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합니다. 그만 집을 비워주셔야겠습니다.”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에 사는 직장인 박모(42) 씨는 최근 자신 소유의 서울 마포구 상암동 아파트에서 전세를 살고 있는 A씨 부부에게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박씨는 초등학생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132㎡(40평형) 상암동 아파트는 전세를 주고 자신은 동부이촌동에서 106㎡(32평형) 아파트 전세를 얻어 살고 있었다. 그가 내놓은 상암동 아파트에는 경기도 일산에서 살던 고등학생 자녀를 둔 A씨 부부가 들어왔다. 2년 전 전세계약을 맺을 당시 A씨 부부는 박씨에게 “애들이 대학 갈 때까지만 여기에 있게 해달라”며 “4년 이상 장기계약을 맺자”고 말했다. 박씨는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 한 전세를 빼라고 하지 않을 테니 2년 계약을 하자”는 말로 대신했다.
전세금 연쇄 상승 ‘나 어떡해’
그러나 박씨는 A씨 부부와의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됐다. 박씨가 전세를 살던 동부이촌동 아파트 주인이 전세금으로 무려 2배 가까이 올린 3억8000만 원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집주인은 박씨에게 전세금을 올려주든가 아니면 집을 비워달라고 요구했다.
“아니, 이렇게 많이 올리면 어쩝니까?”
박씨의 항의에 집주인은 “나도 강남에서 아파트를 전세 얻어 사는데 그쪽 집주인이 전세금을 올려달라 해서 도리가 없다”고 답했다. 갑작스럽게 2억 원 가까운 돈을 마련할 수 없게 된 박씨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사정을 A씨 부부에게 말했다. 이미 상암동의 아파트 전세가도 2년 새 2억5000만 원에서 3억2000만 원으로 7000만 원이나 오른 상태였던 탓에 박씨는 차마 더 올려달라고 말할 수 없었다.
A씨 부부가 아파트를 비워줘야 하게 되자, 일산 A씨 소유 빌라에서 전세를 살던 B씨 부부에게 불똥이 튀었다. B씨 부부는 서울로 출퇴근이 쉬우면서 가격도 비교적 저렴한 곳으로 알려진 서울 관악구 중앙동 일대 빌라와 다가구주택 쪽으로 집을 알아봤다. 하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 빌라와 다가구주택이 많은 대표적인 서민 지역인 이곳도 치솟는 전세금에 몸살을 앓고 있었다. 80㎡(24평형) 아파트 전세 시세가 2억~2억4000만 원, 59㎡(18평형) 빌라가 1억5000만~1억6000만 원이며, 방 2개 다가구주택 전세금도 1억 원에 육박했던 것. 불과 두세 달 만에 아파트·빌라는 3000만 원, 다가구주택도 2000만 원이나 올랐다. 그나마 물건이 나오면 그렇다는 것이다.
“전세요? 없어요, 없어.”
전세를 찾는다는 말을 꺼내기 무섭게 공인중개사들은 “뉴스도 안 봤느냐”며 손사래를 쳤다. 오른 가격에도 전세 매물이 없다는 것. 한 달 안에 집을 비워야 하다 보니 B씨 부부는 어쩔 수 없이 보증금 5000만 원에 월세 40만 원을 내는 반월세 빌라를 구했다.
최근 두어 달 사이에 서울 강남·강북 및 경기도 일대를 가리지 않고 전세금이 오르고 있다. 위 사례에서 보듯 강남에서 시작된 전세금 상승이 동부이촌동에 살던 박씨를 상암동으로 옮기게 만들고 이게 또다시 상암동에 살던 A씨 부부를 일산으로, 일산에 살던 B씨 부부를 중앙동으로 밀어내는 도미노 현상마저 벌어지고 있다. 특히 아파트 전세를 구하지 못한 수요자들이 지하철 주변 빌라와 다가구주택으로 몰리면서 빌라·다가구주택마저 전세 품귀현상을 빚고 있다. 전세가 사라지면서 재계약으로 오른 전세금만큼을 매달 월세로 내는 이른바 반월세도 빠르게 늘고 있다.
