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부자의 이야기를 다룬 연극 ‘나는 너다’의 부제는 ‘변절자를 위한 변명’ 정도가 되지 않을까. 극을 다 보고 나면 ‘왜 안준생이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함께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조금이나마 그를 이해하게 된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본 적도 없는 아버지 때문에 ‘범죄자의 아들’로 낙인찍힌다. 그리고 큰형이 일본에 독살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살기 위해 변절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일본의 도움으로 안준생은 가정을 이루고, 일본은 그를 이용해 일본 지배의 정당성을 얻으려 한다. 이 연극은 ‘안준생 역시 우리 역사의 피해자 아닌가?’라고 묻는다. 또한 영웅인 안중근뿐 아니라 변절자 안준생까지 우리가 품고 가야 하는 우리의 이야기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고뇌하는 안준생에게 아버지의 혼이 다가가 말한다. “나는 곧 너”라고.
이 연극은 지난해 안중근 순국 100주년을 기념해 초연했다. 안중근 부자 이야기뿐 아니라 1900년대 초 만주에서 활동하던 독립군 이야기까지 철저히 재현했다. 보훈의 달 6월을 맞아 아이들의 역사 공부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별도의 이야기로 보이던 몽환적인 안준생의 독백 장면과 안중근의 저격 사건이 합일점을 찾아가는 과정도 흥미롭다. 특히 돋보이는 것은 무대 연출이다. 텅 빈 바닥이나 벽 등에 영상을 투사하면서 배경을 만드는데 입체적이고 효율적이다. 실험적이고 파격적 시도가 엿보인다.
1인 2역을 맡은 송일국은 ‘단단하다’는 느낌을 준다. 늠름한 민족 영웅의 모습부터 고통에 빠진 변절자의 모습까지 완벽히 보여준다. 커튼콜에서 가장 많은 박수를 받는 이는 역시 박정자다. 그는 일흔이 넘은 고령으로, 스스로 전설을 만들고 있다. 5월 17일부터 6월 6일까지, 예술의전당, 문의 02-580-1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