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폰서 검사’ 의혹을 수사해온 민경식 특별검사가 9월 28일 오전 강남구 서초동 특검 사무실에서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수사를 어떻게 해야 잘했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검사들을 많이 기소하면 되는 건가. 보는 기준에 따라 평가는 다를 수 있다.”(민 특검, 9월 28일 수사를 마치며)
‘스폰서 검사’ 특검팀이 출범한 8월 5일, 민경식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자신만만했다. 100여 명에 이르는 검사의 향응·접대 및 성매매 의혹을 낱낱이 파헤쳐 죄다 법정에 세울 태세였다. 55일간의 수사가 끝난 9월 28일, 민 특검은 검찰 진상조사위원회(이하 진상조사위) 조사보다 못한 결과물에 대해 해명하는 데 급급했다. 시작 때의 호언장담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전·현직 검사 4명만 달랑 기소했다. 민 특검 스스로가 “이번 특검의 핵심인물이자 진원지”라고 지목한 박기준 전 검사장은 면죄부마저 줬다.
강릉지청에 대규모 인력을 파견해 수사팀까지 꾸린 강릉 사건은 연루자들의 혐의를 전혀 밝히지 못했다. 수사 본류가 아닌 전·현직 검찰수사관은 4명이나 기소했다. ‘잡으라는 검사는 잡지 못하고 만만한 수사관들만 잡아들였다’는 조롱이 법조계 안팎에서 이는 실정. 100여 명의 인력에 24억여 원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 결과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고작 4명만 소환 그나마 봐주기 논란
특검팀은 1차 수사 기간 35일 중 26일을 검찰 등에서 넘겨받은 자료 분석과 부산·경남 지역 건설업자 정모(52) 씨의 입만 바라보는 데 허비했다. 특검 출범 전에 모든 자료 분석을 끝내고, 특검 출범과 동시에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하겠다는 민 특검의 공언(公言)은 공언(空言)으로 드러났다. 지난달 30일 부산의 한 병원에 체류하던 정씨가 가까스로 상경하면서 검사들의 줄소환이 예고됐다. 하지만 당초 천명한 20여 명이 아니라 고작 4명만 소환 조사했다. 박기준·한승철 전 검사장과 성접대 의혹이 제기된 현직 부장검사와 평검사다.
이마저도 ‘봐주기’ 논란을 빚었다. 공개소환 대상자였던 박 전 검사장이 특검팀 내부 직원의 도움으로 몰래 특검 사무실로 들어갔고, 의혹의 ‘몸통’으로 지목됐음에도 단 6시간의 조사만 받았다. 조사도 흐지부지 끝났다. 당초 검찰 자체의 진상조사위원회에서 조사하지 않은 대상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특검은 정씨의 진정서 묵살과 향응·접대 의혹에 연루된 황희철 법무부 차관 등 현직 검사장 3명은 수사 착수 30일이 되도록 자료 검토만 되풀이했다.
특검팀은 특검 출범 뒤 검사들의 향응·성매매 의혹을 밝히기 위해 유흥업소 종사자 등 관련자 200여 명을 참고인, 피내사자 신분으로 소환 또는 서면조사했다. 연장수사 기간 20일 중 대부분을 이들의 조사 내용을 정리하며 기소 대상자를 선별했다. 그 결과물은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진상조사위 조사 내용을 뒤집을 만한 새로운 내용이 전무했다. 한 전 검사장과 현직 검사 3명을 기소하는 데 그쳤다. 이들도 대가성 등 핵심 의혹은 규명하지 못했다.
한 전 검사장은 정씨에게서 지난해 3월 부산의 한 식당과 유흥주점에서 140만 원어치의 식사와 술을 접대받고 현금 100만 원을 받는 등 총 240만 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뇌물수수)와 자신이 거론된 고소장과 진정서를 접수하고도 검찰총장에게 보고하지 않은 혐의(직무유기)가 적용됐다. 지난해 정씨에게 향응 및 접대를 받은 정모 고검 검사와 김모 부장검사는 뇌물수수 혐의로, 이모 검사는 정씨의 진정을 접수하고도 아무런 조사를 하지 않은 채 종결 처리한 혐의(직무유기)로 기소됐다.
