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직업에 들어가는 ‘사(士)’는 사실 ‘굶어죽을 사(死)’예요. 이제 전문직 자격증 하나만으로 먹고사는 사회는 끝났어요.”
변호사, 공인회계사 같은 직업이 ‘젊은 시절 몇 년 고생으로 평생 안정된 수입이 보장되는 직업’이라는 말과 동의어로 여겨지고, 의사고시만 통과하면 ‘결혼할 때 열쇠 3개는 기본’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화려한 시절은 갔다. 매년 신규 임용되는 변호사, 공인회계사만 해도 각각 1000명. 의·치학 전문대학원의 도입으로 의사도 많아졌다. 경영난이 심해 택시기사로 ‘투잡’을 뛴다는 의사가 생길 정도. 이제 전문직 하나로는 안 된다. 살아남으려면 플러스알파, ‘스펙’을 키워야 한다.
국내 4대 회계법인 중 하나인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의 김태주 관세사는 올 6월 미국공인회계사(AICPA) 자격증을 획득했다. 공부를 시작한 지 3년 만에 얻은 결실이다. 퇴근 후나 주말을 이용해 학원 강의를 들었고, 3차례 미국 괌에 가 시험을 봤다. 학원비, 시험 응시비, 교통비 등을 합치면 그간 쓴 비용은 약 1000만 원. 그는 “외국계 회사 고객과 일할 때가 많아 전문성을 얻고 싶었다. 업무상 큰 변화는 없지만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경영난 가중 생존 위해 ‘스펙’ 키우기
AICPA 자격증을 따려는 회계사·관세사 등 전문직종 종사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WIAS 국제회계학원 이시창 대표는 “AICPA 시험의 한국인 응시생은 연 1500~2000명인데 그중 직장인이 70%이며 금융·회계 등의 전문직 종사자도 50% 가까이 된다”고 말했다. 글로벌회계아카데미 홍지은 팀장 역시 “전체 AICPA 자격증 응시생 중 변호사와 회계사 등 전문직 비율이 적어도 30%는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토록 전문직 종사자가 AICPA 시험에 많이 응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회계학원 백종욱 대리는 “2011년부터 국제회계기준(IFRS·International Financial Reporting Standards)을 전면 도입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AICPA는 미국공인회계사 자격증이지만 국제 자격증으로서의 영향력이 있어, 국제화된 회계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AICPA 자격증은 기본’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또한 시험이 문제은행 식이라 한국공인회계사(KICPA) 자격증에 비해 공부가 쉽고, KICPA 시험은 한 과목이라도 과락(60점 이하)이면 통과할 수 없지만 AICPA 시험은 과락이 없고 한 과목을 통과하면 다음 시험까지 1년 반 동안 유예기간이 있어 직장을 다니면서 공부하기에 부담이 없다.
이미 회계사로서의 지식과 실무 능력을 모두 갖춘 회계사들은 영어공부의 수단으로 AICPA에 응시하기도 한다. 현재 KICPA 시험의 영어 커트라인은 토익 기준 750점. 대기업과 비교하면 100점 가까이 낮다. 게다가 응시생 대다수가 최소 2년간 ‘고시’ 공부를 하다 보니 실제 KICPA 자격증 소지자 중 영어로 실무를 처리할 수 있거나 회화가 가능한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이시창 대표는 “단순히 ‘저는 영어로도 회계 업무를 볼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보다 ‘AICPA 자격증 소지자입니다’라고 하는 게 더 신뢰를 얻는다는 생각에 응시하는 회계사도 많다”고 말했다.
학벌, 점수 안 좋으면 법인도 못 들어가
회계사 등 전문직 내 경쟁이 심해진 것도 AICPA 자격증 취득 경쟁에 불을 붙이는 데 한몫했다. 2008년 KICPA에 합격한 김모(27) 씨는 “합격만 하면 바로 취직이 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고 했다. 당시 김씨는 4대 법인(삼일·삼정·안진·한영)을 비롯한 회계법인과 일반계 회사 등 총 40여 곳에 지원했으나 2차 면접을 본 곳은 10곳 내외였고, 한 군데로부터 합격 통지를 받았다. 서울 중위권 대학 경영학과 출신인 김씨는 “소위 비(非) SKY 출신으로 교수 추천이 없고 통과 점수가 높지 않으면 4대 법인에 가기 어렵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지만 이 정도인 줄 몰랐다”고 말했다.
