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카드 하나 하시면 영화표를 공짜로 드립니다.”
여자친구와 영화를 보러 갔던 직장인 김민호(29) 씨는 매표소 한쪽에서 카드모집인이 다양한 신용카드 혜택을 설명하자 솔깃했다. 김씨가 관심을 보이자 카드모집인은 이를 놓치지 않고 바짝 다가가 설명을 이어갔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건당 100원씩 적립돼 한 달 뒤 현금으로 돌려받습니다. 더군다나 1만 원 이상 영화를 보면 4000원씩 할인을 받습니다.”
카드모집인의 청산유수와 같은 설명에 김씨는 10개가 넘는 카드가 있음에도 또 신청하고 말았다.
길거리 카드모집인 마케팅 경쟁
경기 회복이 뚜렷해지면서 카드 이용건수가 크게 늘자 회원 확보를 위한 카드사 간 마케팅 경쟁이 다시금 불을 뿜고 있다. 앞의 사례에서 보듯 2003년 카드대란 이후 사라졌던 카드모집인이 부활해 영화 매표소, 길거리는 물론 사무실에까지 찾아와 카드 가입을 권유하는 일이 잦아졌다. 더욱이 몇 년간 숨죽여 있던 신용카드업계가 요동치면서 심상치 않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국내 신용카드업계는 전업계와 은행계로 양분된다. 전업계는 삼성카드, 현대카드 같은 기업계 카드사와 은행에서 독립한 신한카드, 하나SK카드 등으로 구성되며 은행계는 KB카드, 우리카드 등 은행 내부에 있는 카드사를 일컫는다. 2002년까지만 해도 전업계 카드사의 시장점유율이 73%에 이를 만큼 절대적이었으나 카드대란 이후 안정적인 자금조달에 유리한 은행계 카드사의 장점이 부각되면서 카드업계는 은행계 중심으로 재편됐다. 이후 한동안 붐이 일었던 기업의 카드업계 진출이 잠잠해지고, 기존 카드사들은 수익보다 안전에 중점을 둔 영업전략을 구사해왔다.
하지만 2007년부터 카드사의 수익성이 급속히 호전되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2003년 8조5410억 원의 적자를 낸 이후 2005년까지 내리 적자를 기록하면서 ‘미운 오리 새끼’ 취급을 받던 전업계 카드사들의 카드사업 부문은 2006년 1조8045억 원의 흑자로 돌아섰다. 2009년에는 무려 2조3095억 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탈바꿈했다. 6년 사이에 무려 10조 원 이상의 영업이익이 증가한 것. 또한 6개 전업계 카드사의 연체율이 두 분기 연속으로 1%대의 경이적인 연체율을 기록하면서 5분기 연속 내리막 행진을 이어갔다.
신용카드사업이 ‘수익은 늘고 위험은 줄어든’ 알짜배기 사업으로 부상하면서 신규 사업자들이 잇따라 카드사업 진출을 선언했다. 산은금융지주와 우정사업본부가 신용카드사업 진출을 예고한 상태며, 통신사들도 ‘컨버전스’라는 미명 아래 앞다퉈 카드업계에 진출하고 있다. 이미 지난 2월 SK텔레콤은 하나금융지주와 함께 하나SK카드를 출범하며 모바일 신용카드를 주도하고 있다. KT 역시 2월 신한카드가 보유한 비씨카드 지분을 인수하기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데 이어, 9월쯤 우리은행이 갖고 있는 비씨카드 지분 20%를 인수하는 MOU를 맺을 예정이다. KB금융지주와의 전략적 제휴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KT는 일약 신용카드업계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한편 은행계 카드사를 보유한 금융지주사들은 은행의 카드사업 부문을 분사하기 위한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는 치열한 경쟁 환경에서 전업계 카드사 체제가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하나금융지주의 하나카드 분사를 시작으로 최근 우리금융지주 이팔성 회장이 연내 카드사업을 분사하겠다고 밝히는 등 겸영은행 카드사들의 분사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장기적으로 수익성 악화 예상
특히 ‘어윤대호’로 새롭게 출발한 KB금융지주는 최기의 국민은행 부행장을 카드분사추진기획단장으로 선임한 가운데 조만간 실무작업반(TF)을 구성, 2011년 2월을 목표로 KB카드 분사 작업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KB금융지주 관계자는 “지주사 출범 이후 계속해서 카드사 분사 얘기가 나왔지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논의가 잠시 수면 아래 있었을 뿐”이라며 “아무래도 전업계 카드사가 의사결정상 효율성이 높고, 경영진도 카드사업에 집중할 수 있어 장점이 많다”고 전했다.
