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기쁜소식선교회가 의료봉사 활동을 펼칠 때 간이 병원을 찾은 케냐 국민. 이후 아프리카 각국에서 병원과 의대 설립 요청이 계속됐다.
11월24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아프리카 포럼은 기쁜소식강남교회 박옥수(64) 목사에게 가슴 뿌듯한 행사였다. 케냐, 가나, 토고 등 아프리카 10여 개국 목사를 위해 성경학교(Bible College)를 세우고, 케냐의 공중파 방송국이 첫 전파를 쏘아 올렸으니 그로서는 그럴 만도 하다.
아프리카에서 방송국 설립자가 된 사연이 궁금했지만, 아프리카 얘기에 잠소(潛笑)하는 그의 얼굴을 보니 타이밍 조절이 필요했다. 처음 케냐와 맺은 인연이 떠올랐던지 그는 16년 전 엑스포 얘기부터 꺼냈다.
“1993년 우연히 아내와 대전엑스포 케냐 부스에 들렀어요. 당시 케냐에선 20명의 대표단이 왔는데, 얘기를 들어보니 한국의 물가가 너무 비싸 식사 대용으로 고구마를 먹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집으로 초청해 케냐 사람들이 좋아하는 닭고기 요리를 대접했어요.”
저녁식사 초청을 받으면 선물을 전하는 게 케냐 문화였지만, 사정상 선물을 준비할 수 없었던 그들은 대신 전날 화음을 맞춘 ‘노래 선물’을 풀어놓았다고.
“정말 고마운 선물이었어요. 그래서 ‘한국에 있으면서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었더니 여행이라고 대답하는 거예요. 돈을 들여 여행시켜줄 수는 없고, 지방에 목회하러 갈 때 뒷좌석에 태우고 한국 구경시켜줬죠.”
대전엑스포 케냐 대표단이 인연
며칠 뒤 케냐 상공부 장관이 이 얘기를 전해 듣고는 박 목사의 집에 인사차 들렀다. 박 목사 부부는 다시 한국식 닭고기 요리로 저녁을 대접했고, 장관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답례로 그를 케냐로 초청했다. 당시 맺은 인연으로 그의 교회는 케냐에 선교사를 파송해 선교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지금은 수도 나이로비 외에 13곳에 교회를 짓고 선교활동을 하고 있으며, 2007년부터는 성경학교를 세워 현지 목사들에게 성경 교육을 하고 있다. 케냐에서 외국인이 선교사 활동을 한 것은 그가 처음이라고 한다.
“케냐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다 보니 도와줘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케냐는 기독교 국가지만 정식으로 성경을 배우지 못한 목사도 많아요.”(국가정보원에 따르면 케냐 인구는 약 3800만명. 종교는 기독교 45%, 가톨릭교 33%, 이슬람교 10%, 토착종교 10%)
지난해 8월에는 케냐와 인접국 대학생 3000여 명과 목회자, 자원봉사자 1500여 명이 IYF(International Youth Fellowship·국제청소년연합) 월드캠프를 열었다. 즐길 거리가 적은 케냐 사람들을 위해 행사를 연다고 하니 케냐 정부는 8000달러를 행사비용으로 지원했고 고위공직자 부인들이 행사를 도왔다. 뜻하지 않게 방송국 설립 얘기가 나온 것도 이때다.
“당시 케냐 정부는 교회에 라디오 방송을 허가해줬습니다. 그런데 제가 공중파 TV 방송국 개국을 허가해달라고 요청했죠. 결국 논의 끝에 디지털 방송국을 개국하는 조건으로 허가받았죠.”
이때 케냐에서는 아날로그 방송에서 디지털 방송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박 목사를 통해 한국의 선진 방송기술을 들여오는 기회로 활용하려는 생각도 있었던 것이다.
케냐 방송국 GBS 설립을 주도한 박옥수 목사와 GBS 방송국.
박 목사는 바빠졌다. 공중파 방송국 GBS(Good News Broadcasting System)는 기독교 방송국이지만, 프로그램의 45%는 드라마, 보도, 교양, 어린이 등 종합편성 채널과 다름없다. 그래서 우선 국내 기독교 방송국에서 일한 베테랑 방송요원들을 영입해 현지 직원 75명을 교육했고, 장기적인 인력 양성을 위해 아예 ‘방송학교’를 세웠다. 국내 KBS와 아리랑방송과는 콘텐츠 공급 계약을 했고, 현지에서 자체 드라마 제작도 마쳤다. 종교 프로그램 제작에는 박 목사와 현지인 목사들이 참여한다. 여자 59세, 남자 53세인 케냐의 평균수명을 감안해 주요 타깃은 청소년부터 30대까지로 잡았다. 방송은 11월25일 첫 전파를 탔다.
“케냐에서는 미국 드라마를 많이 방영하는데, 현지 반응은 ‘별로’입니다. 하지만 한국 드라마와 뉴스에 대해선 반응이 좋아요. 아프리카에도 곧 한류 바람이 불 겁니다.”
케냐에서의 성공적 안착 소식은 인접 국가에도 전해졌고, 가나·말라위 등에서 종합병원과 의과대 설립을 지원해달라는 요청이 잇따랐다. 지난해 월드캠프 때 의료진 92명과 함께 가나, 토고, 르완다 등지에서 한 의료봉사에 대한 반응이 좋았던 것도 한몫했다. 특히 말라위는 HIV(에이즈) 환자가 많아 평균수명이 43.45세(2008년 기준)에 불과하다. 인구가 약 1400만명인데 의사는 200명에 그친다는 게 현지 관계자의 설명.
박 목사는 가나 의사들이 한국의 종합병원에 와서 3~6개월간 의료공부를 할 수 있게 돕기로 했고, 말라위에서는 수도 릴롱궤에 종합병원과 의대, 방송국을 짓기로 했다. 3만82㎡(9100평)의 땅은 말라위 정부가 제공한다.
그건 그렇고, 누구나 가기를 꺼리는 오지에서 수년간 근무할 의사가 있을지 궁금했다. 박 목사는 선교회 소속 국내 의사를 양성하는 한편, 인도 의사가 말라위에서 일정 기간 봉사하면 한국에서 일할 특전을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프리카에 지원금을 보내면 일부 정치지도자에게 돌아갑니다. 대신 의료와 교육 등을 지원하면 국민이 혜택을 봅니다. 가난하고 어둡게 사는 그들에게 삶의 지혜를 가져다줘야 합니다.”
그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여 있었다. 잠시 뒤 평소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그를 둘러싼 이단 논쟁.
“기독교 역사를 보면 기독교가 타락할 때 새롭게 일어나는 종파는 늘 이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교회를 이단이라고 해도 저는 아무렇지 않습니다. 내가 벌 받을 짓을 하지 않았으니까요.”
박 목사는 자신이 속한 교회가 밝고 바르게 살기 때문에 신도가 느는 것을 보고 다른 교회가 두려워하는 것이라 분석했다. 그는 “교리가 기존 교회와 다르지도 않고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지도 않았으며, 교회 목사 중 재산을 가진 사람도 없다”며 기성 교계와의 토론회를 제안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