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진정한 의미의 농민이 얼마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4월 27일 오전 농업협동조합법 일부개정 법률안(이하 농협법 개정안) 공청회에서 진술인의 발표가 끝난 뒤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이 다소 도발적인 질의를 던지자, 1시간여 동안 이어진 진술인의 발표로 적막감마저 흐르던 공청회장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공 의원의 질의에 즉각 농협 측 조합대표인 울산 농소농협 박기수 조합장이 “국민의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진정한 의미의 농민은 많다”고 반박했다. 이후에도 농협과 보험업계 측 진술인들에게 의원들의 날카로운 질의가 이어졌지만 이날의 타깃은 농협이었다.
“과학적으로 신중히 시뮬레이션 하지 않으면 법안을 졸속 처리할 수 있다.”(공성진 의원)
“농협이 과연 보험업계 4위의 경쟁력을 갖고 있느냐?”(권택기 의원)
질의응답이 진행되면서 농협 측 진술인의 억양은 격앙됐고, 회의장 뒤편 농협 관계자들의 움직임은 분주해졌다.
공청회에서 얼굴 붉히며 대치
이날 공청회는 국회 정무위원회(이하 정무위)가 농협공제의 농협보험회사 전환과 관련해 각계 전문가의 의견을 듣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상임위원회 중 농협법 개정안을 소관하는 농림수산식품위원회(이하 농식품위)가 아닌, 보험업계의 주장을 대변하는 정무위가 열렸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그동안 정부는 방만한 조직인 농협을 개혁하기 위해 농협중앙회의 신용(금융)사업과 경제(농축산물 유통)사업을 분리해 각각 금융지주회사, 경제지주회사를 설립하는 소위 ‘신경분리’를 적극 추진해왔다. 이에 보험업계는 농협공제의 보험회사 전환을 허용하는 농협법 개정안에 각종 특례인정 조항이 들어 있다는 이유로 반대에 나섰다.
정부가 제출한 농협법 개정안은 농협의 보험사 설립을 허용하고, 농협은행과 조합을 금융기관 보험대리점으로 등록하도록 했다. 또한 퇴직연금보험은 5년간 판매를 금지하며 방카슈랑스 25%룰(금융회사가 특정 보험사 상품을 25% 이상 판매할 수 없는 규정)을 5년간 유예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농협과 보험업계는 △농협 단위조합의 법적 성격 △방카슈랑스 규정 적용 유예 △공제 모집 자격 △퇴직연금보험 판매 여부 등 주요 쟁점을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워왔다.
보험업계는 “농협공제가 보험회사로 전환하려면 농협법이 아닌 보험업법에 따른 정식 허가 절차를 거치고 요건을 갖추는 등 관련 법규를 준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존 보험사와 동일한 환경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특례가 완전 배제돼야 한다는 것. 손해보험협회 양두석 상무는 “현재의 농협은 규모나 영업력에서 대형 보험사를 능가하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방카슈랑스 25%룰을 5년간 유예하는 등 농협보험회사에 여러 특혜를 주는 것은 합목적성과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단위조합을 일반 보험대리점으로 간주하자”는 농협 측의 주장에 대해선 “공정한 보험 거래질서를 해치는 행위”라며 절대 타협할 수 없다는 방침이다. 생명보험협회 관계자는 “단위조합은 농작물의 경작부터 수확, 판매에 이르기까지 일체의 과정에 적극 개입해 농업인에게 직간접적 영향력을 행사한다”며 “설사 정부안대로 단위조합을 금융기관 보험대리점으로 인정하더라도 조합은 여타 사업을 함께 영위하고 있어 일반 금융기관에 비해 고객에 대한 영향력이 더 크다. 조합에 대해선 자산이 2조 원 미만이더라도 25%룰을 적용하는 엄격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보험업계는 무엇보다도 농협법 개정안 사례가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길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당장 농협보험회사의 진출 특례를 인정하면 앞으로 우체국, 새마을금고, 수협, 신협 등 각종 공제사업이 보험회사로 전환할 때 동일한 특례를 요구할 수 있다는 것. 서울대 법학과 한기정 교수(보험연구원 연구자문위원회 위원)는 “이번 농협법 개정안의 효과는 비단 농협보험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여타 공제를 포함한 보험 전반에 파급된다”고 설명했다.