이처럼 커진 파이를 차지하러 너나 할 것 없이 신용카드사업에 뛰어들면서 카드사의 마케팅 비용도 급증하는 추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0년 상반기 6개 전업계 카드사의 카드비용은 3조500억 원으로 지난해 2조5626억 원보다 19% 늘었다. 카드비용은 카드사의 회원모집비용, 제휴사 지급수수료, 발급사 보전수수료 등을 합친 것으로 사실상 카드사의 마케팅 비용에 해당한다.
특히 하나SK카드와 롯데카드 등 후발주자가 모든 가맹점 무이자 할부, 최대 50% 할인 등 파격적인 혜택을 담은 상품을 내놓으면서 과열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카드업계 한 관계자는 “새로운 사업자가 시장에 진입하면 진입자는 고객 확보 차원에서, 기존 업체는 고객을 지키려고 경쟁이 가열된다”며 “과당경쟁이 벌어지면 업계 전체의 마진율이 떨어진다. 수익성 악화를 현금대출로 상쇄하려고 할 경우, 리스크 관리가 취약한 업체를 중심으로 제2 카드대란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미 카드사 간의 치열한 회원 확보 과정에서 카드대란 이후 개별 카드사의 시장점유율을 공식적으로 언급하지 않던 카드업계의 불문율마저 무너진 상황이다. 2009년부터 현대카드가 ‘2위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면서 경쟁사의 시장점유율을 언급하기 시작하자 업계에선 이에 자극받은 카드사들의 경쟁심리가 극에 달했다는 것이다.
물론 2003년 카드대란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반론도 있다. 금융감독원 여신전문서비스실 관계자는 “2000년대 초반에는 카드사들의 양적 성장을 위한 현금대출 쪽이 과열됐다. 하지만 지금은 수익구조가 바뀌었고, 리스크 관리 프로세스가 기본적으로 작동하는 데다 불량 신용정보자들에 대한 정보도 구축돼 있어 단지 카드사 간의 마케팅이 과열됐다는 것만으로 제2 카드대란이 우려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반박했다.
실제 신용카드사의 수익구조에서 가맹점 수수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60%가 넘는다. 2003년 카드대란 당시만 해도 현금서비스 수수료와 카드론 수익 등 현금대출 수익이 50%에 육박한 반면 가맹점 수수료는 27.9%에 불과했다. 이 관계자는 “카드대란을 겪으면서 리스크가 큰 현금대출보다 안전한 신용판매 위주로 영업방식을 전환했다”며 “소비자들도 무분별하게 카드대출을 받기보다는 자신의 신용 안에서 카드를 사용하게 된 만큼 카드사 간의 과열경쟁만으로 카드대란을 우려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덧붙였다.
‘모두가 춤출 때 춤추지 않으면 바보’라는 척 프린스 전 씨티그룹 CEO의 말처럼, 현재 신용카드업계는 고수익이란 과실을 따기 위해 앞다퉈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형국이다. 문제는 이런 호황이 언제까지 지속되느냐다. 카드사들이 현금서비스에 이어 카드론 취급수수료를 잇따라 폐지하는 등 장기적으로 수익성 악화가 예상된다. 카드업계에 드리운 전운이 ‘제2 카드대란의 전초’가 될지 아니면 ‘성장을 위한 단순한 통과의례’에 그칠지, 한 가지 분명한 건 위험은 오기 전에 반드시 한 번은 경고를 한다는 점이다.
