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에 한때 신비주의 붐이 일었다. 배우 한석규(47)가 원조 격이다. 1990년 KBS 22기 공채 성우로 데뷔한 그는 이듬해 연기자로 전향해 ‘여명의 눈동자’ ‘아들과 딸’ ‘서울의 달’ 등 다수의 드라마를 히트시켰다. 1995년 ‘호텔’ 이후에는 안방극장을 떠나 스크린으로 활동무대를 옮겼다. ‘은행나무 침대’ ‘쉬리’ ‘넘버3’ ‘닥터봉’ ‘초록물고기’ ‘접속’ ‘8월의 크리스마스’ 등 그가 출연한 영화는 어김없이 흥행했다.
연예계에서 1990년대는 한석규 시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생활 노출과 인터뷰를 극도로 꺼리는 그를 본받아 적지 않은 스타가 신비주의 전략을 사용했다. 2000년대 들어 그의 티켓파워가 시들해지면서 신비주의도 퇴색했다. 하지만 인기를 떠나 그의 연기력은 여전히 날이 살아 있다.
16년 만에 안방극장으로 돌아온 그가 사뭇 반가운 건 그래서일 터. 복귀작은 10월 5일 방송을 시작한 SBS 수목드라마 ‘뿌리깊은 나무’다. 이정명 작가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한글 창제를 둘러싼 비밀을 밀도 있게 그릴 예정이다. 위대한 업적에 가려진 세종대왕의 인간적 고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준비 기간만 3년이 걸린 이 작품은 철저한 자료 조사를 통해 시대상과 한글 창제 과정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묘사할 계획이다. 집필은 ‘선덕여왕’의 명콤비 김영현·박상연 작가, 연출은 ‘바람의 화원’ ‘쩐의 전쟁’을 만든 장태유 감독이 맡았다.
타이틀 롤인 세종대왕(이도)을 맡은 한석규는 “미국에 있을 때 이메일로 처음 대본을 받았는데, 주제와 소재가 신선하고 좋아 바로 출연을 결정했다”며 “일반적으로 알려진 세종 캐릭터와는 많이 다를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문을 열었다.
극중 세종은 인자하고 근엄한 군주의 모습을 비켜간다. 태종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피비린내 나는 살육현장을 목도한 세종은 일찍 권력 무상을 깨달은 덕에 칼보다는 학식으로 나라를 다스린다. 성격 급한 다혈질에 ‘우라질’ 따위의 욕설을 서슴지 않는 거친 매력도 지녔다.
“세종대왕은 모든 국민이 잘 안다고 생각하는 왕이지만, 가장 모르는 왕이 아닌가 싶어요. 드라마를 보면 그동안 우리가 세종대왕의 특정 모습만 알고 있었던 건 아닌지 반문하게 될 거예요. 사람의 내면에는 누구나 선과 악이 공존해요. 세종과 연산, 두 얼굴을 갖고 있죠. 이도도 마찬가지예요. 이도는 여러 감정을 지닌,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이에요. 이런 세종을 연기할 수 있어 기뻐요.”
한국인이 다 아는 위인을 연기하는 부담도 적지 않을 듯했다. 이에 대해 그는 “연기하면 할수록 어떻게 해야 살아서 꿈틀대는 듯한 세종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더 고민하게 된다”며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세종대왕이 왜 한글을 창제했는지가 가장 궁금했다”고 털어놓았다.
“세종대왕은 왜 사서 고생하면서까지 한글을 만들려고 했을까. 왜 그렇게 많은 일을 한 것일까. 자꾸 ‘왜?’라는 질문을 하게 되더라고요. 이런 궁금증을 유발하는 위인을 내 몸으로 연기할 수 있어 기뻐요. 연기하면서 과연 좋은 국가 지도자상은 어떤 것인지도 끊임없이 생각해요. 내가 연기한 세종대왕이 국민이 바라는 지도자상을 되새겨보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욕심도 있어요.”
16년 만에 안방극장서 시청자 만나 기뻐
드라마를 하지 않은 16년이라는 기간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영화에만 집중해온 이유를 묻자 그는 “라디오 성우도 했고, TV드라마도 했고, 그 전에는 연극 활동도 했다. 영화와 드라마를 동떨어진 장르로 구분하지 않는다. 그저 연기에만 집중해왔다”고 말했다.
그가 처음 배우를 꿈꾼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라는 뮤지컬을 본 것이 계기였다. 당시 그는 드라마나 영화보다 뮤지컬과 연극에 더 관심이 많았다. 영화와 드라마의 매력이 어떻게 다르냐고 묻자 이렇게 비유했다.
