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 3세에서 13세까지, 건강한 몸과 정신을 가진 10명의 어린이가 한자리에 모였다. 나이도, 사는 곳도, 꿈도 제각각인 이 아이들은 그러나 “나쁜 짓을 하는 어른들이 무섭고 부끄럽다” “어른들이 나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거나 공부하라고 스트레스를 주는 게 싫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2009년 대한민국. 이 시기, 이 공간에 사는 우리 아이들은 어떤 생각과 꿈을 갖고 있을까. 또 어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감춰둔 ‘그 한마디’는 뭘까. 어른들의 거울인 어린이들의 솔직 당당한 생각 속에서 가슴 뜨끔한 진실과 교훈을 느껴보자.
내가 가장 듣기 좋아하는 말, 싫어하는 말은? “어른들이 언니만 예쁘다고 하고, 나는 안 예쁘다고 하면 싫어요. 나도 예쁘다고 하면 제일 좋아요.”
이예은·이하은 쌍둥이 자매 (3·경기 수원 팔달구)
엄마가 이런 건 절대 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밖에 나가 놀 때, 엄마 얼굴 안 보이는 데까지 멀리 가면 나쁜 아저씨가 잡아갈 수도 있대요. 무서워요.”
내가 가장 듣기 좋아하는 말, 싫어하는 말은? “하은이보고 바비공주같이 예쁘다고 하면 좋아요. 그리고 어른들이 큰 소리로 말할 때는 아주 무서워요. 소리 지르지 마세요.”
이럴 때 기분이 제일 좋아요. “친구들이랑 엄마가 나 좋아하고요, 엄마가 밤에 책 많이 읽어주시는 거요.”
이럴 때 우리나라가 창피해요. “쓰레기를 버리면요, 지구가 화를 내요.”
이런 어른은 되고 싶지 않아요. “약속도 안 지키면서 막 혼내는 어른이요.”
김세훈 (5·서울 강남구 일원동)
이런 어른은 되기 싫어요. “거짓말로 ‘과자 사줄게’ 하면서 데려가는 아저씨!”
이럴 때 우리나라가 자랑스러워요. “무궁화 꽃이 많이 피어서 엄청나게 예쁠 때요.”
이럴 때 우리나라가 창피해요. “윗옷을 막 올리고요, 엉덩이를 보여주는 변태가 있을 때요. 변태는 너무 싫어요.”
김세하 (6·서울 강남구 일원동)
이럴 때 기분이 제일 좋았어요. “공부 잘한다고 엄마 아빠한테 칭찬받았을 때요.”
어른들에게서 제일 많이 듣는 말은? “공부 잘해라.”
언제 가장 행복해요? “학원 안 가도 되는 날이요. 수학이랑 영어 배우는데 학원 가는 게 귀찮을 때도 있어요. 친구 혜정이, 민지랑 엄마놀이 할 때가 제일 좋아요. 또 사람들이 저보고 예쁘다고 말해주는 것도 좋아요. 저는 미스코리아가 꿈이거든요.”
이나경 (8·경기 남양주 구룡초교 2학년)
‘스이바라’는 자신이 직접 만든 캐릭터 이름. 캐릭터는 곧 자기 자신이라는 설명이다.
어른들에게서 제일 많이 듣는 말은? “일찍 자라는 말이요. 근데 학원 갔다 와서 학교 숙제 하고, 학원 숙제랑 학습지까지 하려면 12시가 넘을 때도 있어요. 콩쿠르 준비 때문에 가끔씩 피아노 연습도 해야 하고요.”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아인슈타인이랑 김대중 대통령이요. 둘 다 평화주의자잖아요.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도 만들었고요.”
이런 어른은 되기 싫어요. “길거리에다 막 쓰레기 버리고 담배 피우는 사람이요. 그리고 텔레비전에서 친구만 믿다 전 재산을 날리는 사람을 봤는데요, 어른이면 경제 지식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아무리 친구가 착해도 친구보다 자기 자신을 믿어야죠. 한심한 사람이 되기는 싫어요.”
