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경제 운용에서 화폐 부문은 실물 부문과 균형을 이룬다. 계획경제 체제인 북한에서 화폐는 계획된 물자의 분배를 뒷받침하는 회계수단이지만, 이 또한 화폐수량론(quantity theory of money)의 예외가 될 수는 없다. 북한의 생산능력은 전성기의 30~40% 수준으로 만성적인 물자부족 상태에 있다. 화폐 부문에 변동이 없다고 가정하면, 생산이 줄 경우 물가가 상승해야 화폐 부문과 실물 부문의 균형을 이룬다. 당국이 억지로 물가를 통제하면 암시장이 형성될 뿐이다.
물자 부족으로 물가가 상승할 상황이라도 화폐유통 속도를 느리게 하면 거시경제는 안정을 이룬다. 가장 일반적인 정책수단이 이자율 조정이다. 이자율을 높여 돈의 값을 비싸게 하면 사람들은 돈을 함부로 쓰거나 빌리지 않는다. 화폐유통 속도가 느려지는 것이다. 그런데 시장경제 체제와 달리 북한에서는 돈이 ‘사고파는’ 재화가 아니다. 시장경제식 상업은행은 없으며, 중앙은행인 조선중앙은행은 통화조절 기능보다 발권을 주로 담당한다. 북한에서 이자율 조정은 물가상승 방지를 위한 효과적인 정책수단이 아니다.
화폐유통 속도를 조절하기 어렵다면 화폐 공급량을 줄여야 한다. 북한 당국이 고육책으로 생각해낸 게 2003년 5월의 ‘인민생활 국채’ 발행이다. 주민들은 반강제적으로 이 공채를 사야 했다. 북한에서 채권은 자본주의 사회의 빚 문서이며 착취적 성격을 지닌다고 규정된다. 이처럼 구조적인 문제엔 손을 대지 않고 단편적인 방식으로 화폐량을 흡수하려는 조치는 ‘흐르는 강물을 바가지로 퍼내는 것’처럼 무모한 짓이다.
만성 물자부족이 화폐개혁으로 이어져
화폐 부문 팽창이 불가피하다면 물자를 확대 공급해 실물 부문이 화폐 부문과 균형을 이루게 함으로써 물가상승을 피할 수 있다. 국내에서 물자를 충분히 생산하지 못하면 해외에서 수입하면 된다. 하지만 수입은 지불수단, 즉 외화를 필요로 한다. 북한이 국제적인 비난에도 위조화폐를 만들고, 무기를 수출하며, 마약유통에 관여하는 등 외화 획득에 목을 매는 이유도 군사력 유지와 더불어 생산과 소비에 필수적인 물자를 수입하기 위해서다.
사실 화폐개혁과 거시경제 균형의 붕괴, 사영 시장의 성장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북한은 1990년대 중반 대기근 이후 배급제를 근간으로 하는 공적 자원분배제도가 붕괴하자 어쩔 수 없이 시장을 허용했다. 문제는 제도권 밖의 자원분배 체제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지나치게 커졌다는 것. 당국도 처음엔 묵인하는 형식을 취했으나 나중에는 매대(시장 판매대) 임대료를 받고, 가격 상한선을 제정하며, 상인 자격을 제한하는 등 통제에 나섰다. 당국과 시장이 결합하는 과정에서 부패, 이윤추구, 빈부격차, 배금주의, 국외 세력과의 밀착 등 이른바 ‘주체 사회주의’의 기강을 흩뜨리는 각종 ‘악(惡)’이 걷잡을 수 없이 발생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거시경제 운용의 어려움이었다. 시장이 성장함에 따라 교환활동을 위한 화폐 수요가 증가했다. 화폐유통 속도가 빨라졌으며 당국도 사회적 요구에 맞춰 계속 화폐를 발행했다. 물가는 상승하고, 주민들은 물자 확보를 위해 당국에 점점 덜 의존하게 됐다. 이제 주민들은 직장에 나가기보다 시장경제 활동에 종사했다. 체제 정통성(legitimacy)에 위기의 조짐이 나타난 것이다.
대부분 국가는 화폐개혁을 꺼린다. 한두 가지 긍정적인 효과를 얻을지라도 그 피해가 광범위하고 오래 지속되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음에도 북한 당국이 이번 조치를 취한 이유는, 화폐개혁이 경제난 극복과정에서 드러난 각종 문제를 해결하는 거의 유일한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뿌리 놔둔 채 가지 치는 격
생산은 답보 내지 퇴보 상태에 빠졌고, 방만한 재정 운용 및 대북(對北) 물자 반출에 대한 중국 당국의 엄격한 심사, 국제 제재에 따른 해외 원조물자 급감으로 물자는 부족하다. 그런데 화폐량은 늘어나고 화폐유통 속도를 조절할 적절한 제도는 없다. 이 상황에서 인플레이션은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었다. 1대 100의 신구권 교환 비율이 말해주듯 물가상승은 심각한 정치·사회적 문제였다. 자원분배의 질서를 재정립하고, 정부의 권위를 세우며, ‘해이해진’ 주민의 정신자세를 다잡으려면 충격요법이 필요했다.
