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수신료 문제는 한국뿐 아니라 독일에서도 논란거리다. 한국에서는 수신료 인상이 쟁점인 반면, 독일에서는 징수 대상과 방법이 문제다. 독일에는 공영방송 수신료 징수센터(Gebuhreneinzugszentrale·이하 GEZ)가 있다. 공영방송 채널 ARD, ZDF 및 도이체 벨레(DW), 도이칠란트 라디오(DLR) 등이 공동 설립한 기관으로 공영방송 수신료를 징수 및 관리하는 일을 한다. 독일에서는 라디오나 TV를 소유하면 물품 하나하나를 다 신고하고 수신료를 내야 한다. 현재 독일의 공영방송 수신료는 라디오 청취료가 월 5.76유로(약 8600원), 텔레비전 수신료는 월 17.98유로(약 2만7000원)다. 월 2500원인 한국의 수신료보다 10배 이상 비싸며 영국(월 2만 원), 프랑스(1만4000원), 일본(1만6000원)과 비교해도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2009년 GEZ의 수입은 공영방송 총수입의 85%에 이르는 72억6000만 유로(약 11조 원)였다.
‘공공의 적’ GEZ 조사원
독일에서는 본인이 양심껏 GEZ에 TV 몇 대, 라디오 몇 대 보유했다고 신고한 것에 따라 수신료가 부과되는데, 은폐나 축소가 비일비재하다. 예컨대 TV, 라디오 등 방송 수신기가 집과 사무실, 자동차, 가게 등에 서너 대 있으면서도 한 대만 신고하거나 아예 신고하지 않는다. 특히 이사가 잦은 외국인, 대학생, 저소득층에서 신고를 안 하는 경우가 많다. 또 중산층 가정에서도 TV를 처분하거나 새로 구입하는 등 보유 상태가 바뀔 때마다 신고하기가 번거롭기 때문에 외면한다. 2007년부터는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컴퓨터, 스마트폰 이용자도 라디오 수신료에 해당하는 월 5.76유로를 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법규가 잘 지켜지지는 않는다.
GEZ도 이런 현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불성실 신고에 대처하기 위해 취한 방법이 조사원을 보내 직접 확인하는 것. 조사원은 불시에 가정이나 가게를 방문, 신고 내용이 사실인지 꼼꼼히 조사한다. 만일 TV 등이 있는데도 신고를 하지 않았거나, 축소 신고한 것이 드러나면 그간 밀린 수신료 일체뿐 아니라 거액의 벌금을 추징한다. 일종의 일벌백계(一罰百戒)로 ‘앞으로 정확히 신고하고, 내야 할 요금은 남김없이 내라’는 경고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을 당하면 분통이 터진다. 생판 모르는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집 안 구석구석을 뒤지며 심문하듯 조사하는 것만도 기분이 나쁜데 추징금까지 내라고 하니, 저승사자가 따로 없다. 그래서 독일인들은 각 집의 뒷조사를 미리 한 뒤 한밤중에 쳐들어와 꼬치꼬치 캐묻는 GEZ 직원을 비꼬아서 ‘게슈타포(나치의 비밀경찰)’, ‘슈타지(동독 비밀경찰)’라 부르기도 한다.
안티GEZ를 표방하는 인터넷 사이트에는 조사원을 코앞에서 맞닥뜨렸을 때 당황했던 경험과 그의 대처 방법 등에 관한 글이 수없이 올라온다. 가장 좋은 대처법은 벨이 울려도 답하지 않거나, 집이 빈 것처럼 꾸미기. TV 불빛이나 소리가 새나가지 않게 하는 것은 기본이다. 그러나 며칠 전부터 지켜보면서 집주인의 출입을 파악한 뒤 TV를 시청할 만한 시점을 노려 불쑥 방문하는 조사원을 따돌리기는 쉽지 않다. 피자가 배달되는 것을 보고 따라 들어오기도 하고, 때로는 조사원이 피자배달원으로 변장하기도 한다. 조사원들은 마치 시청률을 조사하는 것처럼 꾸며 “어젯밤 월드컵 경기 중계를 재미있게 보셨는지”라고 미소 띤 얼굴로 묻고는 “3년간 밀린 TV 수신료와 과징금 1000유로!”라며 냉정하게 청구한다.
한번 이런 식으로 GEZ와 나쁜 인연을 맺으면 ‘빨간 줄’이 평생 따라다닌다. 이사를 가더라도 끝까지 따라다닌다. ‘죽기 전에는 GEZ의 마수를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GEZ에 TV 등을 신고할 때는 빠르게 일처리를 해주지만, TV를 처분했으니 탈퇴하겠다는 편지에 대해서는 잘 응답하지도 않는다. 먼 도시에서 따로 살다가 여러 해 전 세상을 떠난 부친의 밀린 수신료와 과태료를 지불하라는 청구서를 받은 사람도 있다.