소형 아파트 중심으로 전세난이 가속화되면서 그 여파가 다른 지역이나 빌라·다가구주택 등 다른 형태의 주택에 영향을 미치는 도미노 현상은 예고된 결과였다. 몇 년 전부터 주택공급이 준 데다 재건축·재개발로 전세 수요가 몰리면서 아파트 전세 매물로만은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여기에 전세 수요가 실수요임에도 ‘전세금이 더 오르기 전에 사야 한다’는 투기심리가 겹치면서 사상 최악의 전세금 상승 도미노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빌라나 다가구주택은 아파트에 비해 공급량이 적다 보니 전세금 상승이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정부·서울시 대책에 썰렁한 반응
전세난의 안전지대가 없는 상황이 펼쳐지지만 정부는 속 시원한 해결책을 내놓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전세난이 심각하지 않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가 여론의 비판이 거세지자 1월 13일 국토해양부(이하 국토부)는 부랴부랴 전세자금 대출 규모를 늘리고 소형·임대주택 공급을 늘리겠다는 1·13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면서 정종환 국토부 장관은 “전세대책이란 게 따로 없다. 내 서랍에는 아무것도 없다. 정말 내놓을 거는 다 내놓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의 전·월세 대책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국토부는 공공 부문에서 소형 분양·임대주택 9만7000가구를 공사기간 단축 등을 통해 조기 공급한다는 방침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주택공급이 단시일 내에 일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6개월 이상 무주택 자격 조건을 폐지하고, 총 대출규모를 6조8000억 원까지 확대하겠다는 주택기금의 전세자금 확대 대책에 대해서도 부동산 전문가들은 “오르는 가격을 잡겠다는 것이 아니라 급한 대로 돈을 더 빌려줘 상황을 일시적으로 무마하겠다는 임시방편”이라며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다 보니 시민단체는 “건설사와 다주택자를 위한 특혜 조치로 가득하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표면적으로는 소형 임대주택을 늘리겠다지만 정작 내용을 들여다보면 건설사와 다주택자에 대한 자금지원 확대, 세제 지원, 규제 완화 등 특혜 조치로 일관하고 있다”며 “지금 임대시장의 전월세 문제는 엄청난 집값 거품 폭탄에서 비롯된 것인 만큼 거품 제거를 위한 근본대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서울시마저 무상급식을 둘러싼 시의회와의 정치싸움에 골몰하고 있어, 전세난 해결은 후순위로 밀려난 듯한 양상이다. 단기적인 대책은 물론 중장기적 대안도 손을 놓고 있다. 실제 도시형 생활주택과 원룸형 임대주택 공급 방안 등 전세난을 덜어줄 수 있는 정책은 시기와 방법도 정하지 못한 상태다. 그럼에도 서울시는 “특별하게 전세대책을 내놓지 않았지만 현재 대책 마련 중이다”란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서울시 주택본부 주택정책팀 관계자는 “1·13대책이 나오기 전 서울시가 국토부에 법제화를 해달라고 건의했던 내용이 많이 반영됐다”고 말했다.
