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보수와 진보 차원의 문제가 아니에요. 민간과 협력을 통해 문화정책을 추진한다면서, 문인들을 단순히 ‘들러리’만 세우려는 작태에 엄청난 모욕감과 분노를 느낍니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가 추진하는 출판진흥기구 설립을 위한 태스크포스팀(이하 TFT)에 문학계를 대표해 참여해온 시인 김혜순 씨와 문학평론가 정과리 교수(연세대 국문과)는 8월 16일 서울 중구 한 식당에서 TFT 참여 거부를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문화부와 관련 기관을 비롯해 출판계, 문학계, 학계 대표 등 10인으로 구성된 TFT는 8월 11일 첫 회의를 열었는데, 회의 참석 후 두 사람이 ‘TFT가 논의를 위한 자리가 아니라 문화부가 일방적으로 안을 다 짜놓고 민간 인사들을 들러리 세우는 자리’라 판단, 참여를 거부한 것.
흥미로운 사실은 정 교수가 뉴라이트 계열 문화예술단체인 ‘문화미래포럼’ 출신으로, 현 정부와 ‘코드’가 맞는 보수적 인사로 손꼽힌다는 점이다. 정 교수는 “보수, 진보를 떠나 민주적 절차를 무시한 문화부의 일방통행식 일처리 방식에 문제 제기를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그는 “문화부의 안처럼 출판진흥기구와 번역원을 통합하면, 그동안 번역원이 공들여온 ‘한국문학의 세계화’라는 과제가 일순간 물거품이 될 수 있다”면서 “효율성만으로 보면 단시간 내 가시적 성과를 낼 수 없는 번역원 업무를 축소하고 싶겠지만, 문학을 경제적 논리로만 바라봐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진보단체인 민예총(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뿐 아니라 보수단체인 예총(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소속 문화예술인도 유인촌 (전) 장관에게 엄청난 분노를 느끼고 있다.”
7·28재보선을 통해 당선된 최종원 민주당 의원이 한 라디오 방송에 나와서 한 이야기다. 2008년 2월 현 정부 출범 당시 문화부는 “전 정권의 편파 코드 지원 논란을 없애면서, 문화예술계 갈등의 종지부를 찍겠다”고 공언했다. 그로부터 2년 반이 지난 현재 문화부와 문화예술계의 갈등은 오히려 극심해진 것처럼 보인다(상자기사 참고). 최 의원의 말처럼 보수적 성향의 인사들까지 반기를 들고 있다. 단순히 최근 물러난 유 전 장관의 개인적 성향과 태도에서 기인한 걸까. 문화부, 즉 현 정부의 문화정책이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비판을 받는 이유는 뭘까.
2009년 10월 문화부가 발간한 ‘2008 문화정책백서’를 보면 문화예술계 지원책의 방향이 효율성 위주로 전환됐음을 알 수 있다. 백서에 따르면 ‘선택과 집중’(소액다건을 다액소건으로. 전략적 집중지원 체계 구축), ‘사후 지원’(지원사업의 성과 관리. 효율성 제고 목적), ‘간접 지원’(창작활동의 기반이 되는 인프라 강화), ‘생활 속의 예술’(수요자의 예술 활동에 대한 참여 확대) 등 4대 원칙에 따라 지원하는 걸 목표로 한다.
지나치게 경제·산업 논리로 접근
이 가운데 문화예술계에서 집중적으로 비판하는 부분이 바로 ‘선택과 집중’이다. 우선 민예총, 문화연대 등 진보 성향의 인사들은 “‘선택과 집중’ 원칙이 또 다른 편파 코드 인사, 코드 지원을 낳았다”고 주장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이동연 교수(전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공동소장)는 “좌든 우든 좋은 프로젝트가 있으면 이를 공정하게 지원해야 하는데, 현재 문화부는 ‘선택과 집중’을 내세우며 지난 정권 때 활발히 활동한 일부 단체와 사람들을 암묵적으로 배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한국문화정책연구소 정희섭 소장(민예총 부회장)도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당시엔 진보 위주의 코드 지원을 하지 않았느냐’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보수단체에 주던 지원을 뺏은 게 아니라, 지원의 파이를 키워 진보단체에도 나눠준 것”이라면서 “그랬기에 당시 논란이 됐던 예총과 민예총의 갈등도 실제로는 별로 크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오히려 예총과 민예총이 서로 협력해 문화예술진흥법 개정안을 관철하고, 관 위주의 문예진흥원을 민간 위주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문예위)로 전환하는 데 큰 구실을 했다는 것.