“1994년 ‘서울의 달’을 찍고 나서 얼마 후 춘천에 간 적이 있어요. 시장에서 장을 보는데 한 할머니가 날더러 ‘홍식아, 이 한심한 놈아’ 하면서 안타까워하시더라고요. ‘서울의 달’에서 제 이름이 홍식이었거든요. 할머니께서는 나도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젊은이가 왜 그렇게 한심하게 사느냐며 물건 값을 받지 않으시려 했어요. 할머니는 내가 TV에 나오지 않으니까 놀고 있다고 생각하신 거예요. 그때 충격을 받았어요. 방송매체의 위력을 실감했죠. 영화는 좀 더 글로벌한 것 같아요. 내가 출연한 영화를 봤다는 멕시코 여인을 만난 적도 있어요(웃음).”
그동안 함께 연기 호흡을 맞춘 이 중 최고의 파트너로 주저 없이 심은하를 꼽았다. 심은하는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와 ‘텔 미 썸딩’에서 한석규의 상대역으로 출연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드라마 ‘서울의 달’, 영화 ‘주홍글씨’와 ‘8월의 크리스마스’라고.
“특히 ‘8월의 크리스마스’가 여운이 많이 남아요. 당시 심은하 씨가 밝음과 어둠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표현력이 참 뛰어난 배우라는 인상을 받았죠. 기회가 되면 심은하 씨가 다시 연기를 하면 좋겠어요.”
장혁, 신세경과 호흡 맞춰 우리글 가치 되새겨
그가 ‘뿌리깊은 나무’에서 함께 호흡을 맞추는 파트너는 장혁과 신세경이다. 장혁은 세종을 암살하려고 노비 신분을 세탁한 뒤 관원이 되는 강채윤을, 신세경은 세종의 총애를 받는 궁녀 소이를 연기한다. 이들은 과연 한글 창제를 둘러싸고 집현전에서 벌어지는 학사 연쇄살인사건의 미스터리를 슬기롭게 풀어나갈 수 있을까.
그는 “세종을 통해 시청자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할지가 내가 떠안은 숙제”라며 “드라마를 보면서 우리글의 소중한 가치를 되새겼으면 한다”고 말했다. “하늘과 땅과 사람의 모습을 본떠 자음과 모음을 만든 글자는 전 세계에 한글뿐이에요. 천지인의 원리를 생각하면 이보다 과학적인 글자가 있을까 싶어요. 외국인들은 한국어를 들으면 매력적인 소리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아요. 우리말과 글을 좀 더 사랑하고 귀하게 여겼으면 좋겠어요.”
연예계에서 1990년대는 한석규 시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생활 노출과 인터뷰를 극도로 꺼리는 그를 본받아 적지 않은 스타가 신비주의 전략을 사용했다. 2000년대 들어 그의 티켓파워가 시들해지면서 신비주의도 퇴색했다. 하지만 인기를 떠나 그의 연기력은 여전히 날이 살아 있다.
16년 만에 안방극장으로 돌아온 그가 사뭇 반가운 건 그래서일 터. 복귀작은 10월 5일 방송을 시작한 SBS 수목드라마 ‘뿌리깊은 나무’다. 이정명 작가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한글 창제를 둘러싼 비밀을 밀도 있게 그릴 예정이다. 위대한 업적에 가려진 세종대왕의 인간적 고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준비 기간만 3년이 걸린 이 작품은 철저한 자료 조사를 통해 시대상과 한글 창제 과정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묘사할 계획이다. 집필은 ‘선덕여왕’의 명콤비 김영현·박상연 작가, 연출은 ‘바람의 화원’ ‘쩐의 전쟁’을 만든 장태유 감독이 맡았다.
타이틀 롤인 세종대왕(이도)을 맡은 한석규는 “미국에 있을 때 이메일로 처음 대본을 받았는데, 주제와 소재가 신선하고 좋아 바로 출연을 결정했다”며 “일반적으로 알려진 세종 캐릭터와는 많이 다를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문을 열었다.
극중 세종은 인자하고 근엄한 군주의 모습을 비켜간다. 태종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피비린내 나는 살육현장을 목도한 세종은 일찍 권력 무상을 깨달은 덕에 칼보다는 학식으로 나라를 다스린다. 성격 급한 다혈질에 ‘우라질’ 따위의 욕설을 서슴지 않는 거친 매력도 지녔다.
