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성락교회 크리스천세계선교센터 대성전에 설치된 파이프오르간 ‘큰하늘’ 앞에 선 김성현 목사. ‘큰하늘’은 국내 종교기관에 설치된 파이프오르간으로는 최대 크기다.
서울성락교회는 올 초 대성전에 ‘큰하늘’을 설치한 후, 4월 24일 국내외 음악인과 지역 주민을 초청해 ‘파이프오르간 시연회’를 했다. 연주곡 중 찬송가가 있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종교기관에서 하는 행사라는 색채가 뚜렷이 드러나지 않았다. 예배도 없었고, 김기동 담임목사의 인사말도 없었다. 종교가 없거나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를 믿는 이라 해도 편안하게 연주를 즐길 수 있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천상의 울림은 그 어떤 종교적 말씀보다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크리스천세계선교센터 총재이자 성락문화예술연구회를 맡고 있는 김성현(47) 목사는 11월 5일 오전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도 “‘큰하늘’이라는 이름은 ‘하나님의 나라’를 뜻한다. 이 악기는 기독교인뿐 아니라 모든 이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가장 아름다운 수단이 될 것”이라며 강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말씀을 전하는 아름다운 수단
“아마 우리나라에서 제일 비싼 악기일 것입니다(웃음). 하지만 당장 큰돈이 들어가더라도 우리 교회에서는 하나님께 훌륭한 예배를 드리고, 교인에게 자부심을 주며, 종교를 떠나 우리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만한 돈을 들일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봤습니다. 시연회 때는 물론 예배 때마다 많은 신자가 오르간 음악을 들으며 행복해하는 걸 보면서, 이런 판단이 옳았음을 다시금 깨닫죠.”
‘큰하늘’은 오르간 제작의 명가인 오스트리아 리거사 작품이다. 이 회사는 1845년 오스트리아 에거론도르프에서 오르간 제작을 시작한 이래 160여 년간 세계 주요 연회장, 교육기관, 유명 성당과 교회당 등에 2000여 대의 크고 작은 오르간을 납품해온 곳. 그럼에도 이번 ‘큰하늘’의 제작, 설계 및 국내 설치 전 과정을 김 목사는 꼼꼼히 챙겼다.
“리거사에서 파이프오르간 시안을 몇 개 보내왔는데,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디자인이었죠. 하지만 복음을 전하는 악기이므로 디자인에도 그런 의미를 담았으면 했습니다. 제가 직접 리거사로 가서 그쪽 실무자들과 함께 고민했죠. 리거사에선 그동안 이런 일이 거의 없었다고 하더군요, 허허. 결국 제가 잡은 초안대로 설계와 제작이 진행됐습니다. 실제로 ‘큰하늘’은 다양한 성경적 의미를 담고 있어요. 특히 중심축은 십자가를 형상화했는데, 가로축은 하늘과 땅의 경계를, 세로축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뜻합니다.”
김 목사는 문화, 예술을 통한 선교를 특히 중요시한다. 서울대 음대 성악과 출신의 영국 옥스퍼드대 철학박사라는 그의 독특한 이력이 문화 선교의 중요성을 더욱 깨닫게 했을 것이다. 그는 한국에서 음대를 나왔지만 영국 유학을 떠나 신학과 문학, 철학을 전공했다.
김 목사는 “어릴 적부터 찬송은 삶의 일부였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음악을 좋아하게 됐고 전공으로 성악을 택했다. 하지만 신학을 공부하겠다는 꿈은 항상 가지고 있었고, 유학을 통해 그 꿈을 이루었다”고 말했다. 그가 10여 년 동안의 영국 유학 생활을 통해 배운 건 신학과 철학에 대한 지식만이 아니라 소외된 이들에 대한 공감과 자기성찰이었다.
“아버지 덕분에 저는 어릴 적부터 많은 이의 관심을 받고 살았어요(김성현 목사는 김기동 목사의 아들이다). 그러다 보니 당시엔 부끄럽지만, 소외되거나 핍박받는 이들의 마음을 제대로 읽을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영국에서 제가 직접 인종차별을 겪다 보니 멸시받고 위축되는 처지가 얼마나 힘든지 비로소 알 수 있었지요.”
(왼쪽) 주일 성락교회 신도들이 예배당을 가득 메웠다. (오른쪽) 영국 옥스퍼드대 박사과정 졸업식. 서울대 음대 성악과 출신의 김성현 목사는 영국에서 신학, 문학, 철학 등을 전공했다.
“귀국하기 전 영국에서 교수 제의를 받았어요. 조금 흔들렸던 건 사실이지만, 영국 유학 생활을 통해 제가 가야 할 길은 목사로서의 삶이라는 확신이 더욱 강해졌습니다. 한국에 돌아오니 또 다른 의미의 차별과 멸시, 소외와 핍박이 존재하더군요. 그것이 사랑을 실천하는 기독교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과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었어요.”
김 목사는 한국 기독교계에 대한 쓴소리도 서슴지 않았다. 30~40년 전보다 기독교계가 커지고 사회적 영향력도 강해졌지만, 믿음에 대한 간절함은 옅어졌다고 말했다. 또 신이 아닌 사람을 섬기거나, 현실 사회와 일정 거리를 둬야 하는 교회가 ‘정치’를 하는 일도 횡행하며, 열려 있어야 할 교계가 어떤 사회보다도 닫혀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기독교가 ‘주 예수를 믿으면 어떤 죄악에서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다 보니 은연중에 ‘나쁜 짓을 해도 믿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사람들에게 심어주고 있다면서, 착하게 자신의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는 ‘선한 마음’을 잃어버리게 한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한국 기독교계를 이끌어갈 차세대 지도자로서, 그는 한국 기독교가 어떻게 발전해야 한다고 보고 있을까.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주 예수를 믿는다’는 걸 자랑스럽게 얘기하기조차 힘든 분위기였어요. 그랬기에 당시엔 축구선수 허정무가 골을 넣고 기도하는 모습만 봐도 마음이 두근거렸지요. 지금은 당당히 기독교 신앙을 얘기합니다. 하지만 믿음이 얼마나 간절하고 진실한지, 기독교인들 스스로 반성해야지요. 핍박받던 시절 순수했던 기독교인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게 앞으로 한국 기독교가 살아남고 발전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순수했던 기독교인 마음으로 돌아가야
그는 선한 기독교인을 길러내는 게 교회가 할 일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선한 기독교인이라면, 교회가 강요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믿음과 선한 마음을 주변인들에게 전파하고 사회와 국가를 이롭게 한다는 것이다. 대성전에‘큰하늘’을 들인 것도 선한 기독교인을 기르기 위해서다.
“아름다운 음악은 100마디 말보다도 강력하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요. 하지만 꼭 종교적 행사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큰하늘’을 사용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놓았습니다. 음대 교수님들이 연구를 해도 좋고, 더 나아가 오르간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졸업 연주 때 사용해도 좋습니다. 이 자체가 하나님이 주신 큰 사랑과 은혜를 나누는 것과 같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