6월 지방선거 맞물려 도농 갈등으로 확전
하지만 농협 측은 정부안이 그나마 많이 양보한 편이라며, 보험업계의 주장이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말한다. 농협 금융구조개편부 박장순 보험전략팀장은 “보험업계 주장은 반대를 위한 반대 논리일 뿐”이라며 “농협은 50년간 농협법에 의해 보험업을 해온 보험시장의 기존 사업자다. 농협은 금융감독당국의 감독 일원화라는 보험정책에 부응하고자 보험시장에 진입하는 것인 만큼, 연착륙을 위해 유예기간 등 최소한의 경과조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울산 박 조합장은 “농협보험은 민영보험사가 취급할 수 없는 농작물재해보험, 농업인안전보험, 가축보험, 농기계종합보험 같은 농업인 실익보험을 취급하므로 금융기관 보험대리점이 아닌, 일반 보험대리점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지역조합이 금융기관 보험대리점이 되면 종신보험 등 일부 보장성 보험의 판매가 불가능하다. 농업인이 동일한 상품을 타 보험사에서 가입하면 위험직군으로 분류돼 가입 제한 또는 보장 수준이 낮아지는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양측의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는 만큼 미합의 쟁점도 산적해, 농협법 개정안의 4월 임시국회 통과는 물 건너갔다. 6월 지방선거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고, 선거 뒤 국회 하반기 원 구성으로 농식품위 위원들의 자리 이동이 불가피해지면서 농협법 개정안 처리는 상당기간 지연될 전망이다. 농협과 농식품위는 시기가 조금 미뤄져도 국회통과를 확신하는 반면, 보험업계는 일단 시간을 번 데 안도하고 있다.
현재 국회엔 정부안, 김춘진 의원안, 김영록 의원안, 강기갑 의원안 등 4개의 농협법 개정안이 제출된 상태다. 농식품위 관계자는 “결국 정부안과 여타 의원안이 절충된 선에서 결정되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그러다 보니 농협과 보험업계 모두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법안 개정을 이끌어내기 위해 모든 정치력과 로비력을 동원할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 과정에서 양측은 여론전도 불사하겠다는 각오다. 실제 농협과 보험업계 모두 매머드급 조직을 갖추고 있어 표심을 좌우한다. 농협은 조합원이 180여만 명에 달한다. 보험업계 역시 설계사만 약 25만 명에 이르며, 5만8000개의 대리점과 대리점에 소속된 10만여 명의 보험사용인이 있다. 농협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농협 조합장은 지역유지가 맡으며 선거 등에서 적지 않은 정치력을 행사한다. 농촌에 기반을 둔 의원들은 (농협 측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특히 6·2지방선거와 맞물리면서 여야 모두 농협법 처리에 대한 득표 계산에 분주하다. 농촌지역 출신 의원이 대다수인 농식품위는 농협 쪽으로, 보험업계를 대변하며 설계사와 대기업 등 도시에 기반을 둔 의원이 많은 정무위는 보험업계 쪽으로 기운 모양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양측의 여론전이 본격화하면서 자극적인 공격이 오갈 경우 도농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4월 27일 오전 농업협동조합법 일부개정 법률안(이하 농협법 개정안) 공청회에서 진술인의 발표가 끝난 뒤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이 다소 도발적인 질의를 던지자, 1시간여 동안 이어진 진술인의 발표로 적막감마저 흐르던 공청회장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공 의원의 질의에 즉각 농협 측 조합대표인 울산 농소농협 박기수 조합장이 “국민의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진정한 의미의 농민은 많다”고 반박했다. 이후에도 농협과 보험업계 측 진술인들에게 의원들의 날카로운 질의가 이어졌지만 이날의 타깃은 농협이었다.
“과학적으로 신중히 시뮬레이션 하지 않으면 법안을 졸속 처리할 수 있다.”(공성진 의원)
“농협이 과연 보험업계 4위의 경쟁력을 갖고 있느냐?”(권택기 의원)
질의응답이 진행되면서 농협 측 진술인의 억양은 격앙됐고, 회의장 뒤편 농협 관계자들의 움직임은 분주해졌다.
공청회에서 얼굴 붉히며 대치
이날 공청회는 국회 정무위원회(이하 정무위)가 농협공제의 농협보험회사 전환과 관련해 각계 전문가의 의견을 듣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상임위원회 중 농협법 개정안을 소관하는 농림수산식품위원회(이하 농식품위)가 아닌, 보험업계의 주장을 대변하는 정무위가 열렸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그동안 정부는 방만한 조직인 농협을 개혁하기 위해 농협중앙회의 신용(금융)사업과 경제(농축산물 유통)사업을 분리해 각각 금융지주회사, 경제지주회사를 설립하는 소위 ‘신경분리’를 적극 추진해왔다. 이에 보험업계는 농협공제의 보험회사 전환을 허용하는 농협법 개정안에 각종 특례인정 조항이 들어 있다는 이유로 반대에 나섰다.
