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태는 매서운 추위와 눈을 먹고 황태로 몸을 바꾼다.
황태는 명태로 만들어진다. 즉 ‘노란 명태’라는 뜻이다. 명태의 별칭은 참 많다. 말리면 북어, 얼리면 동태(凍太), 겨울에 잡은 것도 한자는 다르지만 동태(冬太), 가을에 잡은 것은 추태, 날것은 생태, 낚시로 잡은 것은 낚시태 또는 조태, 그물로 건져 올리면 망태, 원양어선에서 잡은 것은 원양태, 근해에서 잡으면 지방태다. 또 새끼는 노가리, 꾸들꾸들 말린 것은 코다리, 겨울 찬바람에 노르스름하게 말리면 황태 또는 노랑태, 건조기에서 하얗게 말린 것은 에프태, 덕장에 걸 때 날씨가 따뜻해 물러지면 찐태, 고랑대에서 떨어지면 낙태, 하얗게 마른 것은 백태, 검게 마른 것은 먹태, 딱딱하게 마른 것은 깡태, 대가리를 떼고 말린 것은 무두태, 손상된 것은 파태, 잘 잡히지 않아 값이 비싸면 금태 등등.
이렇게 이름이 많은 것은 우리 민족이 명태를 아주 흔하고 다양하게 먹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겨울 동해에는 명태가 지천이었고 그 명태는 수많은 이름의 ‘-태’로 만들어져 우리 식탁에 올려졌던 것이다. 그런데 이 명태가 요즘은 동해에서 잡히지 않는다. 남획의 결과인지, 해수 온도 변화에 따른 명태 회유 경로의 변경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명태가 안 잡히지만 겨울이면 여전히 강원도 진부령 일대 덕장에는 황태가 걸린다. 동해 한참 북쪽 러시아 바다에서 잡은 원양태가 바로 그것이다. 러시아산 원양태는 동태(凍太)로 수입돼 동해의 항구에 부려진다. 항구에선 할머니들이 동태 배따기 작업을 한다. 알과 아가미 등은 젓갈용으로, 이리와 내장 등은 탕용으로 나눈다. 속을 비운 명태는 깨끗이 씻어 겉을 말린 후 냉동한다. 이 상태의 명태가 코다리다. 코다리는 태백산맥 바로 너머의 덕장에 걸린다. 그렇게 한 겨울을 나면 황태가 된다.
황태는 함경도 원산이 ‘고향’이다. 원산 바닷가에서 겨우내 3개월 정도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말린 것이다. 이 지역에서는 ‘노랑태’라고 불렀다. 6·25전쟁 이후 남쪽에서는 더 이상 황태를 볼 수도, 먹을 수도 없었다. 원산 이외 지역에서는 명태를 노랑노랑 말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원산 출신의 김상용이라는 분이 원산과 비슷한 겨울 날씨를 보이는 지역을 찾아 나섰다. 그때가 1960년 겨울이었다. 황태를 말리기 위해서는 밤 평균기온이 영하 10℃ 이하로 내려가는 날이 두 달 이상 계속돼야 한다. 그는 원산의 겨울 날씨와 가장 비슷한 진부령 서쪽 경사면을 발견하고, 그곳에 덕장을 설치해 명태를 걸었다. 그러나 그곳은 안개가 잦았다. 햇볕이 적으면 먹태가 되기 십상이다. 그런 이유로 차츰차츰 덕장이 고개 아래로 내려와 백담계곡이 있는 용대리에 이르렀다. 이후 대관령 서쪽 경사면 횡계리에도 덕장이 생기는 등 황태가 강원도 일대에 번져나갔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이 덕장이 조금씩 고개 위로 움직이고 있다. 겨울 날씨가 너무 따뜻해 더 추운 곳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10여 년 전만 해도 백담계곡 양옆으로 황태 덕장이 있었지만 최근 이 지역 덕장이 철거됐다. 황태 말리기에 날씨가 그만큼 중요하다. 그래서 덕장 사람들은 황태 말리는 일을 하늘과 사람이 ‘7대 3제’로 하는 동업이라 말한다.
태백산맥에서 봄바람이 불어오는 3월이면 황태를 거둬들인다. 이를 다시 3~4개월 창고에서 숙성시키면 제 색깔을 내며 구수한 맛을 더하게 된다. 물론 숙성 전에도 맛있기는 매한가지다.
지난겨울 지독히 추웠다. 자꾸 겨울 날씨가 따뜻해 황태 맛이 덜하다 했는데, 올해 황태는 추운 겨울 덕을 보았는지 궁금하다. 봄이 오고 있으니 황태 맛 보러 갈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