입사를 해도 힘들게 들어간 만큼 내부 경쟁이 심하다. 정동회계법인 김윤홍 회계사는 “회계법인 특성상 각자 능력대로 수익을 내는 구조라 경쟁이 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회계사 간 경쟁이 심해지니 AICPA 자격증은 한국 회계사가 가져야 할 일종의 ‘머스트 해브 스펙’이 됐다. 2000년에 KICPA 자격증을 획득한 SC캐피털 김동준 차장 역시 두 달 전부터 AICPA 자격증 공부에 들어갔다. 김 차장은 “요즘 잘나가는 회계사는 대부분 AICPA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삼일회계법인의 경우 소속 회계사 3분의 1 정도가 AICPA 자격증을 취득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를 감지한 수험생들은 아예 KICPA와 AICPA 자격증을 동시에 준비하기도 한다. 올 9월 KICPA 2차 합격 통지를 받은 K대 김모(29) 씨는 이미 AICPA 자격증을 갖고 있다. 그는 “공부하는 김에 조금 더 품을 들여 두 나라 회계사 자격증을 한꺼번에 따서 몸값을 올리면 더 좋은 조건으로 4대 법인에 들어갈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차별화를 위해서는 AICPA 자격증으로는 모자라다고 생각해 해외 어학연수나 해외 진출 등을 모색하는 회계사와 관세사도 많다. KICPA와 AICPA 자격증을 모두 취득한 김모 회계사는 4년 전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중국 법인 회계담당 고문을 맡고 있다. 중국공인회계사시험에도 부분 합격한 상태. 김씨는 “자격증 하나로는 살아남기 힘들다. 지속적인 자기 계발과 개척을 통해 차별화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시창 대표는 “아직은 소수지만 미국세무사(EA), 국제공인관리회계사(CMA) 등의 자격증을 취득하려는 전문직 종사자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금융 전문가, 일명 ‘머니메이커’의 입지도 좁아지고 있다. 8월 31일 기준 국내 주식형펀드 설정액은 약 66조 원. 2008년 말 약 85조 원에 비하면 3분의 2 수준이다. 2년 동안 펀드 시장이 급성장하며 투자자산운용사(펀드매니저), 금융투자분석사(애널리스트) 구인난이 심했지만 지금은 거품이 빠진 상황. 따라서 펀드매니저, 애널리스트로 살아남으려면 자격증은 기본이고, 이제는 ‘보이지 않는 자격증’을 따기 위해 안간힘을 쏟아야 한다.
펀드매니저도 자격증 공부 계속
펀드매니저가 되려면 펀드투자상담사, 투자자산운용사 등의 자격증 취득은 기본. 업계 관계자는 “이런 자격증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경력 5년 차 펀드매니저 김모 씨는 “프로필 관리 차원에서 자격증을 따지만 이 정도 관련 자격증은 누구나 쉽게 딸 수 있다. 남과 차별화된 경력, 자격을 갖추도록 더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요즘 펀드매니저는 기본 자격증 취득을 넘어 공인재무분석사(CFA), 경영학 석사(MBA) 등에 도전한다. CFA 자격증은 증권투자와 관련된 재무분석업무 능력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것으로, 이시창 대표는 “금융계에서 딸 수 있는 자격증 중 가장 어려운 것”이라고 말했다. CFA한국협회에 따르면 CFA 시험에 도전하는 우리나라 사람은 연 8000명 수준으로 세계 10위 안에 들 정도. 하지만 CFA도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CFA를 준비 중인 경력 2년 차 펀드매니저는 “CFA 공부를 하고 있긴 하지만 이것으로는 차별화가 안 돼 이후에는 MBA까지 도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CFA, MBA가 아닌 새로운 길을 찾는 사람도 있다. 9년 차 애널리스트 이모 씨는 ‘영업 능력’을 자신의 특기로 삼았다. 최근 시장의 파이가 줄어듦에 따라 증권사는 애널리스트가 직접 영업에 나서도록 은근히 압력을 넣는 상황. 이씨는 직접 펀드매니저, 투자자 등을 만나 고객을 유치한다. 이씨는 “접대하느라 한 달에 1000만 원이 넘는 술값을 쓰지만 인맥 관리만큼은 업계에서 인정받는다”고 말했다. 또한 각종 ‘경제지’가 선정하는 애널리스트 순위에서 상위에 오르기 위한 노력도 눈물겹다. 이를 위해 애널리스트가 투표권을 가진 펀드매니저, 법인브로커 등에게 로비를 하기도 한다.
