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책임 DB형, 개인 책임 DC형
취업과 동시에 이씨는 자동적으로 국민연금에 가입했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40%도 되지 않는다. 보험연구원 김대환 연구위원은 “국민연금공단이 강조하는 소득대체율 40%는 가입 기간을 40년으로 가정했을 때다. 실제 평균 가입 기간은 27년에 불과해 향후 국민연금의 실질 소득대체율은 25.8~30.7%에 불과하다”고 추산했다. 결국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노후 준비를 할 수밖에 없다.
회사 재무팀으로부터 걸려온 한 통의 전화. 회사에서 퇴직연금 제도를 도입했으니 확정급여형(DB형)과 확정기여형(DC형) 중 어느 것을 선택하겠느냐는 내용이었다. 이씨는 고민에 빠졌다. 6월 근로자 퇴직급여 보장법(이하 근퇴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앞으로는 DB형과 DC형을 조합해 운용하는 것도 가능해졌지만, 이씨 회사에선 아직까지 두 유형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
DB형은 근로자가 퇴직급여 수준을 사전에 확정하는 방식이다. 적립금의 운용은 회사가 책임지기 때문에 연금자산의 운용 성적이 나빠 지불해야 할 퇴직급여보다 연금자산 평가액이 적을 때는 회사가 그만큼 추가로 부담한다. 반면, DC형은 회사가 떠안아야 할 부담금을 사전에 정해 근로자의 개인 계정에 적립하고, 근로자는 이 적립금을 자신이 선택한 금융 상품에 넣어 운용해 그 실적에 따라 퇴직급여를 받는다. 운용 결과에 대한 책임은 고스란히 근로자 자신이 진다.
임금상승률이 근로자가 기대하는 투자수익률보다 높을 때는 DB형이 유리하다. 반대로 임금상승률보다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다면 DC형이 낫다. 보통 임금 상승분은 물가상승률에 비례해 상승하는 부분과 승진을 통해 직급이 상승할 때 오르는 부분으로 나뉜다. 신입사원의 경우 앞으로 승진 기회가 많아 임금상승률이 높지만, 정년이 가까운 직원은 승진에 따른 임금 상승분이 많지 않다. 따라서 이씨 같은 신입사원은 DB형을 선택하는 것이 유리하다.
5월 말 현재 DB형과 DC형 가입 비율을 보면, DB형이 70% 선에 이른다. 그나마 DC형에 가입한 사람 중에서도 원리금 보장형 금융 상품에 가입한 비율이 70%에 달한다. 즉 DB형과 원리금 보장형인 DC형을 합할 경우, 원리금 보장형 연금 비율이 90%를 훌쩍 넘는다. 미래에셋 강창희 퇴직연금연구소장은 “한국의 기업과 근로자들이 퇴직연금 제도에 대해 얼마나 보수적으로 접근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수치”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시중금리가 3~4%대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면서 DB형으로 노후를 대비하기란 쉽지 않다는 점이다. 4~5%대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실질 수익은 마이너스다. 예컨대 1년에 3%씩 물가가 상승해도 25년만 지나면 지금의 100만 원은 48만 원 가치에 불과하다. 적극적인 투자형 연금인 DC형으로 물가상승률 이상의 수익을 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DC형이 60%에 이른다.
고수익 변액연금보험 사업비 따져봐야
근퇴법 개정안이 통과하면서 전체 퇴직연금 시장 규모는 2015년 105조 원, 2020년 192조 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DB형 퇴직연금에 가입한 이씨는 이제 적당한 개인연금보험 상품을 찾고 있다. 개인연금보험은 일반 연금보험, 연금저축보험, 변액연금보험 등 종류가 다양하다. 그러다 보니 상품 선택에 앞서 전문가에게 본인의 투자 성향이나 재무 상황에 대한 조언을 듣는 게 먼저다. 해약환급금에 대한 비교는 물론, 보증옵션과 수익률 추이, 운용사의 재무건전성 등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당장 ‘고수익 원금 보장’을 내세우는 변액연금보험에 눈길이 갈 수 있다. 변액연금보험은 경제활동 기간이 많이 남아 해당 상품을 장기간 유지할 수 있고, 수익률이 높은 상품을 선호하는 젊은 층에 유리하다. 펀드투자 수익에 따라 연금 수령액을 결정하기 때문에 월 10만~20만 원의 소액 투자로 연금 수령 때 고수익을 노릴 수 있다.