현 정부의 문화정책이 지나치게 경제적·산업적 논리로 접근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통용될 만한 ‘신성장동력’을 찾는 데 집중돼 있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약자를 배려하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선택과 집중’이라는 명목 아래 경쟁력 있는 분야만 집중 육성하면서 대중문화 등 오히려 자생력을 갖춘 분야에 지원이 몰리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
경희대 나호열 교수(예총 예술문화정책연구위원장)는 “문화예술단체에 대한 ‘나눠먹기’식 지원은 반대한다”고 하면서도 “메이저 분야와 스타 예술가들은 자기들끼리 경쟁하도록 시장 원리에 맡기고 문화부는 공공성 차원에서 마이너 분야와 신인 예술가들을 발굴, 지원해야 하는데, 현 정부는 이 부분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화예술계 일선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될 만한 ‘놈’만 육성한다는 ‘선택과 집중’과 사업 성과를 보고 추후 지원하는 ‘사후지원’ 원칙은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대학로에서 소극장 연극을 기획·홍보하는 이모 씨는 “연극계의 현실은 아직도 열악하다”고 강조했다. 자본력이 있는 소수의 극단은 유명 배우를 캐스팅하고 방송 등을 통해 홍보하면서 더 많은 관객을 끌어들이지만, 대다수 작은 극단은 정부의 지원금 없이는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조차 힘들다는 것. 이씨는 “정부의 ‘현금’ 지원이 끊기면 자생력을 갖추기 전 ‘죽어버리는’ 극단이 속출하고, 선정성을 앞세운 ‘벗기기’ 연극이나 말장난 위주의 코미디 연극만 양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官 위주 일방통행식 추진도 문제
관 위주로 정책을 추진하는 문화부의 태도도 문제다. 정희섭 소장은 “그동안 민간과의 협력을 중시했던 문화부가 현 정부 들어 가시적 성과와 효율성을 따지면서 다시 ‘관 위주’로 돌아섰다”고 강조했고, 이동연 교수도 “문화정책 추진에서 민간인 전문가가 자문하는 일이 확 줄었고, 참여한다 해도 구색 맞추기인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즉 ‘코드’에 맞춰 보수적 성향의 문화예술계 인사들과 협력하는 게 아니라, 민간의 참여 없이 일방통행식으로 정책을 추진한다는 것.
이런 비판의 목소리에 대해 문화부는 현 정부 들어 문화예술 정책의 방향이 획기적으로 달라지면서, 여러 측면에서 혜택을 받지 못한 인사들이 불만을 가지는 것으로 본다. 문화부 김규원 정책보좌관은 “지원책을 비롯해 문화예술 정책을 바라보는 가치관은 정권마다 달라질 수 있다. 어느 하나가 ‘정답’이라 말할 순 없다”고 말했다.
문화예술계 일각에서도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각자 거창한 논리를 내세우지만 결국 지원금을 둘러싼 볼멘소리”로 보기도 한다. 성균관대 정진수 교수(문화미래포럼 대표)는 “정부의 지원금이 문화예술인을 지원에만 의존하게 만들었다. 시장에 맡겨 스스로 경쟁력을 키우게 해야 한다. 정부 지원책도 ‘직접 지원’이 아닌 ‘간접 지원’ 방식으로 더욱 확실하게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가 추진하는 출판진흥기구 설립을 위한 태스크포스팀(이하 TFT)에 문학계를 대표해 참여해온 시인 김혜순 씨와 문학평론가 정과리 교수(연세대 국문과)는 8월 16일 서울 중구 한 식당에서 TFT 참여 거부를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문화부와 관련 기관을 비롯해 출판계, 문학계, 학계 대표 등 10인으로 구성된 TFT는 8월 11일 첫 회의를 열었는데, 회의 참석 후 두 사람이 ‘TFT가 논의를 위한 자리가 아니라 문화부가 일방적으로 안을 다 짜놓고 민간 인사들을 들러리 세우는 자리’라 판단, 참여를 거부한 것.
흥미로운 사실은 정 교수가 뉴라이트 계열 문화예술단체인 ‘문화미래포럼’ 출신으로, 현 정부와 ‘코드’가 맞는 보수적 인사로 손꼽힌다는 점이다. 정 교수는 “보수, 진보를 떠나 민주적 절차를 무시한 문화부의 일방통행식 일처리 방식에 문제 제기를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그는 “문화부의 안처럼 출판진흥기구와 번역원을 통합하면, 그동안 번역원이 공들여온 ‘한국문학의 세계화’라는 과제가 일순간 물거품이 될 수 있다”면서 “효율성만으로 보면 단시간 내 가시적 성과를 낼 수 없는 번역원 업무를 축소하고 싶겠지만, 문학을 경제적 논리로만 바라봐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진보단체인 민예총(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뿐 아니라 보수단체인 예총(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소속 문화예술인도 유인촌 (전) 장관에게 엄청난 분노를 느끼고 있다.”
7·28재보선을 통해 당선된 최종원 민주당 의원이 한 라디오 방송에 나와서 한 이야기다. 2008년 2월 현 정부 출범 당시 문화부는 “전 정권의 편파 코드 지원 논란을 없애면서, 문화예술계 갈등의 종지부를 찍겠다”고 공언했다. 그로부터 2년 반이 지난 현재 문화부와 문화예술계의 갈등은 오히려 극심해진 것처럼 보인다(상자기사 참고). 최 의원의 말처럼 보수적 성향의 인사들까지 반기를 들고 있다. 단순히 최근 물러난 유 전 장관의 개인적 성향과 태도에서 기인한 걸까. 문화부, 즉 현 정부의 문화정책이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비판을 받는 이유는 뭘까.