‘애널리스트 · 포트폴리오 매니저 되는 법’의 저자 이재광 CFA는 “과거에도 애널리스트가 영업을 하거나 자기 홍보를 했지만 이 일도 결국 객관성과 독립성이 원칙이다. 끊임없이 시장을 분석하고 공부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해야 하는 ‘가욋일’이 많다 보니 오히려 기업의 투자전략, 비전, 각종 지표 등을 파악해 보고서를 쓰는 본업에 충실하기 어렵다는 애널리스트가 있을 정도다.
강남에서 잘나가는 성형외과 중 하나인 아이비 성형외과 최석훈 원장은 요즘 경영학 공부에 푹 빠졌다. 그는 병원을 운영하면서 마케팅, 회계 등 경영 지식에 대한 부족함을 계속 느껴 2009년 연세대 경영학석사(MBA) 과정에 입학했다. 그는 “예전에는 세무사가 정리해주는 회계장부를 보지도 않고 창고에 넣었는데 이제는 하나하나 검증한다. 직접 마케팅, 회계 등에 참여하니 병원 사정도 더 좋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형 로펌 10년 차인 김모 변호사 역시 서울 소재 한 사립대 MBA 과정을 수강 중이다. 그는 “회사 마치고 수업받는 게 힘들긴 하지만, 언젠가 독립해서 로펌을 차리려면 경영 마인드를 갖춰야 한다고 판단, 이 과정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MBA 등 전문대학원에 전문직이 모여들고 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기존 MBA 과정에 기업 회계·HR 담당이 많았다면 최근은 변호사, 회계사, 의사 등 소위 ‘사’자 전문직 종사자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이 바쁜 시간을 쪼개 MBA를 찾는 이유는 ‘배움에 대한 갈증’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잘나가는 의사 선생님 경영학 공부
한양대 MBA 과정을 마친 세무사 정종복 씨는 “고교 졸업 후 바로 9급 공무원으로 국세청에 들어와 학벌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는데 그 부분을 채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시립대 세무대학원을 졸업하고 방송통신대 법학과에서 박사과정에 있는 김윤홍 회계사는 “업무상 변호사를 많이 만나는데 전문 법률 지식이 나올 때마다 ‘세법을 더 잘 알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최석훈 원장은 “MBA를 딴 동료 의사 중에는 이직이나 투잡을 고려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인맥 형성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정종복 씨는 “함께 공부한 동료 중에 우리은행 임원, 한국도시철도공사 임원 등이 있다. 동기들이 내 고객이 되기도 하고, 그들로부터 사업 조언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한양대 MBA 총동문회 관계자는 “다른 동문회보다 MBA 동문회의 골프 모임, 등산 모임 등이 활발한 것은 사람들이 MBA 인맥을 중시한다는 방증 아닐까”라고 말했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같은 직업이 ‘젊은 시절 몇 년 고생으로 평생 안정된 수입이 보장되는 직업’이라는 말과 동의어로 여겨지고, 의사고시만 통과하면 ‘결혼할 때 열쇠 3개는 기본’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화려한 시절은 갔다. 매년 신규 임용되는 변호사, 공인회계사만 해도 각각 1000명. 의·치학 전문대학원의 도입으로 의사도 많아졌다. 경영난이 심해 택시기사로 ‘투잡’을 뛴다는 의사가 생길 정도. 이제 전문직 하나로는 안 된다. 살아남으려면 플러스알파, ‘스펙’을 키워야 한다.
