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배우 류정한(40)에게 인터뷰를 요청하려니 덜컥 조심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의 공연 일정을 체크해보니 2월 27일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를 끝내고 3월 4일부터 ‘몬테크리스토’ 공연에 들어간다(공연 시작일은 3월 1일이지만, 트리플 캐스팅으로 그는 4일부터 공연을 시작한다). 쉴 틈도 없이 새로운 작품을 연습하느라 분주한 일상을 보낼 류정한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래도 만나야 했다. 그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나가는(?) 뮤지컬 배우이기 때문이다. 본인은 쑥스러워하며 손사래를 쳤지만, 뮤지컬 관객 사이에서 류정한은 조승우, 오만석과 함께 ‘뮤지컬 3대 천왕’으로 불린다. 이들 중 관객에게 오로지 ‘뮤지컬 배우’로만 인식되는 이는 그뿐이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로 데뷔 일취월장
3월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청담동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객석에서 바라보던 배우 류정한과 일대일로 마주한 그는 이미지가 좀 달랐다. 분장을 하지 않은 까닭일까. 강인하고 카리스마 넘쳐 보였던 인상이 훨씬 부드럽고 담백하게 느껴졌다. 무대를 가득 채우던 크고 힘이 넘치던 목소리도 가만히 집중해야 들릴 정도로 조용하고 차분했다. 말투도 꽤 느린 편. 하지만 조리가 있어 자꾸 귀를 기울이게 됐다.
“주변에서 제 성격이 내성적이라고 해요.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연습이나 공연이 없는 날엔 집 밖에 잘 안 나가요. 조용히 자신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어릴 때는 성격이 밝은 편이었는데 사춘기 때 많이 바뀌었어요.”
류정한은 어린 시절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랐다. 친척 중에 클래식 전공자도 있었고 누나 역시 성악을 전공했다. 특히 그의 어머니가 정트리오(정명화, 정경화, 정명훈)의 어머니인 이원숙 씨와 친분이 두터워 정트리오 가족과 음악적인 교류도 잦았다. 하지만 그가 고등학교 1학년일 때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다. 그는 그 후 대학 시절까지 방황의 시기를 보냈다.
“당시엔 철이 너무 없었어요. 왜 나만 이런 상황에 처한 걸까, 하는 원망감에 더 비뚤어졌죠. 워낙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자란 데다 삼대독자로 사랑을 듬뿍 받았기에 개인주의 성향도 강했어요. 어머니, 누나, 여동생 모두 가계에 도움이 되고자 애쓰는데 저는 대학 시절에도 놀러만 다녔어요. 그러다 우연히 여동생의 일기장을 보고 정신을 차렸습니다. 온통 제 욕이 적혀 있더라고요.”
어린 시절부터 ‘음악’과 관련된 직업을 동경했을 것이라는 기자의 예상과 달리 그는 “음악 관련 일을 하겠다는 꿈을 꿔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서울대 성악과에 입학한 것도, 뮤지컬 배우가 된 것도 우연이었다는 설명.
“제가 삼수를 했는데 이전에 음대를 가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성악 레슨을 3개월 정도 받고 음대 실기시험을 쳤는데 성악과에 합격했어요. 대학 입학 후, 음대가 적성에 안 맞아서 학교생활도 제대로 안 했어요. 방황하고 있을 때, 정트리오의 맏이인 CMI 정명근 대표가 뮤지컬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해서 뮤지컬에 발을 들이게 됐습니다.”
류정한의 데뷔작은 1997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다. 그는 “나중에 공연 실황을 비디오로 보게 됐는데 연기도 너무 못하고 노래도 별로더라”며 첫 데뷔 무대를 회상했다. 그는 연극 ‘마스터 클래스’와 ‘세자매’를 비롯해 ‘나무꾼과 선녀’ ‘브로드웨이 42번가’ 등에 출연하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갔다. 그가 뮤지컬 배우로 살아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2001년 ‘오페라의 유령’에서 라울 역을 연기하면서부터다.
“그 전까지는 ‘무대에 서는 게 좋다’ 정도였어요. 그런데 ‘오페라의 유령’을 공연하면서 뮤지컬 배우는 내가 잘할 수 있고, 열심히 할 수 있고, 또 만족할 수 있는 직업이겠구나 싶었어요. 사실 2시간 반 동안 무대에서 춤추고 노래하고 연기하는 게 생각보다 어려워요. 그런데 무대에 서 있는 동안은 무아지경에 빠진 느낌이랄까요. 뮤지컬은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다고 느꼈어요.”
“무대에 섰을 때 정말 행복하죠”
‘맨 오브 라만차’는 류정한에게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돌아보게 한 작품이다. 그는 2005년 ‘돈키호테’에서, 그리고 2008년과 2010년 ‘맨 오브 라만차’에서 돈키호테를 연기했다.
