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4일 한나라당 전당대회장에서 친박계 의원들과 일반석에 자리 잡고 앉은 박근혜 전 대표.
‘영포목우회’와 ‘선진국민연대’ 논란의 중심에 있던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을 지식경제부 2차관으로 다시 중용한 것도 정권 기반을 강화하는 포석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진다. 권력자 이 대통령의 친정체제 구축은 정적(政敵) 박근혜 전 대표에겐 부담이자 위기다.
부담과 위기로 다가온 MB 친정체제
당장 김태호 총리 내정자는 지명되자마자 ‘박근혜 대항마’로 떠올랐다. 그동안 한나라당 내 독보적인 차기 대권주자로 인식되던 박 전 대표를 견제할 수 있는 친이계의 대안으로 부각된 것이다.
김 내정자가 차기 주자로 자리매김하는 데 대해 여권의 다른 대권주자들은 아직 별다른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대선후보 경선까지는 2년이 남았고 변수도 많기에 섣불리 경쟁구도를 만들지 않으려는 속셈이다. 그럼에도 당·정·청 인적 개편이 마무리됨과 동시에 차기 논의에 불길이 댕겨지고 있다. 정치권과 언론에선 이미 ‘6룡(龍)’이니 ‘7룡’이니 하는 말이 나돈다.
현재 여권의 차기 구도는 부동의 주자인 박 전 대표를 친이계 잠룡들이 에워싼 모양새다. 이재오 의원은 김 내정자를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 자신이 ‘킹메이커’에 머물지 않고 ‘킹’에 도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기다 50대 초반의 임태희 대통령실장도 이 대통령의 돈독한 신임을 바탕으로 잠재적 대권주자군에 편입됐다. 또 정몽준 전 대표, 오세훈 서울시장도 대권 꿈을 버리지 않고 있어 앞으로 여권의 권력지형이 어떤 변화를 겪을지 주목된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오 의원과 소원한 관계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의 행보도 관심사다. 이 전 부의장은 지난해 6월 정치2선 후퇴를 선언하고 자원외교에 전념하고 있지만, 잠룡들의 차기 경쟁이 본격화되면 당내에 퍼진 ‘SD계’를 묶어 특정 주자를 지원할 가능성이 높다. 친이계에서 온건파로 꼽히는 이 전 부의장은 평소 보수세력의 정권 재창출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선 박 전 대표와도 전략적 제휴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 전 대표는 김 내정자가 자신의 대항마로 부상한 데 대해 무대응으로 일관하지만 친박계는 이번 당·정·청 개편으로 다소 위축된 느낌이다. 무엇보다 여론의 관심이 김 내정자에게 쏠리기 시작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김 내정자가 인사청문회를 무사히 통과하는 순간부터 특유의 승부사 기질을 발휘해 여러 일을 벌이면서 여론의 중심에 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부 친박계 의원이 이탈할 조짐을 보이는 것도 심상찮다. ‘친박계의 좌장’이었던 김무성 원내대표는 박 전 대표의 ‘자질’까지 거론하며 사실상 결별을 선언했다. 박 전 대표가 신뢰했던 진영 의원도 다른 친박계 의원들과의 마찰로 떠났다. 박 전 대표의 비서실장 역할을 하던 유정복 의원이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으로 입각한 것은 결과적으로 ‘화합’보다 ‘친박계 힘 빼기’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7·28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이 승리하자 청와대가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8·15 전후 회동을 ‘없던 일’로 만들어버린 것도 박 전 대표 진영의 무력감을 방증한다. 최근 친박계 모임인 ‘여의포럼’이 당내 화합을 위해 모임을 해체키로 의견을 모았지만, 친이계 모임들이 동참할지도 미지수다.
한나라당에도 7·14전당대회를 통해 친이계가 당권을 장악했다. 안상수 대표는 이재오 의원과 가까운 친이계의 핵심이다. 홍준표·나경원 최고위원도 범(汎)친이계로 분류할 수 있다. 친이계 소장파의 중심인물인 정두언 최고위원은 향후 전개될 여권의 권력투쟁에서 ‘태풍의 눈’이다. 이미 수차례 이 전 부의장과 박영준 차관을 정조준했던 그는 친이계에서 대표적인 강성으로, 친박 진영에서도 경계대상 1호로 꼽는다.
한나라당 내 파워게임도 도움 안 돼
안상수 대표체제의 한나라당에서 새로운 파워게임이 벌어지고 있는 것도 박 전 대표 처지에선 그리 도움이 안 된다. 한나라당은 고질적인 친이계와 친박계의 대립에 더해 안 대표와 홍 최고위원이 사사건건 충돌하면서 경선 후유증을 앓고 있다. 지도부 경선에서 ‘아쉬운’ 2위로 대표직을 내준 홍 최고위원이 당내 비주류를 자처하며 당직 개편 내용에 불만을 표출하는 등 안 대표를 강하게 견제하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 지도부의 부분적인 세대교체도 박 전 대표에겐 부담이다. 47세의 나경원, 53세의 정두언 최고위원이 당당히 지도부에 입성했고, 사무총장은 46세의 원희룡 의원이 맡았다. 특히 한나라당 소장개혁파를 이끄는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이 서서히 당의 전면에 나서면서 차세대 리더그룹으로 등장한 것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래저래 박 전 대표에게 위기의 계절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