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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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충성심이 1순위 북한, 젊은 피 발탁 전면 권력 교체

선군정치와 고난의 시대 인물 마감…‘전혀 다른 세대’ 급부상

  •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dpblue@kinu.or.kr

    입력2011-12-12 09: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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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 충성심이 1순위 북한, 젊은 피 발탁 전면 권력 교체

    2월 27일 북한 청년학생들이 ‘김정일 강성대국의 대문을 남 먼저 열어제끼는 선군시대 청년영웅이 되자!’라고 쓴 플래카드를 들고 천리마 동상 앞 평양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북한은 전날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선군청년총동원대회를 열고 청년들의 정신무장을 강조하는 호소문을 채택했다.

    김정은 후계체제와 그 권력진용이 점차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현재까지의 상황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김정일과 김정은을 빼고 다른 사람들은 모조리 물갈이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고 권부의 인물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중앙과 지방, 중간층과 하층관료까지 모두 교체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북한의 권력진용이 적어도 한 세대 가까이 젊어진 셈이다.

    이러한 권력교체 작업의 첫 시작은 2009년 1월이었고, 절정은 2010년 9월에 개최된 당대표자회였다. 이 당대표자회는 새로운 권력진용의 출범을 알리는 일종의 기념식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당대표자회를 앞두고 군과 당의 최상층 주요인물 교체가 일단락됐기 때문이다. 2011년에는 중·하층 권력자 교체와 이른바 ‘비사(비사회주의) 검열’ 대폭 강화를 통해 전 사회적인 기강 잡기가 전개되고 있다.

    옛 간부 숙청한 자리에 ‘자기 사람’ 심기

    이러한 권력교체 작업은 크게 네 단계로 나눠 살펴볼 수 있다. 첫 번째로 1995년 ‘선군정치’가 시작된 이후 군대와 중앙당에서 핵심 구실을 하던 최고위 인물들이 퇴장했다. 뒤를 이어 최고위 인물은 아니지만 중앙부처에서 핵심 구실을 하던 경제 및 보안기구 관련 고위 인물이 숙청됐다. 세 번째로 지방권력의 핵심인 도당과 특별시당 책임비서들이 전면 교체됐고, 교체된 전임 지방당 책임비서들은 대부분 내각과 중앙당에서 새로운 보직을 받았다. 끝으로 중앙의 주요 인물과 도당 책임비서들이 교체된 이후 그 아래 직급의 중앙 및 지방 중·하급 간부들이 교체됐다. 이 과정에서 중·하층 관료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권력교체에는 한 가지 흥미로운 패턴이 나타난다. 지도급 인물이 교체되면 그와 협력하던 부하들까지 줄줄이 교체되는 현상이 빈번히 발견되는 것이다. 이는 북한 권력구조의 특성 때문으로, 각급 지도간부는 ‘소왕(小王)’에 해당하며 그 아래 하급자와는 공직상의 상하관계가 아니라 마치 두목과 부하 같은 관계를 맺는다. 따라서 신임 지도간부가 부임하면 옛 간부의 하급자를 대부분 갈아치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 같은 현상은 크게는 김정일로부터 김정은으로의 권력이동에서도 나타난다. 김정은 후계자의 등장은 권력구조에서 김정일 시대의 인물을 대부분 교체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권력의 수직위계를 따라 내려가면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권력교체의 구체적인 진행방식을 위부터 아래로 내려가면서 하나하나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군과 당의 최고위 엘리트 교체를 보자. 이는 2009년 초반에 시작해 2010년 6월 최고인민회의 개최를 앞두고 일단락됐다. 1995년 선군정치 이후 가장 두각을 보였던 군부 주요 인물과 중앙당 비서들이 모두 이 시기에 퇴장했다. 그러나 이 과정이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일부 핵심 인사들은 불명예 퇴진했고, 교통사고사와 병사가 미묘하게 일정 시기에 맞춰 발생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군부에서는 조명록, 김영춘, 오극렬, 김일철, 중앙당에서는 이제강, 이용철이 바로 이 시기에 퇴장한 인물들이다.

