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야 히로시 지음/ 김현영 옮김/ 비즈니스맵/ 272쪽/ 1만3000원
“보잘것없는 유방이 한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은 장량과 한신 덕분이었고, 세력이 미천한 유비가 위ㆍ오와 더불어 삼국의 한 축을 맡을 수 있었던 것은 제갈량 덕분이었다. 천하제패와 태평성대의 원동력, 그것은 바로 참모의 힘이다.”
저자는 중국의 오랜 역사에서 찾아낸 참모들과 그들의 지혜, 명참모가 되기 위한 조건이 무엇인지 찾아 나선다. 이 책은 먼저 공자가 꿈에서 만나고 싶은 정치가로 거론했던 주공단(周公旦)을 불세출의 명보좌관으로 꼽는다. 춘추시대 말기 주 왕조의 기초를 다지던 시기에 문왕, 무왕, 성왕 삼대에 걸쳐 왕을 보좌한 이가 바로 주공단이다. 그는 문왕의 아들이자 무왕의 동생, 성왕의 숙부였지만 늘 철저한 몸가짐과 언행을 실천했다. 또한 인재 등용에 마음을 쓰고 겸허한 자세로 아랫사람과 백성을 대했다. 인재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머리를 감다가도 중단하고 밥을 먹다가도 뱉어내기를 마다하지 않는다는 뜻의 ‘악발토포(握髮吐哺)’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삼국지’의 주인공 제갈량은 또 어떠한가. 그와 관련한 수많은 고사성어 가운데 ‘국궁진력 사이후이(鞠躬盡力 死而後已)’는 아직도 많은 사람이 좌우명으로 삼는 말이다. ‘존경하는 마음으로 몸을 낮춰 온 힘을 다하며, 죽음으로써 멈춘다’는 뜻의 이 말은 제갈량이 오나라를 치러 가기 전에 유비의 아들 유선에게 냈던 후출사표의 마지막 문구다. 신하로서의 진실 된 도리를 가장 잘 표현한 명구로, 중국 저우언라이 총리가 평생을 가슴에 품고 지켰다고 한다. 사실 유비가 죽고 난 다음 왕위에 오른 유선은 무능했다. 평범한 유선을 가르쳐 가며 최선을 다한 제갈량은 이상적인 참모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또 “참모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주군과의 관계(오늘날엔 상사와의 관계)”라고 말한다. 경쟁자를 제거하거나 천하통일(최고의 실적)을 이루는 등 공통 목표를 향해 나아갈 때 둘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그러나 일단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대립하기 십상이다. 특히 참모의 실력이 주군을 위협할 만큼 뛰어나다면 둘의 관계는 긴박해진다. 이럴 땐 ‘명철보신(明哲保身)’ 지혜가 필요하다. 즉, 총명하고 사리에 밝아 일을 잘 처리함으로써 자기 몸을 보존하는 술책이 있어야 한다. 물론 주군을 뛰어넘을 생각이라면 달라진다.
21세기는 창조적인 한 사람이 수만 명을 먹여 살리는 시대라고 한다. 그러나 기업과 조직의 성공은 리더에게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정보와 지식의 양이 방대하기 때문에 참모와 보좌진의 능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일찍이 한비자(韓非子)는 군주를 세 가지 등급으로 나누면서 이렇게 일갈했다. “하군(下君)은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고, 중군(中君)은 남의 힘을 사용하며, 상군(上君)은 남의 능력을 사용한다.” 자신의 능력밖에 사용할 줄 모르면 최하위의 군주요, 부하의 지혜와 힘을 사용할 줄 알아야 최상위의 군주라는 뜻이다.
조직이나 권력은 항상 아래로부터 무너지게 마련이다. 참모들의 잇단 권력형 비리 의혹으로 MB정권의 레임덕(lame duck) 시름도 점점 더 깊어간다. 책을 읽는 내내 “똑똑한 사람은 혼자 일하고 현명한 사람은 같이 일한다”는 말이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