TV 있으면 세금처럼 무조건 징수
수신료에 얽힌 웃지 못할 사연들도 이제는 옛이야기가 될 것 같다. 6월 9일 방송위원회에서 수신료 제도의 개혁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라디오, TV 등 방송 수신이 가능한 기기에 부과했던 요금을 2013년부터는 가정 및 사업장을 기준으로 일괄 부과하기로 했다. 앞으로 모든 가정과 회사가 수신기 유무에 상관없이 일정 액수의 방송 수신료를 기본적으로 내야 하며, 면제받으려면 본인이 장애인 또는 사회보장 대상자임을 입증해야 한다. 수신료가 사실상 세금이 된 것. 목적은 변함없이 ‘사회 공동자산인 공영방송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서’다. 방송위원회 쿠어트 벡 의장과 슈테판 마푸스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지사는 “새로운 제도가 기존 모델보다 간단하면서도 정의롭다”고 자평했다.
특히 GEZ가 나서서 집집마다 조사할 필요가 줄어든다는 점을 강조했는데, 기존 제도가 가진 문제점을 다분히 의식했기 때문이다. 새 조치는 무엇보다 공영방송의 수입 안정화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미디어 환경이 급속히 바뀌면서 기존의 TV를 처분하고 대신 컴퓨터로 방송을 즐기는 젊은이가 늘면서, 방송 수신료 수입이 갈수록 줄고 있다. 새로운 제도가 시행되면 공영방송의 수입은 매년 70억 유로 이상으로 안정될 것으로 보인다.
방송위원회는 헌법재판소 재판관 출신 파울 키르히호프 하이델베르크 대학 법학교수의 제안에 따라 이같이 결정했다. 그는 새 제도가 독일 헌법에 부합한다고 본다. 디지털, 모바일 세상에서는 공공방송을 재래식 수신기뿐 아니라 인터넷이 가능한 컴퓨터, 스마트폰 등으로 수신할 수 있어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기에 모든 사람에게 수신료를 내라고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 키르히호프 교수는 “점점 많은 사람이, 특히 젊은이들이 현행 제도의 빈틈을 이용해 신고하지 않고 공중파를 수신하는데, 젊은이들로 하여금 이렇게 불법한 행동을 하도록 유인하는 제도는 하루빨리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몇 년 후 새로운 제도가 시행되면 아마도 TV와 친하지 않은 사람이 가장 억울해할 것이다. 집에 TV가 없어도 다달이 일정 금액의 방송 수신료를 세금처럼 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도 TV를 시청하지 않더라도 수상기가 있으면 매달 17.98유로를 내야 한다. 하지만 독일 언론에서는 공중파를 고속도로나 가로등 같은 사회 인프라로 본다. 도로를 이용할 일이 없는 사람에게 걷은 세금일지라도 국가 전체를 위해 도로 개설이 필요하다 싶으면 그곳에 쓸 수 있듯, 국영방송도 국가의 이익을 위한 공공재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방송위원회의 수신료 제도 개혁 소식이 알려지자 독일 국민은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얄미운 GEZ의 존재기반이 흔들리게 됐고, 일상생활을 피곤하게 했던 ‘21세기 게슈타포’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만족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국민의 주머니 사정이 좀 더 넉넉해질지는 미지수다. 앞으로는 모두 빠짐없이 방송 수신료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액수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현재 TV 수신료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알려졌다.
‘공공의 적’ GEZ 조사원
독일에서는 본인이 양심껏 GEZ에 TV 몇 대, 라디오 몇 대 보유했다고 신고한 것에 따라 수신료가 부과되는데, 은폐나 축소가 비일비재하다. 예컨대 TV, 라디오 등 방송 수신기가 집과 사무실, 자동차, 가게 등에 서너 대 있으면서도 한 대만 신고하거나 아예 신고하지 않는다. 특히 이사가 잦은 외국인, 대학생, 저소득층에서 신고를 안 하는 경우가 많다. 또 중산층 가정에서도 TV를 처분하거나 새로 구입하는 등 보유 상태가 바뀔 때마다 신고하기가 번거롭기 때문에 외면한다. 2007년부터는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컴퓨터, 스마트폰 이용자도 라디오 수신료에 해당하는 월 5.76유로를 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법규가 잘 지켜지지는 않는다.
GEZ도 이런 현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불성실 신고에 대처하기 위해 취한 방법이 조사원을 보내 직접 확인하는 것. 조사원은 불시에 가정이나 가게를 방문, 신고 내용이 사실인지 꼼꼼히 조사한다. 만일 TV 등이 있는데도 신고를 하지 않았거나, 축소 신고한 것이 드러나면 그간 밀린 수신료 일체뿐 아니라 거액의 벌금을 추징한다. 일종의 일벌백계(一罰百戒)로 ‘앞으로 정확히 신고하고, 내야 할 요금은 남김없이 내라’는 경고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을 당하면 분통이 터진다. 생판 모르는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집 안 구석구석을 뒤지며 심문하듯 조사하는 것만도 기분이 나쁜데 추징금까지 내라고 하니, 저승사자가 따로 없다. 그래서 독일인들은 각 집의 뒷조사를 미리 한 뒤 한밤중에 쳐들어와 꼬치꼬치 캐묻는 GEZ 직원을 비꼬아서 ‘게슈타포(나치의 비밀경찰)’, ‘슈타지(동독 비밀경찰)’라 부르기도 한다.