2009년 10월 문화부가 발간한 ‘2008 문화정책백서’를 보면 문화예술계 지원책의 방향이 효율성 위주로 전환됐음을 알 수 있다. 백서에 따르면 ‘선택과 집중’(소액다건을 다액소건으로. 전략적 집중지원 체계 구축), ‘사후 지원’(지원사업의 성과 관리. 효율성 제고 목적), ‘간접 지원’(창작활동의 기반이 되는 인프라 강화), ‘생활 속의 예술’(수요자의 예술 활동에 대한 참여 확대) 등 4대 원칙에 따라 지원하는 걸 목표로 한다.
지나치게 경제·산업 논리로 접근
이 가운데 문화예술계에서 집중적으로 비판하는 부분이 바로 ‘선택과 집중’이다. 우선 민예총, 문화연대 등 진보 성향의 인사들은 “‘선택과 집중’ 원칙이 또 다른 편파 코드 인사, 코드 지원을 낳았다”고 주장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이동연 교수(전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공동소장)는 “좌든 우든 좋은 프로젝트가 있으면 이를 공정하게 지원해야 하는데, 현재 문화부는 ‘선택과 집중’을 내세우며 지난 정권 때 활발히 활동한 일부 단체와 사람들을 암묵적으로 배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한국문화정책연구소 정희섭 소장(민예총 부회장)도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당시엔 진보 위주의 코드 지원을 하지 않았느냐’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보수단체에 주던 지원을 뺏은 게 아니라, 지원의 파이를 키워 진보단체에도 나눠준 것”이라면서 “그랬기에 당시 논란이 됐던 예총과 민예총의 갈등도 실제로는 별로 크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오히려 예총과 민예총이 서로 협력해 문화예술진흥법 개정안을 관철하고, 관 위주의 문예진흥원을 민간 위주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문예위)로 전환하는 데 큰 구실을 했다는 것.
현 정부의 문화정책이 지나치게 경제적·산업적 논리로 접근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통용될 만한 ‘신성장동력’을 찾는 데 집중돼 있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약자를 배려하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선택과 집중’이라는 명목 아래 경쟁력 있는 분야만 집중 육성하면서 대중문화 등 오히려 자생력을 갖춘 분야에 지원이 몰리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
경희대 나호열 교수(예총 예술문화정책연구위원장)는 “문화예술단체에 대한 ‘나눠먹기’식 지원은 반대한다”고 하면서도 “메이저 분야와 스타 예술가들은 자기들끼리 경쟁하도록 시장 원리에 맡기고 문화부는 공공성 차원에서 마이너 분야와 신인 예술가들을 발굴, 지원해야 하는데, 현 정부는 이 부분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화예술계 일선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될 만한 ‘놈’만 육성한다는 ‘선택과 집중’과 사업 성과를 보고 추후 지원하는 ‘사후지원’ 원칙은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대학로에서 소극장 연극을 기획·홍보하는 이모 씨는 “연극계의 현실은 아직도 열악하다”고 강조했다. 자본력이 있는 소수의 극단은 유명 배우를 캐스팅하고 방송 등을 통해 홍보하면서 더 많은 관객을 끌어들이지만, 대다수 작은 극단은 정부의 지원금 없이는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조차 힘들다는 것. 이씨는 “정부의 ‘현금’ 지원이 끊기면 자생력을 갖추기 전 ‘죽어버리는’ 극단이 속출하고, 선정성을 앞세운 ‘벗기기’ 연극이나 말장난 위주의 코미디 연극만 양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官 위주 일방통행식 추진도 문제
관 위주로 정책을 추진하는 문화부의 태도도 문제다. 정희섭 소장은 “그동안 민간과의 협력을 중시했던 문화부가 현 정부 들어 가시적 성과와 효율성을 따지면서 다시 ‘관 위주’로 돌아섰다”고 강조했고, 이동연 교수도 “문화정책 추진에서 민간인 전문가가 자문하는 일이 확 줄었고, 참여한다 해도 구색 맞추기인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즉 ‘코드’에 맞춰 보수적 성향의 문화예술계 인사들과 협력하는 게 아니라, 민간의 참여 없이 일방통행식으로 정책을 추진한다는 것.
이런 비판의 목소리에 대해 문화부는 현 정부 들어 문화예술 정책의 방향이 획기적으로 달라지면서, 여러 측면에서 혜택을 받지 못한 인사들이 불만을 가지는 것으로 본다. 문화부 김규원 정책보좌관은 “지원책을 비롯해 문화예술 정책을 바라보는 가치관은 정권마다 달라질 수 있다. 어느 하나가 ‘정답’이라 말할 순 없다”고 말했다.
문화예술계 일각에서도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각자 거창한 논리를 내세우지만 결국 지원금을 둘러싼 볼멘소리”로 보기도 한다. 성균관대 정진수 교수(문화미래포럼 대표)는 “정부의 지원금이 문화예술인을 지원에만 의존하게 만들었다. 시장에 맡겨 스스로 경쟁력을 키우게 해야 한다. 정부 지원책도 ‘직접 지원’이 아닌 ‘간접 지원’ 방식으로 더욱 확실하게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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