    20~30대의 대대적인 벼락 승진

    김정은 충성심이 1순위 북한, 젊은 피 발탁 전면 권력 교체

    2010년 10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후계자 김정은을 동행하고 새로 건설된 국립연극극장을 현지 지도했다고 보도한 ‘조선중앙통신’의 사진. 최초로 공개된 김정은의 단독 사진이다.

    다음 단계로 진행된 작업은 경제 및 보안기관의 고위 인물 숙청이었다. 특히 경제 분야의 중앙 요직 인물이 교체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의 해임에는 경제 실패에 대한 책임, 비리 문제와 정책노선 갈등 같은 문제가 전형적인 이유로 등장하곤 했다. 국가안전보위부와 인민보안부의 주요 인물이 숙청된 것은 김정은이 이들 기관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으로 보이는데, 이는 대체로 2010년과 2011년 초에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눈여겨볼 것은 몇몇 기관 지도간부의 숙청이 해당 기관 전체에 대한 물갈이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북한에서 요직 중 요직이라 할 수 있는 군수 분야를 28년 동안 담당했던 전병호(85) 비서의 경우를 보자. 2010년 10월 그가 노환으로 물러난 직후인 2010년 말에 군수공업부와 제2경제위원회(군수경제 담당) 산하 간부 20여 명이 횡령 등의 혐의로 숙청된 것으로 알려졌다. 2011년 1월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이던 류경이 간첩죄로 처형당하자 이와 함께 보위부 핵심 간부 30명이 처형되기도 했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김정은은 국가안전보위부의 옛 간부를 대거 숙청하고, 그 자리에 자기 인물들을 앉혔을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지방권력 개편 과정을 보자. 지방권력의 핵심은 도당과 특별시당의 책임비서다. 도당 책임비서는 도내 모든 일에 대해 책임지는 ‘소왕(小王)’으로 군림한다. 한국 도지사의 책임범위가 왜소해 보일 정도로 막강한 권한이다. 다시 말해 도당 책임비서를 교체하는 것은 도 차원에서 벌어지는 일종의 정권교체인 셈이다. 그런데 이러한 도당 및 특별시당 책임비서가 비슷한 시기에 모조리 자리를 떠났던 것이다.

    2010년 6월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는 세 명의 지방당 책임비서가 내각 총리, 부총리로 보직 변경했다. 이어 9월 당대표자회를 통해 중앙당 기구를 확충하는 가운데, 앞의 세 사람을 포함한 대부분의 전임 지방당 책임비서가 당중앙위 비서, 정치국(후보)위원, 당중앙위 위원과 기타 중앙당 보직을 받았다. 이들 자리에는 전임자의 경력에 비해 대체로 급이 떨어지는 새로운 인물들이 임명됐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도당 책임비서의 교체는 해당 도내의 권력구조에 충격과 개편을 부르는 연쇄 파급효과를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변화가 두드러지게 확인되는 지역이 평안북도와 함경북도, 양강도다. 김평해는 비서 및 책임비서로 20여 년 이상 봉직했던 평안북도당을 떠나 중앙당 비서가 됐지만, 이후 그가 떠난 평안북도의 주요 간부는 대대적으로 숙청당했다. 거의 10년이나 봉직했던 홍석형이 책임비서 자리를 떠난 함경북도도 거의 1년 내내 비사 검열을 받았다. 양강도도 비서 및 책임비서로 9년 동안 일했던 김경호가 떠나자 함경북도와 마찬가지 취급을 받았다.