정부가 제출한 농협법 개정안은 농협의 보험사 설립을 허용하고, 농협은행과 조합을 금융기관 보험대리점으로 등록하도록 했다. 또한 퇴직연금보험은 5년간 판매를 금지하며 방카슈랑스 25%룰(금융회사가 특정 보험사 상품을 25% 이상 판매할 수 없는 규정)을 5년간 유예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농협과 보험업계는 △농협 단위조합의 법적 성격 △방카슈랑스 규정 적용 유예 △공제 모집 자격 △퇴직연금보험 판매 여부 등 주요 쟁점을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워왔다.
보험업계는 “농협공제가 보험회사로 전환하려면 농협법이 아닌 보험업법에 따른 정식 허가 절차를 거치고 요건을 갖추는 등 관련 법규를 준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존 보험사와 동일한 환경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특례가 완전 배제돼야 한다는 것. 손해보험협회 양두석 상무는 “현재의 농협은 규모나 영업력에서 대형 보험사를 능가하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방카슈랑스 25%룰을 5년간 유예하는 등 농협보험회사에 여러 특혜를 주는 것은 합목적성과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단위조합을 일반 보험대리점으로 간주하자”는 농협 측의 주장에 대해선 “공정한 보험 거래질서를 해치는 행위”라며 절대 타협할 수 없다는 방침이다. 생명보험협회 관계자는 “단위조합은 농작물의 경작부터 수확, 판매에 이르기까지 일체의 과정에 적극 개입해 농업인에게 직간접적 영향력을 행사한다”며 “설사 정부안대로 단위조합을 금융기관 보험대리점으로 인정하더라도 조합은 여타 사업을 함께 영위하고 있어 일반 금융기관에 비해 고객에 대한 영향력이 더 크다. 조합에 대해선 자산이 2조 원 미만이더라도 25%룰을 적용하는 엄격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보험업계는 무엇보다도 농협법 개정안 사례가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길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당장 농협보험회사의 진출 특례를 인정하면 앞으로 우체국, 새마을금고, 수협, 신협 등 각종 공제사업이 보험회사로 전환할 때 동일한 특례를 요구할 수 있다는 것. 서울대 법학과 한기정 교수(보험연구원 연구자문위원회 위원)는 “이번 농협법 개정안의 효과는 비단 농협보험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여타 공제를 포함한 보험 전반에 파급된다”고 설명했다.
6월 지방선거 맞물려 도농 갈등으로 확전
농협법 개정안을 두고 소관 상임위인 농림수산식품위원회와 보험업계를 대변하는 정무위원회의 기싸움이 팽팽하다.
울산 박 조합장은 “농협보험은 민영보험사가 취급할 수 없는 농작물재해보험, 농업인안전보험, 가축보험, 농기계종합보험 같은 농업인 실익보험을 취급하므로 금융기관 보험대리점이 아닌, 일반 보험대리점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지역조합이 금융기관 보험대리점이 되면 종신보험 등 일부 보장성 보험의 판매가 불가능하다. 농업인이 동일한 상품을 타 보험사에서 가입하면 위험직군으로 분류돼 가입 제한 또는 보장 수준이 낮아지는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양측의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는 만큼 미합의 쟁점도 산적해, 농협법 개정안의 4월 임시국회 통과는 물 건너갔다. 6월 지방선거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고, 선거 뒤 국회 하반기 원 구성으로 농식품위 위원들의 자리 이동이 불가피해지면서 농협법 개정안 처리는 상당기간 지연될 전망이다. 농협과 농식품위는 시기가 조금 미뤄져도 국회통과를 확신하는 반면, 보험업계는 일단 시간을 번 데 안도하고 있다.
현재 국회엔 정부안, 김춘진 의원안, 김영록 의원안, 강기갑 의원안 등 4개의 농협법 개정안이 제출된 상태다. 농식품위 관계자는 “결국 정부안과 여타 의원안이 절충된 선에서 결정되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그러다 보니 농협과 보험업계 모두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법안 개정을 이끌어내기 위해 모든 정치력과 로비력을 동원할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 과정에서 양측은 여론전도 불사하겠다는 각오다. 실제 농협과 보험업계 모두 매머드급 조직을 갖추고 있어 표심을 좌우한다. 농협은 조합원이 180여만 명에 달한다. 보험업계 역시 설계사만 약 25만 명에 이르며, 5만8000개의 대리점과 대리점에 소속된 10만여 명의 보험사용인이 있다. 농협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농협 조합장은 지역유지가 맡으며 선거 등에서 적지 않은 정치력을 행사한다. 농촌에 기반을 둔 의원들은 (농협 측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특히 6·2지방선거와 맞물리면서 여야 모두 농협법 처리에 대한 득표 계산에 분주하다. 농촌지역 출신 의원이 대다수인 농식품위는 농협 쪽으로, 보험업계를 대변하며 설계사와 대기업 등 도시에 기반을 둔 의원이 많은 정무위는 보험업계 쪽으로 기운 모양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양측의 여론전이 본격화하면서 자극적인 공격이 오갈 경우 도농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