특검팀은 이들 4명 외 대부분의 연루자에게 ‘면죄부’를 선사했다. 의혹의 핵심인물인 박 전 검사장은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 박 전 검사장에게 제기된 모든 의혹에 ‘혐의 없음’ 처분을 내렸다. 특검은 이에 대해 “향응·접대는 공소시효가 지났고, 정씨의 진정은 차장검사를 통해 정식 절차를 밟아 처리하도록 해 직무유기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박 전 검사장이 차장검사에게 정씨 사건의 수사 속도를 늦춰달라고 말한 것(직권남용 혐의)과 관련해서는 “정씨가 구속되는 등 사건 담당 검사의 수사권 행사가 방해됐다고 볼 증거가 없다”며 무혐의 처분했다. 검찰 자체 진상조사위가 ‘보고의무 위반’과 ‘검사윤리강령 위반’으로 보고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의견을 낸 것과 대조적이다.
검찰 진상조사위에서 조사하지 않은 황 차관 등 현직 검사장 3명도 무혐의 처분했다. 황 차관은 지난 2월 검사들의 향응·접대 의혹이 담긴 정씨의 진정서를 팩스로 받고도 묵살했다는 의혹(직무유기)을 샀다. 특검팀은 “정씨가 보냈다는 팩스 송수신 기록이 폐기돼 더 이상 수사할 수 없고, 진정서 내용도 확인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향응·접대, 성접대 의혹이 각각 제기된 다른 검사장 2명도 “공소시효가 지났다”며 사건을 종결했다. “공소시효와 상관없이 진위를 파악한 뒤 형사처벌 또는 검찰에 징계 건의 여부 등을 검토하겠다”던 공언을 스스로 뒤집었다.
국정감사로 넘어간 ‘스폰서 특검’
8월 5일 특별검사팀 출범 때의 모습.
그 때문일까. 특검 출범 전후 ‘무용론’이 법조계 안팎에서 제기됐다. 특검을 해도 검찰의 진상조사위 조사 결과를 뒤집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특검팀은 ‘용두사미’의 수사 결과를 내놓으며 ‘특검 무용론’을 재확인시켰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특검 수사는 스폰서 검사들에게 면죄부만 부여한 부실 수사”라며 “법과 질서가 검사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고 비판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특검의 성과가 의혹을 해소하기에 터무니없이 부족했다”고 비난했다.
정치권은 10월 국정감사 때 ‘부실 수사’의 진상을 파헤치겠다고 벼르고 있다. 특히 민주당은 특검팀의 비검찰 출신 인사인 안병희(48) 특검보를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했다. 민주당 측은 “스폰서 검사 특검팀에 파견된 검사와 검찰수사관 등의 방해로 특검팀이 수사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는 내용이 민주당에 접수돼 당 차원에서 특검 수사를 실질적으로 주도한 안 특검보를 증인으로 신청했다”고 밝혔다.
정치권과 법조계에 따르면 특검 파견 검사들은 향응·접대 연루 검사들의 계좌추적이나 체포 등 수사의 향방을 가를 영장 청구를 지연시키고, 검찰 수사관들은 특검보와 따로 움직이는 등 수사에 비협조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측은 군법무관 출신 변호사인 안 특검보를 국정감사 증인으로 불러 이에 대한 사실 여부를 집중 추궁한다는 방침이다.
2004년 최도술, 이광재, 길승 등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 비리 의혹 사건’을 수사한 김진흥 전 특검은 “특별검사의 권한이 시한부인 데다 특검의 인적 구성상 수사 협조가 잘 안 되는 면이 있다”고 털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