북한 당국은 화폐개혁의 피해에 대한 심리적 부담을 크게 갖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 10여 년간 시장 활성화는 어쩔 수 없이 현실을 인정한 수동적 조치의 결과였다. 시장의존 생활자는 큰 타격을 받을 것이지만, 사적 이익을 추구한 자의 당연한 귀결로 치부될 뿐이다. 김정일 체제를 떠받치는 200여 만의 핵심계층은 정보나 대응능력이 뛰어나 별 타격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화폐개혁은 2012년이 목표인 강성대국 완성을 위한 전략적 절차의 하나로 추진된 것으로 보인다. 강성대국 구축을 위한 3대 축은 법제도 정비(2009년 4월 헌법개정), 핵 무장(2009년 5월 제2차 핵실험)과 물자수급 안정, 경제활동에 대한 정권 통제의 확보다. 이는 결국 2012년 이후 대두될 세습구도와 연결될 것이다. 국내외 정치·경제를 정리해 김씨 일가 정치권력의 권위를 세우고, 부자세습의 명분을 확보하며, 사회적 불만을 미리 잠재우고자 한 것이다.
이번 조치의 충격은 상당하지만 그 파괴력은 생각보다 작을 것이다. 북한식 계획경제체제에서 화폐 부문은 실물 부문을 보조하는 기능을 가질 뿐, 독립적인 경제영역도 아니고 서로 보완하는 관계도 아니다. 물자를 어떻게 충분히 공급하고 순환시킬지에 대한 대책은 없이, 인위적으로 물가를 내리고 시장을 해체하는 것은 ‘뿌리를 놔둔 채 가지를 치는 격’이다. 또한 북한은 매우 치밀한 행정국가다. 북한은 현재 당, 행정부 등 국가 기관을 총동원해 동과 읍리 등 사회 하부 단위까지 화폐개혁을 설명하고 그 취지를 홍보해 사회적 충격을 줄이고 있다.
시장은 이미 자원분배의 장(場)뿐 아니라 주민의 소득원(源) 기능을 하고 있다. 구 화폐를 신권으로 바꾸는 한도를 4인 가족 기준 15만~30만원(한두 달 생활비)으로 정한 것은 시중 현금의 흡수뿐 아니라 주민들의 직장 복귀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직장에 가서도 할 일이 없고, 일하더라도 충분한 임금을 받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이번 조치는 결국 ‘헤쳐모여’를 위한 한바탕 소란으로 끝날 것이다.
물자 부족으로 물가가 상승할 상황이라도 화폐유통 속도를 느리게 하면 거시경제는 안정을 이룬다. 가장 일반적인 정책수단이 이자율 조정이다. 이자율을 높여 돈의 값을 비싸게 하면 사람들은 돈을 함부로 쓰거나 빌리지 않는다. 화폐유통 속도가 느려지는 것이다. 그런데 시장경제 체제와 달리 북한에서는 돈이 ‘사고파는’ 재화가 아니다. 시장경제식 상업은행은 없으며, 중앙은행인 조선중앙은행은 통화조절 기능보다 발권을 주로 담당한다. 북한에서 이자율 조정은 물가상승 방지를 위한 효과적인 정책수단이 아니다.
화폐유통 속도를 조절하기 어렵다면 화폐 공급량을 줄여야 한다. 북한 당국이 고육책으로 생각해낸 게 2003년 5월의 ‘인민생활 국채’ 발행이다. 주민들은 반강제적으로 이 공채를 사야 했다. 북한에서 채권은 자본주의 사회의 빚 문서이며 착취적 성격을 지닌다고 규정된다. 이처럼 구조적인 문제엔 손을 대지 않고 단편적인 방식으로 화폐량을 흡수하려는 조치는 ‘흐르는 강물을 바가지로 퍼내는 것’처럼 무모한 짓이다.
만성 물자부족이 화폐개혁으로 이어져
화폐 부문 팽창이 불가피하다면 물자를 확대 공급해 실물 부문이 화폐 부문과 균형을 이루게 함으로써 물가상승을 피할 수 있다. 국내에서 물자를 충분히 생산하지 못하면 해외에서 수입하면 된다. 하지만 수입은 지불수단, 즉 외화를 필요로 한다. 북한이 국제적인 비난에도 위조화폐를 만들고, 무기를 수출하며, 마약유통에 관여하는 등 외화 획득에 목을 매는 이유도 군사력 유지와 더불어 생산과 소비에 필수적인 물자를 수입하기 위해서다.
