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2주년을 맞아 2월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한나라당 당직자들과의 오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6월 지방선거가 끝나면 또 하나의 난제가 추가된다. 지방선거 결과 한나라당이 패배한다면 이에 대한 책임소재를 가리고 정국 주도권을 다시 잡는 게 쉽지 않을 터. 실패하면 자칫 ‘조기 레임덕’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명박 정부는 이 같은 위기에 대한 대응전략 차원에서 ‘개헌’ 카드 활용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선거 이후 정치권에서 개헌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주호영 특임장관은 최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정치권의 개헌논의는 민주당의 입장에 달려 있다. 지방선거 이전에 하자고 말했더니 정권심판에 대한 이슈를 무력화하려는 것 아니냐면서 반대했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면 반대할 명분이 없다. 지방선거가 끝나고 6월 국회가 시작하면 개헌특위 구성을 놓고 여야 간 협상이 시작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주 장관은 이어 개헌에 대한 청와대의 역할을 묻자 “청와대가 나서면 의심을 받는다. 그래서 일단 지켜볼 것이다. 하지만 국회가 너무 시간만 끌면 다시 고민해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국회에서의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청와대가 직접 나설 수 있다는 얘기다.
18대 국회의원 대부분 개헌의 필요성에 공감대를 갖고 있다. 한나라당 이주영 의원과 민주당 이낙연 의원, 자유선진당 이상민 의원이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미래한국헌법연구회’는 여야 의원 186명이 가입한 국회 최대 규모의 연구단체다. 18대 국회 개원 직후 만들어진 헌법연구회는 그동안 국회 내 개헌논의를 주도해왔다.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한 각종 설문조사를 보면 90%에 가까운 의원이 개헌에 찬성했다. 그러면서도 정작 개헌논의를 공론화하지 않은 것은 논의시기를 둘러싸고 여야의 정치적 계산이 달랐기 때문이다.
18대 의원 61% ‘중임대통령제’ 선호
지난 2월 25일 이명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지도부 및 당직자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개헌’의 필요성을 언급했지만 야당의 반발로 ‘찻잔 속 소용돌이’에 그친 것도 같은 이유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개헌정국이 선거에 유리할 것으로 판단한 여당과 ‘이명박 정권 중간심판론’을 내세우려는 야당의 정치적 셈법이 달랐던 것이다.
하지만 지방선거가 끝나면 여야 모두 개헌논의를 더 이상 미룰 이유가 없다. 오히려 차기 권력을 두고 여야 간, 각 계파 간 이합집산을 위해서라도 개헌이라는 정치적 이슈가 필요할 것이라는 게 정치권 안팎의 중론이다. 실제 그동안 여야 지도부의 발언이나 분위기를 보면 지방선거 이후 개헌논의는 본격화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 2월 이 대통령의 개헌 발언을 전후로 한나라당 내 친이(친이명박)계 인사들도 개헌에 대한 생각을 쏟아냈다. 정두언 의원은 “개헌을 본격적으로 논의할 시점이 됐다. 지방선거가 끝나면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도 “올해 연말까지 개헌을 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정몽준 대표와 안상수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도 하루빨리 개헌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친박(친박근혜)계도 마찬가지다. 이정현 의원은 “18대 국회 시작과 동시에 개헌을 추진했어야 하는데, 벌써 2년이라는 시간을 허송세월했다. 개헌논의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다만 “친이와 친박을 나누고 여야가 갈려 정파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국민이 공감하고 시대적 요망에 맞도록 하는 것이 개헌의 절대적 조건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측도 지방선거 이후 개헌논의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한다. 정세균 대표는 3월 11일 한 토론회에서 개헌문제에 대해 “지방선거가 끝나면 당 차원의 진지한 검토와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언급했다.
문제는 개헌의 방향이다. 현재 대세는 ‘4년 중임대통령제’다.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와 한국의회발전연구회가 지난해 말 18대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의식조사 결과(734호 커버스토리 참조) 응답자 238명 중 146명이 ‘중임대통령제’를 선호한다고 답했다. 비율로는 61.3%에 해당한다. 그 뒤를 이어 ‘내각책임제’ 13.9%, ‘단임대통령제’ 9.2%, ‘이원집정부제’ 8.4% 순으로 나타났다.
주목할 것은 중임대통령제를 당론으로 채택한 민주당보다 한나라당 의원의 선호도가 더 높다는 것. 중임대통령제를 선호한다고 응답한 민주당 의원의 비율은 57.4%인데, 한나라당 의원의 비율은 67.6%나 됐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지적하면서 내각책임제나 분권형 대통령제인 이원집정부제로의 개헌을 희망하는 청와대와 한나라당 내 친이계 주류 측의 흐름과는 거리가 있다.
친박계 “다른 의도 있으면 곤란”
이처럼 중임대통령제 선호도가 절대적으로 우세한 상황에서 내각책임제나 이원집정부제로의 개헌이 과연 가능할까. 이 같은 의문에 대한 주 장관의 설명에서 청와대와 친이계 내부의 강한 의지가 엿보인다.
“앞으로의 개헌논의는 중임(대통령)제냐 이원집정부제냐가 핵심이 될 것이다. 그동안 5년 단임대통령제는 기간이 너무 짧아 책임정치를 구현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다. 대통령제는 대통령에게 권력이 너무 집중되는 게 문제였다. 그렇다면 개선의 방향은 대통령 임기를 늘릴 것이냐, 아니면 대통령의 권한을 약화시킬 것이냐가 될 것이다. 이 두 가지를 놓고 장단점을 논의하다 보면 의원들의 생각이 많이 바뀔 것이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청와대와 친이계가 대통령의 권한을 크게 약화시키는 내각제 또는 이원집정부제를 선호하는 데는 차기 권력에 가장 근접한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한 견제심리가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서 권력분점을 노리는 민주당과 한나라당 내 친이계가 개헌논의 과정에서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를 고리로 정치적 담합을 시도할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친박계도 청와대와 친이계의 의도를 순수하게 보지 않는 분위기다. 이정현 의원은 “현행 대통령제에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문제가 있다면, 당장 이명박 대통령부터 집중된 권력을 분산하고 3권 분립을 확실하게 지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지도 않으면서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로의 개헌을 주장한다면 그건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내각책임제나 이원집정부제를 가장 선호하는 정당은 자유선진당이다. 친이계가 자유선진당과 힘을 합친다 해도 현재로서는 그 힘이 미미하다. ‘개헌’이라는 이슈를 통해 난제들의 ‘출구전략’을 모색하고 정국운영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 내 친이계 주류들의 시도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