“돈키호테는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상징적인 인물이에요. 어릴 때는 사회에 크게 관심이 없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주위를 둘러보게 됐어요. 사회의 부조리를 보고, 정의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되죠. 돈키호테는 불의를 참지 말고, 기본적인 것을 잘 지키라고 하죠. 그게 맞는 거잖아요. 이 작품을 하면서 다른 이에게 조금 더 좋은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기에 ‘맨 오브 라만차’의 돈키호테는 나이가 들수록 도전해보고 싶은 역할이다. 인생을 알면 알수록 돈키호테를 더 편하게 연기 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는 50대 때 꼭 돈키호테를 연기하고 싶다고 했다.
올해로 뮤지컬 배우 15년 차인 류정한. 그는 어느덧 좋은 선배는 어떤 사람인지를 고민하는 입장이 됐다. 그는 “마흔 중반이 넘어갔을 때, 정말 좋은 역할은 후배에게 주고 난 조연을 열심히 하고 싶다”며 말을 이어나갔다.
“물론 60대가 주연을 해야 하는 역할이라면 주연을 하겠죠. 사실 주연이든 조연이든 앙상블이든 역할은 크게 중요하지 않아요. 작품만 좋다면 어떤 역할이든 기꺼이 맡을 겁니다.”
올해 6월부터 류정한은 영화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제목은 ‘기적’. 영화 ‘동감’으로 유명한 김정권 감독이 메가폰을 잡는다. 천재 성악가였지만 35세에 목소리를 잃은 배재철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다. 평소 류정한을 지켜본 팬이라면 의아할 터. 그는 늘 공식석상에서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할 의사가 없다고 말했기 때문. 그는 “처음엔 감독님의 제안을 거절했는데 일본에서 만든 배재철 씨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마음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그분의 삶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어요. 그분의 이야기를 제가 전하고 싶어졌고, 감독님에게 다시 하겠다고 연락을 드렸어요. 사실 부담도 되고, 한편으론 기대도 돼요.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영화를 찍을 겁니다. 제 타이틀은 죽을 때까지 뮤지컬 배우예요.”
그의 말에서 뮤지컬 배우로서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제가 뮤지컬 배우를 하는 이유는 무대에 섰을 때 정말 행복하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좋은 에너지, 영향을 줄 수도 있어요. 또 관객으로부터 피드백을 받으니, 정말 행복한 직업이죠.”
뮤지컬 ‘몬테크리스토’ 덕에 앞으로 당분간 충무아트홀에서 몬테크리스토 백작으로 분한 류정한을 만날 수 있다. 그는 “그동안 했던 작품이 우울한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작품은 즐거운 것이 특징”이라고 전했다.
“우선 제 자신이 몬테크리스토를 연기할 때 즐거워요. 음악도 정말 아름답습니다. 조언을 드리자면 공연을 볼 때 너무 깊이 생각하거나, 보러 오기 전 미리 공부하지 마세요. 그보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공연을 보세요. 몬테크리스토의 여정을 그저 즐겁게 따라가보세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로 데뷔 일취월장
3월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청담동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객석에서 바라보던 배우 류정한과 일대일로 마주한 그는 이미지가 좀 달랐다. 분장을 하지 않은 까닭일까. 강인하고 카리스마 넘쳐 보였던 인상이 훨씬 부드럽고 담백하게 느껴졌다. 무대를 가득 채우던 크고 힘이 넘치던 목소리도 가만히 집중해야 들릴 정도로 조용하고 차분했다. 말투도 꽤 느린 편. 하지만 조리가 있어 자꾸 귀를 기울이게 됐다.
“주변에서 제 성격이 내성적이라고 해요.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연습이나 공연이 없는 날엔 집 밖에 잘 안 나가요. 조용히 자신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어릴 때는 성격이 밝은 편이었는데 사춘기 때 많이 바뀌었어요.”
류정한은 어린 시절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랐다. 친척 중에 클래식 전공자도 있었고 누나 역시 성악을 전공했다. 특히 그의 어머니가 정트리오(정명화, 정경화, 정명훈)의 어머니인 이원숙 씨와 친분이 두터워 정트리오 가족과 음악적인 교류도 잦았다. 하지만 그가 고등학교 1학년일 때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다. 그는 그 후 대학 시절까지 방황의 시기를 보냈다.
“당시엔 철이 너무 없었어요. 왜 나만 이런 상황에 처한 걸까, 하는 원망감에 더 비뚤어졌죠. 워낙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자란 데다 삼대독자로 사랑을 듬뿍 받았기에 개인주의 성향도 강했어요. 어머니, 누나, 여동생 모두 가계에 도움이 되고자 애쓰는데 저는 대학 시절에도 놀러만 다녔어요. 그러다 우연히 여동생의 일기장을 보고 정신을 차렸습니다. 온통 제 욕이 적혀 있더라고요.”
어린 시절부터 ‘음악’과 관련된 직업을 동경했을 것이라는 기자의 예상과 달리 그는 “음악 관련 일을 하겠다는 꿈을 꿔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서울대 성악과에 입학한 것도, 뮤지컬 배우가 된 것도 우연이었다는 설명.