여자친구와 영화를 보러 갔던 직장인 김민호(29) 씨는 매표소 한쪽에서 카드모집인이 다양한 신용카드 혜택을 설명하자 솔깃했다. 김씨가 관심을 보이자 카드모집인은 이를 놓치지 않고 바짝 다가가 설명을 이어갔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건당 100원씩 적립돼 한 달 뒤 현금으로 돌려받습니다. 더군다나 1만 원 이상 영화를 보면 4000원씩 할인을 받습니다.”
카드모집인의 청산유수와 같은 설명에 김씨는 10개가 넘는 카드가 있음에도 또 신청하고 말았다.
길거리 카드모집인 마케팅 경쟁
경기 회복이 뚜렷해지면서 카드 이용건수가 크게 늘자 회원 확보를 위한 카드사 간 마케팅 경쟁이 다시금 불을 뿜고 있다. 앞의 사례에서 보듯 2003년 카드대란 이후 사라졌던 카드모집인이 부활해 영화 매표소, 길거리는 물론 사무실에까지 찾아와 카드 가입을 권유하는 일이 잦아졌다. 더욱이 몇 년간 숨죽여 있던 신용카드업계가 요동치면서 심상치 않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국내 신용카드업계는 전업계와 은행계로 양분된다. 전업계는 삼성카드, 현대카드 같은 기업계 카드사와 은행에서 독립한 신한카드, 하나SK카드 등으로 구성되며 은행계는 KB카드, 우리카드 등 은행 내부에 있는 카드사를 일컫는다. 2002년까지만 해도 전업계 카드사의 시장점유율이 73%에 이를 만큼 절대적이었으나 카드대란 이후 안정적인 자금조달에 유리한 은행계 카드사의 장점이 부각되면서 카드업계는 은행계 중심으로 재편됐다. 이후 한동안 붐이 일었던 기업의 카드업계 진출이 잠잠해지고, 기존 카드사들은 수익보다 안전에 중점을 둔 영업전략을 구사해왔다.
하지만 2007년부터 카드사의 수익성이 급속히 호전되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2003년 8조5410억 원의 적자를 낸 이후 2005년까지 내리 적자를 기록하면서 ‘미운 오리 새끼’ 취급을 받던 전업계 카드사들의 카드사업 부문은 2006년 1조8045억 원의 흑자로 돌아섰다. 2009년에는 무려 2조3095억 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탈바꿈했다. 6년 사이에 무려 10조 원 이상의 영업이익이 증가한 것. 또한 6개 전업계 카드사의 연체율이 두 분기 연속으로 1%대의 경이적인 연체율을 기록하면서 5분기 연속 내리막 행진을 이어갔다.
신용카드사업이 ‘수익은 늘고 위험은 줄어든’ 알짜배기 사업으로 부상하면서 신규 사업자들이 잇따라 카드사업 진출을 선언했다. 산은금융지주와 우정사업본부가 신용카드사업 진출을 예고한 상태며, 통신사들도 ‘컨버전스’라는 미명 아래 앞다퉈 카드업계에 진출하고 있다. 이미 지난 2월 SK텔레콤은 하나금융지주와 함께 하나SK카드를 출범하며 모바일 신용카드를 주도하고 있다. KT 역시 2월 신한카드가 보유한 비씨카드 지분을 인수하기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데 이어, 9월쯤 우리은행이 갖고 있는 비씨카드 지분 20%를 인수하는 MOU를 맺을 예정이다. KB금융지주와의 전략적 제휴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KT는 일약 신용카드업계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한편 은행계 카드사를 보유한 금융지주사들은 은행의 카드사업 부문을 분사하기 위한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는 치열한 경쟁 환경에서 전업계 카드사 체제가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하나금융지주의 하나카드 분사를 시작으로 최근 우리금융지주 이팔성 회장이 연내 카드사업을 분사하겠다고 밝히는 등 겸영은행 카드사들의 분사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장기적으로 수익성 악화 예상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은 최근 국민은행 임원들에게 카드사업 부문 분사 이후에 대비해 분발할 것을 주문했다.
