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3룡(龍)은 한국, 일본, 호주
그러나 패배가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언젠가 한 번쯤 맞아야 할 매라면 차라리 먼저 맞는 편이 낫다. 스포츠, 그것도 축구라면 항상 승승장구할 수 없다. 한 번 이상 위기는 찾아오게 마련이다. 일본 삿포로 원정 대패가 바로 그런 것이라 여기면 된다. 조광래호는 일본에 패하기 전까지 A매치 12경기 무패 행진을 내달렸다.
삿포로 원정 패배에서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중대한 교훈을 얻되, 아픔은 최대한 빨리 털어내야 한다. 이제 9월부터 본격적인 2014년 브라질월드컵 체제로 돌입한다. 2012년 2월까지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라운드가 펼쳐진다. ‘시작은 미약했지만 끝은 창대하리라’란 말처럼, 월드컵 예선 직전 비록 출발은 좋지 않았어도 결말은 화려할 것으로 기대한다.
2014년 월드컵 개최국인 브라질 언론은 7월 31일 자국에서 진행한 각 대륙 예선 라운드 조 추첨이 끝난 직후 “아시아에서는 한국, 일본, 호주가 3강으로 묶이는 가운데 나머지 1.5장의 본선 출전권을 놓고 다른 국가가 치열한 각축전을 벌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FIFA 랭킹만 봐도 브라질 언론의 전망은 크게 틀리지 않다. 한국, 일본, 호주 3개국은 아시아에서도 가히 톱 수준이다. 7월 27일 기준으로 일본(16위)이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했고, 호주와 한국이 각각 23위와 28위를 기록했다.
이번 랭킹은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월드컵 결과도 한몫했다. 브라질 언론은 “한국과 일본이 각각 2010년 월드컵 16강에서 우루과이와 파라과이를 상대로 인상적인 경기를 펼쳤고, 호주는 2006년 독일월드컵 당시 유럽 팀에 전혀 뒤지지 않는 전력을 발휘해 차기 월드컵에서 탈락할 큰 위험은 없어 보인다”고 내다봤다.
아시아 3차 예선 관문을 통과해 최종예선 티켓을 쥐는 국가는 총 10개국. 이들 국가는 2개 조로 나뉘어 2012년 6월부터 2013년 6월까지 최종예선을 치른다. 각 조 1~2위가 브라질행 티켓을 거머쥐며, 조 3위 국가는 플레이오프(PO)를 거쳐 남미 예선 5위 국가와 다시 한 번 PO를 펼친다.
한국 축구대표팀의 골게터 박주영.
조광래 감독은 조 추첨이 끝나자마자 아시아 지역 3차 예선에서 만날 상대국 전력에 대한 정보 수집과 분석에 돌입했다. 그러나 조 감독은 참패로 끝난 삿포로 원정 직후 인터뷰에서 “상대국 전력 분석이 쉽지 않다”고 근심을 토로했다.
“걸프컵, 아시안컵 등으로 그럭저럭 전력을 많이 노출한 쿠웨이트만 해도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을 현지에 파견해 북한과의 평가전을 관전토록 했다. 하지만 레바논에 대해서는 정보를 제대로 수집하지 못해 걱정이 많다.”
조광래호 코칭스태프는 이미 한국의 첫 원정 상대인 쿠웨이트에 대한 영상 자료와 기술 보고서를 전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쿠웨이트는 우리에게 항상 껄끄러운 존재였다. 역대 전적은 8승3무8패로 팽팽하다. 1990년 이후 2000년까지 10여 년 동안은 오히려 2승4패로 열세를 보였다.
하지만 2004년 중국 지난(濟南)에서 열린 아시안컵 무대에서 2골을 몰아 넣은 이동국(전북 현대)의 활약으로 4대 0 대승을 거뒀고, 2005년 2월과 6월 서울월드컵경기장과 쿠웨이트시티의 피스 앤드 프렌드십 스타디움에서 치른 2006년 독일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6골을 뽑아냈다. 당시 골 맛을 봤던 이동국, 이영표(무적), 박지성(맨유), 정경호(강원FC)는 태극마크를 반납했거나 이제 대표팀 승선에서 멀어졌지만, 새로운 대표팀의 ‘캡틴’ 박주영(AS 모나코)은 건재하다.
현재 쿠웨이트는 올 1월 아시안컵에서 졸전 끝에 예선 꼴찌로 대회를 마감하던 모습과 별 차이가 없다. 당시 쿠웨이트는 예선 3전 전패로 탈락의 수모를 겪었다. 1 골을 넣고, 무려 7실점을 하는 등 동네북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런데 고란 투페키지치 감독을 비롯한 상당수 선수가 그대로 대표팀에 남아 있다.
6월 한국과 가나의 국가대표팀 친선 경기에 앞서 선수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왼쪽). 시드 배정 방식이 FIFA 랭킹 기준으로 바뀐 조 추첨은 월드컵 본선 진출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오른쪽).
고란 감독은 조 추첨 행사가 끝나자마자 “한국은 명실상부 조 최강이고, UAE가 발전하는 중이어서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아시안컵에서 유일하게 골 맛을 봤던 포워드 바데르 알모타와를 포함해 공격형 미드필더 유세프 알술라이만, 수비수 파하드 살레 후사인이 전력의 핵심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조 감독이 지목한 다크호스는 레바논이다. 역대 전적에서는 한국이 레바논에 5승1무로 앞선다. 비록 확실한 전력을 외부에 노출하진 않았지만 아시안컵을 통해 어느 정도 실력은 드러났다. 2011년 아시안컵 2차 예선에서 레바논은 시리아, 중국, 베트남을 상대로 1무5패(홈 앤드 어웨이 경기로 팀당 두 번씩 대결)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2득점에 13실점을 허용했다. 약체로 손꼽히는 베트남에게마저 1대 3으로 졌다. 스트라이커 마무드 엘 알리와 섀도 공격수 아크람 모그라비, 미드필더 아바스 아트위 등 몇몇이 간혹 인상적인 플레이를 펼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 UAE와는 역대 전적에서 9승5무2패로 우위에 있다. UAE는 카타네치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고, 3차 예선에 나름의 자신감을 보인다. 카타네치 감독은 “조 추첨 결과가 나쁘지 않다. 한국의 수준이 높아 우리는 쿠웨이트와 경쟁하겠지만 충분히 최종예선에 진출할 수 있다”고 의지를 불태웠다. 공격수 이스마일 마타르 주나이비, 플레이메이커 아메드 카릴 등을 경계해야 한다.
3차 예선을 통과하고 나면 진정한 승부인 최종예선이 기다린다. 그런데 최근 변수가 발생했다. FIFA를 대신해 월드컵 예선을 관장하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집행위원회가 7월 말 최종예선 시드 배정 방식을 월드컵 성적이 아닌 FIFA 랭킹 기준으로 바꾼다고 결정한 것. 월드컵 성적을 기준으로 한다면 한국은 16강 진출 프리미엄을 등에 업고, 일본과 함께 톱시드로 배정될 것이 유력했으나 현재로서는 일본과 호주가 톱 시드를 배정받을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일본과 호주 중 한 팀과 같은 조에 속하고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등 아시아 강호가 대거 같은 조에 편성될 공산이 커졌다. 이 경우 ‘죽음의 조’에서 힘겨운 사투를 벌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