광 관련 독점권을 파기하려 합니다. 장군님께서 금강산을 국제 관광단지로 개발하라고 하십니다. 그 일을 도와줬으면 좋겠습니다.”
널리 알려진 대로 금강산 관광 독점권은 통일교가 세운 금강산국제그룹이 갖고 있었다. 통일교가 북한에 주려고 한 돈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액수를 현대그룹이 내지르면서 가로채간 것이다.
통일교가 북한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것을 GPF가 강 건너 불구경하듯 들여다볼 수만은 없는 노릇. 3남도 북한에 안테나를 세우고 대북사업에 나섰다. GPF는 지난해 8월 26일~8월 27일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글로벌 피스 리더스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국가 및 지역 간 불균형과 이해 결여를 타파해 지구촌 평화를 실현하자는 게 이 행사의 모토다. 동북아 평화가 행사 주제였다. 몽골 대통령궁에서 열린 행사에는 한국 쪽에서 남덕우 전 국무총리, 이승윤 전 경제부총리, 이상희 국립과천과학관장, 조백제 서울디지털대 총장, 송영선 국회의원 등이 참석했다. GPF는 몽골 행사 때 북한의 리더를 초청하고자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실패했다. 몽골 관료에게 북한 쪽에 다리를 놓아달라고 부탁도 했다. 3남은 한반도 평화정착에 힘을 보태고자 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몽골이 남북한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어요. 남북이 대화하지 않으려는 상황에서 몽골이 다리 구실을 할 수 있습니다. 몽골은 일본, 미국과도 우호관계를 맺고 있어 중재자 구실을 할 수 있습니다.”
7남 문형진 김정일 조문
3남은 빵 공장 지원으로 대북사업을 시작했다. 나진, 선봉, 함흥, 해주, 사리원, 흥남, 신의주에서 빵을 생산하거나 공장을 마련하고 있다. 공장 한 곳당 하루 빵 생산량은 3000개다. 북한 공민을 고용하는 대가로 밀가루를 지원한다. GPF와 통일교가 모두 북한에 밀가루를 제공하는 꼴이다.
GPF의 최근 사업은 북한에 곁점이 찍혀 있다. 2011년 11월 서울에서 열린 GPF 행사 주제도 남북관계다. 12월 1일엔 국회 의원회관(서울 여의도)에서 ‘유엔 남북 동시가입 20주년 기념 남북 평화미술전’을 개최했다. 3남은 부인 곽전숙 씨와 함께 이 행사에 참석했다. 곽씨는 곽정환 전 통일교재단 이사장의 딸이다. 통일교 쪽에서는 곽 전 이사장을 눈엣가시로 여긴다. 곽 전 회장 최측근이 지난해 9월 방북했다. 평양은 통일교 3남의 방북을 원했다고 한다.
GPF는 최근 통일전선부와 핫라인도 뚫었다. 세계 각국에서 300명이 참석하는 콘퍼런스를 북한에서 열겠다고 통일전선부에 제안했다. 또한 평양에서 국제축구대회를 개최하고자 한다고도 밝혔다. 3남의 최측근 인사가 아시아축구연맹(AFC) 간부다. 통일전선부는 두 행사 모두 “진행하자”고 화답하면서 인프라 투자에 나서달라고 역제안했다.
김양건, 원동연이 ‘두 개의 통일교’를 상대하면서 어리둥절해할 법도 하지만 북한 처지에서 통일교는 남북경협의 디딤돌을 놓은 존재다. 북한이 GPF, 통일교와의 협력을 마다할 까닭이 없다. 문 총재 아들들은 미국 국적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7남이 김정일을 조문한 것도 그래서 가능했다고 한다. 통일교, GPF는 남북관계 경색과 무관하게 방북할 수 있는 데다 해외 법인을 통한 북한 투자도 가능하다. 통일전선부 처지에선 놓치기 아까운 손님인 것이다.
3남, 4남을 공히 비판적으로 바라봐온 한 통일교 인사는 “그간 여의도 땅 다툼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지만 대북사업을 두고 형제가 경쟁하는 것은 나쁘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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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 갈등’ 관련 반론보도
본지 1월 20일자(821호) ‘통일교 갈등’ 관련 기사에 대해 통일교 측은 창시자인 문선명 총재가 최근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어 교단이 분열되지 않았으며, 여의도 파크윈 공사 관련 재판에서는 통일교가 아닌 통일교재단이 배상 판결을 받은 것이라고 알려왔습니다. 또한 한국과 일본 통일교는 한국인 대표와 일본인 대표가 각각 재정권, 인사권을 가지고 별도로 조직 운영을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위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