    특이한 점은 평안남도당 책임비서였던 이태남과 함경북도당 책임비서였던 홍석형은 명목상 중앙당 고위 직책으로 승진 발령을 받았지만 곧이어 숙청당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일련의 지방권력 교체 과정에서 도당 비서가 승진하거나 중앙으로 진출했다고 해서 실질적인 권한이 강화됐다고 볼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아울러 중앙부처 중 무역성도 검열 및 물갈이의 표적이 됐다. 무역성은 2011년 9월 초순부터 내각 정치국, 호위사령부, 국방위원회 연합검열조의 검열을 받았고, 그 결과 무역성 간부 약 90%가 바뀌었다고 한다. 무역성 간부의 대대적인 교체로 이후 북한의 대중(對中) 무역은 큰 차질을 빚었으며 이 때문에 북한 내부의 소비재 공급이 교란되면서 물가 등귀의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하급 간부교체 혹은 세대교체도 전면적으로 진행됐다. 당조직, 보안기구, 행정조직의 하급 간부진에서 20~30대가 대대적으로 ‘벼락 승진’을 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또한 김정은은 군부대 지휘관을 자신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30~40대로 교체해 군내 지지기반을 구축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 결과 중앙당은 물론 지방당 간부들과 법 기관 일꾼들도 대거 바뀌었고, 이들에 대한 특별우대(이른바 ‘광폭정치’)가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식량과 생필품을 필두로 모든 측면에서 처우를 개선한 셈인데, 일례로 최근 북한 당국은 간부용 승용차를 새로 공급한 바 있다. 군 단위의 경우 군당 책임비서와 인민위원장, 인민부위원장, 검찰소장과 보안국장, 보위부장에게 각각 한 대씩 총 여섯 대의 승용차를 제공한 것이다.

    한 세대 가까이 젊어진 상층부

    김정은 충성심이 1순위 북한, 젊은 피 발탁 전면 권력 교체

    2009~2010년 권력 핵심에서 물러난 북한의 옛 파워 엘리트들. 위 맨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조명록, 김영춘, 오극렬, 이용철, 이제강, 김일철.

    후계체제 구축을 전후해 벌어진 전면적인 간부 교체가 북한의 미래와 관련해 의미하는 바는 과연 무엇일까. 가장 먼저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한 시대가 마감했다는 점이다. 여기서 ‘한 시대’ 마감이란 김정일 시기의 마감이다. 1994년 김일성 사망 이래 95년부터 김정일 단독통치 시기가 열리면서 이른바 선군정치가 시작됐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시기에 당은 약화됐고 군부가 전면에 등장했다. 여기에는 1990년대 후반의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와 2000년대 초반의 개혁 및 시장 확대 시기가 포함된다. 이 무렵 주요 구실을 하던 핵심 인물들이 김정일 본인을 빼놓고 2010년까지 사실상 모두 전면에서 퇴장한 것이다.

    다음으로는 김정일 이후 시대가 이미 시작됐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 시대가 과연 ‘김정은 시대’가 될지에 대해서는 단언하기 아직 이르다. 분명한 것은 2010년까지 북한의 권력 엘리트가 전면적으로 ‘물갈이’됐고 상층부가 한 세대 가까이 젊어졌다는 사실이다. 능력보다는 충성이 출세에 더 중요하게 작용하는 북한 권력구조의 특성을 감안하면, 이들 새로운 진용은 김정은에 대한 충성심을 기준으로 구성됐을 가능성이 높다.

    마지막으로 생각해볼 것은 권력 전면에 등장한 인물들의 세대다. 1952년에 태어난 북한의 일반 주민은 2012년이면 60세가 돼 은퇴한다. 이들이 ‘천리마 운동’과 ‘속도전’의 시대를 거친, 우리가 아는 가장 전형적인 ‘북한 사람’이다. 사회주의권 붕괴가 가시화된 1990년 초 60년생은 30대에, 70년생은 20대에 진입했고, 현재 이들의 나이는 51세와 41세다. 다시 말해 현재의 50대 중반 이하 세대는 사회로 진출하자마자 식량난과 장사로 상징되는 ‘사회주의 해체’ 시대를 맞닥뜨렸던 셈이다. 바로 이들이 오늘날 북한 사회의 주축으로 등장한 것이다. 2012년이면 1995년에 태어난 청년들이 북한군에 입대한다. 김정은은 이렇듯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인민들로 구성된 국가와 사회를 이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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