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세종시 원안 추진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6·2지방선거 중앙선거대책위원장 빅딜설이 나오고 있다.
“대표님, 제가 이번에 대구시장 선거에 나가려고 합니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김 전 의원은 17대 국회의원(경북 군위·의성·청송)을 지내던 때인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의 대변인을 지낼 정도로 친박(친박근혜)계의 핵심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반면 김범일 현 대구시장은 친이(친이명박) 성향으로 분류된다. 따라서 박 전 대표의 정치적 텃밭인 대구에서 김 시장의 대항마로 친박계 인사가 나설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2006년 지방선거 때도 친박계인 서상기 의원(대구 북을)이 김 시장과 후보 경선을 치렀다가 고배를 마신 바 있다. 이번에도 서 의원은 리턴매치를 준비해왔으나 3월 12일 돌연 불출마를 선언했다.
한나라당 대구시당위원장이며 IT 전문가인 서 의원은 “시장 출마보다 지역 국회의원으로 남아 있으면서 대구를 첨단과학기술도시로 만드는 데 적극 지원하겠다”고 불출마의 변을 밝혔다. 하지만 대구시장 재도전을 시사한 뒤에도 좀처럼 지지율이 오르지 않자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 의원의 불출마 선언이 나오자 그렇다면 친박계를 대표해서 누가 김 시장과 겨룰 것인지가 지역 정가의 화제가 됐다. 서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하기 이전부터 대구의 친박계 의원들은 유승민 의원(대구 동을)이 나서야 승산이 있다며 출마를 권유했다. 그러나 유 의원은 “나의 인생 스케줄에는 대구시장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 틈새를 김 전 의원이 비집고 들어간 셈이다.
박근혜 측근들 “박심은 무심(無心)”
박 전 대표는 김 전 의원이 전화를 걸어 사실상의 ‘대구시장 출마 승인’을 요청하자 “결심을 단단히 하신 모양이네요. 알았어요”라고만 응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말을 ‘허락’으로 받아들인 김 전 의원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구시장 출마를 공식 선언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 소식을 전해들은 대구지역 친박계 일부 의원이 “대구 의원들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무슨 출마냐”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는 바람에 기자회견을 취소하고 뜻을 접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대구지역 모 친박계 의원이 박 전 대표의 의중을 직접 알아본 결과, 김 전 의원의 출마에 부정적인 듯한 말을 듣고 그를 주저앉혔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 의원은 “박 전 대표와 통화를 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지만, 김 전 의원 측은 ‘박심(朴心)’이 작용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번 일은 세종시 수정 문제를 놓고 이명박 대통령과 맞선 박 전 대표가 6·2지방선거에 개입할지 여부와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박 전 대표의 측근들은 일단 “지방선거에 대한 ‘박심’은 무심(無心)”이라고 입을 모은다. 박 전 대표가 지방선거 공천과 관련해 ‘공정성’만 강조할 뿐 특정 지역에 누구를 내세워야 한다는 식의 간섭은 하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그럼에도 차기 대권가도를 달리는 박 전 대표로서는 지방권력의 향배를 좌우할 지방선거에 무심할 수는 없으리란 견해가 많다. 이번 대구시장 경선 구도를 둘러싼 해프닝 역시 이런 차원에서 해석할 수 있다.
현재 박 전 대표의 지방선거 개입과 관련한 궁금증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한나라당 공천에 의견을 내놓느냐고, 다른 하나는 ‘선거의 여왕’으로 불리는 그가 본선에 들어갔을 때 한나라당 후보들을 위해 선거 지원에 나설 것인지 여부다.
먼저 공천 문제에 대해선 박 전 대표가 공개적으로 구체적인 생각을 내놓을 가능성은 낮다. 다만 친박계 내부에서 의견을 제시하면 사안별로 ‘박심’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은연중 교통정리가 되지 않겠느냐는 분석이 나온다. 서 의원이 갑자기 대구시장 불출마를 선언한 것이나 부산시장 후보 경선을 앞두고 친박계인 서병수 의원이 출마를 검토하다 불출마로 방향을 돌린 것도 결과적으로는 ‘박심’이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최근 대구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하려다 뜻을 접은 김재원 전 의원. 김 의원의 출마 포기에도 ‘박심(朴心)’이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세종시 원안 처리가 필요조건
우여곡절을 겪은 뒤 한나라당 공천이 마무리되고 본선에 돌입했을 때 박 전 대표가 선거지원 유세에 나설지도 관심사다. 박 전 대표는 2007년 대선후보 경선 패배 이후 18대 총선과 몇 차례 재·보궐선거 때 당 지도부의 잇따른 지원 요청을 받았지만 “선거는 ‘책임 있는 자리’에 계신 분들이 치르는 것”이라며 고사했다. 최근에도 정몽준 대표가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박 전 대표의 지방선거 지원을 기대한다”고 ‘러브콜’을 보냈지만 묵묵부답이다.
과연 박 전 대표가 지방선거 지원에 나설지 현 단계에서는 전망을 내리기 쉽지 않다. 무엇보다 세종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종시 수정법안은 이르면 이번 주 초 국회에 제출될 예정으로,
4월 임시국회에서 처리될 가능성은 낮다. 경우에 따라서는 6·2지방선거 이후로 넘어갈 것이란 관측이 많다. 따라서 세종시 문제는 지방선거의 최대 쟁점으로 자리 잡으면서 한나라당 친이계와 친박계 사이에서도 치열한 논쟁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만일 지방선거 전에 세종시 문제가 결론 나지 않으면, 특히 박 전 대표가 요구하는 대로 원안 추진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박 전 대표가 선거 지원에 나설 명분은 없다. 한 핵심 측근은 “충청권만이 아니라 전국적인 이슈가 된 세종시 문제가 매듭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전국을 돌아다니며 한나라당에 표를 달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대신 박 전 대표의 뜻대로 세종시 원안 고수 쪽으로 결론이 나면 박 전 대표가 당 지도부의 지원유세 요청을 뿌리치기 어렵다. 이 측근은 “세종시가 원안 추진으로 좋게 마무리되면 지원 유세에 나설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친박계 핵심인 한나라당 이성헌 의원도 “한나라당에서 국민에게 공약한 약속을 철저하게 지킬 수 있을 때 본인(박 전 대표)이 나설 수 있지, 공약은 해놓고 나중에 ‘그때 표 얻기 위해서 한 것’이라고 이야기하면 곤란하다”(3월 11일 CBS 라디오 인터뷰)고 말했다. 세종시 원안 처리가 지원유세의 ‘필요조건’임을 시사한 셈이다.
세종시 원안 추진이란 필요조건이 충족되더라도 현재 당직이 없어 ‘책임 있는 자리’에 있지 않은 박 전 대표가 지금까지의 원칙을 바꿔 지원유세에 나서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문제가 생긴다. 이 부분에 대해 한 측근은 ‘박근혜 지방선거 중앙선거대책위원장론’을 피력했다. 재·보선과 달리 지방선거에서는 중앙선대위가 꾸려진다. 박 전 대표가 중앙선대위원장을 맡으면 전국을 돌며 지원유세를 펼칠 수 있는 ‘책임 있는 자리’에 앉게 된다.
친박계에서 시작된 ‘세종시 원안 처리’와 ‘박 전 대표의 지원유세’ 빅딜설은 과연 현실화될 수 있을지, 지방선거를 앞두고 또 하나의 변수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