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 위장조영술을 받고 있는 모습. 위내시경이 거북한 사람들에게 안성맞춤이다.
학창시절부터 같이 담배를 피웠던 친구들도 하나 둘 금연을 결심했건만 ‘직업적 특성’이라는 변명 아닌 변명으로 지금까지 줄기차게 담배를 피웠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레 흡연족의 설 자리는 좁아졌다. ‘그래, 이렇게까지 피울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에 서울 성동구에 자리한 성동구 보건소 금연클리닉 문을 두드렸다.
“잘 오셨습니다. 금연클리닉을 찾은 것만으로 절반은 금연을 한 것입니다.”
이진숙 금연상담사는 반갑게 맞이하면서 금연클리닉 등록카드를 건넸다. 등록카드에는 하루에 피우는 담배 개수로 니코틴 의존도를 평가하는 항목이 포함돼 있다. 등록카드를 작성한 뒤, 일산화탄소를 측정하기 위해 측정기구를 입에 물었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10초간 숨을 참으세요. 원통 부위를 입에 꽉 물어 숨을 불어넣은 다음, 천천히 끝까지 부세요.”
수치는 7. 아직은 ‘Light Smoker’로 나타났다. 다시 한 번 심호흡을 한 뒤 수치를 측정하니 6으로 낮아졌다. 이처럼 간단한 심호흡만으로도 일산화탄소 수치를 낮출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금연상담은 시작됐다. 처음부터 금연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흡연 횟수를 줄이는 감연법을 선택할 수도 있다. 감연법과 금연지침서가 적힌 용지에 이진숙 금연상담사는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어가며 설명했다.
“왜 금연해야 하는지 금연 동기를 다섯 가지 적어보세요. 술, 커피, 기름진 음식 등은 피하고 금연초나 전자담배도 사용하지 마세요. 술자리나 당구 등 흡연을 많이 했던 장소와 상황도 의도적으로 피하세요.”
보통 상담은 20분 내외. 처음 6주간은 매주 한 번씩 금연클리닉을 찾아야 한다. 금연클리닉을 이용하더라도 별도의 비용을 지불하지는 않는다. 이후 전화, e메일, 상담사 방문 등으로 금연 시작 후 6개월까지 성공 여부를 확인한다. 중도에 연락이 되지 않아 금연에 실패한 경우 중간 종결로 처리한다.
비단 성동구만이 아니다. 서울시 25개 자치구 어디를 가더라도 금연클리닉을 이용할 수 있다. 서울시청 건강증진담당관 건강생활팀 신차수 금연사업담당자는 “자치구당 2~5명의 금연상담사가 배치돼 흡연시민을 대상으로 상담 및 약물요법을 제공한다. 연 6만여 명이 금연클리닉에 등록하고 금연성공률도 45% 이상”이라고 밝혔다.
향후 10년을 위한 건강증진 2020
금연클리닉은 흡연으로 폐암 등 각종 질병을 앓기 전에 예방, 관리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외에도 지자체 보건소를 찾으면 대사증후군 예방, 비만관리, 치매검진 등을 무료 또는 실비로 받을 수 있다. 보건소는 개인의 상태에 맞는 건강교육을 제공하고 적절한 운동과 식단을 처방해주며, 필요할 때 병원 방문 및 건강검진을 제안한다. 또한 구로알코올상담센터 등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가 지정한 알코올상담센터를 찾으면 무료로 알코올중독 진단검사를 받을 수 있으며 중독 정도에 따라 맞춤형 치료도 가능하다. 이처럼 그동안 급성질환 중심으로 보건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양적 확대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질병의 예방과 건강증진을 중시하는 건강관리의 개념으로 패러다임이 변화했다.
기존의 보건의료 패러다임에서는 중증질환 치료를 제외한 예방, 진단, 사후관리의 상당 부분이 개인의 몫이었다. 하지만 개인이 어떻게 건강을 지켜야 하는지 그 방법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전문가에게 물어보기도 쉽지 않고 혼자서 운동하기도 쉽지 않다. 만성질환에 걸린 뒤 스스로 혈압, 혈당 등을 측정하며 건강관리를 하기가 여간 번거롭지 않다.
이런 어려움을 해결해주기 위해 나타난 개념이 바로 건강관리 서비스다. 건강관리 서비스란 생활습관을 개선하고 만성질환을 예방, 관리해 소비자가 건강해지도록 돕는 서비스를 말한다. 전문 의료인이 하는 진단과 치료 이외의 부분, 즉 운동처방과 식이조절 같은 생활습관 개선 활동, 상시 측정 및 관찰을 통한 질환의 조기발견, 만성질환의 사후관리 등 건강과 관련된 다양한 영역을 망라한다.
다양한 영역 망라한 ‘건강관리 서비스’
이러한 건강관리 서비스는 민간 건강관리 서비스 기업 및 병·의원, 민간 건강보험회사가 설립한 건강관리서비스기관 등 다양한 주체에 의해 제공될 수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법제화가 되지 않아 본격적인 건강관리 서비스는 제공되기 어렵다. 복지부는 오는 상반기 안에 건강관리 서비스에 관한 내용이 담긴 법안을 발의한다는 방침이다. 복지부 건강정책국 최희주 국장은 “법안이 통과되면 민간단체, 의료기관 등 다양한 주체에 의해 건강관리 서비스가 제공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고소득층이 아닌 중산층도 적정한 비용을 제공하면 건강관리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정부는 취약계층에겐 바우처를 제공해 싼 가격으로 받게 하거나 그마저도 어려운 사람은 보건소에서 건강관리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정책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질병예방과 건강증진 중심으로 정책 방향이 전환된 근본적인 원인은 질병구조의 변화에 있다. 1970~80년대를 거치면서 콜레라, 장티푸스, 백일해, 홍역 등 급성 전염성 질환은 백신 공급의 확대와 위생환경의 개선으로 대폭 감소한 반면 고혈압, 당뇨병, 암 등 만성질환은 생활양식의 변화, 노인인구의 증가 등 생활환경이 악화되면서 크게 증가했다.