“세종대왕은 모든 국민이 잘 안다고 생각하는 왕이지만, 가장 모르는 왕이 아닌가 싶어요. 드라마를 보면 그동안 우리가 세종대왕의 특정 모습만 알고 있었던 건 아닌지 반문하게 될 거예요. 사람의 내면에는 누구나 선과 악이 공존해요. 세종과 연산, 두 얼굴을 갖고 있죠. 이도도 마찬가지예요. 이도는 여러 감정을 지닌,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이에요. 이런 세종을 연기할 수 있어 기뻐요.”
한국인이 다 아는 위인을 연기하는 부담도 적지 않을 듯했다. 이에 대해 그는 “연기하면 할수록 어떻게 해야 살아서 꿈틀대는 듯한 세종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더 고민하게 된다”며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세종대왕이 왜 한글을 창제했는지가 가장 궁금했다”고 털어놓았다.
“세종대왕은 왜 사서 고생하면서까지 한글을 만들려고 했을까. 왜 그렇게 많은 일을 한 것일까. 자꾸 ‘왜?’라는 질문을 하게 되더라고요. 이런 궁금증을 유발하는 위인을 내 몸으로 연기할 수 있어 기뻐요. 연기하면서 과연 좋은 국가 지도자상은 어떤 것인지도 끊임없이 생각해요. 내가 연기한 세종대왕이 국민이 바라는 지도자상을 되새겨보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욕심도 있어요.”
16년 만에 안방극장서 시청자 만나 기뻐
드라마를 하지 않은 16년이라는 기간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영화에만 집중해온 이유를 묻자 그는 “라디오 성우도 했고, TV드라마도 했고, 그 전에는 연극 활동도 했다. 영화와 드라마를 동떨어진 장르로 구분하지 않는다. 그저 연기에만 집중해왔다”고 말했다.
그가 처음 배우를 꿈꾼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라는 뮤지컬을 본 것이 계기였다. 당시 그는 드라마나 영화보다 뮤지컬과 연극에 더 관심이 많았다. 영화와 드라마의 매력이 어떻게 다르냐고 묻자 이렇게 비유했다.
“1994년 ‘서울의 달’을 찍고 나서 얼마 후 춘천에 간 적이 있어요. 시장에서 장을 보는데 한 할머니가 날더러 ‘홍식아, 이 한심한 놈아’ 하면서 안타까워하시더라고요. ‘서울의 달’에서 제 이름이 홍식이었거든요. 할머니께서는 나도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젊은이가 왜 그렇게 한심하게 사느냐며 물건 값을 받지 않으시려 했어요. 할머니는 내가 TV에 나오지 않으니까 놀고 있다고 생각하신 거예요. 그때 충격을 받았어요. 방송매체의 위력을 실감했죠. 영화는 좀 더 글로벌한 것 같아요. 내가 출연한 영화를 봤다는 멕시코 여인을 만난 적도 있어요(웃음).”
그동안 함께 연기 호흡을 맞춘 이 중 최고의 파트너로 주저 없이 심은하를 꼽았다. 심은하는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와 ‘텔 미 썸딩’에서 한석규의 상대역으로 출연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드라마 ‘서울의 달’, 영화 ‘주홍글씨’와 ‘8월의 크리스마스’라고.
“특히 ‘8월의 크리스마스’가 여운이 많이 남아요. 당시 심은하 씨가 밝음과 어둠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표현력이 참 뛰어난 배우라는 인상을 받았죠. 기회가 되면 심은하 씨가 다시 연기를 하면 좋겠어요.”
장혁, 신세경과 호흡 맞춰 우리글 가치 되새겨
그가 ‘뿌리깊은 나무’에서 함께 호흡을 맞추는 파트너는 장혁과 신세경이다. 장혁은 세종을 암살하려고 노비 신분을 세탁한 뒤 관원이 되는 강채윤을, 신세경은 세종의 총애를 받는 궁녀 소이를 연기한다. 이들은 과연 한글 창제를 둘러싸고 집현전에서 벌어지는 학사 연쇄살인사건의 미스터리를 슬기롭게 풀어나갈 수 있을까.
그는 “세종을 통해 시청자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할지가 내가 떠안은 숙제”라며 “드라마를 보면서 우리글의 소중한 가치를 되새겼으면 한다”고 말했다. “하늘과 땅과 사람의 모습을 본떠 자음과 모음을 만든 글자는 전 세계에 한글뿐이에요. 천지인의 원리를 생각하면 이보다 과학적인 글자가 있을까 싶어요. 외국인들은 한국어를 들으면 매력적인 소리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아요. 우리말과 글을 좀 더 사랑하고 귀하게 여겼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