안티GEZ를 표방하는 인터넷 사이트에는 조사원을 코앞에서 맞닥뜨렸을 때 당황했던 경험과 그의 대처 방법 등에 관한 글이 수없이 올라온다. 가장 좋은 대처법은 벨이 울려도 답하지 않거나, 집이 빈 것처럼 꾸미기. TV 불빛이나 소리가 새나가지 않게 하는 것은 기본이다. 그러나 며칠 전부터 지켜보면서 집주인의 출입을 파악한 뒤 TV를 시청할 만한 시점을 노려 불쑥 방문하는 조사원을 따돌리기는 쉽지 않다. 피자가 배달되는 것을 보고 따라 들어오기도 하고, 때로는 조사원이 피자배달원으로 변장하기도 한다. 조사원들은 마치 시청률을 조사하는 것처럼 꾸며 “어젯밤 월드컵 경기 중계를 재미있게 보셨는지”라고 미소 띤 얼굴로 묻고는 “3년간 밀린 TV 수신료와 과징금 1000유로!”라며 냉정하게 청구한다.
한번 이런 식으로 GEZ와 나쁜 인연을 맺으면 ‘빨간 줄’이 평생 따라다닌다. 이사를 가더라도 끝까지 따라다닌다. ‘죽기 전에는 GEZ의 마수를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GEZ에 TV 등을 신고할 때는 빠르게 일처리를 해주지만, TV를 처분했으니 탈퇴하겠다는 편지에 대해서는 잘 응답하지도 않는다. 먼 도시에서 따로 살다가 여러 해 전 세상을 떠난 부친의 밀린 수신료와 과태료를 지불하라는 청구서를 받은 사람도 있다.
TV 있으면 세금처럼 무조건 징수
수신료에 얽힌 웃지 못할 사연들도 이제는 옛이야기가 될 것 같다. 6월 9일 방송위원회에서 수신료 제도의 개혁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라디오, TV 등 방송 수신이 가능한 기기에 부과했던 요금을 2013년부터는 가정 및 사업장을 기준으로 일괄 부과하기로 했다. 앞으로 모든 가정과 회사가 수신기 유무에 상관없이 일정 액수의 방송 수신료를 기본적으로 내야 하며, 면제받으려면 본인이 장애인 또는 사회보장 대상자임을 입증해야 한다. 수신료가 사실상 세금이 된 것. 목적은 변함없이 ‘사회 공동자산인 공영방송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서’다. 방송위원회 쿠어트 벡 의장과 슈테판 마푸스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지사는 “새로운 제도가 기존 모델보다 간단하면서도 정의롭다”고 자평했다.
특히 GEZ가 나서서 집집마다 조사할 필요가 줄어든다는 점을 강조했는데, 기존 제도가 가진 문제점을 다분히 의식했기 때문이다. 새 조치는 무엇보다 공영방송의 수입 안정화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미디어 환경이 급속히 바뀌면서 기존의 TV를 처분하고 대신 컴퓨터로 방송을 즐기는 젊은이가 늘면서, 방송 수신료 수입이 갈수록 줄고 있다. 새로운 제도가 시행되면 공영방송의 수입은 매년 70억 유로 이상으로 안정될 것으로 보인다.
방송위원회는 헌법재판소 재판관 출신 파울 키르히호프 하이델베르크 대학 법학교수의 제안에 따라 이같이 결정했다. 그는 새 제도가 독일 헌법에 부합한다고 본다. 디지털, 모바일 세상에서는 공공방송을 재래식 수신기뿐 아니라 인터넷이 가능한 컴퓨터, 스마트폰 등으로 수신할 수 있어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기에 모든 사람에게 수신료를 내라고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 키르히호프 교수는 “점점 많은 사람이, 특히 젊은이들이 현행 제도의 빈틈을 이용해 신고하지 않고 공중파를 수신하는데, 젊은이들로 하여금 이렇게 불법한 행동을 하도록 유인하는 제도는 하루빨리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몇 년 후 새로운 제도가 시행되면 아마도 TV와 친하지 않은 사람이 가장 억울해할 것이다. 집에 TV가 없어도 다달이 일정 금액의 방송 수신료를 세금처럼 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도 TV를 시청하지 않더라도 수상기가 있으면 매달 17.98유로를 내야 한다. 하지만 독일 언론에서는 공중파를 고속도로나 가로등 같은 사회 인프라로 본다. 도로를 이용할 일이 없는 사람에게 걷은 세금일지라도 국가 전체를 위해 도로 개설이 필요하다 싶으면 그곳에 쓸 수 있듯, 국영방송도 국가의 이익을 위한 공공재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방송위원회의 수신료 제도 개혁 소식이 알려지자 독일 국민은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얄미운 GEZ의 존재기반이 흔들리게 됐고, 일상생활을 피곤하게 했던 ‘21세기 게슈타포’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만족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국민의 주머니 사정이 좀 더 넉넉해질지는 미지수다. 앞으로는 모두 빠짐없이 방송 수신료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액수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현재 TV 수신료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