송승현 (9·경기 일산 호곡초교 3학년)
우리나라가 가장 자랑스러웠던 일, 창피했던 일은? “베이징올림픽에서 야구 금메달 땄을 때 제일 자랑스러웠어요. 그리고 길거리에 쓰레기가 떨어져 있으면 제일 창피해요. 외국 사람들이 보면 얼마나 흉을 보겠어요?”
가장 듣기 좋아하는 말은? “동규라서 좋아.” “동규가 최고야.”
이런 어른은 되기 싫어요. “담배 피우는 사람이요. 냄새 나고 건강에도 나빠요. 전 일찍 죽는 게 싫어서 콜라랑 프라이드치킨도 안 먹어요. 200살까지 건강하게 살고 싶어요.”
이동규 (10·경기 남양주 구룡초교 4학년)
가장 듣기 싫은 말은? “살 빼라.”
우리나라가 창피할 때는? “나영이 사건을 보면서 사회가 너무 타락했다고 느꼈어요. 또 요즘 초등학생들은 조금만 짜증나도 막 욕을 해요. 세상이 너무 나빠진 거죠?”
이럴 때 제일 싫어요. “초등학생이라고, 어리다고 무시하는 거요. 그래서 얼른 어른이 되고 싶다가도 같은 교회 대학생 언니 오빠들이 하는 말을 들으면 지금의 삶을 만끽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먹고살 취직 걱정을 해야 한다며 ‘초딩 생활을 즐기라’고 하더라고요.”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저는 작사가가 꿈이에요. 운율을 맞춰 랩을 몇 개 써보기도 했어요. ‘사랑하는 그녀, 더 높은 곳을 하이어(higher), 우리 함께한 원 이어(one year)…’ 어때요? 제 꿈을 키울 수 있도록 많은 걸 배우고 싶어요.”
권유미 (12·서울 홍제초교 6학년)
최근 가장 기분 좋았던 일, 화났던 일은? “학원 월례고사에서 영어 성적이 상위 3위 안에 들었던 거요. 그렇지만 졸리고 아플 때 학원에 강제로 가라고 하면 스트레스가 막 쌓여요.”
어른들에게서 제일 많이 듣는 말은? “어서 공부해.” “항상 자신감을 가져.” “네가 한 게 뭐가 있어?” “넌 할 수 있을 거야.”
우리나라가 창피할 때는?
“나영이한테 일어난 일처럼, 끔찍한 범죄가 줄지 않는 것이요. 가해자에 대한 사면권을 없애고 가혹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정치 후진국이라는 점도 부끄러워요.”
장래 희망과 어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저는 커서 검사나 사업가가 되고 싶어요. 만약 회사 회장이 되면 돈을 많이 벌어서 누리고 싶은 것 다 누리고 죽을 때는 남는 재산을 모두 국제 난민들에게 기부할 거예요.”
어른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은? “너무 공부만 시키지 말고 밖에서 뛰어놀게 해주세요.”
전상우 (12·서울 경기초교 6학년)
최근 가장 스트레스 받은 일은? “시험 끝나고 컴퓨터 게임을 너무 오래해서 엄마한테 혼난 거요. 온라인에서 제 아바타를 가지고 활동하는데 이 캐릭터는 ‘제2의 나’ 같은 존재예요. 관리를 해줘야 하는데 그렇게 못할 때 속상해요.”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스트레스를 준 사람들에 대한 복수를 꿈꿔요.”
롤모델이 있나요? “학벌은 아빠를, 일하는 스타일은 엄마를 가장 닮고 싶은데요, 부모님 기대에 못 미치는 사람이 될까 봐 압박감이 들어요. 얼마 전에 학원 선생님께서 ‘부모님이 훌륭한 분들이라고 너무 부담감 느끼지 마라. 너는 너 나름대로 열심히만 하면 되는 거다’라고 말씀해주셨는데 정말 감사했어요. 4학년 때까지는 만화가나 일러스트레이터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 돈을 많이 못 벌 것 같아 미술담당 기자로 꿈을 바꿨어요.”
어른들에게서 제일 많이 듣는 말은? “컴퓨터 좀 그만해.” “공부는 잘하고 있니?” “책 좀 읽어라.”
이런 어른은 되기 싫어요. “집에서 아이만 바라보고 일하지 않는 여자요. 답답한 생각이 들어요.”
스이바라 (가명·12·서울 홍제초교 6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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