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21

..

그녀는 누구를 위해 향수를 뿌리나

목욕하는 여인

  • 입력2012-01-16 11:10: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그녀는 누구를 위해 향수를 뿌리나

    ‘한낮 햇살을 받은 나부’, 보나르, 1908년, 캔버스에 유채, 124×109, 벨기에 왕립미술관 소장.

    겨울바람이 매섭게 옷깃을 파고들면 사우나가 간절히 생각난다. 뜨끈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면 추위는 물론 쌓인 피로까지 말끔히 사라지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은 시설이 좋은 찜질방이 많아 남녀노소 불문하고 사우나를 즐겨 찾는다.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1780~1867)의 ‘터키탕’은 대중목욕탕을 그린 작품이다. 젊은 시절부터 목욕하는 여자에게 흥미를 느낀 앵그르는 18세기 무렵 터키 주재 영국 대사 부인이 쓴 ‘터키탕 견문기’를 읽고 영감을 얻어 이 작품을 그렸다.

    누드의 정물화로 불릴 만큼 많은 누드의 여인이 화면 전체를 차지하는 이 작품은 도자기처럼 매끈한 피부를 가진 여인들이 목욕을 즐기는 모습을 담았다. 악기를 든 여인 오른쪽에서 어색할 만큼 관능적 포즈를 취하고 있는 여인이 앵그르의 두 번째 아내 델핀이다. 앵그르는 티치아노작품 ‘안드리안의 바커스 축제’에서 쾌락을 상징하는 여인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어 그를 표현했다. 두 명의 여인이 서로의 가슴을 만지는 것은 이들이 동성애 관계라는 것을 암시한다. 몸종에게 머리 손질을 맡긴 여인은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겨 있다. 왼쪽 끝에 요염하게 서 있는 여인은 처음엔 그리지 않았으나 구도를 맞추려고 추가한 것이다. 화면 앞 도자기 주전자와 잔, 배경 부분의 큰 도자기, 그리고 여인들의 머리 장식 문양은 이국적인 것을 강조하려는 장치다.

    앵그르는 이 작품에서 여성의 누드를 다양한 형식으로 다룬 그간의 경험을 집대성했다. 그는 에로틱한 내용을 더욱 고양하려고 여성의 신체를 왜곡해 묘사했다. ‘터키탕’은 그의 작품 중 드물게 구성 자체를 공상적으로 표현했다. 그는 이 작품을 어떤 귀족에게 주문받아 그렸는데, 노골적으로 표현한 그림 속 여성의 관능미 탓에 귀족이 작품 받기를 거절했다. 결국 관심을 보인 부유한 터키인이 이 그림을 사갔다.

    피곤을 풀고자 찜질방을 찾지만 오히려 더 피로를 느낄 때가 있다. 아이들이 막무가내로 뛰어놀 때나 연인이 지나친 애정 행각을 벌일 때 그렇다. 개인 욕실에서 피로를 푸는 여인을 그린 작품이 로렌스 앨마 테디마(1836~1912)의 ‘테피다리움에서’다. 테피다리움이란 고대 로마시대 온욕실로, 열탕과 냉탕 사이에 있었다. 당시에는 테피다리움 소유를 부유함의 척도로 여겼는데 욕실이 세 개나 있는 집은 호화로운 주택이게 마련이다. 또한 목욕탕은 단순하게 씻는 장소가 아니라 사교와 쾌락을 제공하는 곳이었으며, 로마 부유층은 휴식과 사교의 장소인 목욕탕을 집에 반드시 갖춰야 했다.

    여인이 왼손에 낙타 깃털로 만든 부채를, 오른손에 몸 긁개를 쥔 채 누워 있다. 몸 긁개와 낙타 깃털은 성적 만족을 얻기 위한 도구다. 여인 혼자 누운 것은 이곳이 테피다리움이라는 것을 나타내며 곰 가죽 깔개는 바닥의 대리석이 뜨겁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곰 가죽을 깔고 편안하게 누워 휴식을 취하는 모습은 여인이 매춘부라는 것을 나타낸다. 당시 고급 매춘부들은 저택에서 손님을 맞이했다.



    이 작품을 그린 테디마는 고고학에 관심이 지대했다. 초기작은 폼페이시대를 재현한 것이 많았는데 후기로 가면서 아름다운 여성으로 주제를 바꿨다.

    찜질방 앞 풍경 중 하나가 남자들이 여자들을 기다리는 모습이다. 남자들은 샤워와 동시에 목욕이 끝나지만 여자들은 목욕하는 시간보다 아름다움을 위해 얼굴과 몸에 화장품을 바르는 시간이 더 길다.

    목욕을 마무리한 여인을 그린 작품이 피에르 보나르(1867~1947)의 ‘한낮 햇살을 받은 나부’다. 이 작품은 화려한 색채를 써 여인의 내밀한 모습을 표현했다. 한낮에 여인은 목욕을 마친 후 몸을 뒤로 젖힌 채 향수를 뿌리고 있다. 화면 왼쪽 화장대 거울 속에는 가슴에서 배에 이르는 누드가 비친다. 여인은 거울 속 자신과 대화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바닥에는 둥근 이동식 욕조가 놓여 있다. 창문 넘어 들어온 햇살이 붉은색 소파와 카펫에 패턴을 만들어 벌거벗은 몸의 곡선을 강조한다. 보나르는 빛의 효과에 관심이 많아 창문의 햇살, 벽지 등을 모자이크 모양으로 처리했으며 직물과 가구를 왜곡해 표현함으로써 장식적 효과를 얻고자 했다.

    보나르가 그린 이 작품의 모델은 아내 마르트다. 마르트는 결벽증이 있어 오랜 시간 목욕하기를 좋아했는데, 그의 목욕하는 습관은 보나르의 예술적 감성을 자극했다. 이 작품을 비롯해 ‘목욕하는 나부’ ‘욕조 속의 나부’ 등 보나르의 예술세계를 대표하는 나부상은 아내가 없었다면 탄생치 못했을지도 모른다. 보나르는 이 작품을 제작할 무렵부터 어두운 색조에서 벗어나 밝은 색조를 사용하는 쪽으로 변화했다. 이로써 보나르는 나비파[폴 고갱의 영향을 받은 젊은 반인상주의(反印象主義) 화가 그룹]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

    그녀는 누구를 위해 향수를 뿌리나

    (원)‘터키탕’, 앵그르, 1863년, 캔버스에 유채, 직경 198,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오른쪽)‘테피다리움에서’, 테디마, 1881년, 나무판에 유채, 24×33, 레이디 레버 아트 갤러리 소장.

    *박희숙은 서양화가다. 동덕여대 미술학부, 성신여대 조형대학원을 졸업했다. 개인전을 9회 열었다. 저서로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클림트’ ‘그림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등이 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