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앞 자전거 전용도로는 우회전 차량과 오토바이에 점령당했다.
편리하고 안전한 자전거 통행을 돕기 위해 만든 자전거도로에서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시의회 교통위원회 민주당 박기열 시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09년까지 3년 동안 서울시내 자전거도로에서 99명이 사망했다. 사고 발생건수와 사망자 수는 증가 추세다. 2007년 1874건의 사고가 일어나 25명이 숨졌고, 2009년에는 3068건에 45명이 사망했다. 지난 10년간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는 줄어드는 추세인 데 반해 자전거 관련 인명사고는 늘고 있다.
‘도로 다이어트’ 방식도 안전에 취약
‘자전거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자전거도로는 크게 3종류로 나뉜다. 자전거만 통행할 수 있게 분리대, 연석 등으로 차도, 보도와 구분해 만든 자전거 전용도로, 자전거와 보행자가 함께 쓰도록 차도와 구분해 설치한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 자전거 외에 자동차도 일시 통행할 수 있도록 차도에 자전거도로를 표시해 구분한 자전거자동차 겸용도로다.
특히 2008년 도입한 ‘도로 다이어트’ 방식 자전거도로가 인기를 끌고 있다. 기존의 자전거도로는 인도 한쪽에 설치했으나, 도로 다이어트 방식은 차도의 폭을 줄여 자전거도로를 만든 것이다.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자동차 이용을 줄이고 인도 위 자전거도로의 불편함을 극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관과 민이 모두 환영했다. 서울시는 도심 자전거 출퇴근족을 위해 2012년까지 1145억원을 투입해 207km의 도로 다이어트 방식 자전거도로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실제 이 도로를 달려본 자전거 출퇴근족은 “안전에 취약하다”고 한결같이 지적했다.
예를 들어 종로구 안국역에서 경복궁역까지 자전거 전용도로는 2.4km로 짧은 구간이지만 목숨을 건 주행을 해야 한다. 자전거 전용도로인데도 오토바이와 차량 운행이 매우 빈번하고, 직진 차량이 정지신호에 줄지어 서면 우회전하려는 차량들이 자전거 전용도로로 슬그머니 빠져나와 달린다. 경찰청은 7월부터 자전거 전용도로를 침범할 경우 승합차 5만 원, 승용차 4만 원, 이륜차 3만 원의 범칙금을 부과하고 있다. 하지만 교통경찰도 침범하는 차량과 오토바이를 바라만 볼 뿐 단속에는 손을 놓았다. 경찰청 교통관리관실 관계자는 “교통 흐름을 고려할 때 차량이 자전거도로로 진입할 수밖에 없다. 이를 단속하면 차량들의 반발이 거세다”고 밝혔다.
차가 밀고 들어와 생명 위협
정부가 손을 놓고 있으니 시민이 나섰다. 서울환경운동연합과 동호회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 등은 차량 이용자에게 자전거를 배려하자는 ‘자전거 먼저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시민단체의 호소에 관공서 직원들조차 동참하지 않는다. 경찰 순찰차가 우회전하며 자전거도로를 침범하기 일쑤고 ‘소방’ 글씨가 적힌 오토바이마저 자전거 전용도로를 질주하는 게 현실이다.
게다가 이들 자전거도로 대부분이 ‘측면직각충돌’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측면직각충돌은 사거리, 교차로 등에서 직진하는 자전거의 측면을 차량이 정면으로 들이받아 발생하는 사고다. 자전거도로에서 사망한 99명 중 무려 62명이 이 때문에 사망했다. 사거리 주변에서 전방을 주시하고 속도를 줄이는 등 자전거 운전자의 의식 개선도 필요하지만 애초 자전거도로 설계의 잘못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더 크다. 서울환경운동연합 이지언 활동가는 “자전거 운전자는 우회전하는 차량에 취약한 만큼 교차로 자전거 전용도로 색깔을 일반도로와 달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암적색으로 칠한 자전거도로도 정작 교차로 부분에서는 점선으로 구분돼 있어 차량 운전자가 일반도로와 구분하기 어렵다. 게다가 자전거 전용도로를 차도와 분리하는 돌출된 연석이 없어 차량은 아무런 느낌 없이 자전거도로를 넘나든다. 이 지역에서 근무하는 환경미화원은 “차가 자전거도로를 점령하고 정작 자전거들은 사람으로 붐비는 인도 위를 달릴 수밖에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서울시가 경복궁역 주변 자전거도로 공사로 아까운 혈세만 낭비한 것이다.
서울 강북의 중심에 있는 청계천 자전거자동차 겸용도로의 사정은 더 심각하다. 청계9가 주변 자전거도로를 한 시간가량 지켜보았지만 자전거는 모두 자전거도로 대신 인도를 달렸다. 차들은 자전거도로를 알리는 표지판을 무시하고 흰 선으로 구분해놓은 자전거도로를 마구 달렸다. 인도에서 자전거를 주행하던 한 시민은 “차들이 밀고 들어오는 자전거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다 죽으란 말이냐. 페인트로 선을 그은 돈이 아깝다”며 불만을 쏟아냈다. 이에 서울시 도시교통본부 관계자는 “청계천 자전거도로는 자동차 겸용도로인 만큼 차량이 일시적으로 함께 달릴 수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일시’의 정확한 소요시간을 묻는 질문에는 답하지 못했다.
1 인도를 오르내려야 하는 자전거도로가 불편한 자전거 이용자는 가드레일 밖 차도를 달린다. 2 지워진 자전거도로 표시가 사후관리 실태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러니 일부 자전거 이용자는 인도를 오르내리는 일을 피하려고 가드레일 밖 차도를 달린다. 또 가드레일이 없는 교차로 부근에는 차량 진입을 막으려고 진입방지 봉이 설치됐지만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 택배차량 기사는 익숙한 솜씨로 차량 진입방지 봉이 사라진 틈을 통해 자전거 전용도로에 들어가 주차한 뒤 물건을 옮기더니 이내 사라졌다.
만들어놓고 관리는 나 몰라라
자전거 관련 단체들은 “행정당국이 자전거도로를 만들었다는 결과물에만 집착할 뿐 설치 전 충분한 조사와 협의를 하지 않고, 만든 뒤에도 사후관리에 손을 놓는다”고 입을 모은다. 기자가 직접 둘러본 서울시내 자전거도로 3곳 중 천호대로 한 곳만 모니터링이 이뤄지고 있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도시교통본부 관계자는 “이미 언론을 통해 여러 번 지적된 문제인데 왜 이야기를 꺼내나. 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라는 무성의한 답변만 되풀이했다. 서울시가 적극적으로 해결할 의지를 안 보이니 자전거 핸들바가 가드레일에 부딪힐 만큼 좁은 도로, 중간중간 끊어져서 이용자를 황당하게 하는 자전거도로가 수두룩하다.
청계천 자전거자동차 겸용도로는 자동차 전용도로로 변했다.
“과거 선거 때마다 자전거가 유권자의 표를 모으는 참신한 아이템이 됐지만 이젠 인기가 많이 식어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지금도 생색내기 이벤트에만 집중할 뿐 사후관리는 소홀히 하니, 시간이 지나면 더 문제가 많이 발생할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도로 다이어트 방식이 자전거족의 박수를 받기보다는 차량 이용자의 반발감만 더 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