문제는 앞으로다. 실효성 있는 대책은 없는 가운데 올 상반기 서울의 전세난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특히 상반기 서울에서 입주 예정된 물량은 대부분 이미 입주자가 정해진 임대 물량이어서 전세난 해결에 별 도움이 되지 않으리란 분석이 대세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 상반기 서울에 입주 예정인 42개 단지 2만1000여 가구 중 임대 물량은 71%에 달한다. 특히 신혼부부·학군 등의 수요가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봄 이사철에 들어서면 전세 부족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내놓을 것은 다 내놓았다’며 배짱을 부리기에는 작금의 전세난이 이미 한계에 이르렀다.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에 사는 직장인 박모(42) 씨는 최근 자신 소유의 서울 마포구 상암동 아파트에서 전세를 살고 있는 A씨 부부에게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박씨는 초등학생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132㎡(40평형) 상암동 아파트는 전세를 주고 자신은 동부이촌동에서 106㎡(32평형) 아파트 전세를 얻어 살고 있었다. 그가 내놓은 상암동 아파트에는 경기도 일산에서 살던 고등학생 자녀를 둔 A씨 부부가 들어왔다. 2년 전 전세계약을 맺을 당시 A씨 부부는 박씨에게 “애들이 대학 갈 때까지만 여기에 있게 해달라”며 “4년 이상 장기계약을 맺자”고 말했다. 박씨는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 한 전세를 빼라고 하지 않을 테니 2년 계약을 하자”는 말로 대신했다.
전세금 연쇄 상승 ‘나 어떡해’
그러나 박씨는 A씨 부부와의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됐다. 박씨가 전세를 살던 동부이촌동 아파트 주인이 전세금으로 무려 2배 가까이 올린 3억8000만 원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집주인은 박씨에게 전세금을 올려주든가 아니면 집을 비워달라고 요구했다.
“아니, 이렇게 많이 올리면 어쩝니까?”
박씨의 항의에 집주인은 “나도 강남에서 아파트를 전세 얻어 사는데 그쪽 집주인이 전세금을 올려달라 해서 도리가 없다”고 답했다. 갑작스럽게 2억 원 가까운 돈을 마련할 수 없게 된 박씨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사정을 A씨 부부에게 말했다. 이미 상암동의 아파트 전세가도 2년 새 2억5000만 원에서 3억2000만 원으로 7000만 원이나 오른 상태였던 탓에 박씨는 차마 더 올려달라고 말할 수 없었다.
A씨 부부가 아파트를 비워줘야 하게 되자, 일산 A씨 소유 빌라에서 전세를 살던 B씨 부부에게 불똥이 튀었다. B씨 부부는 서울로 출퇴근이 쉬우면서 가격도 비교적 저렴한 곳으로 알려진 서울 관악구 중앙동 일대 빌라와 다가구주택 쪽으로 집을 알아봤다. 하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 빌라와 다가구주택이 많은 대표적인 서민 지역인 이곳도 치솟는 전세금에 몸살을 앓고 있었다. 80㎡(24평형) 아파트 전세 시세가 2억~2억4000만 원, 59㎡(18평형) 빌라가 1억5000만~1억6000만 원이며, 방 2개 다가구주택 전세금도 1억 원에 육박했던 것. 불과 두세 달 만에 아파트·빌라는 3000만 원, 다가구주택도 2000만 원이나 올랐다. 그나마 물건이 나오면 그렇다는 것이다.
“전세요? 없어요, 없어.”
전세를 찾는다는 말을 꺼내기 무섭게 공인중개사들은 “뉴스도 안 봤느냐”며 손사래를 쳤다. 오른 가격에도 전세 매물이 없다는 것. 한 달 안에 집을 비워야 하다 보니 B씨 부부는 어쩔 수 없이 보증금 5000만 원에 월세 40만 원을 내는 반월세 빌라를 구했다.
최근 두어 달 사이에 서울 강남·강북 및 경기도 일대를 가리지 않고 전세금이 오르고 있다. 위 사례에서 보듯 강남에서 시작된 전세금 상승이 동부이촌동에 살던 박씨를 상암동으로 옮기게 만들고 이게 또다시 상암동에 살던 A씨 부부를 일산으로, 일산에 살던 B씨 부부를 중앙동으로 밀어내는 도미노 현상마저 벌어지고 있다. 특히 아파트 전세를 구하지 못한 수요자들이 지하철 주변 빌라와 다가구주택으로 몰리면서 빌라·다가구주택마저 전세 품귀현상을 빚고 있다. 전세가 사라지면서 재계약으로 오른 전세금만큼을 매달 월세로 내는 이른바 반월세도 빠르게 늘고 있다.