또한 상품 유형에 따라 원금 보장이 가능해 리스크가 적다. 상품 유형에는 원금(100%)을 보증해주는 ‘기본형’, 목표수익 달성에 따라 단계별로 보증(200~300%)해주는 ‘스텝업형’ 그리고 수익률과 상관없이 산정 기간에 따라 보증(200%)해주는 ‘롤업형’이 있다. 설령 수익률이 마이너스가 되더라도 목표수익률을 달성했다면 연금으로 수령 시 스텝업 기능을 이용해 원금 2배까지 보장받을 수 있다.
소득공제라면 연금저축 고려를
변액연금보험은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한 상품이다. 상품 가입에 앞서 중도인출에 대한 유연성(연금 개시 후 인출 여부)이나, 추가 납입분에 대한 보증(스텝 보증) 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최저보증 기능이 있는 상품이라 할지라도 중도해지를 하면 최저보증이 안 된다.
특히 변액연금보험 같은 투자형 보험에 가입할 때는 보험사의 사업비로 분류되는 운용보수, 최저적립금 보증비용을 잘 따져봐야 한다. 사업비가 얼마냐에 따라 같은 수익을 내고도 돌아오는 혜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변액연금보험 명목으로 매달 100만 원을 납입한다고 해서 이 돈이 전부 노후를 위해 투자되는 것은 아니다. 보험사는 사업비 명목으로 일부를 공제한 뒤 나머지를 투자한다. 수익률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사업비로 많은 부분을 뗀다면 원금을 회복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리게 마련이다.
지난해 7월 보험소비자연맹은 변액자산 50조 원이 넘는 생명보험 주력 상품인 변액보험 3종류(변액유니버설종신, 변액유니버설, 변액연금) 65종 상품의 예정사업비 순위를 공개했다. 당시 자료에 따르면, 월 50만 원씩 10년간 6000만 원의 보험료를 납입한 것을 기준으로 했을 때, KDB생명의 변액연금보험 ‘에셋프래티늄’의 사업비는 786만 원으로 납입보험료의 13.1%를 차지했다. 이는 사업비를 가장 적게 쓰는 푸르덴셜생명의 ‘푸르덴셜변액연금보험’보다 317만 원 많은 것이다.
보험소비자연맹 조연행 상임부회장은 “사업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적을수록 고객에게 유리하다”면서 “소비자가 변액보험을 고를 때는 이것 말고도 회사 신뢰도와 변액보험의 펀드 운용 실적, 펀드 운용 수수료 등 제반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유리한 상품을 선택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연말정산이 반갑다. 하지만 소득공제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13번째 월급의 규모는 달라진다. 투자보다 안정성을 중시해야 하는 중년층이라면 소득공제가 가능한 상품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하다. 연금저축보험은 노후 대비를 위한 연금보험 상품 중 유일하게 소득공제가 된다. 소득공제 혜택은 올해부터 연간 400만 원까지 확대됐으며, 소득에 따라 세금 절감액이 최고 154만 원에 이른다.
더군다나 안정적인 공시이율과 최저보증이율 제도, 그리고 배당금 혜택은 연금저축보험만이 지닌 장점이다. 유배당 상품인 연금저축보험은 통상적으로 총 납입보험료의 약 5%를 배당받을 수 있다. 또한 일반 연금에 비해 사업비가 훨씬 적게 책정되므로 같은 5%대 복리 상품이라 해도 은행권의 연금 상품에 비해 실수령액은 더 많다. 채권이나 주식에 투자하는 변액연금보험처럼 손해를 입을 확률도 없다.
그러나 연금저축보험은 중도해지를 할 경우 큰 손해를 본다. 연금저축보험의 연금 개시 연령은 55세 며, 5년 이상 연금 형태로 수령해야 한다. 중도해지를 해 일시금으로 수령하면 22%의 중도해지 가산세가, 5년 이내 해지하면 해지 가산세가 2.2% 부과된다. 해지라는 악수를 피해야만 연금저축보험이 지닌 안정적인 공시이율과 세금환급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연금저축보험은 연금 수령 때 소득세를 부과한다. 연금저축보험에 가입하기 전, 본인의 과세표준액이 소득공제 혜택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한국재무설계연구소 신진혜 과장은 “소득공제 혜택으로 인한 절세효과가 크다면 연금저축을, 미미하다면 연금보험이나 변액연금을 선택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말했다.
퇴직이 임박했거나 이미 은퇴했지만 미처 개인연금보험을 준비하지 못했다면 ‘즉시연금보험’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다. 분할납부 및 적립 방식인 기존 연금 상품과 달리, 즉시연금보험은 일시금으로 보험료를 납부하고 다음 달부터 바로 연금 수령할 수 있다. 즉시연금보험은 공시이율을 적용하며, 종신형과 상속형 가운데 선택 가능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