이처럼 커진 파이를 차지하러 너나 할 것 없이 신용카드사업에 뛰어들면서 카드사의 마케팅 비용도 급증하는 추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0년 상반기 6개 전업계 카드사의 카드비용은 3조500억 원으로 지난해 2조5626억 원보다 19% 늘었다. 카드비용은 카드사의 회원모집비용, 제휴사 지급수수료, 발급사 보전수수료 등을 합친 것으로 사실상 카드사의 마케팅 비용에 해당한다.
특히 하나SK카드와 롯데카드 등 후발주자가 모든 가맹점 무이자 할부, 최대 50% 할인 등 파격적인 혜택을 담은 상품을 내놓으면서 과열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카드업계 한 관계자는 “새로운 사업자가 시장에 진입하면 진입자는 고객 확보 차원에서, 기존 업체는 고객을 지키려고 경쟁이 가열된다”며 “과당경쟁이 벌어지면 업계 전체의 마진율이 떨어진다. 수익성 악화를 현금대출로 상쇄하려고 할 경우, 리스크 관리가 취약한 업체를 중심으로 제2 카드대란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미 카드사 간의 치열한 회원 확보 과정에서 카드대란 이후 개별 카드사의 시장점유율을 공식적으로 언급하지 않던 카드업계의 불문율마저 무너진 상황이다. 2009년부터 현대카드가 ‘2위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면서 경쟁사의 시장점유율을 언급하기 시작하자 업계에선 이에 자극받은 카드사들의 경쟁심리가 극에 달했다는 것이다.
물론 2003년 카드대란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반론도 있다. 금융감독원 여신전문서비스실 관계자는 “2000년대 초반에는 카드사들의 양적 성장을 위한 현금대출 쪽이 과열됐다. 하지만 지금은 수익구조가 바뀌었고, 리스크 관리 프로세스가 기본적으로 작동하는 데다 불량 신용정보자들에 대한 정보도 구축돼 있어 단지 카드사 간의 마케팅이 과열됐다는 것만으로 제2 카드대란이 우려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반박했다.
실제 신용카드사의 수익구조에서 가맹점 수수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60%가 넘는다. 2003년 카드대란 당시만 해도 현금서비스 수수료와 카드론 수익 등 현금대출 수익이 50%에 육박한 반면 가맹점 수수료는 27.9%에 불과했다. 이 관계자는 “카드대란을 겪으면서 리스크가 큰 현금대출보다 안전한 신용판매 위주로 영업방식을 전환했다”며 “소비자들도 무분별하게 카드대출을 받기보다는 자신의 신용 안에서 카드를 사용하게 된 만큼 카드사 간의 과열경쟁만으로 카드대란을 우려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덧붙였다.
‘모두가 춤출 때 춤추지 않으면 바보’라는 척 프린스 전 씨티그룹 CEO의 말처럼, 현재 신용카드업계는 고수익이란 과실을 따기 위해 앞다퉈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형국이다. 문제는 이런 호황이 언제까지 지속되느냐다. 카드사들이 현금서비스에 이어 카드론 취급수수료를 잇따라 폐지하는 등 장기적으로 수익성 악화가 예상된다. 카드업계에 드리운 전운이 ‘제2 카드대란의 전초’가 될지 아니면 ‘성장을 위한 단순한 통과의례’에 그칠지, 한 가지 분명한 건 위험은 오기 전에 반드시 한 번은 경고를 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