소형 아파트 중심으로 전세난이 가속화되면서 그 여파가 다른 지역이나 빌라·다가구주택 등 다른 형태의 주택에 영향을 미치는 도미노 현상은 예고된 결과였다. 몇 년 전부터 주택공급이 준 데다 재건축·재개발로 전세 수요가 몰리면서 아파트 전세 매물로만은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여기에 전세 수요가 실수요임에도 ‘전세금이 더 오르기 전에 사야 한다’는 투기심리가 겹치면서 사상 최악의 전세금 상승 도미노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빌라나 다가구주택은 아파트에 비해 공급량이 적다 보니 전세금 상승이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1월 13일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오른쪽)이 정부과천청사에서 전·월세 대책을 설명하고 있다.
전세난의 안전지대가 없는 상황이 펼쳐지지만 정부는 속 시원한 해결책을 내놓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전세난이 심각하지 않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가 여론의 비판이 거세지자 1월 13일 국토해양부(이하 국토부)는 부랴부랴 전세자금 대출 규모를 늘리고 소형·임대주택 공급을 늘리겠다는 1·13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면서 정종환 국토부 장관은 “전세대책이란 게 따로 없다. 내 서랍에는 아무것도 없다. 정말 내놓을 거는 다 내놓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의 전·월세 대책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국토부는 공공 부문에서 소형 분양·임대주택 9만7000가구를 공사기간 단축 등을 통해 조기 공급한다는 방침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주택공급이 단시일 내에 일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6개월 이상 무주택 자격 조건을 폐지하고, 총 대출규모를 6조8000억 원까지 확대하겠다는 주택기금의 전세자금 확대 대책에 대해서도 부동산 전문가들은 “오르는 가격을 잡겠다는 것이 아니라 급한 대로 돈을 더 빌려줘 상황을 일시적으로 무마하겠다는 임시방편”이라며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다 보니 시민단체는 “건설사와 다주택자를 위한 특혜 조치로 가득하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표면적으로는 소형 임대주택을 늘리겠다지만 정작 내용을 들여다보면 건설사와 다주택자에 대한 자금지원 확대, 세제 지원, 규제 완화 등 특혜 조치로 일관하고 있다”며 “지금 임대시장의 전월세 문제는 엄청난 집값 거품 폭탄에서 비롯된 것인 만큼 거품 제거를 위한 근본대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서울시마저 무상급식을 둘러싼 시의회와의 정치싸움에 골몰하고 있어, 전세난 해결은 후순위로 밀려난 듯한 양상이다. 단기적인 대책은 물론 중장기적 대안도 손을 놓고 있다. 실제 도시형 생활주택과 원룸형 임대주택 공급 방안 등 전세난을 덜어줄 수 있는 정책은 시기와 방법도 정하지 못한 상태다. 그럼에도 서울시는 “특별하게 전세대책을 내놓지 않았지만 현재 대책 마련 중이다”란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서울시 주택본부 주택정책팀 관계자는 “1·13대책이 나오기 전 서울시가 국토부에 법제화를 해달라고 건의했던 내용이 많이 반영됐다”고 말했다.
문제는 앞으로다. 실효성 있는 대책은 없는 가운데 올 상반기 서울의 전세난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특히 상반기 서울에서 입주 예정된 물량은 대부분 이미 입주자가 정해진 임대 물량이어서 전세난 해결에 별 도움이 되지 않으리란 분석이 대세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 상반기 서울에 입주 예정인 42개 단지 2만1000여 가구 중 임대 물량은 71%에 달한다. 특히 신혼부부·학군 등의 수요가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봄 이사철에 들어서면 전세 부족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내놓을 것은 다 내놓았다’며 배짱을 부리기에는 작금의 전세난이 이미 한계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