사실 화폐개혁과 거시경제 균형의 붕괴, 사영 시장의 성장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북한은 1990년대 중반 대기근 이후 배급제를 근간으로 하는 공적 자원분배제도가 붕괴하자 어쩔 수 없이 시장을 허용했다. 문제는 제도권 밖의 자원분배 체제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지나치게 커졌다는 것. 당국도 처음엔 묵인하는 형식을 취했으나 나중에는 매대(시장 판매대) 임대료를 받고, 가격 상한선을 제정하며, 상인 자격을 제한하는 등 통제에 나섰다. 당국과 시장이 결합하는 과정에서 부패, 이윤추구, 빈부격차, 배금주의, 국외 세력과의 밀착 등 이른바 ‘주체 사회주의’의 기강을 흩뜨리는 각종 ‘악(惡)’이 걷잡을 수 없이 발생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거시경제 운용의 어려움이었다. 시장이 성장함에 따라 교환활동을 위한 화폐 수요가 증가했다. 화폐유통 속도가 빨라졌으며 당국도 사회적 요구에 맞춰 계속 화폐를 발행했다. 물가는 상승하고, 주민들은 물자 확보를 위해 당국에 점점 덜 의존하게 됐다. 이제 주민들은 직장에 나가기보다 시장경제 활동에 종사했다. 체제 정통성(legitimacy)에 위기의 조짐이 나타난 것이다.
대부분 국가는 화폐개혁을 꺼린다. 한두 가지 긍정적인 효과를 얻을지라도 그 피해가 광범위하고 오래 지속되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음에도 북한 당국이 이번 조치를 취한 이유는, 화폐개혁이 경제난 극복과정에서 드러난 각종 문제를 해결하는 거의 유일한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뿌리 놔둔 채 가지 치는 격
생산은 답보 내지 퇴보 상태에 빠졌고, 방만한 재정 운용 및 대북(對北) 물자 반출에 대한 중국 당국의 엄격한 심사, 국제 제재에 따른 해외 원조물자 급감으로 물자는 부족하다. 그런데 화폐량은 늘어나고 화폐유통 속도를 조절할 적절한 제도는 없다. 이 상황에서 인플레이션은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었다. 1대 100의 신구권 교환 비율이 말해주듯 물가상승은 심각한 정치·사회적 문제였다. 자원분배의 질서를 재정립하고, 정부의 권위를 세우며, ‘해이해진’ 주민의 정신자세를 다잡으려면 충격요법이 필요했다.
북한 당국은 화폐개혁의 피해에 대한 심리적 부담을 크게 갖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 10여 년간 시장 활성화는 어쩔 수 없이 현실을 인정한 수동적 조치의 결과였다. 시장의존 생활자는 큰 타격을 받을 것이지만, 사적 이익을 추구한 자의 당연한 귀결로 치부될 뿐이다. 김정일 체제를 떠받치는 200여 만의 핵심계층은 정보나 대응능력이 뛰어나 별 타격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화폐개혁은 2012년이 목표인 강성대국 완성을 위한 전략적 절차의 하나로 추진된 것으로 보인다. 강성대국 구축을 위한 3대 축은 법제도 정비(2009년 4월 헌법개정), 핵 무장(2009년 5월 제2차 핵실험)과 물자수급 안정, 경제활동에 대한 정권 통제의 확보다. 이는 결국 2012년 이후 대두될 세습구도와 연결될 것이다. 국내외 정치·경제를 정리해 김씨 일가 정치권력의 권위를 세우고, 부자세습의 명분을 확보하며, 사회적 불만을 미리 잠재우고자 한 것이다.
이번 조치의 충격은 상당하지만 그 파괴력은 생각보다 작을 것이다. 북한식 계획경제체제에서 화폐 부문은 실물 부문을 보조하는 기능을 가질 뿐, 독립적인 경제영역도 아니고 서로 보완하는 관계도 아니다. 물자를 어떻게 충분히 공급하고 순환시킬지에 대한 대책은 없이, 인위적으로 물가를 내리고 시장을 해체하는 것은 ‘뿌리를 놔둔 채 가지를 치는 격’이다. 또한 북한은 매우 치밀한 행정국가다. 북한은 현재 당, 행정부 등 국가 기관을 총동원해 동과 읍리 등 사회 하부 단위까지 화폐개혁을 설명하고 그 취지를 홍보해 사회적 충격을 줄이고 있다.
시장은 이미 자원분배의 장(場)뿐 아니라 주민의 소득원(源) 기능을 하고 있다. 구 화폐를 신권으로 바꾸는 한도를 4인 가족 기준 15만~30만원(한두 달 생활비)으로 정한 것은 시중 현금의 흡수뿐 아니라 주민들의 직장 복귀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직장에 가서도 할 일이 없고, 일하더라도 충분한 임금을 받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이번 조치는 결국 ‘헤쳐모여’를 위한 한바탕 소란으로 끝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