1995년 국민건강증진법이 제정됨에 따라 1997년 7월부터 ‘국민건강증진기금’을 조성해 건강증진사업 추진을 위한 재원을 마련했다. 담배 한 갑당 2원씩 건강증진기금을 부과해 총 136억2700만 원을 조성했다. 또한 1998년에는 복지부에 건강증진 전담조직으로 보건증진국 건강증진과를 설치해 9개 건강증진 거점보건소에서 고혈압, 뇌졸중 관리 등 건강증진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건강증진 사업 추진을 위한 예산과 조직이 확보되자 2002년에는 ‘국민건강증진 종합계획 2010’을 수립해 본격적인 건강증진 정책을 실시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 2010’은 건강생활실천, 정신보건 등 6대 부문 40개 항목에 대한 2010년 목표치와 추진전략을 제시했고, 2010년까지 보건소 등 공공보건기관 시설 장비 지원에 5735억 원을 투자하는 등 총 6067억 원의 투자계획을 수립했다.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 2020’은 2011년부터 2020년까지 시행할 다양한 건강증진 정책의 기본이 된다. 이 계획은 건강증진의 기본 이념에 스스로 관리하는 건강과 기본권으로서의 건강개념을 적용했으며, 건강수명의 연장과 건강형평성의 제고를 목표로 하는 건강관리 서비스의 개념을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 △건강생활 실천 확산 △예방 중심 상병관리 △인구집단별 건강관리 △안전·환경 보건 등을 사업과제로 삼아 △건강잠재력 강화 △질병과 조기사망 감소 △인구계층 간 건강 격차 완화를 이뤄 건강수명을 연장해 건강형평성을 제고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다 보니 정부의 건강 정책 역시 예방 및 관리에 방점이 찍혀 있다. 복지부는 2010년 건강정책 과제 중 우선과제로 ‘건강한 생활실천을 위한 환경 조성’을 꼽았다. 흡연, 비만, 음주 등을 조성할 수 있는 환경을 원천적으로 막는다는 것. 먼저 흡연율 감소를 위한 금연 정책을 추진해 남성 흡연율을 2009년 43.1%에서 2020년 20%로 낮춘다는 게 목표다.
1 일산화탄소 측정을 위해 측정기구를 입에 문다. 2 설문 작성을 바탕으로 금연상담사가 금연지침서를 설명한다. 3 금연상담사는 금연을 돕기 위해 영양제, 껌, 가글 등을 제공한다.
스스로 관리하는 건강과 기본권
이를 위해 흡연경고 그림제 도입, PC방 등 공중 이용시설의 실내외 공간 금연구역 지정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최은진 박사는 “아무리 개인이 건강을 챙기려고 해도 환경적 문제 때문에 건강증진 행위가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음주를 하지 않고 싶지만, 직장 술자리 문화 탓에 금주를 못하는 경우 개인의 의지에 책임을 돌릴 것이 아니라 환경을 어떻게 해결할지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설명했다.
생활행태 개선 등을 통한 비만예방 정책도 추진한다. e-건강다이어리 구축, 비만바로알기 책자 보급, 유치원·초·중·고 대상 비만예방교육 교육지도안 및 도구개발 보급, 식생활지침 배포 등을 통해 스스로 비만을 예방하고 건강 돌봄을 실천할 수 있는 교육자료를 보급한다. 건전한 음주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음주폐해 예방 및 알코올중독 재활 대책’도 마련한다. 주류 광고에 지나친 음주는 건강에 해롭다는 광고문구를 표기하는 것을 의무화하고, 학교·청소년 수련시설·의료기관 등 공중 이용시설에서의 주류 판매 및 음주행위를 금지한다. 41개 알코올상담센터 운영지원을 통해 알코올 관련 질환 치료 및 재활 서비스 강화로 사회 복귀를 도모한다는 방침이다. 이 밖에 △임신·출산에 대한 사회적 지원 강화 △취약계층에 대한 우선적 건강관리 △만성질환 사전예방이 중점 과제로 추진된다.
앞으로 건강관리 서비스는 건강증진 정책의 중심기조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LG경제연구소 윤수영 책임연구원은 “건강관리 서비스는 일반 소비자의 평소 건강관리에도 도움을 주며, 급증하는 의료비용을 줄인다는 점에서 각국 정부로부터 각광받고 있다”고 말했다. 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을 비롯해 식품의약품안전청, 국민건강보험공단 등 관련 기관은 5월 초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건강박람회 2관 ‘건강 Life 미래관’에서 변화된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 2020’의 정책방향을 적극적으로 알릴 예정이다. 참가자들은 정부 정책의 큰 흐름을 알 수 있는 것은 물론 지자체와 민간단체들이 제공하는 알코올중독 진단검사, 일산화탄소 측정 및 금연상담 등 건강관리 서비스를 무료로 체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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