“제가 삼수를 했는데 이전에 음대를 가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성악 레슨을 3개월 정도 받고 음대 실기시험을 쳤는데 성악과에 합격했어요. 대학 입학 후, 음대가 적성에 안 맞아서 학교생활도 제대로 안 했어요. 방황하고 있을 때, 정트리오의 맏이인 CMI 정명근 대표가 뮤지컬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해서 뮤지컬에 발을 들이게 됐습니다.”
류정한의 데뷔작은 1997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다. 그는 “나중에 공연 실황을 비디오로 보게 됐는데 연기도 너무 못하고 노래도 별로더라”며 첫 데뷔 무대를 회상했다. 그는 연극 ‘마스터 클래스’와 ‘세자매’를 비롯해 ‘나무꾼과 선녀’ ‘브로드웨이 42번가’ 등에 출연하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갔다. 그가 뮤지컬 배우로 살아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2001년 ‘오페라의 유령’에서 라울 역을 연기하면서부터다.
“그 전까지는 ‘무대에 서는 게 좋다’ 정도였어요. 그런데 ‘오페라의 유령’을 공연하면서 뮤지컬 배우는 내가 잘할 수 있고, 열심히 할 수 있고, 또 만족할 수 있는 직업이겠구나 싶었어요. 사실 2시간 반 동안 무대에서 춤추고 노래하고 연기하는 게 생각보다 어려워요. 그런데 무대에 서 있는 동안은 무아지경에 빠진 느낌이랄까요. 뮤지컬은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다고 느꼈어요.”
“무대에 섰을 때 정말 행복하죠”
‘맨 오브 라만차’는 류정한에게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돌아보게 한 작품이다. 그는 2005년 ‘돈키호테’에서, 그리고 2008년과 2010년 ‘맨 오브 라만차’에서 돈키호테를 연기했다.
“돈키호테는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상징적인 인물이에요. 어릴 때는 사회에 크게 관심이 없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주위를 둘러보게 됐어요. 사회의 부조리를 보고, 정의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되죠. 돈키호테는 불의를 참지 말고, 기본적인 것을 잘 지키라고 하죠. 그게 맞는 거잖아요. 이 작품을 하면서 다른 이에게 조금 더 좋은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기에 ‘맨 오브 라만차’의 돈키호테는 나이가 들수록 도전해보고 싶은 역할이다. 인생을 알면 알수록 돈키호테를 더 편하게 연기 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는 50대 때 꼭 돈키호테를 연기하고 싶다고 했다.
올해로 뮤지컬 배우 15년 차인 류정한. 그는 어느덧 좋은 선배는 어떤 사람인지를 고민하는 입장이 됐다. 그는 “마흔 중반이 넘어갔을 때, 정말 좋은 역할은 후배에게 주고 난 조연을 열심히 하고 싶다”며 말을 이어나갔다.
“물론 60대가 주연을 해야 하는 역할이라면 주연을 하겠죠. 사실 주연이든 조연이든 앙상블이든 역할은 크게 중요하지 않아요. 작품만 좋다면 어떤 역할이든 기꺼이 맡을 겁니다.”
올해 6월부터 류정한은 영화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제목은 ‘기적’. 영화 ‘동감’으로 유명한 김정권 감독이 메가폰을 잡는다. 천재 성악가였지만 35세에 목소리를 잃은 배재철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다. 평소 류정한을 지켜본 팬이라면 의아할 터. 그는 늘 공식석상에서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할 의사가 없다고 말했기 때문. 그는 “처음엔 감독님의 제안을 거절했는데 일본에서 만든 배재철 씨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마음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그분의 삶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어요. 그분의 이야기를 제가 전하고 싶어졌고, 감독님에게 다시 하겠다고 연락을 드렸어요. 사실 부담도 되고, 한편으론 기대도 돼요.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영화를 찍을 겁니다. 제 타이틀은 죽을 때까지 뮤지컬 배우예요.”
그의 말에서 뮤지컬 배우로서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제가 뮤지컬 배우를 하는 이유는 무대에 섰을 때 정말 행복하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좋은 에너지, 영향을 줄 수도 있어요. 또 관객으로부터 피드백을 받으니, 정말 행복한 직업이죠.”
뮤지컬 ‘몬테크리스토’ 덕에 앞으로 당분간 충무아트홀에서 몬테크리스토 백작으로 분한 류정한을 만날 수 있다. 그는 “그동안 했던 작품이 우울한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작품은 즐거운 것이 특징”이라고 전했다.
“우선 제 자신이 몬테크리스토를 연기할 때 즐거워요. 음악도 정말 아름답습니다. 조언을 드리자면 공연을 볼 때 너무 깊이 생각하거나, 보러 오기 전 미리 공부하지 마세요. 그보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공연을 보세요. 몬테크리스토의 여정을 그저 즐겁게 따라가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