국내 4대 회계법인 중 하나인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의 김태주 관세사는 올 6월 미국공인회계사(AICPA) 자격증을 획득했다. 공부를 시작한 지 3년 만에 얻은 결실이다. 퇴근 후나 주말을 이용해 학원 강의를 들었고, 3차례 미국 괌에 가 시험을 봤다. 학원비, 시험 응시비, 교통비 등을 합치면 그간 쓴 비용은 약 1000만 원. 그는 “외국계 회사 고객과 일할 때가 많아 전문성을 얻고 싶었다. 업무상 큰 변화는 없지만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경영난 가중 생존 위해 ‘스펙’ 키우기
AICPA 자격증을 따려는 회계사·관세사 등 전문직종 종사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WIAS 국제회계학원 이시창 대표는 “AICPA 시험의 한국인 응시생은 연 1500~2000명인데 그중 직장인이 70%이며 금융·회계 등의 전문직 종사자도 50% 가까이 된다”고 말했다. 글로벌회계아카데미 홍지은 팀장 역시 “전체 AICPA 자격증 응시생 중 변호사와 회계사 등 전문직 비율이 적어도 30%는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토록 전문직 종사자가 AICPA 시험에 많이 응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회계학원 백종욱 대리는 “2011년부터 국제회계기준(IFRS·International Financial Reporting Standards)을 전면 도입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AICPA는 미국공인회계사 자격증이지만 국제 자격증으로서의 영향력이 있어, 국제화된 회계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AICPA 자격증은 기본’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또한 시험이 문제은행 식이라 한국공인회계사(KICPA) 자격증에 비해 공부가 쉽고, KICPA 시험은 한 과목이라도 과락(60점 이하)이면 통과할 수 없지만 AICPA 시험은 과락이 없고 한 과목을 통과하면 다음 시험까지 1년 반 동안 유예기간이 있어 직장을 다니면서 공부하기에 부담이 없다.
이미 회계사로서의 지식과 실무 능력을 모두 갖춘 회계사들은 영어공부의 수단으로 AICPA에 응시하기도 한다. 현재 KICPA 시험의 영어 커트라인은 토익 기준 750점. 대기업과 비교하면 100점 가까이 낮다. 게다가 응시생 대다수가 최소 2년간 ‘고시’ 공부를 하다 보니 실제 KICPA 자격증 소지자 중 영어로 실무를 처리할 수 있거나 회화가 가능한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이시창 대표는 “단순히 ‘저는 영어로도 회계 업무를 볼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보다 ‘AICPA 자격증 소지자입니다’라고 하는 게 더 신뢰를 얻는다는 생각에 응시하는 회계사도 많다”고 말했다.
학벌, 점수 안 좋으면 법인도 못 들어가
서울 모 대학 MBA 강의 모습. 전문직에게 MBA 학위는 ‘머스트 헤브 아이템’이다.
입사를 해도 힘들게 들어간 만큼 내부 경쟁이 심하다. 정동회계법인 김윤홍 회계사는 “회계법인 특성상 각자 능력대로 수익을 내는 구조라 경쟁이 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회계사 간 경쟁이 심해지니 AICPA 자격증은 한국 회계사가 가져야 할 일종의 ‘머스트 해브 스펙’이 됐다. 2000년에 KICPA 자격증을 획득한 SC캐피털 김동준 차장 역시 두 달 전부터 AICPA 자격증 공부에 들어갔다. 김 차장은 “요즘 잘나가는 회계사는 대부분 AICPA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삼일회계법인의 경우 소속 회계사 3분의 1 정도가 AICPA 자격증을 취득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를 감지한 수험생들은 아예 KICPA와 AICPA 자격증을 동시에 준비하기도 한다. 올 9월 KICPA 2차 합격 통지를 받은 K대 김모(29) 씨는 이미 AICPA 자격증을 갖고 있다. 그는 “공부하는 김에 조금 더 품을 들여 두 나라 회계사 자격증을 한꺼번에 따서 몸값을 올리면 더 좋은 조건으로 4대 법인에 들어갈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차별화를 위해서는 AICPA 자격증으로는 모자라다고 생각해 해외 어학연수나 해외 진출 등을 모색하는 회계사와 관세사도 많다. KICPA와 AICPA 자격증을 모두 취득한 김모 회계사는 4년 전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중국 법인 회계담당 고문을 맡고 있다. 중국공인회계사시험에도 부분 합격한 상태. 김씨는 “자격증 하나로는 살아남기 힘들다. 지속적인 자기 계발과 개척을 통해 차별화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시창 대표는 “아직은 소수지만 미국세무사(EA), 국제공인관리회계사(CMA) 등의 자격증을 취득하려는 전문직 종사자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금융 전문가, 일명 ‘머니메이커’의 입지도 좁아지고 있다. 8월 31일 기준 국내 주식형펀드 설정액은 약 66조 원. 2008년 말 약 85조 원에 비하면 3분의 2 수준이다. 2년 동안 펀드 시장이 급성장하며 투자자산운용사(펀드매니저), 금융투자분석사(애널리스트) 구인난이 심했지만 지금은 거품이 빠진 상황. 따라서 펀드매니저, 애널리스트로 살아남으려면 자격증은 기본이고, 이제는 ‘보이지 않는 자격증’을 따기 위해 안간힘을 쏟아야 한다.
펀드매니저도 자격증 공부 계속
펀드매니저가 되려면 펀드투자상담사, 투자자산운용사 등의 자격증 취득은 기본. 업계 관계자는 “이런 자격증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경력 5년 차 펀드매니저 김모 씨는 “프로필 관리 차원에서 자격증을 따지만 이 정도 관련 자격증은 누구나 쉽게 딸 수 있다. 남과 차별화된 경력, 자격을 갖추도록 더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요즘 펀드매니저는 기본 자격증 취득을 넘어 공인재무분석사(CFA), 경영학 석사(MBA) 등에 도전한다. CFA 자격증은 증권투자와 관련된 재무분석업무 능력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것으로, 이시창 대표는 “금융계에서 딸 수 있는 자격증 중 가장 어려운 것”이라고 말했다. CFA한국협회에 따르면 CFA 시험에 도전하는 우리나라 사람은 연 8000명 수준으로 세계 10위 안에 들 정도. 하지만 CFA도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CFA를 준비 중인 경력 2년 차 펀드매니저는 “CFA 공부를 하고 있긴 하지만 이것으로는 차별화가 안 돼 이후에는 MBA까지 도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CFA, MBA가 아닌 새로운 길을 찾는 사람도 있다. 9년 차 애널리스트 이모 씨는 ‘영업 능력’을 자신의 특기로 삼았다. 최근 시장의 파이가 줄어듦에 따라 증권사는 애널리스트가 직접 영업에 나서도록 은근히 압력을 넣는 상황. 이씨는 직접 펀드매니저, 투자자 등을 만나 고객을 유치한다. 이씨는 “접대하느라 한 달에 1000만 원이 넘는 술값을 쓰지만 인맥 관리만큼은 업계에서 인정받는다”고 말했다. 또한 각종 ‘경제지’가 선정하는 애널리스트 순위에서 상위에 오르기 위한 노력도 눈물겹다. 이를 위해 애널리스트가 투표권을 가진 펀드매니저, 법인브로커 등에게 로비를 하기도 한다.
‘애널리스트 · 포트폴리오 매니저 되는 법’의 저자 이재광 CFA는 “과거에도 애널리스트가 영업을 하거나 자기 홍보를 했지만 이 일도 결국 객관성과 독립성이 원칙이다. 끊임없이 시장을 분석하고 공부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해야 하는 ‘가욋일’이 많다 보니 오히려 기업의 투자전략, 비전, 각종 지표 등을 파악해 보고서를 쓰는 본업에 충실하기 어렵다는 애널리스트가 있을 정도다.
강남에서 잘나가는 성형외과 중 하나인 아이비 성형외과 최석훈 원장은 요즘 경영학 공부에 푹 빠졌다. 그는 병원을 운영하면서 마케팅, 회계 등 경영 지식에 대한 부족함을 계속 느껴 2009년 연세대 경영학석사(MBA) 과정에 입학했다. 그는 “예전에는 세무사가 정리해주는 회계장부를 보지도 않고 창고에 넣었는데 이제는 하나하나 검증한다. 직접 마케팅, 회계 등에 참여하니 병원 사정도 더 좋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형 로펌 10년 차인 김모 변호사 역시 서울 소재 한 사립대 MBA 과정을 수강 중이다. 그는 “회사 마치고 수업받는 게 힘들긴 하지만, 언젠가 독립해서 로펌을 차리려면 경영 마인드를 갖춰야 한다고 판단, 이 과정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MBA 등 전문대학원에 전문직이 모여들고 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기존 MBA 과정에 기업 회계·HR 담당이 많았다면 최근은 변호사, 회계사, 의사 등 소위 ‘사’자 전문직 종사자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이 바쁜 시간을 쪼개 MBA를 찾는 이유는 ‘배움에 대한 갈증’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잘나가는 의사 선생님 경영학 공부
2000년대 초반 KICPA 합격자의 시위 모습. 전문직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기계발이 필수다.
인맥 형성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정종복 씨는 “함께 공부한 동료 중에 우리은행 임원, 한국도시철도공사 임원 등이 있다. 동기들이 내 고객이 되기도 하고, 그들로부터 사업 조언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한양대 MBA 총동문회 관계자는 “다른 동문회보다 MBA 동문회의 골프 모임, 등산 모임 등이 활발한 것은 사람들이 MBA 인맥을 중시한다는 방증 아닐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